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웨이’ 재벌가 자녀들 누구?

부모돈은 부모돈 “난 내 갈 길 간다”

[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우리나라에서는 군 면제자를 ‘신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말하는 신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불리는 재벌 후계자를 뜻한다. 이들은 군 입대 비율이 일반인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 유력 재벌가의 딸이 탄탄대로의 삶을 버리고 군인이 되겠다고 한다. 재계는 깜짝 놀랐다. 이처럼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는 재벌가 자녀들을 조명해보았다.

117기 해군 사관후보생 모집에 지원한 최태원 SK회장의 둘째딸 민정씨가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재벌가의 자녀가, 그것도 남성이 아닌 여성이 군 장교로 자원한 것이다. 재벌가 여성이 군 입대를 자발적으로 결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군장교 도전
딸들의 반란

해군에 따르면 민정씨는 오는 9월15일 해군사관학교 장교 교육대에 입영해 군사훈련과 항해병과 교육을 받은 뒤 오는 12월에 임관될 예정이다. 민정씨는 해군에서도 가장 힘들기로 유명한 함정 승선 장교에 자원했다. 함정 승선은 여성으로서는 매우 힘든 일로 평가된다. 함정에 승선하면 2주 이상 외부와의 연락을 단절해야 한다. 특히 높은 파도 때문에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는 것으로 악명높다.

민정씨는 중국 베이징대에 다니던 때도 부모에게서 경제적 지원을 거의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학생 대상의 입시학원 강사나 레스토랑,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활비를 벌고 장학금으로 학비를 충당했을 정도로 자립심이 뛰어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 재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다. 반응도 좋다. ‘신선하다’는 호평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재벌가 딸이 군 장교에 지원한 것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재벌가 여성들은 주로 명품 숍, 갤러리 등을 운영한다.

여성스럽고 편안해 보이는 삶 대신 민정씨처럼 자신만의 길을 택한 재계 딸들도 있다. 구자홍 LS그룹 회장의 맏딸 구진희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진희씨는 아현 메디테이션 컬쳐 대표를 맏고 있다. 명상센터 운영이라는 독자적인 길을 택했다. 진희씨의 할아버지 구태회 명예회장은 LG그룹으로부터 LS그룹을 분리해 나온 창업주다. 구자홍 회장은 구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LG가는 보수적인 분위기로 유명하다. 특히 LG가의 여성들은 주로 내조, 육아, 사회봉사 등에 주력하며 주부로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진희씨는 LG가 여성들의 분위기와 달리 세상 속에 뛰어들어 자신만의 꿈을 향해 걷고 있다.


처음엔 아버지의 바람대로 진희씨는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의 마케팅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년가량을 근무하던 진희씨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오랜 고민 끝에 명상센터를 열기로 결심했다.

진희씨는 요가와 명상을 주 2~3회씩 할 정도로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와 패션 명문 에스모드(ESMOD)를 졸업한 그는 아현명상센터의 도복, 방석, 베개 등을 직접 디자인하고 판매해 수익모델로 삼았다. 이후 진로를 미술 쪽으로 틀어 미술전시기획회사인 채원컨설팅도 운영하고 있다.

아웃도어브랜드 블랙야크의 강태선 회장 차녀 영순씨는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강태선 회장의 블랙야크 경영을 돕고 있는 큰딸, 막내아들과 달리 영순씨는 미술계에 종사하며 경영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넉넉한 후계자 삶 포기 “꿈 찾아 딴길로”
처음부터 입사 거부…임원 지내다 결단도

그룹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지만 정남이 아산나눔재단 기획팀장 역시 자신만의 길을 택한 현대가의 딸이다. 정 팀장은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의 장녀로 지난해 재단에 합류했다. 아산나눔재단은 청년 창업 활성화와 글로벌 리더 육성을 위해 현대중공업 등 범 현대가에서 5000억원을 출연해 2011년 출범한 민간 공익재단이다. 재단 기획팀은 창업 관련 신사업을 발굴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 팀장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유학해 MIT 경영학 석사(MBA)를 받은 후 컨설팅회사인 베인앤컴퍼니에서 일했다. 평소 창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현장에서 창업을 지원하는 역할에서 의미를 찾고, 스스로 재단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후계자 길 버리고
꿈 택한 아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은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마이웨이’를 걷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그룹의 주식조차 거부해 가지고 있는 지분이 없다.

