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군대 안 간 고위공직자와 자녀들

뭣이라, 군대 갔다 와야 성공한다고?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윤 일병 사망사건의 여파로 군 복무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고 있다. 입대할 나이의 아들을 둔 부모들은 입영을 거부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는 징병제를 채택해 '국민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누구나 똑같이 병역을 이행하도록 해왔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른바 '사회고위층'이라고 불리는 집단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병역을 기피해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일요시사>는 최근 잇따른 군 관련 사망사건들을 계기로 고위공직자들의 병역사항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없이 오직 '백성'에게만 병역을 강요해 온 역사를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힘이 없어 아들을 군대에 보냈다는, 그래서 지켜주지 못했다는 절규가 이어졌다. 병무청 게시판에는 "우리 군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글이 가득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군대는 무조건 가야 하는 곳이었다. "군대를 갔다 와야 성공한다"는 말도 있었다. 그렇지만 힘 있는 사람들에게 군대는 피해야 하고, 또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일요시사>는 최근 잇따른 군 관련 사망사건들을 계기로 고위공직자들의 병역이행 실태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먼저 박근혜정부 들어 임명된 17개 부처 전·현직 장관 및 그 아들(직계비속)들의 병역 사항은 다음과 같다.

아픈 아버지
미국인 아들

지난 6월 사퇴한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1974년 11월 육군에 입대해 1976년 1월 소집해제(일병) 됐다. 인사청문회(이하 청문회) 과정에서 현 전 장관은 "당시 결핵성 골수염을 앓아 보충역 판정을 받고 방위로 근무했다"고 밝혔다.

현 전 장관의 장남 현모씨는 1984년 미국에서 출생했다. 이중국적자(미국·한국)였던 그는 2004년 10월 육군으로 입대해 2006년 12월 복무만료(이병) 됐다. 현씨는 산업기능요원 보충역으로 복무했다. 소집해제 후 현씨는 당시 국적법에 따라 2008년 12월 한국 국적을 상실했다. 서류상으로 미국인이었던 현씨는 2012년 1월이 돼서야 한국 국적 재취득을 신청했다.


현 전 장관의 후임으로 지명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1979년 3월 육군으로 입대해 1980년 4월 소집해제(일병) 됐다. 당시 최 부총리는 한국은행 외환관리부에서 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최 부총리의 아들은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지난 2005년 병역을 면제(5급)받은 것으로 기록돼있다. 이와 관련 최 부총리는 청문회 과정에서 자신 및 아들의 병역과 관련한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다는 이유였다. 최 부총리의 아들은 삼성그룹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남수 전 교육부장관은 1975년 3월 공군에 입대해 1976년 3월 복무만료(일병) 됐다. 서 전 장관은 1972년과 1973년 모두 2차례에 걸쳐 징병검사를 연기했다. 이후 그는 색맹과 턱관절 장애를 이유로 1974년 보충역 대상인 3을종(현재 4급) 판정을 받았다.

보충역을 마친 그는 1979년 교육부 사무관으로 임용됐다. 그런데 당시 신체검사에서 시력이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징병검사 기록(양쪽 0.5)과 공무원 인사기록(양쪽 1.2이상)에 담긴 시력은 서로 달랐다. 청문회 과정에서 서 전 장관은 관련한 질문을 받았다. 이에 서 전 장관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눈이 피곤하면 시력이 급격히 저하된다"고 답했다.

지난 8일 취임한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1971년 3월 해군에 입대해 1974년 1월 만기제대(대위) 했다. 황 장관은 당시 군법무관으로 병역을 이행했다. 그러나 황 장관의 아들은 2009년 척추질환으로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다. 청문회 과정에서 특혜 복무 등 관련한 의혹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황 장관은 의혹을 일축했다. 황 장관은 "아들이 미국 영주권자라서 병역의무가 면제인데 아버지를 생각해 입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남은 15개 부처에서도 병역이행과 관련한 개운치 않은 전·현직 장관이 눈에 띄었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1979년 4월 육군에 입대해 1980년 5월 소집해제(일병) 됐다. 윤 장관은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징병검사에서 현역 입영대상인 1을종(현재 1급)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외무고시 합격 후 허리디스크를 이유로 3을종 판정을 받았다.

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은 어린 시절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병역 의무가 면제됐다. 그는 1976년 징병검사에서 근육위축, 하지단축 등의 진단을 받았다. 1989년생인 장남은 지난 2008년 징병검사에서 1급 판정을 받고 현역 입영대상으로 분류됐다. 앞서 그는 학업을 이유로 입영을 한 차례 연기했다.


배운 사람들
특례도 다양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은 폐결핵으로 면제 판정을 받았다. 그는 1975년 징병검사를 연기한 뒤 1977년 최초 징병검사에서 무종(폐결핵 증상) 판정을 받았다. 1978년과 1979년 이어진 재검(재신체검사)에서도 같은 판정이 나왔다. 이 장관은 1980년 병역이 면제됐다.

