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대국민 사기극 파문

비싼 경품 안주고 고가 경품 뻥쳤다

[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홈플러스가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해 경품 사기극을 벌여온 사실이 드러났다. 홈플러스의 도덕성은 도마 위에 올랐다. 파문이 커지자 홈플러스는 성난 소비자들이 겨누는 칼을 자신들이 아닌 개인 직원을 향하게 만들었다. 약관을 내세워 책임은 소비자에게 미루고 자신들은 깨알 같은 글씨 뒤로 숨어버렸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던 도성환 대표의 다짐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MBC <시사매거진2580> 보도팀이 홈플러스 경품사기 사건을 집중 취재했다. 그동안 홈플러스가 당첨자에게 경품을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오히려 경품을 미끼로 고객들의 정보를 모았고, 이 정보는 보험사에 팔아넘겼다. 홈플러스 경품사기는 유통업계 최악의 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품 줄게
정보 다오

방송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올 초 다이아몬드 반지와 고급 자동차를 경품으로 내걸고 행사를 벌였다. 그런데 취재결과 이러한 행사 대부분의 1등 당첨자는 경품을 받지 못했다. 미지급 사례는 쏟아졌다. 대부분의 당첨자들은 “당첨사실을 몰랐다”며 놀랐다. 홈플러스는 공교롭게도 당첨자가 전화를 안 받아서 취소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렇다고 차첨자를 뽑은 것도 아니었다. 당첨 무효처리를 한 것이다.

1등 경품으로 나왔던 7800만원 상당의 2캐럿짜리 클래식 솔리테르 다이아몬드 링은 국내에 한 번도 수입된 적 없는 제품이었다. 이 제품을 취급하는 업체는 “경품으로 자사 제품을 내놓지 않는다”며 “홈플러스 측이 다이아몬드에 대해 문의한 적도 없다”고 했다.

홈플러스의 소비자 속이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2012년 3월 4500만원 상당의 외제 자동차를 1등 상품으로 내건 행사에서 당첨자를 조작했다. 실제로 홈플러스 한 직원은 응모 프로그램을 조작해 친구를 1등 당첨자로 만들었다. 경품으로 받은 승용차를 되팔아 3000만원을 챙겼다.


자신의 친구에게 경품이 돌아가도록 한 뒤 물건을 현금화해 나눠 가진 것이다. 보도가 나가자 홈플러스는 부랴부랴 상품을 받지 못한 당첨자들에게 경품을 모두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래서 일부러 안 준 게 아니라 “지급보류”라고 주장했다.

1등 당첨 사실 모르고 그냥 넘어가
“연락 안 된다”시간 끌다 무효처리

특히 홈플러스는 경품행사를 진행하면서 응모권에 고객이 기재한 개인정보를 제휴 보험사에 팔아넘겼다. 경품 행사로 모은 개인정보는 보험사에 한 명당 2000∼2800원을 받고 넘겨왔다. 퍼미션DB는 더 비싸게 팔 수 있었다. 퍼미션DB는 정보제공에 동의하지 않은 고객에게 얻어낸 개인정보다. 어렵게 정보를 구한 고객들일수록 보험에 가입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퍼미션DB는 4200∼4500원으로 두 배 비싼 값에 팔린다.

보험사가 이를 통해 수익을 얻으면 그 일부를 돌려받기도 한다. 경품은 고객이 개인정보를 작성시키게 만들기 위한 미끼일 뿐 사실상 정보장사를 해온 셈이다.

홈플러스는 지난3년 동안 매년 300만명이 넘는 고객정보를 보험사에 팔아넘겼다. 올해는 400만명을 목표로 잡고 있었다. 올해 네 번의 경품행사로 48억의 수익을 올리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경품 행사 1번에 10억원 이상 남길 수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홈플러스는 응모권 뒷장에 동의를 받았으니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동의를 내세워 책임은 소비자에게 넘기고 자신들은 깨알 같은 글씨 뒤로 숨어버린 모양새다.

불매운동 조짐
임대매장 불똥

방송이 나간 뒤 홈플러스는 보도자료를 통해 사과문을 올렸다. 홈플러스는 “연락이 부족해 경품이 지급되지 않은 사례가 발생한 점에 대해 사과한다”며 “최근 개인정보 유출사태 이후 문자사기, 보이스피싱 등에 대한 염려로 당첨 고지에 대한 응답률이 낮아지면서 일부 경품이 지급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미지급 당첨자에게 이제야 경품을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홈플러스 노동조합 측도 경품사기 관련 논평을 냈다. 논평에서 노조는 “홈플러스 노동자들은 보도 이후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으로 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노동조합 또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홈플러스 노조는 내부감시자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노조 관계자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추가제보를 접수받고 있다”며 “이 같은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홈플러스는 경품지급을 조작한 직원을 경찰에 고소하기로 했다. 홈플러스는 지켜봐달라고 호소했다. 다만 자세한 언급은 자제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경품행사를 조작한) 해당직원 2명을 고소했다”며 “아직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지켜봐 달라”고 짧게 답했다.

