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대국민 사기극 파문

비싼 경품 안주고 고가 경품 뻥쳤다

[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홈플러스가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해 경품 사기극을 벌여온 사실이 드러났다. 홈플러스의 도덕성은 도마 위에 올랐다. 파문이 커지자 홈플러스는 성난 소비자들이 겨누는 칼을 자신들이 아닌 개인 직원을 향하게 만들었다. 약관을 내세워 책임은 소비자에게 미루고 자신들은 깨알 같은 글씨 뒤로 숨어버렸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던 도성환 대표의 다짐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MBC <시사매거진2580> 보도팀이 홈플러스 경품사기 사건을 집중 취재했다. 그동안 홈플러스가 당첨자에게 경품을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오히려 경품을 미끼로 고객들의 정보를 모았고, 이 정보는 보험사에 팔아넘겼다. 홈플러스 경품사기는 유통업계 최악의 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품 줄게
정보 다오

방송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올 초 다이아몬드 반지와 고급 자동차를 경품으로 내걸고 행사를 벌였다. 그런데 취재결과 이러한 행사 대부분의 1등 당첨자는 경품을 받지 못했다. 미지급 사례는 쏟아졌다. 대부분의 당첨자들은 “당첨사실을 몰랐다”며 놀랐다. 홈플러스는 공교롭게도 당첨자가 전화를 안 받아서 취소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렇다고 차첨자를 뽑은 것도 아니었다. 당첨 무효처리를 한 것이다.

1등 경품으로 나왔던 7800만원 상당의 2캐럿짜리 클래식 솔리테르 다이아몬드 링은 국내에 한 번도 수입된 적 없는 제품이었다. 이 제품을 취급하는 업체는 “경품으로 자사 제품을 내놓지 않는다”며 “홈플러스 측이 다이아몬드에 대해 문의한 적도 없다”고 했다.

홈플러스의 소비자 속이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2012년 3월 4500만원 상당의 외제 자동차를 1등 상품으로 내건 행사에서 당첨자를 조작했다. 실제로 홈플러스 한 직원은 응모 프로그램을 조작해 친구를 1등 당첨자로 만들었다. 경품으로 받은 승용차를 되팔아 3000만원을 챙겼다.


자신의 친구에게 경품이 돌아가도록 한 뒤 물건을 현금화해 나눠 가진 것이다. 보도가 나가자 홈플러스는 부랴부랴 상품을 받지 못한 당첨자들에게 경품을 모두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래서 일부러 안 준 게 아니라 “지급보류”라고 주장했다.

1등 당첨 사실 모르고 그냥 넘어가
“연락 안 된다”시간 끌다 무효처리

특히 홈플러스는 경품행사를 진행하면서 응모권에 고객이 기재한 개인정보를 제휴 보험사에 팔아넘겼다. 경품 행사로 모은 개인정보는 보험사에 한 명당 2000∼2800원을 받고 넘겨왔다. 퍼미션DB는 더 비싸게 팔 수 있었다. 퍼미션DB는 정보제공에 동의하지 않은 고객에게 얻어낸 개인정보다. 어렵게 정보를 구한 고객들일수록 보험에 가입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퍼미션DB는 4200∼4500원으로 두 배 비싼 값에 팔린다.

보험사가 이를 통해 수익을 얻으면 그 일부를 돌려받기도 한다. 경품은 고객이 개인정보를 작성시키게 만들기 위한 미끼일 뿐 사실상 정보장사를 해온 셈이다.

홈플러스는 지난3년 동안 매년 300만명이 넘는 고객정보를 보험사에 팔아넘겼다. 올해는 400만명을 목표로 잡고 있었다. 올해 네 번의 경품행사로 48억의 수익을 올리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경품 행사 1번에 10억원 이상 남길 수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홈플러스는 응모권 뒷장에 동의를 받았으니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동의를 내세워 책임은 소비자에게 넘기고 자신들은 깨알 같은 글씨 뒤로 숨어버린 모양새다.

불매운동 조짐
임대매장 불똥

방송이 나간 뒤 홈플러스는 보도자료를 통해 사과문을 올렸다. 홈플러스는 “연락이 부족해 경품이 지급되지 않은 사례가 발생한 점에 대해 사과한다”며 “최근 개인정보 유출사태 이후 문자사기, 보이스피싱 등에 대한 염려로 당첨 고지에 대한 응답률이 낮아지면서 일부 경품이 지급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미지급 당첨자에게 이제야 경품을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홈플러스 노동조합 측도 경품사기 관련 논평을 냈다. 논평에서 노조는 “홈플러스 노동자들은 보도 이후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으로 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노동조합 또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홈플러스 노조는 내부감시자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노조 관계자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추가제보를 접수받고 있다”며 “이 같은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홈플러스는 경품지급을 조작한 직원을 경찰에 고소하기로 했다. 홈플러스는 지켜봐달라고 호소했다. 다만 자세한 언급은 자제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경품행사를 조작한) 해당직원 2명을 고소했다”며 “아직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지켜봐 달라”고 짧게 답했다.

