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군대 안 간 고위공직자와 자녀들

뭣이라, 군대 갔다 와야 성공한다고?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윤 일병 사망사건의 여파로 군 복무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고 있다. 입대할 나이의 아들을 둔 부모들은 입영을 거부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는 징병제를 채택해 '국민의 의무'라는 이름으로 누구나 똑같이 병역을 이행하도록 해왔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른바 '사회고위층'이라고 불리는 집단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병역을 기피해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일요시사>는 최근 잇따른 군 관련 사망사건들을 계기로 고위공직자들의 병역사항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없이 오직 '백성'에게만 병역을 강요해 온 역사를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힘이 없어 아들을 군대에 보냈다는, 그래서 지켜주지 못했다는 절규가 이어졌다. 병무청 게시판에는 "우리 군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글이 가득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군대는 무조건 가야 하는 곳이었다. "군대를 갔다 와야 성공한다"는 말도 있었다. 그렇지만 힘 있는 사람들에게 군대는 피해야 하고, 또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일요시사>는 최근 잇따른 군 관련 사망사건들을 계기로 고위공직자들의 병역이행 실태를 확인해보기로 했다. 먼저 박근혜정부 들어 임명된 17개 부처 전·현직 장관 및 그 아들(직계비속)들의 병역 사항은 다음과 같다.

아픈 아버지
미국인 아들

지난 6월 사퇴한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1974년 11월 육군에 입대해 1976년 1월 소집해제(일병) 됐다. 인사청문회(이하 청문회) 과정에서 현 전 장관은 "당시 결핵성 골수염을 앓아 보충역 판정을 받고 방위로 근무했다"고 밝혔다.

현 전 장관의 장남 현모씨는 1984년 미국에서 출생했다. 이중국적자(미국·한국)였던 그는 2004년 10월 육군으로 입대해 2006년 12월 복무만료(이병) 됐다. 현씨는 산업기능요원 보충역으로 복무했다. 소집해제 후 현씨는 당시 국적법에 따라 2008년 12월 한국 국적을 상실했다. 서류상으로 미국인이었던 현씨는 2012년 1월이 돼서야 한국 국적 재취득을 신청했다.


현 전 장관의 후임으로 지명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1979년 3월 육군으로 입대해 1980년 4월 소집해제(일병) 됐다. 당시 최 부총리는 한국은행 외환관리부에서 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최 부총리의 아들은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지난 2005년 병역을 면제(5급)받은 것으로 기록돼있다. 이와 관련 최 부총리는 청문회 과정에서 자신 및 아들의 병역과 관련한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다는 이유였다. 최 부총리의 아들은 삼성그룹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남수 전 교육부장관은 1975년 3월 공군에 입대해 1976년 3월 복무만료(일병) 됐다. 서 전 장관은 1972년과 1973년 모두 2차례에 걸쳐 징병검사를 연기했다. 이후 그는 색맹과 턱관절 장애를 이유로 1974년 보충역 대상인 3을종(현재 4급) 판정을 받았다.

보충역을 마친 그는 1979년 교육부 사무관으로 임용됐다. 그런데 당시 신체검사에서 시력이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징병검사 기록(양쪽 0.5)과 공무원 인사기록(양쪽 1.2이상)에 담긴 시력은 서로 달랐다. 청문회 과정에서 서 전 장관은 관련한 질문을 받았다. 이에 서 전 장관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눈이 피곤하면 시력이 급격히 저하된다"고 답했다.

지난 8일 취임한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1971년 3월 해군에 입대해 1974년 1월 만기제대(대위) 했다. 황 장관은 당시 군법무관으로 병역을 이행했다. 그러나 황 장관의 아들은 2009년 척추질환으로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다. 청문회 과정에서 특혜 복무 등 관련한 의혹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황 장관은 의혹을 일축했다. 황 장관은 "아들이 미국 영주권자라서 병역의무가 면제인데 아버지를 생각해 입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남은 15개 부처에서도 병역이행과 관련한 개운치 않은 전·현직 장관이 눈에 띄었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1979년 4월 육군에 입대해 1980년 5월 소집해제(일병) 됐다. 윤 장관은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징병검사에서 현역 입영대상인 1을종(현재 1급)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외무고시 합격 후 허리디스크를 이유로 3을종 판정을 받았다.

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은 어린 시절 앓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병역 의무가 면제됐다. 그는 1976년 징병검사에서 근육위축, 하지단축 등의 진단을 받았다. 1989년생인 장남은 지난 2008년 징병검사에서 1급 판정을 받고 현역 입영대상으로 분류됐다. 앞서 그는 학업을 이유로 입영을 한 차례 연기했다.


배운 사람들
특례도 다양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은 폐결핵으로 면제 판정을 받았다. 그는 1975년 징병검사를 연기한 뒤 1977년 최초 징병검사에서 무종(폐결핵 증상) 판정을 받았다. 1978년과 1979년 이어진 재검(재신체검사)에서도 같은 판정이 나왔다. 이 장관은 1980년 병역이 면제됐다.