하지만 책임은 은근슬쩍 미룬 모습이다. 성난 소비자들이 겨누는 칼을 홈플러스는 자신들이 아닌 개인 직원을 향하도록 만든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조직에 있는데 마치 개인 비리인 것처럼 봉합하기 급급했다.

이러한 홈플러스의 대응에 후폭풍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홈플러스 불매 운동을 벌일 조짐이다. 실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홈플러스 불매운동’ 카페부터 만들자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고객 정보 보험사에 팔아넘겨
직원 고소…또 ‘꼬리 자르기’

그런데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소비자들의 불매운동 움직임에 홈플러스 테넌트 매장은 벌벌 떨고 있다. 테넌트 매장은 홈플러스 식품매장 바깥에 입점한 임대매장이다. 의류매장, 음식점, 커피숍, 안경점, 피부과 등의 업체들을 말한다.

테넌트매장 점주 및 직원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서울의 한 홈플러스 지점에 입점한 의류매장 점주는 “잘못은 홈플러스가 저질렀는데, 테넌트 매장까지 싸잡아 욕먹고 있다”며 “요즘 매출도 안 좋은 상황에 소비자들이 홈플러스 불매 운동까지 벌인다니까 정말 죽을 맛”이라고 토로했다.

고객정보 제공
당국 감시 시급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개인정보수집이다. 홈플러스가 금융사에 개인정보를 넘기면서 발생한 피해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인천에 사는 주부 A씨는 지난6월 홈플러스에서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내면 핸드카트를 준다는 말에 개인정보를 써냈다. 가족들의 정보도 함께 적어냈다. 그런데 며칠 뒤 신한카드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건 카드사 영업직원은 “홈플러스 경품에 당첨되시길 바란다”며 “고객님이 동의해서 전화 드렸다”고 자연스럽게 카드신청을 유도했다. 영문도 모른 채 이 전화를 받은 A씨의 아들은 신용카드를 덜컥 신청했다. 카드가 오고 나서야 A씨는 당시 적어냈던자신의 가족정보가 카드사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A씨는 “홈플러스에서 고객 관리 차원에서 연락처를 요구했다고 생각했지 금융사에 내 정보를 넘길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며 “이런 정보에 무지했던 내 잘못이 크겠지만 애초에 홈플러스가 카드사에 정보를 모두 제공한다고 충분히 알아듣게 공지를 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더이상 ‘착한기업’아니다
도성환 대표 윤리경영 흠집

금융소비자원은 마트가 행사를 통해 개인정보 수집하는 것 자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소비자원 관계자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경품만 생각하고 자신의 정보를 생각 없이 적어낸다”며 “마트는 이런 소비자의 심리를 파고들어 교묘하게 개인정보를 모아놓고 문제가 커지면 고객의 동의를 받았다고 핑계를 대곤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마트와 금융사는 동의만 받을 게 아니라 소비자에게 어떤 용도로 수집하는지 이후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면서 “사실상 마트에서 보험가입을 목적으로 한 행사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이어 당국의 책임을 물었다. 그는 “올 초부터 금융사의 개인정보가 큰 문제로 지적돼 왔는데, 아직까지도 마트에서의 금융사 개인정보 수집을 막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금융당국이 이런 경품 행사를 미끼로 한 개인정보 수집 자체를 금지해야 하고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는 ‘봉’
상생은 ‘최악’

홈플러스는 ‘착한 기업’ 홈플러스를 내세워 신뢰성 있는 이미지를 표방해왔다. 지난해 5월 취임한 도성환 홈플러스 대표는 ‘상생과 성장’을 다짐했다. 그런데 착한 얼굴 뒤로 소비자를 이용해 악덕 상술을 펼치고, 직원들에게는 등을 돌렸다. 노동자들과의 상생은 최악이다.


최근 발표된 동반성장위원회 동반성장지수 평가에서 홈플러스는 3년 연속 꼴찌를 차지했다. 3년 연속 최하위는 재계에서 홈플러스가 유일하다. 그래서인지 대형 유통 업체 중 유독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상인들과의 마찰이 많았다.

