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GKL 비리 대해부

곪을 대로 곪아…툭하면 터진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영종도 리조트 설립 등 사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는 그랜드코리아레저(GKL). 한편에선 이른바 '중국인 타짜'에게 수십억원을 털려 눈총을 받고 있다. 이들의 부실한 카지노 관리가 도마에 오른 데 이어 최근엔 한 간부급 직원이 거액의 횡령 사건에 연루돼 체면을 구겼다. 다가올 국회 국정감사에선 'VIP 성접대 지원' 의혹이 재점화될 조짐이다. 매년 정부 당국의 시정 요구가 끊이지 않았던 '알짜 공기업' GKL. 사업 확장의 걸림돌은 도덕성이다.

카지노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다소 생소할 수 있다. 그랜드코리아레저(GKL)는 카지노를 운영하는 공기업이다. 원칙적으로 우리나라는 영내 자국민에게 카지노 출입을 불허하고 있다. 강원랜드와 같은 예외적인 사례도 있지만 아직까지 카지노는 국가가 규제하는 금단의 영역이다.

금단의 영역
사실상 독과점

그런데 한국관광공사의 자회사 GKL은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다. 2005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정확히 10년을 맞았다. 대주주 한국관광공사가 지분 51%를 갖고 있으며 영업 대상은 한국을 찾은 외국인이다. GKL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명목으로 국내 카지노시장을 사실상 '양분'해 왔다.

박정희정부부터 김대중정부까지 카지노 산업을 독점해 온 업체가 있다. 파라다이스다. 파라다이스는 지난 1968년부터 37년간 외국인 전용 카지노시장을 독점해 왔다. 당시 전문가들은 "정부가 파라다이스 측에 유리하도록 신규 카지노 진입장벽을 높게 쳐 줬다"고 지적했다.

리조트 사업 진출 등 영역 다각화
이면에선 직원·손님 비위 '펑펑'


이런 파라다이스의 아성을 서울에서 무너뜨린 카지노가 바로 GKL의 세븐럭이다. 세븐럭은 비교적 단기간에 시장에 안착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세븐럭의 성장 배경엔 공기업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몫을 했다. 외국인 VIP를 주로 상대한 까닭에 국내 경기 불황에도 그 여파가 크지 않았다.

지금은 여러 경쟁 후보군 업체가 있지만 GKL은 여전히 증권시장에서 독과점적인 지위로 투자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카지노 산업의 이익은 주변국의 경기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GKL은 중국의 경제 부흥과 더불어 성장세가 뚜렷했다. 증권시장에서 수익성이 보장되는 고배당 공기업을 꼽을 때면 GKL은 매번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렸다.

믿었던 GKL
도덕성 도마에

이런 GKL에도 악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올 8월 서울 강남경찰서는 GKL 차장급 직원 박모(46)씨를 업무상 횡령 혐의로 조사했다고 알렸다. 박씨는 공금 20억원을 빼돌리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사건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 7월18일 낮 회사 금고에서 20억원상당의 수표를 들고 나와 현금으로 바꾸려 했다. 당시 박씨는 500만원짜리 수표 400매를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급작스런 거액 인출을 의심한 은행 직원이 GKL 측에 확인 전화를 하면서 그의 횡령 사실이 드러났다. 박씨는 은행 창구에서 달아났다가 사건 당일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 조사에서 박씨는 혐의 사실을 대부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리 담당자로 알려진 박씨는 회사에서 금고 관리 등을 맡았다고 한다. 그러나 주식투자 실패로 거액의 빚을 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GKL은 사건 직후 박씨를 면직 처분했다고 알렸다.


지난 4월에는 세븐럭이 중국인 사기 도박단에게 30억원을 털릴 뻔한 사연이 전해졌다. 당시 GKL는 경찰 신고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건을 은폐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한 언론은 2013년 말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던 것에 비춰 사기도박이 최소 수회 이상 이뤄졌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먼저 지난 3월 GKL은 바카라 게임에 사용한 카드를 자체 조사한 결과 한 덱(8벌 카드)의 카드에서 똑같은 카드 한 장이 더 발견되고, 다른 한 장은 부족한 것을 확인했다.

문제의 게임에 참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인 도박단은 최소 카드 1장 이상을 숨겨 사기도박에 이용한 것으로 의심됐다. 차후 드러났지만 당시 중국인들은 상의 소매 깃에 미리 감춰둔 카드를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하룻밤 30억원의 돈을 땄다.

