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웨이’ 재벌가 자녀들 누구?

부모돈은 부모돈 “난 내 갈 길 간다”

[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우리나라에서는 군 면제자를 ‘신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말하는 신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불리는 재벌 후계자를 뜻한다. 이들은 군 입대 비율이 일반인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 유력 재벌가의 딸이 탄탄대로의 삶을 버리고 군인이 되겠다고 한다. 재계는 깜짝 놀랐다. 이처럼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는 재벌가 자녀들을 조명해보았다.

117기 해군 사관후보생 모집에 지원한 최태원 SK회장의 둘째딸 민정씨가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재벌가의 자녀가, 그것도 남성이 아닌 여성이 군 장교로 자원한 것이다. 재벌가 여성이 군 입대를 자발적으로 결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군장교 도전
딸들의 반란

해군에 따르면 민정씨는 오는 9월15일 해군사관학교 장교 교육대에 입영해 군사훈련과 항해병과 교육을 받은 뒤 오는 12월에 임관될 예정이다. 민정씨는 해군에서도 가장 힘들기로 유명한 함정 승선 장교에 자원했다. 함정 승선은 여성으로서는 매우 힘든 일로 평가된다. 함정에 승선하면 2주 이상 외부와의 연락을 단절해야 한다. 특히 높은 파도 때문에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는 것으로 악명높다.

민정씨는 중국 베이징대에 다니던 때도 부모에게서 경제적 지원을 거의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학생 대상의 입시학원 강사나 레스토랑,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활비를 벌고 장학금으로 학비를 충당했을 정도로 자립심이 뛰어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 재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다. 반응도 좋다. ‘신선하다’는 호평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재벌가 딸이 군 장교에 지원한 것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재벌가 여성들은 주로 명품 숍, 갤러리 등을 운영한다.

여성스럽고 편안해 보이는 삶 대신 민정씨처럼 자신만의 길을 택한 재계 딸들도 있다. 구자홍 LS그룹 회장의 맏딸 구진희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진희씨는 아현 메디테이션 컬쳐 대표를 맏고 있다. 명상센터 운영이라는 독자적인 길을 택했다. 진희씨의 할아버지 구태회 명예회장은 LG그룹으로부터 LS그룹을 분리해 나온 창업주다. 구자홍 회장은 구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LG가는 보수적인 분위기로 유명하다. 특히 LG가의 여성들은 주로 내조, 육아, 사회봉사 등에 주력하며 주부로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진희씨는 LG가 여성들의 분위기와 달리 세상 속에 뛰어들어 자신만의 꿈을 향해 걷고 있다.


처음엔 아버지의 바람대로 진희씨는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의 마케팅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년가량을 근무하던 진희씨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오랜 고민 끝에 명상센터를 열기로 결심했다.

진희씨는 요가와 명상을 주 2~3회씩 할 정도로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와 패션 명문 에스모드(ESMOD)를 졸업한 그는 아현명상센터의 도복, 방석, 베개 등을 직접 디자인하고 판매해 수익모델로 삼았다. 이후 진로를 미술 쪽으로 틀어 미술전시기획회사인 채원컨설팅도 운영하고 있다.

아웃도어브랜드 블랙야크의 강태선 회장 차녀 영순씨는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강태선 회장의 블랙야크 경영을 돕고 있는 큰딸, 막내아들과 달리 영순씨는 미술계에 종사하며 경영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넉넉한 후계자 삶 포기 “꿈 찾아 딴길로”
처음부터 입사 거부…임원 지내다 결단도

그룹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지만 정남이 아산나눔재단 기획팀장 역시 자신만의 길을 택한 현대가의 딸이다. 정 팀장은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의 장녀로 지난해 재단에 합류했다. 아산나눔재단은 청년 창업 활성화와 글로벌 리더 육성을 위해 현대중공업 등 범 현대가에서 5000억원을 출연해 2011년 출범한 민간 공익재단이다. 재단 기획팀은 창업 관련 신사업을 발굴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 팀장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유학해 MIT 경영학 석사(MBA)를 받은 후 컨설팅회사인 베인앤컴퍼니에서 일했다. 평소 창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현장에서 창업을 지원하는 역할에서 의미를 찾고, 스스로 재단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후계자 길 버리고
꿈 택한 아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은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마이웨이’를 걷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그룹의 주식조차 거부해 가지고 있는 지분이 없다.

