<일요초대석> 가양주 비법 전수자 이화선 향음 대표

“일본 술이 과학? 우리 술은 예술!”

[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끝났다. 대부분의 차례상에는 정종이 올라왔다. 일제의 잔재가 술에도 남아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쌀시장을 전면개방하기로 했다. 농민들은 울부짖었다. 농민의 아픔과 일본의 잔재를 어떻게 씻어낼 수 있을까. 이화선 향음 대표를 만나 그 대안을 들어보았다.

서울 은평구 무악재역 4번 출구를 나와 아담한 빌딩에서 술 익는 구수한 냄새가 발걸음을 잡는다. 이곳에서 계량한복을 입은 이화선 향음 대표가 전통주를 빚고 있었다.

“맛 예측 못하죠”

“와인을 이야기할 때 미국 캘리포니아산 와인은 과학이고, 프랑스산 와인은 예술이라고들 하지요. 마찬가지로 일본의 술이 과학이라면 우리의 술은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본 술은 맛이 균일합니다. 잘 배양한 누룩을 인공 접종하는 방식이라 실패가 없죠. 반대로 우리 술은 변화무쌍합니다. 생전분에 곰팡이가 자연 접종되게 하는 자연배양법으로 만들기 때문에 예측이 불가해요. 누룩에 따라, 물맛에 따라 맛이 달라지거든요. 계절마다, 지역마다, 집안 내력마다 또 다르고요. 그런데 이렇게 다양해질 수 있는 우리 전통주가 일본 술처럼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

우리와 일본은 같은 곡식으로 술을 빚지만 그 과정은 전혀 다르다. 우리 전통술은 단백질을 포함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안고 간다. 산패할 위험이 있지만 맛에 있어서는 일본 술을 뛰어넘기도 한다.

우리 전통주에는 혀를 감아올리는 감칠맛, 언뜻언뜻 쓴맛, 모를 듯 적시는 신맛, 잔을 놓기 전에 혀를 조이는 매운맛까지 다양한 맛이 담겨 있다. 우리 술을 제대로 빚었을 때 느끼는 오미다. 반면 쌀을 확 깎아내 전분만을 취했을 때 낼 수 있는 사케의 맛은 서리같이 베어내는 칼 같은 깔끔함이다. 이 대표는 우리 술과 일본 술의 맛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 대표는 올 초 우리 술과 천연식초 연구회인 ‘향음’을 설립했다. 연구소에서 그는 워크숍을 통해 우리 술 빚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가양주 비법을 전수하고 있다. 가양주란 말 그대로 집에서 담근 술이다.

조선시대는 가양주의 전성기였다. 연구소 문패가 ‘향음’인 것도 조선시대 향교의 6례 중 하나인 향음주례를 의미하기 위해서다.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은 열심히 가양주를 빚었다. 집집마다 독특하고 다채로운 술이 존재했다. 문헌에 나오는 술의 종류만 600종이 넘는다.

일제강점기·박정희 시대 때 명맥 끊어져
농촌경제에 관심…이후 전통주 복원 사업

이러한 우리 전통주의 맥이 단절된 것은 1900년대부터다. 1909년 조선통감부는 최초의 간접세인 주세법과 주세령을 내렸다. 자가 양조는 전면 금지됐다. 즉 허가받고 세금 내는 양조장만 술을 만들게 한 것이다. 이후 전국의 가양주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숱하게 많았던 탁주와 청주들 그리고 우리의 고유한 술들이 사라졌다.

“처음부터 전통주를 연구하겠다고 어떤 계획을 세웠던 것은 아니었어요. 평소 술 자체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해외로 출장 갈 때마다 각국의 술 라벨을 살펴보는 버릇도 있고요. 백제에서 술 조제법을 배워간 일본이 우리보다 술 문화를 잘 지켜내고 있는 것도 한편으론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거꾸로 전통주를 그동안 일본 술처럼 만들고 있잖아요. 세계 어느 곳에 내놔도 손색없는 우리 전통주가 이런 식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그나마 명맥을 이은 전통주도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화 시대 이후 사라져갔다. 당시 정부는 막걸리 제조에 국내 쌀 사용을 금했다. 당시에는 쌀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수입 밀가루로만 만들게 하니 막걸리의 맛은 형편없어 졌다. 이후 속성 카바이트 막걸리와 사카린 막걸리가 쏟아져 나왔다. 막걸리를 빨리 발효시키기 위해 탄산칼슘을 넣은 불량 막걸리들이 활개를 쳤다. 지금까지도 진정한 의미의 전통주는 모습을 감췄다. 3대째 이어온 명주들 중 대다수가 일본식 입국법을 통해 만들고 있다고 한다.

전통주는 크게 청주, 탁주, 약주, 소주로 분류할 수 있다. 청주는 말 그대로 맑은 술이고, 탁주는 대체로 막걸리를 떠올리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다만 이 대표는 ‘약주’라는 명칭을 쓰지 않는 게 좋다고 주장했다.


“원래 약주는 조선시대 때 약용주라고 해서 당귀나 인삼 같은 약용 성분이 있는 재료를 첨가한 술이에요. 그런데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자국에 청주가 있다는 이유로 조선의 청주를 약주라고 명칭을 바꿔버렸습니다. 지금까지도 어르신들 사이에서 약주가 소주나 청주 등으로 통하죠. 게다가 대부분의 생산업체들은 누룩을 발효제로 사용하지 않는 입국법으로 제조하기 때문에 지역적인 맛의 특성은 없고 소비자에게 거의 동일한 맛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혀감는 감칠맛
언뜻언뜻 쓴맛
살짝도는 신맛

이 대표가 전통주 복원에 매달리게 된 것은 일본의 잔재를 없애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쌀시장 전면개방에 맞설 수 있는 해답이 전통주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금융전문가로 살았던 그가 전통주 복원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쌀 수입 개방 이후 농민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연구하면서부터다. 한국은행 출신 금융인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레 농촌경제에 관심을 가졌다. 이 대표는 전통주가 농촌경제를 살리는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제시했다.

쌀시장 개방의 해답

“그간 정부에서 쌀 소비를 늘린다고 떡, 쌀 과자 등을 소개하고 개발하며 부단히 애써왔죠. 그러나 이러한 과자나 떡류만으로 쌀 수입개방에 맞서기는 부족합니다. 반면 우리 전통 청주 한 병을 빚으려면 우리 쌀 2∼3kg 정도가 소비됩니다. 어떤 상품보다 쌀 소비를 늘릴 수 있다고 봅니다.”

이 대표의 꿈은 오늘도 항아리 안에서 익어가고 있다.

 

<dklo21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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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