하지만 책임은 은근슬쩍 미룬 모습이다. 성난 소비자들이 겨누는 칼을 홈플러스는 자신들이 아닌 개인 직원을 향하도록 만든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조직에 있는데 마치 개인 비리인 것처럼 봉합하기 급급했다.

이러한 홈플러스의 대응에 후폭풍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홈플러스 불매 운동을 벌일 조짐이다. 실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홈플러스 불매운동’ 카페부터 만들자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고객 정보 보험사에 팔아넘겨
직원 고소…또 ‘꼬리 자르기’

그런데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소비자들의 불매운동 움직임에 홈플러스 테넌트 매장은 벌벌 떨고 있다. 테넌트 매장은 홈플러스 식품매장 바깥에 입점한 임대매장이다. 의류매장, 음식점, 커피숍, 안경점, 피부과 등의 업체들을 말한다.

테넌트매장 점주 및 직원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서울의 한 홈플러스 지점에 입점한 의류매장 점주는 “잘못은 홈플러스가 저질렀는데, 테넌트 매장까지 싸잡아 욕먹고 있다”며 “요즘 매출도 안 좋은 상황에 소비자들이 홈플러스 불매 운동까지 벌인다니까 정말 죽을 맛”이라고 토로했다.

고객정보 제공
당국 감시 시급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개인정보수집이다. 홈플러스가 금융사에 개인정보를 넘기면서 발생한 피해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인천에 사는 주부 A씨는 지난6월 홈플러스에서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내면 핸드카트를 준다는 말에 개인정보를 써냈다. 가족들의 정보도 함께 적어냈다. 그런데 며칠 뒤 신한카드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건 카드사 영업직원은 “홈플러스 경품에 당첨되시길 바란다”며 “고객님이 동의해서 전화 드렸다”고 자연스럽게 카드신청을 유도했다. 영문도 모른 채 이 전화를 받은 A씨의 아들은 신용카드를 덜컥 신청했다. 카드가 오고 나서야 A씨는 당시 적어냈던자신의 가족정보가 카드사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A씨는 “홈플러스에서 고객 관리 차원에서 연락처를 요구했다고 생각했지 금융사에 내 정보를 넘길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며 “이런 정보에 무지했던 내 잘못이 크겠지만 애초에 홈플러스가 카드사에 정보를 모두 제공한다고 충분히 알아듣게 공지를 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더이상 ‘착한기업’아니다
도성환 대표 윤리경영 흠집

금융소비자원은 마트가 행사를 통해 개인정보 수집하는 것 자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소비자원 관계자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경품만 생각하고 자신의 정보를 생각 없이 적어낸다”며 “마트는 이런 소비자의 심리를 파고들어 교묘하게 개인정보를 모아놓고 문제가 커지면 고객의 동의를 받았다고 핑계를 대곤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마트와 금융사는 동의만 받을 게 아니라 소비자에게 어떤 용도로 수집하는지 이후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면서 “사실상 마트에서 보험가입을 목적으로 한 행사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이어 당국의 책임을 물었다. 그는 “올 초부터 금융사의 개인정보가 큰 문제로 지적돼 왔는데, 아직까지도 마트에서의 금융사 개인정보 수집을 막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금융당국이 이런 경품 행사를 미끼로 한 개인정보 수집 자체를 금지해야 하고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는 ‘봉’
상생은 ‘최악’

홈플러스는 ‘착한 기업’ 홈플러스를 내세워 신뢰성 있는 이미지를 표방해왔다. 지난해 5월 취임한 도성환 홈플러스 대표는 ‘상생과 성장’을 다짐했다. 그런데 착한 얼굴 뒤로 소비자를 이용해 악덕 상술을 펼치고, 직원들에게는 등을 돌렸다. 노동자들과의 상생은 최악이다.


최근 발표된 동반성장위원회 동반성장지수 평가에서 홈플러스는 3년 연속 꼴찌를 차지했다. 3년 연속 최하위는 재계에서 홈플러스가 유일하다. 그래서인지 대형 유통 업체 중 유독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상인들과의 마찰이 많았다.