청문회에서 이 장관은 병역기피 의혹과 관련한 질문을 받았다. 이에 이 장관은 "대학을 졸업하고 (치료를 위해) 고향인 경북 의성으로 갔었는데 집안일을 거들어 완치가 안 됐었다"고 해명했다.

박근혜정부 초대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낸 진영 새누리당 의원은 1977년 12월 육군에 입대해 1980년 9월 만기제대(대위)했다. 그의 장남 역시 육군 현역으로 입대해 만기제대(병장) 했다.

반면 후임인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은 1981년 11월 육군에 입대해 1982년 12월 소집해제(일병) 됐다. 문 장관이 보충역 판정을 받은 이유는 근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역시 1976년 5월 공군에 입대해 1977년 6월 소집해제(일병) 됐다.

이 장관의 아들은 2003년 11월 1급 판정을 받고 현역 입영대상으로 분류됐다. 그렇지만 입영을 다섯 차례 연기한 끝에 2012년 2월 법무사관후보생으로 편입됐다. 법무사관후보생은 사법연수원·로스쿨 등에서 소정의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사람을 병적에 편입해 판사 등의 자격을 취득할 때까지 입대를 유예해주는 제도다.

사회고위층 모든 수단 동원해 병역 기피
17개 부처장관 중 면제 3명·보충역 5명

최문기 전 미래창조과학부장관은 1976년 3월 육군에 입대, 1981년 3월 복무만료(이병) 됐다. 당시 한국과학원(카이스트의 전신) 학생이었던 최 전 장관은 '병역의무의특례규제에관한법률'에 따라 전문연구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대체했다.

최 전 장관은 1974년 서울대 응용수학과를 졸업한 뒤 고려대 산업공학과에서 1976년까지 석사 과정을 밟았다. 그런데 대학원을 졸업한 최 전 장관은 같은 해 한국과학원에서 동일전공으로 또 다시 석사에 도전했다.

이와 관련 새정치민주연합 노웅래 의원은 청문회 과정에서 "같은 학위를 두 번이나 취득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며 "(한국과학원 학생에게 주어지는) 병역특례를 받기 위한 편법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후임인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장관도 병역특례를 받았다. 그는 1977년 3월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군 복무를 시작해 1984년 12월 복무만료(이병) 됐다. 같은 기간 최 장관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국립정보통신대학교에서 전산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유학기간은 1979년 9월부터 1984년 6월까지로 특례 기간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낸 셈이다.

그의 아들 역시 2009년 7월 입대해 2012년 7월 복무만료(이병) 됐는데 아버지와 비슷한 특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특례나 질병 없이 건강한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친 장관들은 없을까.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1977년 육군으로 입대해 1980년 만기제대(병장) 했다. 윤 장관의 아들도 육군병장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최근 신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으로 지명된 김종덕 후보자는 1977년 11월 육군으로 입대해 1980년 8월 만기제대(병장) 했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도 1980년 6월 해군으로 입대해 1983년 6월 전역(중위)했다.

방하남 전 고용노동부장관 경우, 육군하사로 만기 전역했다. 이기권 현 고용노동부장관은 육군 중위로 3년간의 군 생활을 했다.

지금은 인천시장이 된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장관은 1981년부터 1984년까지 국방의 의무를 이행했다. 전역 계급은 육군중위다. 후임인 정종섭 현 안전행정부장관은 육군대위로 전역했다. 입대일은 1985년 4월, 전역일은 1989년 1월이다.

류길재 통일부장관도 육군병장으로 1982년 12월 만기제대 했다. 국방부는 육군대장 출신인 한민구 전 합참의장이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다. 얼마 전 취임한 김희정 여성가족부장관의 경우는 여성으로 병역의무 대상자가 아니다.

윤성규 환경부장관은 1979년 8월 공군으로 입대해 1983년 3월 전역(중위)했다. 본인의 군 복무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청문회 과정에서 장남의 병역기피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다.


장남 윤모씨는 지난 2005년 징병검사에서 2급 현역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윤씨는 학업 및 자격시험 응시 등을 이유로 입영을 수차례 연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치르기로 한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1977년 예정된 징병검사를 연기했고 1980년 7월 '만성담마진'이라는 피부병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만성담마진은 두드러기가 지속되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청문회에서 황 장관은 "경위야 어찌됐든 병역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점에 대해 마음의 빚으로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만성두드러기 환자의 절반은 1년 내 증상이 호전되고, 5년 내에는 90% 가까이 치료돼는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정부 17개 부처 장관 가운데 여성 장관을 제외하고 황 장관처럼 병역이 면제된 장관은 모두 3명(18.75%)이다. 보충역 등 대체복무한 장관은 5명(31.25%)이다. 2000년 이후 징병검사를 받은 일반인을 기준으로 보충역 판정을 받은 비율은 약 5∼7%로 알려져 있다.

