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나타난 김우중 노림수

칼 갈던 킴기즈칸 “반격 시작됐다”

[일요시사 경제1팀] 김성수 기자 = '킴기즈칸'(김우중+칭기즈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15년 만에 입을 열었다. 1999년 대우그룹 해체를 둘러싼 여러 의혹을 제기하면서 특정 세력이 기획했다고 주장했다. 80세가 다 된 노구는 억울하다며 눈물까지 흘렸다. 그는 왜 이제 와서, 하필이면 지금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일까. 그 노림수가 될 만한 가능성을 하나하나 짚어봤다.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대우특별포럼이 열렸다. 예정대로 참석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단상에 섰다. 그리고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김 전 회장의 자서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후속 격인 김 전 회장의 대화록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발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다른 의도 없다"]
[ 명예회복 차원? ]

김 전 회장은 이 자리에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당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대우그룹 해체를 둘러싼 여러 의혹을 제기하면서 특정 세력이 기획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 시간이 충분히 지났으니 적어도 잘못된 사실은 바로 잡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과연 대우 해체가 합당했는지 명확히 밝혀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간의 관심은 김 전 회장의 의도에 쏠리고 있다. 1999년 대우그룹이 공중분해 되고 15년 만에 입을 연 진짜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특정 인사들의 반발이 심할 게 불 보듯 뻔한데도 세상에 나와 폭로한 속사정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김 전 회장은 입을 여는 동기와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아 의문을 더한다. 그는 왜 이제 와서, 하필이면 지금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일까.

김 전 회장이 1967년 설립한 대우실업은 30여년 만인 1998년 41개 계열사, 396개 해외법인에 자산총액이 76조7000억원에 달하는 재계 2위의 대우그룹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1999년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해체의 길로 들어섰다. 대우맨들은 단순히 명예회복 차원에서 김 전 회장이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측근은 "책을 낸 것도 단지 김 전 회장의 명예회복을 위한 것"이라며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전했다.


1999년 대우 해체 둘러싼 의혹 제기
"억울하다…특정 세력이 기획" 주장

김 전 회장의 말에도 명예회복 의지가 묻어난다. 그는 "과거에 연연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한 일을 정당히 평가받아야 한다. 잘못된 사실을 바로 잡을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우가족 모두에게 15년 전 가슴 아픈 일이 있었다. 억울함과 분노도 없지 않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여서 감내하려고 했다"며 "하지만 시간이 충분히 지나 적어도 잘못된 사실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또 "평생 동안 앞만 보고 성실하게 달려왔다. 그것이 국가와 미래 세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거기에 반하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명예회복과 함께 'DJ 사람들'에 대한 반격을 시작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그중에서도 타깃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대우그룹 해체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이었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다. 이 전 부총리는 대우그룹 해체를 사실상 주도해 김 전 회장과는 악연으로 얽혀 있다. 이번에 출간한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엔 이 전 부총리를 직접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 전 회장은 회고록을 통해 이 전 부총리가 2012년 펴낸 회고록 <위기를 쏘다>도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이 전 부총리는 자신의 책에서 "대우그룹을 해체시킨 건 재벌개혁의 신호탄이었다"고 확신했다. 그는 "비정상적으로 몸집을 불려온 대우그룹을 한국경제에 혼란을 줄 수 있는 위험요소로 판단했다"며 "그래서 대우그룹 워크아웃을 추진했고, 결국 해체수순을 밟게 됐다"고 기술했다.

["이헌재 잘못했다"]
[ DJ 사람들에 복수? ]

이에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은 정치적 판단에 따라 '기획 해체'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DJ 정권 때 정부논리와 반대되는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면서 경제관료들과 충돌했고, 이게 유동성 악화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며 "경제관료들이 자금줄을 묶어놓고 대우에 부정적인 시장 분위기를 만들면서 대우를 부실기업으로 몰고 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우그룹 해체와 관련해 사사건건 날선 대립각을 세운 김 전 회장과 이 전 부총리는 사실 악연보다 인연이 먼저였다. 이 전 부총리는 김 전 회장의 경기고 후배. 또 대우에서 4년을 보낸 '대우맨'이기도 하다. 행정고시 수석 합격 후 재무부 관료로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이 전 부총리는 관료 생활을 그만두고 야인생활을 할 때 김 전 회장의 도움으로 ㈜대우 상무, 대우반도체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이 인연은 대우그룹 해체 과정에서 악연으로 변했고, 이번 김 전 회장의 등장으로 다시 주목받게 됐다.


[추징금 안내려…]
[단순히 돈 때문?
]

단순히 돈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천문학적인 추징금을 안내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것이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선고받은 18조원에 가까운 추징금을 내지 않고 있다. 여기에 대우그룹 전직 임원들의 추징금까지 합치면 23조원이 넘는다.

김 전 회장은 2005년 41조원대의 분식회계와 22조9000억원대의 업무상 배임, 44억달러 규모의 재산 해외 도피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징역 10년에 추징금 21조4484억원,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어진 항소심에선 징역 8년6월에 추징금 17조9253억원,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고, 이 형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2007년 12월 특별 사면됐지만, 추징금은 그대로 남아 있다.
 