청문회에서 이 장관은 병역기피 의혹과 관련한 질문을 받았다. 이에 이 장관은 "대학을 졸업하고 (치료를 위해) 고향인 경북 의성으로 갔었는데 집안일을 거들어 완치가 안 됐었다"고 해명했다.

박근혜정부 초대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낸 진영 새누리당 의원은 1977년 12월 육군에 입대해 1980년 9월 만기제대(대위)했다. 그의 장남 역시 육군 현역으로 입대해 만기제대(병장) 했다.

반면 후임인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은 1981년 11월 육군에 입대해 1982년 12월 소집해제(일병) 됐다. 문 장관이 보충역 판정을 받은 이유는 근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역시 1976년 5월 공군에 입대해 1977년 6월 소집해제(일병) 됐다.

이 장관의 아들은 2003년 11월 1급 판정을 받고 현역 입영대상으로 분류됐다. 그렇지만 입영을 다섯 차례 연기한 끝에 2012년 2월 법무사관후보생으로 편입됐다. 법무사관후보생은 사법연수원·로스쿨 등에서 소정의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사람을 병적에 편입해 판사 등의 자격을 취득할 때까지 입대를 유예해주는 제도다.

사회고위층 모든 수단 동원해 병역 기피
17개 부처장관 중 면제 3명·보충역 5명

최문기 전 미래창조과학부장관은 1976년 3월 육군에 입대, 1981년 3월 복무만료(이병) 됐다. 당시 한국과학원(카이스트의 전신) 학생이었던 최 전 장관은 '병역의무의특례규제에관한법률'에 따라 전문연구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대체했다.

최 전 장관은 1974년 서울대 응용수학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 산업공학과에서 1976년까지 석사 과정을 밟았다. 그런데 대학원을 졸업한 최 전 장관은 같은 해 한국과학원에서 동일전공으로 또 다시 석사에 도전했다.

이와 관련 새정치민주연합 노웅래 의원은 청문회 과정에서 "같은 학위를 두 번이나 취득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며 "(한국과학원 학생에게 주어지는) 병역특례를 받기 위한 편법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후임인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장관도 병역특례를 받았다. 그는 1977년 3월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군 복무를 시작해 1984년 12월 복무만료(이병) 됐다. 같은 기간 최 장관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국립정보통신대학교에서 전산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유학기간은 1979년 9월부터 1984년 6월까지로 특례 기간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낸 셈이다.

그의 아들 역시 2009년 7월 입대해 2012년 7월 복무만료(이병) 됐는데 아버지와 비슷한 특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특례나 질병 없이 건강한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친 장관들은 없을까.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1977년 육군으로 입대해 1980년 만기제대(병장) 했다. 윤 장관의 아들도 육군병장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최근 신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으로 지명된 김종덕 후보자는 1977년 11월 육군으로 입대해 1980년 8월 만기제대(병장) 했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도 1980년 6월 해군으로 입대해 1983년 6월 전역(중위)했다.

방하남 전 고용노동부장관 경우, 육군하사로 만기 전역했다. 이기권 현 고용노동부장관은 육군 중위로 3년간의 군 생활을 했다.

지금은 인천시장이 된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장관은 1981년부터 1984년까지 국방의 의무를 이행했다. 전역 계급은 육군중위다. 후임인 정종섭 현 안전행정부장관은 육군대위로 전역했다. 입대일은 1985년 4월, 전역일은 1989년 1월이다.

류길재 통일부장관도 육군병장으로 1982년 12월 만기제대 했다. 국방부는 육군대장 출신인 한민구 전 합참의장이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다. 얼마 전 취임한 김희정 여성가족부장관의 경우는 여성으로 병역의무 대상자가 아니다.

윤성규 환경부장관은 1979년 8월 공군으로 입대해 1983년 3월 전역(중위)했다. 본인의 군 복무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청문회 과정에서 장남의 병역기피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다.


장남 윤모씨는 지난 2005년 징병검사에서 2급 현역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윤씨는 학업 및 자격시험 응시 등을 이유로 입영을 수차례 연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치르기로 한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1977년 예정된 징병검사를 연기했고 1980년 7월 '만성담마진'이라는 피부병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만성담마진은 두드러기가 지속되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청문회에서 황 장관은 "경위야 어찌됐든 병역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 마음의 빚으로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만성두드러기 환자의 절반은 1년 내 증상이 호전되고, 5년 내에는 90% 가까이 치료돼는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정부 17개 부처 장관 가운데 여성 장관을 제외하고 황 장관처럼 병역이 면제된 장관은 모두 3명(18.75%)이다. 보충역 등 대체복무한 장관은 5명(31.25%)이다. 2000년 이후 징병검사를 받은 일반인을 기준으로 보충역 판정을 받은 비율은 약 5∼7%로 알려져 있다.

