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추석 대목 앞두고 남대문시장 가보니…

대목 옛말…상품권은 애물단지

[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전통시장 활성화를 취지로 정부가 발행한 온누리상품권. 하지만 현금이 아니라서 거부감을 느끼는 상인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지난 2012년부터 시작한 가격표시제는 2년이 지나자 ‘게 눈 감추듯’ 슬쩍 사라졌다.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은 상품들이 여기저기서 확인됐다.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 관행도 여전했다. 시장과 상인은 가격을 깎는 것이 재미고 특징이라고 주장하지만 소비자의 반응은 싸늘하다. 세상은 변하는데 시장은 성장을 멈추고 여전히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석을 앞둔 지난 1일 서울 남대문 시장을 찾았다. 온누리상품권을 달갑게 여기는 상인들은 많지 않았다. 카드를 내밀면 대놓고 타박했다.

온누리 외면

“현금은 없으세요?”
온누리상품권을 내밀자 한 시장 상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현금이 없어 신용카드를 내밀자 그는 “아니 시장에서 신용카드라니 너무 하시네요”라며 눈치를 준다. 시장 중앙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노점 상인들은 온누리상품권에 대해 손사래를 쳤다. 속옷을 판매하는 한 노점상은 “여기는 현금만 받는다”며 “원래 노점상은 시장 측에서 따로 단속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온누리상품권과 신용카드를 꺼리는 이유를 묻자 상인은 “온누리상품권을 받는다고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현금이 급한데 상품권을 현금으로 교환해야 해서 좀 귀찮은 게 사실”이라며 “특히 신용카드를 받게 되면 ‘코 묻은 돈’에 수수료까지 부담해야 하니까 받을수록 손해”라고 설명했다.

현금이 아니면 거부감을 느끼는 상인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온누리상품권은 지난 2009년 7월부터 중소기업청 주도하에 발행되고 있다. 대형마트들이 전국 거점지역 곳곳에 생겨나면서 재래시장 매출에 큰 타격을 입히고 있는데 따른 일종의 구제책이었다. 상품권 발행규모는 2000억원 수준에서 매년 늘어나고 있다. 올해는 5000억원 규모의 상품권이 시중에 풀린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상인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온누리상품권 가맹계약을 맺지 않은 점포도 상당수다. 전국의 1500여개 전통시장 중 온누리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는 시장은 1000여개에 머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방에 있는 재래시장은 상품권 유통이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상품권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온누리상품권 홈페이지에는 상품권 사용처에 대한 불만이 칭찬 글보다 훨씬 많았다.

게다가 지난 2012년부터 시행된 ‘가격표시제’를 지키는 곳조차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보는 눈이 많아 남대문 시장은 가격표시제를 대체로 잘 지켰다. 그런데 2년이 지나자 가격표시가 슬쩍 사라진 것이다.
 

가격표시가 붙어 있더라도 제대로 된 표시가 아닌 애매한 문구로 가격을 한눈에 알아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전품목 만원’이라고 가격표시를 붙인 한 가방판매자는 “매대에 있는 물건만 만원”이라며 “가게 안에 있는 가방은 각각 판매가가 달라서 일일이 가격을 붙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가격표시가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에 이 주인은 “가격이 물건마다 다른데 어떻게 일일이 다 붙여 놓느냐”고 되물었다.

가격표시제 시행 2년 후 슬쩍 사라져
세상은 변하는데…여전히 제자리인듯

서울 중구청은 2012년 7월 1일 서울 남대문시장을 가격표시제 의무 대상으로 지정했다. 남대문시장 내 40개 상가 6000여개 점포 중 도매점포를 제외한 모든 소매점포는 개별 상품에 라벨, 스템프, 꼬리표 등의 방법으로 가격을 표시해야 한다. 바가지 요금 근절을 위해 판매가격 표시를 의무화했지만 가격표를 붙이지 않은 상품들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광장시장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각종 매스컴의 조명으로 맛집이라고 소문난 한 녹두전집은 신용카드를 받지 않았다. 이곳 상인은 “전 한 장 먹는데 무슨 신용카드를 받느냐”며 “현금이 전혀 없느냐”고 되물었다.

조용히 살 것 같은 소비자에게는 가격을 높여 부르고 비싸다고 따지면 금새 가격을 낮췄다. 구경하다 돌아서면 사지도 않을 거면서 왜 귀찮게 했냐는 듯 일부 상인은 얼굴을 찌푸렸다. 생산지 표시가 없어 물어보면 “당연히 국산이고 다 좋은 곳에서 난 것”이라며 어물쩍 넘어가는 상인들도 있었다.


시장 측은 단속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호소했다. 백승학 남대문시장 기획부장은 “일부 상인들 입장에서는 온누리상품권을 받고 환전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에 거부감을 느껴 당장 현금을 받는 것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상인들에게 온누리상품권을 받아야 시장이 활성화된다고 교육하고 환전과정의 간편함을 꾸준히 알려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온누리상품권을 받지 않는 노점상에 대해서는 노점 자체가 불법이라 시장에서 단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가격표시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 백 부장은 “아무래도 시장에서는 도소매를 겸하고 있어 가격을 일일이 붙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상인들에게 가격표시제 관련 홍보물을 나눠주고 지속적으로 교육도 하고 있지만 상점이 자주 바뀌다 보니 상인들의 인식이 정착되지 않아 지도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사실상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가격을 깎는 재미 자체가 전통시장의 특징”이라면서 “상인들 사이에서도 (가격표시제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상품권 사용이나 가격표시제와 관련한 정부의 홍보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경영진흥원 관계자는 “가격표시제는 계도하는 수준의 캠페인 형식이라 지키지 않는다고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며 “아직까지 지방에 있는 일부 재래시장에서는 상품권 유통이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깎는 재미가…

하지만 소비자들은 가격표시제 시행을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평가다. 외국인 친구와 함께 남대문 시장에 온 한 학생은 “외국인 친구들에게 시장을 구경시켜주고 있었는데 솔직히 창피한 부분도 있다”며“가격표시를 해놓은 곳이 거의 없어 가격표시제라는 게 시행된지도 몰랐고, 위생 부분은 좀 더 철저하게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온누리상품권 무용론

온누리상품권이 상인과 소비자들에게서 외면당하고 있는 가운데 ‘상품권 깡’은 활개를 치고 있다. 

상품권 깡은 현금가로 할인을 받아 온누리상품권을 구매한 뒤 정상가를 받고 공식 판매처와 온라인 등을 통해 되팔아 차익을 챙기는 것이다. 예컨대 은행에 가서 27만원을 주고 재래시장 상품권인 온누리상품권 30만원 어치를 구입하고 상가번영회에 가서 환전하면 3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잠깐의 발품으로 3만원이 생기는 셈이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 등으로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녹이기 위해 6월 초부터 5%였던 온누리상품권 현금구매 할인율을 10%로 확대하면서 편법 환전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특히 전국 3대 재래시장으로 손꼽히는 대구 서문시장이 상품권 깡의 온상이 됐다. 서문시장은 8개 지구에 총 4622개나 되는 점포가 있다. 이 중 77%인 3580개 점포가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에 등록하지 않았다. 상인들의 익명성이 보장돼 편법 환전이 더욱 활개를 친 것이다. 정부가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온누리 상품권이 소비자들의 외면과 관리 부실, 일부 상인의 도덕적 해이로 당초 취지가 무색해진 모습이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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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