박종구 이사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의 막내동생이다. 그의 형들은 모두 그룹 경영에 관여해왔지만 박 이사장은 교수, 연구원. 공무원 등을 거치며 다른 삶을 살아왔다.

박 이사장은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후 대학 교수와 공직자의 길을 걸었다. ‘개방형 공직의 성공 신화’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기획예산위원회와 국무조정실 과학기술부에서 각 부처 간 조정 역할을 맡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박인천 창업주의 장남 고 박성용 회장의 아들 박재영씨도 작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회사 경영엔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영씨는 박인천 창업주의 장손이다. 박 창업주의 5남3녀 중 맏이 박성용 명예회장이 그의 아버지다.
 

재영씨는 2009년 금호그룹 관련 지분을 모두 팔고, 영화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영화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영화 관련 일을 하고 있다. 특히 영화음악 쪽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권 승계엔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상태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차남 조현문 효성 전 사장의 행보도 남다르다. 효성그룹의 유력 후계자로 거론돼온 조 전 사장은 지난해 중공업 PG장을 사임했다. 그는 경영일선에서 손을 떼고 ‘법무법인 현’의 고문 변호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룹을 완전히 떠나 외부에서 변호사로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수석입학, 수석졸업 한 조 전 사장은 1996년 미국 하버드 법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효성그룹으로 출근하기 전까지 뉴욕 주 변호사로 활동했다. 당시 조 전 사장은 국제 변호사로서 굵직굵직한 성과를 이뤄냈다. 효성 도메인(www.hyosung.com)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되찾아오기도 했다.

유사한 사례는 또 있다. 정경선 사단법인 루트임팩트 대표이자, ㈜허브서울 공동대표의 행보가 그렇다. 그는 고 정주영 현대 창업주의 손자이자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의 장남이다. 회사 지분 15만1530주, 지분 0.17%를 보유하고 있는 유력 주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부모 후광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왔다. 2012년 2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정 대표의 관심사는 ‘후계 수업’보단 ‘자선 활동’에 있었다. 대학시절 정 대표는 대학생 문화 기획 동아리 ‘쿠스파(KUSPA)’를 결성했다. 동아리에서 자선 파티를 열어 수익금을 기부하고 아마추어 음악인을 돕기 위한 콩쿠르를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2010년에는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들이 모인 재능 기부 단체 ‘크리에이티브 셰어(Creative Share)’를 만들기도 했다. 이후 2011년 11월부터 아산나눔재단 인턴 생활을 거쳐 본격적으로 진로를 수정했다. 완강히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해 사회적 기업 후원단체인 비영리 사단법인 ‘루트 임팩트’를 만들었다. 목적은 자선 사업가들과 사회 혁신가들의 육성 및 역량 강화에 있다.

정 대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몇몇 지인들과 함께 사회 혁신가들의 협업 공간인 ㈜허브서울을 열었다. 단순한 창업 지원이 아닌 사회 문제를 창업으로 해결하는 소셜 벤처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그가 소셜벤처 육성 지원에 뜻을 둔 것은 기존 정부와 기업의 힘으로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문제아서 기린아로
아들 꿈에 골머리


특히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 박서원씨는 오랜 방황 끝에 꿈을 찾은 재계 자제로 유명하다. 서원씨는 지난 2006년 대학생 5명이 창업해 국제 광고제를 휩쓸고 광고계의 룰을 바꾼 ‘빅앤트 인터내셔널’ 대표다.

빅앤트는 설립 3년 만에 한국인 최초로 국제 5대 광고제인 칸 국제 광고제, 뉴욕 페스티벌, 클리오 광고제, D&AD, 뉴욕 원쇼 석권과 3년 연속 수상을 기록했다. 박 대표가 성공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떠오르면서 그가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이라는 사실도 세상에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례적 행보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지만 ‘아버지 후광 효과’라는 비난도 받았다.

그러나 박 대표는 번듯한 다른 재벌가 자제들과 다른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는 학교에서도 유명한 문제아로 통했다. 1998년 정원 미달로 간신히 단국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3회 학사 경고를 받고 대학교를 자퇴했다. 결국 도피 유학길에 올랐지만 유학시절에도 박 대표는 2회 학사경고를 받고 5차례나 전공을 바꿨다. 긴 방황 끝에 박 대표는 산업디자인에서 물을 만났다. 이후 한국인 최초로 세계 5대 광고제를 휩쓸며 광고계의 기린아로 떠올랐다.

