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개편’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노림수

대단한 결단…알고 보면 오너 배불리기

[일요시사=경제2팀] 박효선 기자 = 한라그룹 지주회사 체제 전환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은 (주)한라(구 한라건설)리스크로부터 자동차 부품기업 만도를 분리해 대주주 지배체제 강화에 총력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의 기업분할을 놓고 만도의 현금으로 또 다시 한라의 부실을 메우기 위한 게 아니냐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겉으로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명분이지만 사실상 정 회장 일가의 그룹 내 장악력 강화를 위한 수단이 아니냐는 해석이 조심스레 회자된다. 

자동차 부품기업 만도가 분할된다. 오는 10월 만도는 새롭게 출범해 재상장된다. 만도는 지난달 28일 경기 평택 본사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지주회사 한라홀딩스와 사업회사 만도로 분할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한라홀딩스 중심
지배구조 개편

이 날 만도 전체 주주의 66%가 참석했다. 안건은 2대 주주인 국민연금(12.95%)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이변 없이 통과됐다. 기업분할이 완료되면 한라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로 남게 된다.

이날 신사현 만도 대표는 주총에서 사업 분할에 대해 “지주회사 체제 도입을 통해 부실 계열사에 대한 지원을 차단하는 등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순환출자 문제도 해결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도의 분할기일은 9월1일이다. 자산분할 비율은 0.48대 0.52로 기업 분할 절차가 완료되면 기존 만도주주들은 한라홀딩스 주식 0.48주, 제조회사인 만도 주식 0.52주씩 각각 보유하게 된다. 새롭게 출범하는 만도는 오는 10월6일 거래소에 재상장된다. 따라서 만도 주식은 오는 28일부터 10월5일까지 거래 정지된다. 이에 따라 한라그룹은 지주사 한라홀딩스를 중심으로 지배구조가 개편될 전망이다.


만도 분리 등 한라홀딩스 중심 지배구조 정비
부실 메우기 꼼수? 줄줄이 ‘도미노 부실’우려

현재까지는 (주)한라가 만도 지분 17.29%를, 만도가 한라마이스터 지분 100%, 한라마이스터는 (주)한라를 15.86% 보유하고 있다. 즉 한라그룹은 ‘(주)한라→만도→한라마이스터→(주)한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다.

기업은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 계열사들끼리 돌려가며 자본을 늘릴 수 있다. 계열사끼리 출자해 자본금과 계열사 수를 늘리는 방식이다. 재벌들이 계열기업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동원하는 변칙적인 출자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중 한 계열사가 부실해지면 출자한 다른 계열사까지 부실해지는 부실의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현행상법과 공정거래법에서는 계열사 간의 출자, 즉 상호 출자를 금지하고 있는데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순환출자 규모나 내용을 파악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라그룹 역시 순환출자를 통해 흑자경영을 해온 만도의 돈으로 한라를 살려내고 있다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리스크 때문에 기업 분할을 통해 만도와 (주)한라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겠다는 게 한라그룹의 명분이다.

분할 재상장해
한라 간접지원?

우선 만도차이나홀딩스, 만도브로제, 만도신소재 등은 만도의 자회사로 남는다. 한라마이스터, 만도헬라, 한라스택폴 등은 한라홀딩스 자회사로 재편된다. 지주사 한라홀딩스는 핵심 사업에 집중 투자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한라홀딩스가 건설사 (주)한라의 모회사격인 한라마이스터를 지배하는 지주사 체제로 전환되면 만도와 (주)한라의 연결고리는 끊어지게 된다. 이를 통해 만도 독자 경영의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것이 한라그룹의 주장이다.

하지만 만도의 분할은 (주)한라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주)한라는 여전히 실적부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주)한라는 428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올해 상환해야 할 단기차입금만 약 3300억원이다.

만도의 주주인 국민연금이 만도 주총에서 반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만도의 지분 13.41%를 보유한 2대 주주다. 국민연금은 만도를 지주회사인 한라홀딩스와 사업회사인 만도로 분리하는 내용의 기업분할 계획에 대해 반대의결권을 행사했다.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는“(한라그룹) 사업 분할 목적이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지주회사의 전환이라고 하지만 그간 유상증자로 현금소진이 높은 상황에서 회사채 발행으로 조성한 자금을 사업 분할에 활용하는 것은 주주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만도의 장기 기업 가치와 주주권익을 훼손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아직 공시된 게 없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분할 전 157%인 만도의 부채비율은 분할 뒤 250% 이상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금자산은 500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줄고, 1조235억원에 이르는 이익잉여금도 모두 사라질 전망이다. 빚만 늘어나고 통장잔고는 텅텅 비게 되는 셈이다.