문제의 사기도박 사건은 GKL 내부 직원들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바카라 테이블팀 한 간부가 게임이 끝난 카드를 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 카드를 바꿔치기한 정황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대다수 카지노는 무늬가 독특한 카드를 미국이나 영국의 전문업체에 의뢰해 제작하고 있다. 사용 기간은 1년으로 한정된다.

그런데 사기도박을 한 중국인들이 사용한 카드는 'GKL 전용카드'여서 이들이 게임을 앞두고 미리 카드를 건네받은 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내부자 공모 의혹이 일었던 이유다. 또 카드를 바꿔치기하는 등 승부에 문제가 있을 시 경고음이 울리도록 설계된 슈통(카드를 담는 통)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됐음에도 직원들이 이를 제지하지 않은 점은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으로 꼽혔다.

중국인 타짜
수십억 챙겨갔다

결과적으로 GKL은 사기도박 현행범들을 눈 앞에서 놓쳤다. 사법기관에 신고조차 하지 않아 용의자들이 공항을 통해 유유히 빠져나가도록 방조했다는 지적이다.

더불어 사건 관련자들은 "지난해 12월 문제의 중국인 2명이 강남에 있는 세븐럭 VIP게임 테이블에서 불과 몇 시간 만에 12억원 이상의 돈을 따갔지만 누구도 사기도박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언론에 알렸다. 당시 GKL 관계자는 "(올 4월 게임과 달리) 12월 게임은 사기 도박이 아닌 정상 게임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후 GKL은 중국인 사기도박단이 따낸 30억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원금 2억원을 돌려준 뒤 뒤늦게 신고해 논란이 일었다. GKL은 지난 7월 사건 관련자들을 상대로 자체 감사를 벌여 모두 9명을 징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2년 감사원은 금전사고 부적정 사후 처리 등 방만 경영을 한 GKL에 시정 요구를 내렸다. GKL은 지난해에도 예산 편성 문제로 비슷한 지적을 받았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성접대 지원 의혹이다.

GKL을 상대로 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2013년 국정감사 자료를 살펴보면 당시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PR고객들의 유흥단란주점 출입기록을 조사한 결과 주로 강남 일대 유흥단란주점에서 26회 걸쳐 6600만원을 지출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여기서 언급된 PR고객은 PR여권 소지자로 국적은 외국이지만 한국에 장기 체류하는 이른바 '검은머리 외국인'이다.

박 의원은 "해외 고객 유치를 위해 항공 숙박 등의 용도로 사용돼야 할 고객유치비가 매출 증대라는 명목으로 국내에 거주하는 해외 동포의 유흥비로 제공됐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지난해 한 PR고객은 GKL 홍보 담당 직원이 성접대를 제공해 게임을 하도록 하는 등 부당 유인행위를 했다고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잇단 횡령 사건에 사기 물의
성접대·특혜 등 방만경영도

지난해 기준 파악된 세븐럭의 VIP고객은 모두 34만5917명(실버급 단골고객 일부 포함)이다. 이중 PR고객은 651명에 불과했다. 문제는 이들이 5년 동안 GKL에서 쓴 돈이 3103억원이란 사실이다. 이는 같은 기간 GKL 전체 매출의 무려 13.1%를 차지했다.

2012년에는 당시 새누리당 박대출 의원이 성접대 지원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GKL이 지난 2010년 8월부터 약 2년간 외국인 고객을 위해 강남의 룸살롱 어제오늘내일(YTT)에서 11억 7201만원을 결제했다"며 "이는 사실상 성매매를 도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같은 기간 GKL이 YTT를 제외한 또 다른 유흥단란주점에서 결제한 금액은 48억원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공공기관이 약 60억원의 매출을 룸살롱 등에 올려 준 셈이다.

업체 밀어주기
임직원 자녀 특혜

특정 업체를 밀어줬다는 의혹도 일었다. 지난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은 GKL의 용역 입찰 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 "참가자격 선정 및 낙찰자 선정 과정에서 일부 기업에게 특혜가 주어진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롯데관광개발의 경우 임의로 입점 여행사가 됐으며, 2012년 '서울 2개점 입점 여행사 용역 계약'에서는 연 매출액 등을 지나치게 높여 입찰 참가자격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롯데관광개발과 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이학재 의원은 관피아 의혹을 지폈다. 그는 "GKL과 모회사인 한국관광공사에서 채용과정을 불투명하게 처리했으며 임직원 자녀들이 채용규정에서 특혜를 받아왔다"고 설명했다.

올 10월께 GKL은 정기 국정감사를 받게 된다. 1년이 지난 지금 상기한 지적 사항들이 개선됐는지 여부가 검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리조트 사업 진출 등 사세 확장을 꾀하고 있는 GKL이 잇단 악재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 관심이 쏠린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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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