또 직계비속과 관련한 병역기록을 제출한 장관은 12명이다. 이 중 6명은 만기제대 했고, 3명은 입대를 연기했으며, 2명은 공익근무 등 대체복무, 1명은 면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다른 고위공직자 및 직계비속의 병역이행 실태는 어떨까. 장관이 병역을 면제받은 법무부부터 살펴봤다. 김현웅 법무부차관은 육군중위로 군복무를 마쳤다. 그러나 아들은 지난 2009년 질병을 이유로 면제됐다.

현역 찾기가
이렇게 힘드네

김진태 검찰총장은 1975년 5월 육군으로 입대해 1977년 6월 소집해제(일병) 됐다. 김 총장은 당시 시력 등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장의 장남은 지난 2005년 3급 현역 판정을 받았다가 2009년 '사구체신염'이란 질병을 이유로 면제됐다. 청문회에서 김 총장은 "아들이 카투사에 지원하는 등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나름 노력했었다"고 해명했다.

또 검찰 내부 서열 2위로 알려진 김수남 서울중앙지검장은 1982년 병역이 면제됐다. 면제 사유는 근시였다. 최근 경찰청장에 내정된 강신명 후보자는 육군병장으로 1988년 만기제대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은 2013년 5월 징병검사에서 공익근무요원 소집대상으로 확정됐다.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국정원은 어떨까. 이병기 국정원장은 1975년 5월 육군에 입대해 같은 해 12월 전역(이병)했다. 전역 사유는 가사사정이었다. 6개월 방위로 복무했던 이 원장은 2대 독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기범 국정원 1차장과 김규석 3차장은 각각 아들이 현역으로 복무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차장의 장남은 2011년 9월 육군으로 입대해 2013년 8월 소집해제(이병) 됐다. 김 차장의 장남은 2012년 9월부터 최근까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활동했다.

사정기관의 한 축인 감사원도 찝찝함을 감출 수 없었다. 황찬현 감사원장은 1975년 4월 징병검사에서 현역 입영대상인 2을종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1977년 8월 재검을 통해 병역을 면제받았다. 면제 사유는 근시였다.

5대 권력기관장 도마에
정권 실세들도 유야무야

오는 18일 인사청문회가 예정된 임환수 국세청장 후보자는 1986년 7월부터 1989년 3월까지 공군에서 장교로 복무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군무이탈 의혹을 제기했다.

정치권도 병역과 관련해서는 떳떳하지 않았다. 당 최고지도부인 당대표와 원내대표만 임의로 확인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974년 4월 육군으로 입대해 1975년 6월 소집해제(이병) 됐다. 김 대표의 병역 이행과 관련해서는 여러 경로로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976년 5월 육군으로 입대해 1977년 4월 소집해제(일병) 됐다. 단기 사병으로 복무한 셈이다. 이 대표의 차남은 2000년 징병검사에서 3급 현역 판정을 받았다가 2006년 불안정성 무릎관절을 이유로 면제 조치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현재 당 대표가 공석이며, 박영선 원내대표의 경우 여성으로 병역이행 대상자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청와대 사람들의 병역이행 실태를 살펴봤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육군병장으로 제대했다. 하지만 장남 정모씨는 허리디스크로 면제 판정을 받았다. 정씨는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로 재직 중이다.

군대 안 가고
사회서 승승장구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해군대위로 전역했다. 그렇지만 그의 장남은 1997년 수핵탈출증 수술을 이유로 면제됐다. 박흥렬 경호실장의 경우는 차남이 면제된 것으로 확인되는데 당시 아들의 병세가 위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모두 9명으로 구성된 청와대 수석비서관 중에서는 5명의 병역기록을 살펴볼 수 있었다. 윤두현 홍보수석, 김영한 민정수석, 송광용 교육문화수석은 확인할 수 없었다. 여성인 조윤선 정무수석은 제외했다.

남은 5명 가운데 2명의 군 면제자가 확인됐다. 윤창번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은 1974년 근시로 면제 판정을 받았다. 최원영 고용복지수석도 1978년 척추회백질염을 이유로 면제됐다.

보충역은 1명이었다. 안종범 경제수석은 1981년 6월 육군으로 입대해 1982년 6월 소집해제(일병) 됐다.

유민봉 국정기획수석의 장남 유모씨는 2003년 국적을 상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지난해 병역기피 의혹이 일기도 했다.

청와대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의 병역기록도 살폈다. 이 중 안 비서관은 1986년 8월 해군에 입대해 1988년 12월 만기제대(병장) 했다. 남은 둘은 병장으로 제대하지 못했다. 이 비서관은 1992년 5월 육군으로 입대해 1999년 2월 복무만료(이병) 됐다. 정 비서관은 1991년 4월 육군으로 입대해 1992년 10월 소집해제(상병) 됐다.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