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이승한 사퇴 진짜 이유

15년 장기집권 마감 ‘물러났나 밀려났나’

[일요시사=경제1팀] 한종해 기자 = 홈플러스를 뒤덮고 있던 이승한 그림자가 완전히 걷혔다.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이 15년 만에 모든 직위를 내려놓은 것. 연구와 교육에 전념키 위해서라는 게 홈플러스 입장이지만 영국 본사 회장 퇴임과 녹록치 않은 국내 상황이 이 회장의 사임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홈플러스 내홍을 짊어진 도성환 사장의 어깨는 더욱 처지게 됐다.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이 홈플러스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지난 8일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은 사내게시판에 이승한 회장의 사퇴소식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 도 사장은 "그동안 쉼표 없이 살아오면서 미처 돌보지 못했던 건강을 회복하고 가족과의 시간을 더 많이 가지고 싶다는 이 회장의 희망에 따라 회사는 사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사퇴배경을 설명했다.

퇴임 후 막후서
강력한 영향력

경북 칠곡 출생으로 계성고와 영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 회장은 1970년 삼성그룹 공채 11기로 입사, 97년 삼성물산 유통부문 대표이사를 거쳐 99년 삼성테스코의 홈플러스 초대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홈플러스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이후 14년간 홈플러스 지휘봉을 잡아온 이 회장은 지난 14년간 홈플러스를 연매출 12조원에 달하는 대형마트 2위 업체로 키워냈다.

홈플러스는 99년 삼성물산과 영국의 대형 유통업체 테스코가 출자한 네덜란드 법인 테스코 홀딩스가 1대 1로 합작해 만든 삼성테스코㈜가 모태다. 이후 2011년 3월 삼성과 테스코의 상호 계약기간이 만료돼 법인명이 삼성테스코㈜에서 홈플러스㈜로 변경됐다.

이 회장은 2013년 초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회장 직함을 유지하면서 홈플러스 e-파란재단 이사장, 테스코·홈플러스 아카데미 회장, 테스코그룹 경영자문역을 맡아왔다. 지분이 0.1%도 없는데 '왕회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표이사 퇴임 이후 막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홈플러스에 따르면 이 회장은 당분간 경영이론 연구와 후진 양성에 주력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도 사장은 "앞으로 이 회장은 지난 45년 동안 경영일선에서 쌓아온 동서양을 넘나드는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글로벌 경영이론 및 모델 개발 등 연구와 교육에 전념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사내외 독보적인 존재…연구·교육 전념?
돌연 대체 왜? 사퇴 배경 두고 설왕설래

지난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 회장은 보스턴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성품 중심의 '인성 리더십' 설파에 나섰고 보스턴대학은 이 회장의 경영이론을 학부 교과과정에 반영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프리먼 보스턴 경영대학장은 "홈플러스는 영국기업이 한국에서 성공한 글로벌 사례로서 학생과 글로벌 경영진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이 회장의 경영사례를 바탕으로 글로벌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 교과과정에 반영하려 한다"고 말했다.

업계가 내놓은 분석은 다르다. 이 회장의 사임이 테스코 회장의 퇴임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것.

필립 클라크 테스코 회장은 지난달 21일 실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테스코는 지난달 40년 만에 최악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날 <BBC> <블룸버그통신> 등 현지 언론은 테스코의 클라크 회장이 최고경영자직에서 물러나기로 했으며 오는 10월1일자로 데이브 루이스 유니레버 퍼스널케어 부문 사장이 후임 CEO로 부임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클라크 회장은 2011년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뒤 실적부진으로 압력을 받아왔다. 지난 5월까지 테스코 분기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3.8% 하락했고 클라크 부임 이후 주가는 27% 하락해 주주들의 손실이 88억파운드(약 15조원) 규모에 이르렀다. 투자자들은 클라크 회장의 능력 부재가 테스코의 저조한 경영실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영일선 후퇴 후 테크코 경영자문역을 맡아온 이 회장이 클라크 회장의 퇴임이 여간 부담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게 업계 해석이다.