반대로 한라홀딩스는 4500억원의 현금자산과 1조원이 넘는 이익잉여금을 넘겨받았다. 앞으로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재원을 확보한 것이다. 또 주요 자회사인 만도헬라가 한라홀딩스 소속으로 결정된 것도 만도에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만도 분할을 두고 전문가들의 평가도 부정적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분할을 통해 만들어지는 순수 지주회사는 사업회사보다 기업가치가 작기 때문에 대주주의 지분확보가 쉽고 상속이나 증여 측면에서도 유리할 수 있다”며 “이 과정에서 기존 주주들이 변경된 지배구조로 인해 좋은 실적을 거둘 수 있는 사업 부문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제한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순환출자를 끊기 위해선 합병, 주식교환 등을 거쳐야 한다”며 “한라와 한라홀딩스가 합병을 한다 해도 건설부문의 부진을 만도가 계속 메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정몽원 회장
그룹 장악력

한라에 대한 지원책이 나올 때마다 재계가 시끄러운 것은 정몽원 회장의 지분 때문이다. 정 회장의 개인 지분이 한라에 몰려 있다. 정 회장의 한라 지분은 23.58%다. 분할 후 만도와 건설사 한라는 분리되지만 지분율은 변동되지 않는다. 만도의 최대주주인 정 회장의 지분비율 7.71%는 한라홀딩스와 만도에서 동일하게 7.71%를 유지하게 된다.

이에 따라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정 회장이 한라홀딩스를 통해 만도까지 지배하는 구조를 만들 것이라는 추측이 회자되고 있다. 정 회장이 지주사에 대한 지배력을 더 확보해 한라홀딩스의 보유현금으로 한라 자사주를 매입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렇게 되면 한라홀딩스의 영향력은 만도와 한라에 모두 미친다.즉, 분할 이후에도 '한라-한라홀딩스-마이스터-한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는 남게 되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사실상 신설법인 만도의 대주주 또한 여전히 한라다.

한라그룹은 한라홀딩스와 한라 합병 가능성에 대해 “우려에 불과하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번 분할로 지주회사를 통해 과거처럼 만도의 돈이 한라에게 넘어가는 게 아니냐는 시각에 한라그룹 관계자는 “만도나 한라홀딩스를 통해 한라를 지원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우려일 뿐, 실제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한라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으로 부실계열사인 (주)한라에 대한 추가 지원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관계자는 “이번 분할로 순환출자 구조는 끊어지게 된다”며 “만도 부채비율이나 현금자산의 경우 변동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확실하게 얼마나 어떻게 나올지는 공시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합병의 가장 큰 수혜자는 한라 대주주인 정몽원 회장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주주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분할 재상장이 만도 경쟁력 강화가 아닌 대주주의 경영권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쓰일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소액주주들은 지분율이 희석되고 분할 재상장 이후 분리된 두 기업의 주가가 동반상승하지 못하면 기존 주주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주주가치 훼손
투자자들 우려

소액주주들의 원성은 지난4월부터 이어졌다. 정몽원 회장이 만도의 지주회사 전환체제를 발표하면서부터다.

만도는 꾸준히 성장해 재작년부터 매출 3조원을 넘는 등 흑자경영을 해온 업체다. 반면 한라는 부동산 경기침체로 몇 년째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로 한라그룹은 지배구조 핵심인 (주)한라가 유동성 위기를 겪자 만도와 자회사 한라마이스터를 이용해 두 차례에 걸쳐 자금을 지원했다. 건설경기 불황으로 적자의 늪에 허덕이는 한라를 지원하기 위해 만도가 100%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 한라마이스터를 통해 한라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우회 지원한 것이다. 
 