협력업체에 불공정 행위, 자체브랜드(PB) 제품 하자, 키즈랜드 관련 ‘갑을논란’에 이어 매장 내 입점한 중소상인은 쉽게 내쫓았다. 이러한 불명예를 꾸준히 얻으면서 홈플러스는 숱한 도덕성 논란에 휩싸여왔다.
 

특히 지난해부터 불거진 노조와의 갈등은 도성환 대표의 도덕성에 커다란 흠집이 되고 있다. 조직관리 시스템 부재와 내부 감사 질서의 허점을 보여주고 있다.

홈플러스와 노조의 갈등은 극에 치달은 상태다. 지난달 11일부터 노조는 “10년을 일해도 월급은 100만원이라는 기막힌 현실을 바꾸겠다”며 부분파업과 정시출퇴근, 집단휴가 등 쟁의행위를 하고 있다. 노조는 최저임금 수준의 낮은 급여를 최소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생활임금 보장 수준으로 올려달라고 사측에 요구했다. 요구 사항은 ▲2013년 도시노동자 평균임금(261만원)의 57%(148만원)를 기본급으로 지급 ▲상여금 400% 지급 ▲감정노동수당 지급 등이다.

홈플러스는 노조와 충분히 협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노조 측과 협의 진행 중에 있다”고 답했다.

노조의 의견은 달랐다. 노조는 논평에서 “임금교섭이 회사 설립 15년 만에 처음으로 열렸지만 수개월째 난항을 겪고 있음에도 사측은 책임 있게 나서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종일관 ‘회사사정이 어려워 노동조합 요구안에 대해 사측 안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만 반복해 왔다고 노조는 주장했다.

반면 도성환 대표는 영국 테스코사에 엄청난 로열티를 지급하는 등 본사에 대해서는 ‘해바라기 경영’을 펼쳤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로열티로 영국 본사에 616억1700만원을 지급했다. 이는 전보다 약 20배 가까이 늘어난 금액이다. 도 대표가 한국 고객과 한국 시장보다는 영국 본사를 더 신경 쓰는 게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업계에서는 영국 본사가 국내 홈플러스에 비용절감을 강하게 주문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테스코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영국 본사가 비용통제를 강하게 밀어붙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도성환 대표 입장에서는 영국 본사의 요구에 따라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홈플러스가 임금을 올려달라는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고, 고가의 경품행사를 통해 고객정보를 모아 이상한 형태로 수익을 끌어 올린 것도 영국 본사의 요구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실제로 테스코는 지속적인 실적악화로 지난달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교체했다. 최고경영자 필립 클라크도 오는 10월 자리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취임 2년차를 맞이한 도성환 대표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홈플러스 ‘로열티 퍼주기’논란
한국서 벌어 영국으로 송금

도성환 홈플러스 대표의 영국 본사를 향한 ‘해바라기’ 경영이 논란에 휩싸였다. 홈플러스가 영국 테스코 본사에 매년 30억원 안팎으로 지급해왔던 상표 수수료를 갑자기 616여억원으로 인상 지급한 것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영국의 Tesco Stores Limited와 ‘TESCO’의 상표, 로고 및 라이센스의 사용에 대해 지난해 616억1700만원을 지급했다. 이는 홈플러스의 지난해 영업이익 2509억여원의 25% 수준이다. 또한 홈플러스가 2012년 37억7000여만원을 상표 수수료로 지급했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16배가 넘는 규모다.

유럽의 경기 침체로 테스코 본사의 수익이 줄자,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상표 수수료를 대폭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향후 이보다 더 많은 비용을 내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급증한 로열티가 일시적 비용이 아닌 고정비용이기 때문이다.

상표 수수료 갑자기 16배 인상
갈수록 ‘등골 빼먹기’ 심해져

게다가 국내 홈플러스는 ‘TESCO’라는 상표명을 사용하는 곳이 없는데도 600억원이 넘는 상표 수수료를 지급했다. 법인명에서도 ‘테스코’는 빠졌다. 반면 중국·인도·말레이시아·체코 등에서는 국가명 앞에 ‘TESCO’라는 상표를 붙이고 있다. 따라서 도성환 대표가 영국 본사에 지나치게 휘둘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홈플러스는 1999년 삼성물산과 영국의 대형 유통업체 테스코가 출자한 네덜란드 법인 테스코 홀딩스가 1대 1로 합작해 만든 삼성테스코㈜가 모태다. 이후 2011년 3월 삼성과 테스코의 상호 계약기간이 만료돼 법인명이 삼성테스코㈜에서 홈플러스㈜로 변경됐다. 즉 간판만 국내 기업인 셈이다.

최근 발표된 동반성장지수 평가에서는 3년 연속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한국 시장 정서를 외면하는 외국 기업의 전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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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