경품사기·노사갈등
흔들리는 도성환호

이 회장의 퇴임으로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도 사장은 이 회장이 홈플러스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이후 사실상 단독 경영을 해 왔지만 '회장님'의 막강한 후광에 가려 최근 홈플러스를 뒤덮은 내홍의 책임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하지만 '이승한 그림자'가 걷힌 지금, 업계는 모든 짐을 짊어진 도 사장이 어떤 위기 극복 시나리오를 써 갈지 주목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처해 있다. 홈플러스 브랜드 이미지는 '갑질 논란'과 '경품 사기극' '동반성장 꼴지' '국부유출 논란' 등으로 한 없이 추락했고 회사 내부는 '노사 문제'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홈플러스는 지난 6월 동반성장위원회가 발표한 '2013 동반성장지수'에서 3년 연속 최하등급인 '보통'을 받았다. 홈플러스 측은 "동반성장 평가 기준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홈플러스의 '상생' 의지에 대한 진정성은 항상 물음표를 달고 있다.

최근 홈플러스는 주력하던 대형마트와 SSM의 신규 출점이 어려워지자 편의점 사업으로 골목 상권을 파고드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12년 '365 플러스'라는 명칭의 편의점 사업을 시작한 뒤 지난 4월 100호점을 오픈하며 매장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5월 취임하면서 '상생'과 '성장'을 강조하고 지난해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동반성장을 위해 노력하겠다"던 도 사장은 해외에선 "향후 10년간 국내에서 5000개 매장을 운영하겠다"고 발표해 상생의지가 아예 없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내우외환에 시름
추석 전 파업예고

이를 뒷받침하듯 홈플러스는 잇따른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1월에는 명절 알바에 대한 갑질로, 지난 3월에는 액세서리 입점 매장에 대한 갑질로 몸살을 앓았다. 지난달 들어서는 홈플러스 직원이 협력업체 직원을 냉동창고에 가두고, 수시로 욕설을 하는 등 노예처럼 부렸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으며 협력업체에 납품단가를 내릴 것을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매장 리뉴얼 시 협력업체의 직원을 동원한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은 영국 본사에 바쳤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로열티로 영국 본사에 616억1700만원을 지급했다. 이는 홈플러스의 지난해 영업이익 2509억여원의 25% 수준이고 2012년 대비 16배가 넘는 액수다.

상표 수수료 인상에 대해 홈플러스는 "한국에 대한 수수료율이 다른 국가에 비해 너무 낮다는 영국 세무당국의 지적을 받은 영국 테스코 본사의 요청으로 인상이 이뤄진 것"이라며 "이전까지 한국 홈플러스가 본사에 낸 수수료율은 0.05%에 불과하고 다른 국가는 1% 안팎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럽 경기 침체로 영국 본사의 수익이 줄자 이를 한국 홈플러스의 돈을 가져다가 메꾸려는 의도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게다가 국내 홈플러스는 'TESCO'라는 상표명을 사용하는 곳이 없다. 법인명에서도 '테스코'는 빠졌다. 반면 중·인도·말레이시아·체코 등에서는 국가명 앞에 'TESCO'라는 상표를 붙이고 있다. 따라서 도 사장이 영국 본사에 지나치게 휘둘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텅텅 빈 곳간은 노사 임금 협상 파행으로 이어졌다. 홈플러스 노사는 임금교섭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노조는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홈플러스 본사 앞에서 사측과의 임금교섭이 결렬됐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10년을 일해도 월급이 100만원 남짓인 현실을 바꾸기 위해 임금교섭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직원의 희생만을 요구하는 임금 인상안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하필 이때…각종 논란으로 몸살
회장님 그림자서 벗어난 사장님
도성환 경영 능력 시험대 올라