박종구 이사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의 막내동생이다. 그의 형들은 모두 그룹 경영에 관여해왔지만 박 이사장은 교수, 연구원. 공무원 등을 거치며 다른 삶을 살아왔다.

박 이사장은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학 교수와 공직자의 길을 걸었다. ‘개방형 공직의 성공 신화’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기획예산위원회와 국무조정실 과학기술부에서 각 부처 간 조정 역할을 맡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박인천 창업주의 장남 고 박성용 회장의 아들 박재영씨도 작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회사 경영엔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영씨는 박인천 창업주의 장손이다. 박 창업주의 5남3녀 중 맏이 박성용 명예회장이 그의 아버지다.
 

재영씨는 2009년 금호그룹 관련 지분을 모두 팔고, 영화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영화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영화 관련 일을 하고 있다. 특히 영화음악 쪽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권 승계엔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상태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차남 조현문 효성 전 사장의 행보도 남다르다. 효성그룹의 유력 후계자로 거론돼온 조 전 사장은 지난해 중공업 PG장을 사임했다. 그는 경영일선에서 손을 떼고 ‘법무법인 현’의 고문 변호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룹을 완전히 떠나 외부에서 변호사로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수석입학, 수석졸업 한 조 전 사장은 1996년 미국 하버드 법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효성그룹으로 출근하기 전까지 뉴욕 주 변호사로 활동했다. 당시 조 전 사장은 국제 변호사로서 굵직굵직한 성과를 이뤄냈다. 효성 도메인(www.hyosung.com)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되찾아오기도 했다.

유사한 사례는 또 있다. 정경선 사단법인 루트임팩트 대표이자, ㈜허브서울 공동대표의 행보가 그렇다. 그는 고 정주영 현대 창업주의 손자이자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의 장남이다. 회사 지분 15만1530주, 지분 0.17%를 보유하고 있는 유력 주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부모 후광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왔다. 2012년 2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정 대표의 관심사는 ‘후계 수업’보단 ‘자선 활동’에 있었다. 대학시절 정 대표는 대학생 문화 기획 동아리 ‘쿠스파(KUSPA)’를 결성했다. 동아리에서 자선 파티를 열어 수익금을 기부하고 아마추어 음악인을 돕기 위한 콩쿠르를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2010년에는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들이 모인 재능 기부 단체 ‘크리에이티브 셰어(Creative Share)’를 만들기도 했다. 이후 2011년 11월부터 아산나눔재단 인턴 생활을 거쳐 본격적으로 진로를 수정했다. 완강히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해 사회적 기업 후원단체인 비영리 사단법인 ‘루트 임팩트’를 만들었다. 목적은 자선 사업가들과 사회 혁신가들의 육성 및 역량 강화에 있다.

정 대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몇몇 지인들과 함께 사회 혁신가들의 협업 공간인 ㈜허브서울을 열었다. 단순한 창업 지원이 아닌 사회 문제를 창업으로 해결하는 소셜 벤처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그가 소셜벤처 육성 지원에 뜻을 둔 것은 기존 정부와 기업의 힘으로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문제아서 기린아로
아들 꿈에 골머리


특히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 박서원씨는 오랜 방황 끝에 꿈을 찾은 재계 자제로 유명하다. 서원씨는 지난 2006년 대학생 5명이 창업해 국제 광고제를 휩쓸고 광고계의 룰을 바꾼 ‘빅앤트 인터내셔널’ 대표다.

빅앤트는 설립 3년 만에 한국인 최초로 국제 5대 광고제인 칸 국제 광고제, 뉴욕 페스티벌, 클리오 광고제, D&AD, 뉴욕 원쇼 석권과 3년 연속 수상을 기록했다. 박 대표가 성공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떠오르면서 그가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이라는 사실도 세상에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례적 행보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지만 ‘아버지 후광 효과’라는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박 대표는 번듯한 다른 재벌가 자제들과 다른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는 학교에서도 유명한 문제아로 통했다. 1998년 정원 미달로 간신히 단국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3회 학사 경고를 받고 대학교를 자퇴했다. 결국 도피 유학길에 올랐지만 유학시절에도 박 대표는 2회 학사경고를 받고 5차례나 전공을 바꿨다. 긴 방황 끝에 박 대표는 산업디자인에서 물을 만났다. 이후 한국인 최초로 세계 5대 광고제를 휩쓸며 광고계의 기린아로 떠올랐다.