협력업체에 불공정 행위, 자체브랜드(PB) 제품 하자, 키즈랜드 관련 ‘갑을논란’에 이어 매장 내 입점한 중소상인은 쉽게 내쫓았다. 이러한 불명예를 꾸준히 얻으면서 홈플러스는 숱한 도덕성 논란에 휩싸여왔다.
 

특히 지난해부터 불거진 노조와의 갈등은 도성환 대표의 도덕성에 커다란 흠집이 되고 있다. 조직관리 시스템 부재와 내부 감사 질서의 허점을 보여주고 있다.

홈플러스와 노조의 갈등은 극에 치달은 상태다. 지난달 11일부터 노조는 “10년을 일해도 월급은 100만원이라는 기막힌 현실을 바꾸겠다”며 부분파업과 정시출퇴근, 집단휴가 등 쟁의행위를 하고 있다. 노조는 최저임금 수준의 낮은 급여를 최소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생활임금 보장 수준으로 올려달라고 사측에 요구했다. 요구 사항은 ▲2013년 도시노동자 평균임금(261만원)의 57%(148만원)를 기본급으로 지급 ▲상여금 400% 지급 ▲감정노동수당 지급 등이다.

홈플러스는 노조와 충분히 협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노조 측과 협의 진행 중에 있다”고 답했다.

노조의 의견은 달랐다. 노조는 논평에서 “임금교섭이 회사 설립 15년 만에 처음으로 열렸지만 수개월째 난항을 겪고 있음에도 사측은 책임 있게 나서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종일관 ‘회사사정이 어려워 노동조합 요구안에 대해 사측 안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만 반복해 왔다고 노조는 주장했다.

반면 도성환 대표는 영국 테스코사에 엄청난 로열티를 지급하는 등 본사에 대해서는 ‘해바라기 경영’을 펼쳤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로열티로 영국 본사에 616억1700만원을 지급했다. 이는 전보다 약 20배 가까이 늘어난 금액이다. 도 대표가 한국 고객과 한국 시장보다는 영국 본사를 더 신경 쓰는 게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업계에서는 영국 본사가 국내 홈플러스에 비용절감을 강하게 주문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테스코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영국 본사가 비용통제를 강하게 밀어붙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도성환 대표 입장에서는 영국 본사의 요구에 따라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홈플러스가 임금을 올려달라는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고, 고가의 경품행사를 통해 고객정보를 모아 이상한 형태로 수익을 끌어 올린 것도 영국 본사의 요구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실제로 테스코는 지속적인 실적악화로 지난달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교체했다. 최고경영자 필립 클라크도 오는 10월 자리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취임 2년차를 맞이한 도성환 대표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홈플러스 ‘로열티 퍼주기’논란
한국서 벌어 영국으로 송금

도성환 홈플러스 대표의 영국 본사를 향한 ‘해바라기’ 경영이 논란에 휩싸였다. 홈플러스가 영국 테스코 본사에 매년 30억원 안팎으로 지급해왔던 상표 수수료를 갑자기 616여억원으로 인상 지급한 것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영국의 Tesco Stores Limited와 ‘TESCO’의 상표, 로고 및 라이센스의 사용에 대해 지난해 616억1700만원을 지급했다. 이는 홈플러스의 지난해 영업이익 2509억여원의 25% 수준이다. 또한 홈플러스가 2012년 37억7000여만원을 상표 수수료로 지급했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16배가 넘는 규모다.

유럽의 경기 침체로 테스코 본사의 수익이 줄자,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상표 수수료를 대폭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향후 이보다 더 많은 비용을 내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급증한 로열티가 일시적 비용이 아닌 고정비용이기 때문이다.

상표 수수료 갑자기 16배 인상
갈수록 ‘등골 빼먹기’ 심해져

게다가 국내 홈플러스는 ‘TESCO’라는 상표명을 사용하는 곳이 없는데도 600억원이 넘는 상표 수수료를 지급했다. 법인명에서도 ‘테스코’는 빠졌다. 반면 중국·인도·말레이시아·체코 등에서는 국가명 앞에 ‘TESCO’라는 상표를 붙이고 있다. 따라서 도성환 대표가 영국 본사에 지나치게 휘둘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홈플러스는 1999년 삼성물산과 영국의 대형 유통업체 테스코가 출자한 네덜란드 법인 테스코 홀딩스가 1대 1로 합작해 만든 삼성테스코㈜가 모태다. 이후 2011년 3월 삼성과 테스코의 상호 계약기간이 만료돼 법인명이 삼성테스코㈜에서 홈플러스㈜로 변경됐다. 즉 간판만 국내 기업인 셈이다.

최근 발표된 동반성장지수 평가에서는 3년 연속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한국 시장 정서를 외면하는 외국 기업의 전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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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