노조는 "사측은 시급은 170원(3.25%) 인상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2015년 최저 임금과 90원밖에 차이가 안 난다"며 "임원들은 여전히 수십억원의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또 "회사가 노동자들의 절절한 요구를 계속 무시한다면 다가오는 추석을 맞이해 총파업 등 강력한 투쟁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4월 노조가 설립된 이후 극심한 노사갈등을 겪어왔다. 특히 '쩜오계약제'로 불리는 '꼼수'가 드러나면서 총파업 직전에 간신히 합의에 이르렀지만 최근에는 임금협상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홈플러스 악재의 정점은 지난달 말 불거진 '경품사기극'이 찍었다. 지난달 27일 <시사매거진 2580>은 홈플러스의 경품사기극을 적나라하게 보도했다. 홈플러스가 비싼 경품을 걸고 행사를 한 뒤 정작 주요 당첨자에게 경품을 전달하지 않았다는 게 방송의 주요 내용. 홈플러스는 지난 2월 수천만원 상당의 다이아몬드, 외제차 등의 경품을 내걸고 고객대상 경품 행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행사 1등 당첨자들은 경품을 받지 못했고 다른 당첨자들의 미지급 사례가 쏟아졌다. 대부분의 당첨자들은 당첨사실조차 알 수 없었다. 1등 경품으로 나왔던 7800만원 상당의 2캐럿짜리 클래식 솔리테르 다이아몬드 링은 국내에 한 번도 수입된 적 없는 제품이었고 이 제품을 취급하는 업체는 경품 행사 진행 사실도 몰랐다.


홈플러스는 지난 2012년 3월, 4500만원 상당의 외제 자동차를 1등 상품으로 내건 행사에서 당첨자를 조작하기도 했다. 홈플러스 한 직원은 응모 프로그램을 조작해 친구를 1등 당첨자로 만들었고 외제차를 경품으로 받고 되팔아 3000만원을 챙겼다.

홈플러스의 고객 기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경품 행사로 할 수 있는 나쁜 짓(?)을 총 동원했다. 응모권에 고객이 기재한 개인정보를 제휴보험사에 팔아넘긴 것. 한 명당 2000∼2800원을 받아 챙겼다. 정보제공에 동의하지 않은 고객에게 얻어낸 개인정보는 4200∼4500원으로 더 비싸게 팔았다.

지난 3년 동안 매년 300만명이 넘는 고객정보가 홈플러스에서 보험사로 넘어갔다. 올해 목표치(?)는 400만명. 이를 위해 4번의 경품행사를 기획했고 48억이라는 구체적인 수익 목표치도 정해놨다.

말로만 '상생'
뒤로는 '갑질'

논란이 커지자 홈플러스는 보도자료를 통해 "연락이 부족해 경품이 지급되지 않은 사례가 발생한 점에 대해 사과한다"며 "최근 개인정보 유출사태 이후 문자사기, 보이스피싱 등에 대한 염려로 당첨 고지에 대한 응답률이 낮아지면서 일부 경품이 지급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경품지급을 조작한 직원은 경찰에 고소하기로 했다. 홈플러스는 "해당직원 2명을 고소했다"며 "아직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지켜봐 달라"고 호소했다.

호소는 먹히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등을 돌렸다. 홈플러스 불매 운동까지 벌어졌다. 불똥은 홈플러스 임대매장에도 튀었다. 홈플러스 식품매장 바깥에 입점한 의류매장, 음식점, 커피숍, 안경점, 피부과 등의 업체 등 테넌트 매장은 홈플러스 불매운동으로 받는 피해가 극심하다.

홈플러스 실적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위기 극복 특명을 안고 도성환호가 출범한 지 1년여가 지난 지금 지난해 매출(연결재무재표기준)은 8조9297억원으로 전년대비 0.6%늘었으나 영업이익은 3382억원으로 전년대비 24% 급감했다. 올해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2% 줄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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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