변호사, 자선가, 광고인, 공직자, 영화감독…
경영과 담 쌓고 생활…쉽게 독립했다 낭패도

모든 재벌 자제들의 독립이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다. 부영그룹은 이중근 회장의 막내아들 이성한 감독이 운영하는 부영엔터테인먼트(이하 부영엔터)가 자금난에 빠지면서 골머리를 앓았다.

부영엔터는 3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이 제작비 중 상당 금액이 부영그룹의 비상장 계열사인 동광주택으로부터 출자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부영엔터의 업무용 사무실까지 모 기업의 지원을 통해 운영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2007년 제작한 이 감독의 첫 작품 <스페어>는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 관객 수가 4만5290명에 그쳤다. 이어 2009년 작품인 <바람>도 15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했지만 10만여 관객만을 동원했다. 이어 2011년 개봉한 <히트>도 11만명만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모기업으로부터의 원조 없이는 사업을 지속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부영그룹은 지난해 8월 부영엔터에 자금을 대거 쏟아 붓다 못해 부영엔터를 통째로 인수했다. 그룹 계열사인 대화기건이 부영엔터의 대주주가 됨으로써 69억원의 빚을 지고 완전자본잠식상태에 빠진 부영엔터의 빚까지 모두 떠안았다.

내 길 가려 했지만
단절은 어려워

그동안 대부분의 재벌 자제들은 자신만의 길을 걷다가도 그룹의 뜻을 외면하지 못했다. 우선 두산그룹의 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의 경우가 그렇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박 이사장은 연강재단을 맡기 전 40년간 의사로 살아왔다. 아직까지도 박 이사장의 얼굴에는 경영인보다는 학자에 가까운 인상이 남아 있다.

그는 서울의대 교수, 기획실장, 부원장에 이어 두 번에 걸친 병원장 역임, 대한외과학회 이사장과 대한병원협회 부회장까지 의사의 길을 걸었다. MBC드라마 <하얀거탑>의 주인공 장준혁의 실존 모델로 여겨질 정도로 외과의사로서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어수선했던 그룹 상황을 수습하고 형제경영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두산그룹의 특성상 의료계에만 남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05년 박용오, 박용성 전 회장의 ‘형제 간 다툼’과정에서 분식 회계, 위장 계열사를 통한 비자금 조성 의혹이 불거지면서 그룹 이미지는 실추됐다. 결국 그는 연강재단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그룹 일에 뛰어들었다. 연강재단은 (주)두산, 두산건설 등의 주요 주주다. 현재 두산건설 회장과 대한외과학회 부회장도 맡아 경영과 의료계 현실 개선에 힘쓰고 있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도 서울대 의대 출신이다. 10년 동안 산부인과 의사 생활을 하다 1996년 부친 신용호 명예회장이 암으로 쓰러지면서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 과거 재계는 신 명예회장이 가업 승계가 아닌 전문경영인체제로 운영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신창재 회장이 과거 의사로 일하며 경영수업을 전혀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 명예회장이 죽음을 앞두고 마음을 바꿨던 것으로 보인다.

보광그룹의 홍석조 BGF리테일 대표의 행보도 마찬가지다. 홍 대표는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의 동생으로 홍석준 보광창업투자 회장,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과 형제다. 보광가는 각 형제들이 독자적으로 각기 다른 회사를 소유·운영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누나 홍라희 여사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부인으로 보광그룹도 범삼성가로 통한다.

1976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홍 대표는 30년 동안 법조인으로 살아왔다. 2006년까지 검사 생활을 하면서 인천지방검찰청 검사장,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지냈다. 2005년 홍 대표는 ‘안기부 X파일’ 사건 때 삼성그룹의 일가라는 이유로 검사들에게 ‘떡값’을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결국 홍 대표는 광고고검장을 마지막으로 오랜 법조인 생활을 접었다. 검사직을 그만둔 뒤 그는 1년여의 공백을 가졌다. 변호사 개업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결국 2007년 3월 경영인으로 변신해 현재까지 BGF리테일을 끌어가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재벌들은 젊었을 때는 자신의 길을 걷다가도 결국 그룹을 외면하지 못하고 경영인의 길을 택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창업주 세대는 복잡한 가족사가 얽혀있어 그룹의 영향을 외면하기가 힘들다”며 “아직까지는 많은 재벌 자녀들이 자신의 뜻에 따라 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상 재벌가에서 그룹 경영과 동떨어진 자기만의 길을 끝까지 고집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dklo21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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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