김 전 회장은 책 출간과 맞물려 자신의 추징금과 관련해 헌법소원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분식회계, 배임 등의 혐의에 따른 징역형 및 추징금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이미 유력 변호사를 통해 헌법소원을 위한 법률적 검토를 마쳤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이 15년 만에 입을 연 까닭이 추징금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제와 입 연 진짜 이유는?
세상에 폭로한 속사정 주목

김 전 회장 측은 그동안 추징금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개인적으로 이득을 취한 게 아니라 회사일을 하다가 벌어진 일이니 정치인들의 추징금과 성격이 다르다고 항변해왔다.

같은 맥락에서 '김우중 추징법'도 거론된다. 이를 대비하기 위한 선제 행보로 보인다는 의심이다. '김우중 추징법'에 불을 지핀 것은 '전두환 추징법'이다.

지난해 7월 국회를 통과한 '전두환 추징법'은 공무원이 불법 취득한 재산에 대한 추징 시효를 늘리고 추징 대상을 제3자로까지 확대하는 것이 골자. 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이 '만세'를 부르는 계기가 됐다. 추징시효가 연장됐고, 가족들을 상대로 추징할 수 있었다. 다만 이 법은 '공무원'으로 대상자를 정하고 있다.

[가족 재산을 지켜라]
['김우중법' 대비책?]

이에 따라 그 범위를 일반인으로도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불똥은 거액의 추징금을 내지 않고 있는 김 전 회장에 튀었다. 법무부는 지난해 8월 정치인뿐 아니라 일반인까지 압수수색과 금융거래 추적 등의 추징금 집행이 가능한 '김우중 추징법'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전 전 대통령 일가처럼 제3자 명의로 은닉해 놓은 재산에 대해서도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추징 집행이 가능해진다. 김 전 회장의 추징금은 전 전 대통령의 100배, 국내 총 미납 추징금 중 84%에 달한다. 검찰은 김 전 회장에 대한 추징을 지속적으로 집행해왔지만, 현재까지 추징된 금액은 887억8376만원으로 0.5%에 불과하다.

김 전 회장은 무직인 상태다. 돈 나올 구멍이 없다. 공식적으로 '빈털터리'인 김 전 회장과 달리 그의 가족들은 여전히 부유한 삶을 살고 있다. 부인 정희자씨는 아트선재센터 관장을 맡아 여전히 막강한 자금 동원력을 과시하고 있다. 아들 선엽씨는 경기도 포천 아도니스CC 대주주다. 딸 선정씨는 시세로 200억원이 넘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 재기설 '솔솔' ]
[재계 복귀 교두보?]

재계에선 김 전 회장의 재기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대우그룹의 기획 해체설을 공개적으로 꺼낸 것은 재기를 노린 포석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면된 후 두문불출하던 김 전 회장의 대외활동 소식이 그동안 지속적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이번 복귀설은 더욱 힘을 받는 모양새다. 좀처럼 모습을 나타내지 않던 김 전 회장은 요즘 들어 자주 해외 방문길에 오르는가 하면 여러 행사에 참석하는 등 폭넓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 전 회장은 대부분 베트남에서 지내고 있다. 2009년 한 건설사가 베트남에 진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김 전 회장이 베트남에서 본격적인 재기의 발판을 다지는 것 아니겠냐는 해석도 나왔다.

정작 김 전 회장의 측근들은 재기설을 부인하고 있다. 한 측근은 "김 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베트남에 머물고 있을 뿐 확대 해석은 말아야 한다"고 전했다. 추징금, 나이, 건강 등으로 인해 사실상 재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분석도 있다. 김 전 회장의 사업 재개를 거론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많다. 대우그룹의 부도로 60조원에 달하는 부채를 정부와 국민들이 떠안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김 전 회장의 등장을 두고 음모론이 돌고 있다. 왜 하필 지금이냐가 논란거리다. 김 전 회장이 정치적 의도를 품고 대중 앞에 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는 김 전 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역대 모든 대통령들과 관계가 좋았던 유일한 기업가로 꼽힌다. 그런데 김 전 회장은 책에서 유독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 박 전 대통령과의 긴밀한 관계를 부각했다.


책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의 아버지는 박 전 대통령의 고등학교 은사였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은 "1년에 수차례 청와대로 불러 비서관 없이 단독으로 박 전 대통령을 만나곤 했다"며 "박 전 대통령은 나를 김 사장이나 김 회장이라고 부르지 않고 '우중아'라고 불렀다. 나도 그를 아버지처럼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의 외아들 박지만씨와의 인연도 소개했다. 김 전 회장은 "박 대통령의 동생 박씨에게 옛 삼양산업 인수를 위한 자본금 9억원을 빌려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심상찮은 음모론]
[ 왜 하필 지금? ]

대우그룹은 박 전 대통령의 임기 중인 60∼70년대를 거점으로 전자와 중공업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는데, 이 과정에서 수의계약 등의 이유로 특혜 의혹이 자주 불거졌었다. 책에선 대우그룹을 금융 중심의 기업집단으로 키우려다 박 전 대통령의 부탁으로 중화학산업으로 선회한 비화도 공개됐다. 김 전 회장은 "당시 폐허상태에 놓였던 옥포조선소를 인수,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김우중 그 사람밖에 없어'란 말을 듣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kimss@ilyosisa.co.kr>



배너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