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시즌 정관계 쩐의 전쟁 막전막후

총성 없는 예산전쟁 “한 푼이라도 더 타내라”

[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2015년 예산안을 둘러싼 정관계의 예산확보 경쟁이 한창이다. 국가예산 편성제출권을 가진 정부가 내년 예산안에 대한 윤곽을 잡으며 1라운드 예산전쟁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국회의 심의·확정이라는 2라운드 전쟁을 앞두고 한 푼이라도 예산을 더 타내기 위한 정치인, 정부부처, 지자체, 공기업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예산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예산은 한정돼 있다. 한정된 예산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예산시즌 정관계 ‘쩐의 전쟁’을 들여다봤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지난 11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2015년 예산규모를 올해(355조8000억원)보다 5.7% 증가한 376조원으로 편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의 예산안은 오는 18일 국무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23일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국회로 정부가 편성한 예산안이 넘어오면 각 상임위별로 예비심사를 거친 후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본심사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적으로 예산안이 확정된다.

예산확보 위한
1차 전쟁 종료

정치인, 정부부처, 지자체, 공기업이 구상한 정책 및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예산확보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예산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예산시즌이 시작되면 예산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올해 예산시즌은 지난 5월 말부터 시작됐다. 예산 주무부처인 기재부는 이때부터 예산안 수립에 착수해 6월 중순까지 각 부처, 지자체, 공기업으로부터 예산요구서를 받고 부처 협의, 국민의견 수렴 등의 절차를 거쳐 최근 예산안을 편성했다.

기재부가 예산안 편성에 착수하자 각 부처, 지자체, 공기업은 한 푼이라도 예산을 더 타내기 위해 기재부 예산실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는 후문이다. 특히 올해 복지예산이 크게 늘면서 다른 곳에 배정될 예산이 지난해에 비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아 예년에 비해 한층 더 경쟁이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달 말 송언석 기재부 예산실장을 만나기 위해 예산실을 찾은 모 공기업 수장 A씨는 “한참을 기다리다 겨우 만나기는 했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인사 정도만 하고 나왔다”며 “복지예산 비중이 늘어 구상 중인 사업에 필요한 예산이 제대로 반영될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한정된 예산 놓고 정가, 각 부처, 지자체, 공기업 경쟁 불가피
정부 예산안 편성 완료…국회 논의 앞두고 2라운드 전쟁 돌입

지역구 국회의원들도 수시로 예산실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지역 예산확보를 위해 읍소 또는 압력을 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자체장들도 직접 예산확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김기현 울산시장은 당선 직후부터 중앙정치권에 있으며 맺은 인맥을 최대한 활용해 울산시 국비 지원확대를 호소했다. 이시종 충북지사, 안희정 충남지사 등은 기재부 고위관료와 여권실세들을 만나 지역 주요사업을 위한 국비 반영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병수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 이낙연 전남지사 등은 국비 확보를 위해 기재부 출신 관료를 경제부시장 혹은 정무부시장에 임명하며 예산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와 함께 실무를 담당하는 지방의 예산담당 공무원들은 기재부 예산담당 관계자와의 짧은 점심식사를 이용한 만남을 위해 왕복 수백킬로미터의 거리를 달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 지방의 예산담당 관계자는 “아직 국회 심의·의결 과정이 남아 있지만 기재부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한 푼이라도 더 많은 예산을 타내기 위해 지자체장까지 나서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총력을 기울였다”며 “이러한 노력이 중앙부처나 국회의원들에게 잘 전달돼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 심의·확정
2차 전쟁 개전

기재부의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벌어진 1라운드 예산경쟁이 총성 없는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치열하게 펼쳐진 끝에 마무리됐지만, 아직 2라운드 전쟁이 남아 있다. 예산안을 최종 확정하는 국회 심의·의결 과정에서 기재부가 편성한 예산 중 일부가 사라지거나 축소 및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산안이 국회 상임위와 예결위를 거치는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확보 경쟁과 정부부처, 지자체, 공기업 등의 청탁도 불붙을 전망이다.

특히 지역구 의원들 중 여야 중진의원이나 지도부 일부는 벌써부터 지역구의 신규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이나 예산챙기기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과거에도 힘 있는 의원들의 대규모 지역개발 예산 싹쓸이는 비일비재했다.

일례로 올해 초 처리된 2014년 예산안 확정 과정에서는 대구지하철 1호선 연장 사업비 증액과 관련해 당시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가 자신의 지역구(경북 경산·청도)를 챙기기 위해 압력을 가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민주당 간사 최재천 의원의 폭로로 공개적으로 불거지기도 했다.

국회 심의·의결 과정서 기재부가 편성한 예산안 변경 가능
지역구 의원들 예산확보 경쟁, 지자체 등의 청탁 불붙을 듯

한편 국회 예산안 처리는 여야 간 밀고 당기기 끝에 법정시한을 넘기고 정기국회 막판에야 이뤄지기 일쑤였다.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11년 연속으로 법정시한(12월2일)을 지키며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못한 것이다.
 

이번에도 여야의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대치 정국이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예산안의 국회 논의 과정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당장 여야 정치권은 정부의 예산안에 대해서도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대체로 경기 침체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라는 입장인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수결손과 재정악화를 우려하며 대폭 손질을 가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예결위 소속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눈에 보이는 성과지표 달성에 급급해 무작정 예산을 늘려나갈 것이 아니라 내실 있는 예산안 마련이 필요하다”며 “국회 예산심의가 시작되면 재정건전성 등을 감안해 정부 예산안을 꼼꼼히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예산확보보다
집행이 더 중요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예산시즌에는 총성 없는 전쟁을 방불케하는 경쟁이 펼쳐진다”며 “예산확보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집행이다. 무조건 많이 타내려 하기보다는 쓰임새에 맞게끔 예산을 확보하고 적재적소에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arpedie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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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