한라는 2012년 1월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730억원 규모의 주식을 발행했다. 이 중 200억원어치를 만도의 자회사 한라마이스터에 팔았다. 이어 지난해 4월에도 3385억원 규모의 주식을 발행해 한라마이스터에 팔았다. 만도가 한라마이스터의 유상증자에 돈을 대고, 이 자금을 다시 한라건설의 증자에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동안 만도의 돈이 꾸준히 한라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만도 자회사를 통해 만도의 돈으로 한라를 지탱하고 있는 셈이다.


상법 제549조의 9에 따르면 상장회사는 주요주주 및 그의 특수관계인, 이사 및 업무관여자, 감사를 상대방으로 하거나 그를 위해 신용을 공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만도의 최대주주는 17.29%의 지분을 보유한 한라다. 이에 경제분야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는 정 회장을 비롯해 경영진을 상법의 신용공여 금지위반으로 고발한 바 있다.

겉으론 순환출자 고리 정리 내세워
실제론 오너일가 장악력 강화 분석

주주총회 다음날 증시에서 만도 주가는 뚝 떨어졌다. 만도의 주가가 폭락한 것은 분할 후 만도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이투자증권 한 연구원은 "대주주 한라 리스크 등 잇단 악재로 만도 주주들은 매우 지쳐있는 상태"라며 "회사에 대한 신뢰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당일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최고조로 치솟았다. 만도 투자자는 “정몽원 회장이 만도의 돈을 한라건설로 빼돌리기 위해 서둘러 지주회사로 전환한 모습”이라며 “정 회장은 만도를 챙기고 한라를 버려야지 덩치만 키우려고 내실과 주주이익을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분할 후 만도가 한라의 건설 실적 부진을 커버하는 지원이 다른 식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현재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분할 전 보유한 만도주식을 팔겠다는 분위기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한라홀딩스 가치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만도 소액주주는 “만도가 재상장하게 되면 만도 주식은 오를지 모르겠지만 한라홀딩스는 하락할 것”이라며 “만도만 보유하고 싶은데 분할 후 재상장으로 한라홀딩스까지 떠안게 됐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분할의 혜택이 소액주주가 아닌 대주주 한라에만 있을 수 있다는 부연이다.

하지만 한라그룹은 만도의 가치는 현재보다 더 올라갈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곳 관계자는 (한라홀딩스와 만도는) 주식 수로 보면 48대 52로 나뉘는데 분할되는 회사가 각각 다를 수 있지만 가치로 따지면 현재보다 올라가게 될 것”이라며 “하나는 오르고 하나는 적게 떨어지더라도 전체적 가치는 더 커질 전망”이라고 제시했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현대백화점, 위니아만도 인수
삼촌기업 조카가 품는다

현대백화점이 김치냉장고 ‘딤채’로 유명한 위니아만도를 인수한다. 최근 동양매직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셨던 현대백화점은 위니아만도 인수로 그동안 추진해 왔던 가전제조업 진출의 꿈을 이뤘다. 

현대백화점은 지난7일 글로벌 사모펀드 시티벤처캐피털파트너스(이하 CVC파트너스)와 위니아만도 지분 100%를 매입하는 내용의 MOU(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양사는 계약 금액 등 세부 조건에 대한 합의를 마무리하고 조만간 실사를 거쳐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할 예정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TV홈쇼핑 업체 현대홈쇼핑과 식품유통전문업체 현대그린푸드를 거느리고 있다. 위니아만도 인수를 통해 판매와 제조업에서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위니아 만도는 한라그룹의 자동차 부품회사인 만도(옛 만도기계) 가전부문에서 출발한 회사다. 1995년 선보인 김치냉장고 ‘딤채’로 유명해졌다. 한라그룹은 고(故) 정주영 회장 첫째 동생인 고 정인영 회장이 창업한 회사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고 정주영 회장의 3남인 정몽근 명예회장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현재는 정 명예회장의 장남인 정지선 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다. 삼촌이 매각했던 기업을 조카가 인수하게 된 것이다.

위니아만도는 김치냉장고 외에도 에어컨과 제습기 등 가정용 공조기기를 생산한다. 지난해 매출 4127억원, 영업이익 168억원을 기록했다. 현대백화점은 현대홈쇼핑, 현대그린푸드, 현대리바트 등 그동안 유통업을 위주로 사업을 펼쳤으나 이번 위니아만도 인수를 계기로 제조업에 뛰어들 수 있게 됐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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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