변호사, 자선가, 광고인, 공직자, 영화감독…
경영과 담 쌓고 생활…쉽게 독립했다 낭패도

모든 재벌 자제들의 독립이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다. 부영그룹은 이중근 회장의 막내아들 이성한 감독이 운영하는 부영엔터테인먼트(이하 부영엔터)가 자금난에 빠지면서 골머리를 앓았다.

부영엔터는 3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이 제작비 중 상당 금액이 부영그룹의 비상장 계열사인 동광주택으로부터 출자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부영엔터의 업무용 사무실까지 모 기업의 지원을 통해 운영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2007년 제작한 이 감독의 첫 작품 <스페어>는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 관객 수가 4만5290명에 그쳤다. 이어 2009년 작품인 <바람>도 15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했지만 10만여 관객만을 동원했다. 이어 2011년 개봉한 <히트>도 11만명만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모기업으로부터의 원조 없이는 사업을 지속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부영그룹은 지난해 8월 부영엔터에 자금을 대거 쏟아 붓다 못해 부영엔터를 통째로 인수했다. 그룹 계열사인 대화기건이 부영엔터의 대주주가 됨으로써 69억원의 빚을 지고 완전자본잠식상태에 빠진 부영엔터의 빚까지 모두 떠안았다.

내 길 가려 했지만
단절은 어려워

그동안 대부분의 재벌 자제들은 자신만의 길을 걷다가도 그룹의 뜻을 외면하지 못했다. 우선 두산그룹의 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의 경우가 그렇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박 이사장은 연강재단을 맡기 전 40년간 의사로 살아왔다. 아직까지도 박 이사장의 얼굴에는 경영인보다는 학자에 가까운 인상이 남아 있다.

그는 서울의대 교수, 기획실장, 부원장에 이어 두 번에 걸친 병원장 역임, 대한외과학회 이사장과 대한병원협회 부회장까지 의사의 길을 걸었다. MBC드라마 <하얀거탑>의 주인공 장준혁의 실존 모델로 여겨질 정도로 외과의사로서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어수선했던 그룹 상황을 수습하고 형제경영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두산그룹의 특성상 의료계에만 남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05년 박용오, 박용성 전 회장의 ‘형제 간 다툼’과정에서 분식 회계, 위장 계열사를 통한 비자금 조성 의혹이 불거지면서 그룹 이미지는 실추됐다. 결국 그는 연강재단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그룹 일에 뛰어들었다. 연강재단은 (주)두산, 두산건설 등의 주요 주주다. 현재 두산건설 회장과 대한외과학회 부회장도 맡아 경영과 의료계 현실 개선에 힘쓰고 있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도 서울대 의대 출신이다. 10년 동안 산부인과 의사 생활을 하다 1996년 부친 신용호 명예회장이 암으로 쓰러지면서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 과거 재계는 신 명예회장이 가업 승계가 아닌 전문경영인체제로 운영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신창재 회장이 과거 의사로 일하며 경영수업을 전혀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 명예회장이 죽음을 앞두고 마음을 바꿨던 것으로 보인다.

보광그룹의 홍석조 BGF리테일 대표의 행보도 마찬가지다. 홍 대표는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의 동생으로 홍석준 보광창업투자 회장,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과 형제다. 보광가는 각 형제들이 독자적으로 각기 다른 회사를 소유·운영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누나 홍라희 여사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부인으로 보광그룹도 범삼성가로 통한다.

1976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홍 대표는 30년 동안 법조인으로 살아왔다. 2006년까지 검사 생활을 하면서 인천지방검찰청 검사장,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지냈다. 2005년 홍 대표는 ‘안기부 X파일’ 사건 때 삼성그룹의 일가라는 이유로 검사들에게 ‘떡값’을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결국 홍 대표는 광고고검장을 마지막으로 오랜 법조인 생활을 접었다. 검사직을 그만둔 뒤 그는 1년여의 공백을 가졌다. 변호사 개업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결국 2007년 3월 경영인으로 변신해 현재까지 BGF리테일을 끌어가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재벌들은 젊었을 때는 자신의 길을 걷다가도 결국 그룹을 외면하지 못하고 경영인의 길을 택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창업주 세대는 복잡한 가족사가 얽혀있어 그룹의 영향을 외면하기가 힘들다”며 “아직까지는 많은 재벌 자녀들이 자신의 뜻에 따라 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상 재벌가에서 그룹 경영과 동떨어진 자기만의 길을 끝까지 고집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dklo21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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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