또 직계비속과 관련한 병역기록을 제출한 장관은 12명이다. 이 중 6명은 만기제대 했고, 3명은 입대를 연기했으며, 2명은 공익근무 등 대체복무, 1명은 면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다른 고위공직자 및 직계비속의 병역이행 실태는 어떨까. 장관이 병역을 면제받은 법무부부터 살펴봤다. 김현웅 법무부차관은 육군중위로 군복무를 마쳤다. 그러나 아들은 지난 2009년 질병을 이유로 면제됐다.

현역 찾기가
이렇게 힘드네

김진태 검찰총장은 1975년 5월 육군으로 입대해 1977년 6월 소집해제(일병) 됐다. 김 총장은 당시 시력 등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장의 장남은 지난 2005년 3급 현역 판정을 받았다가 2009년 '사구체신염'이란 질병을 이유로 면제됐다. 청문회에서 김 총장은 "아들이 카투사에 지원하는 등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나름 노력했었다"고 해명했다.

또 검찰 내부 서열 2위로 알려진 김수남 서울중앙지검장은 1982년 병역이 면제됐다. 면제 사유는 근시였다. 최근 경찰청장에 내정된 강신명 후보자는 육군병장으로 1988년 만기제대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은 2013년 5월 징병검사에서 공익근무요원 소집대상으로 확정됐다.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국정원은 어떨까. 이병기 국정원장은 1975년 5월 육군에 입대해 같은 해 12월 전역(이병)했다. 전역 사유는 가사사정이었다. 6개월 방위로 복무했던 이 원장은 2대 독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기범 국정원 1차장과 김규석 3차장은 각각 아들이 현역으로 복무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차장의 장남은 2011년 9월 육군으로 입대해 2013년 8월 소집해제(이병) 됐다. 김 차장의 장남은 2012년 9월부터 최근까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활동했다.

사정기관의 한 축인 감사원도 찝찝함을 감출 수 없었다. 황찬현 감사원장은 1975년 4월 징병검사에서 현역 입영대상인 2을종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1977년 8월 재검을 통해 병역을 면제받았다. 면제 사유는 근시였다.

5대 권력기관장 도마에
정권 실세들도 유야무야

오는 18일 인사청문회가 예정된 임환수 국세청장 후보자는 1986년 7월부터 1989년 3월까지 공군에서 장교로 복무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군무이탈 의혹을 제기했다.

정치권도 병역과 관련해서는 떳떳하지 않았다. 당 최고지도부인 당대표와 원내대표만 임의로 확인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974년 4월 육군으로 입대해 1975년 6월 소집해제(이병) 됐다. 김 대표의 병역 이행과 관련해서는 여러 경로로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976년 5월 육군으로 입대해 1977년 4월 소집해제(일병) 됐다. 단기 사병으로 복무한 셈이다. 이 대표의 차남은 2000년 징병검사에서 3급 현역 판정을 받았다가 2006년 불안정성 무릎관절을 이유로 면제 조치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현재 당 대표가 공석이며, 박영선 원내대표의 경우 여성으로 병역이행 대상자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청와대 사람들의 병역이행 실태를 살펴봤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육군병장으로 제대했다. 하지만 장남 정모씨는 허리디스크로 면제 판정을 받았다. 정씨는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로 재직 중이다.

군대 안 가고
사회서 승승장구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은 해군대위로 전역했다. 그렇지만 그의 장남은 1997년 수핵탈출증 수술을 이유로 면제됐다. 박흥렬 경호실장의 경우는 차남이 면제된 것으로 확인되는데 당시 아들의 병세가 위중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모두 9명으로 구성된 청와대 수석비서관 중에서는 5명의 병역기록을 살펴볼 수 있었다. 윤두현 홍보수석, 김영한 민정수석, 송광용 교육문화수석은 확인할 수 없었다. 여성인 조윤선 정무수석은 제외했다.

남은 5명 가운데 2명의 군 면제자가 확인됐다. 윤창번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은 1974년 근시로 면제 판정을 받았다. 최원영 고용복지수석도 1978년 척추회백질염을 이유로 면제됐다.

보충역은 1명이었다. 안종범 경제수석은 1981년 6월 육군으로 입대해 1982년 6월 소집해제(일병) 됐다.

유민봉 국정기획수석의 장남 유모씨는 2003년 국적을 상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지난해 병역기피 의혹이 일기도 했다.

청와대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의 병역기록도 살폈다. 이 중 안 비서관은 1986년 8월 해군에 입대해 1988년 12월 만기제대(병장) 했다. 남은 둘은 병장으로 제대하지 못했다. 이 비서관은 1992년 5월 육군으로 입대해 1999년 2월 복무만료(이병) 됐다. 정 비서관은 1991년 4월 육군으로 입대해 1992년 10월 소집해제(상병) 됐다.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