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대국민 사기극 파문

비싼 경품 안주고 고가 경품 뻥쳤다

[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홈플러스가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해 경품 사기극을 벌여온 사실이 드러났다. 홈플러스의 도덕성은 도마 위에 올랐다. 파문이 커지자 홈플러스는 성난 소비자들이 겨누는 칼을 자신들이 아닌 개인 직원을 향하게 만들었다. 약관을 내세워 책임은 소비자에게 미루고 자신들은 깨알 같은 글씨 뒤로 숨어버렸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던 도성환 대표의 다짐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MBC <시사매거진2580> 보도팀이 홈플러스 경품사기 사건을 집중 취재했다. 그동안 홈플러스가 당첨자에게 경품을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오히려 경품을 미끼로 고객들의 정보를 모았고, 이 정보는 보험사에 팔아넘겼다. 홈플러스 경품사기는 유통업계 최악의 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품 줄게
정보 다오

방송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올 초 다이아몬드 반지와 고급 자동차를 경품으로 내걸고 행사를 벌였다. 그런데 취재결과 이러한 행사 대부분의 1등 당첨자는 경품을 받지 못했다. 미지급 사례는 쏟아졌다. 대부분의 당첨자들은 “당첨사실을 몰랐다”며 놀랐다. 홈플러스는 공교롭게도 당첨자가 전화를 안 받아서 취소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렇다고 차첨자를 뽑은 것도 아니었다. 당첨 무효처리를 한 것이다.

1등 경품으로 나왔던 7800만원 상당의 2캐럿짜리 클래식 솔리테르 다이아몬드 링은 국내에 한 번도 수입된 적 없는 제품이었다. 이 제품을 취급하는 업체는 “경품으로 자사 제품을 내놓지 않는다”며 “홈플러스 측이 다이아몬드에 대해 문의한 적도 없다”고 했다.

홈플러스의 소비자 속이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2012년 3월 4500만원 상당의 외제 자동차를 1등 상품으로 내건 행사에서 당첨자를 조작했다. 실제로 홈플러스 한 직원은 응모 프로그램을 조작해 친구를 1등 당첨자로 만들었다. 경품으로 받은 승용차를 되팔아 3000만원을 챙겼다.


자신의 친구에게 경품이 돌아가도록 한 뒤 물건을 현금화해 나눠 가진 것이다. 보도가 나가자 홈플러스는 부랴부랴 상품을 받지 못한 당첨자들에게 경품을 모두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래서 일부러 안 준 게 아니라 “지급보류”라고 주장했다.

1등 당첨 사실 모르고 그냥 넘어가
“연락 안 된다”시간 끌다 무효처리

특히 홈플러스는 경품행사를 진행하면서 응모권에 고객이 기재한 개인정보를 제휴 보험사에 팔아넘겼다. 경품 행사로 모은 개인정보는 보험사에 한 명당 2000∼2800원을 받고 넘겨왔다. 퍼미션DB는 더 비싸게 팔 수 있었다. 퍼미션DB는 정보제공에 동의하지 않은 고객에게 얻어낸 개인정보다. 어렵게 정보를 구한 고객들일수록 보험에 가입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퍼미션DB는 4200∼4500원으로 두 배 비싼 값에 팔린다.

보험사가 이를 통해 수익을 얻으면 그 일부를 돌려받기도 한다. 경품은 고객이 개인정보를 작성시키게 만들기 위한 미끼일 뿐 사실상 정보장사를 해온 셈이다.

홈플러스는 지난3년 동안 매년 300만명이 넘는 고객정보를 보험사에 팔아넘겼다. 올해는 400만명을 목표로 잡고 있었다. 올해 네 번의 경품행사로 48억의 수익을 올리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경품 행사 1번에 10억원 이상 남길 수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홈플러스는 응모권 뒷장에 동의를 받았으니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동의를 내세워 책임은 소비자에게 넘기고 자신들은 깨알 같은 글씨 뒤로 숨어버린 모양새다.

불매운동 조짐
임대매장 불똥

방송이 나간 뒤 홈플러스는 보도자료를 통해 사과문을 올렸다. 홈플러스는 “연락이 부족해 경품이 지급되지 않은 사례가 발생한 점에 대해 사과한다”며 “최근 개인정보 유출사태 이후 문자사기, 보이스피싱 등에 대한 염려로 당첨 고지에 대한 응답률이 낮아지면서 일부 경품이 지급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미지급 당첨자에게 이제야 경품을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홈플러스 노동조합 측도 경품사기 관련 논평을 냈다. 논평에서 노조는 “홈플러스 노동자들은 보도 이후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으로 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노동조합 또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홈플러스 노조는 내부감시자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노조 관계자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추가제보를 접수받고 있다”며 “이 같은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홈플러스는 경품지급을 조작한 직원을 경찰에 고소하기로 했다. 홈플러스는 지켜봐달라고 호소했다. 다만 자세한 언급은 자제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경품행사를 조작한) 해당직원 2명을 고소했다”며 “아직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지켜봐 달라”고 짧게 답했다.

하지만 책임은 은근슬쩍 미룬 모습이다. 성난 소비자들이 겨누는 칼을 홈플러스는 자신들이 아닌 개인 직원을 향하도록 만든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조직에 있는데 마치 개인 비리인 것처럼 봉합하기 급급했다.

이러한 홈플러스의 대응에 후폭풍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홈플러스 불매 운동을 벌일 조짐이다. 실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홈플러스 불매운동’ 카페부터 만들자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고객 정보 보험사에 팔아넘겨
직원 고소…또 ‘꼬리 자르기’

그런데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소비자들의 불매운동 움직임에 홈플러스 테넌트 매장은 벌벌 떨고 있다. 테넌트 매장은 홈플러스 식품매장 바깥에 입점한 임대매장이다. 의류매장, 음식점, 커피숍, 안경점, 피부과 등의 업체들을 말한다.

테넌트매장 점주 및 직원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서울의 한 홈플러스 지점에 입점한 의류매장 점주는 “잘못은 홈플러스가 저질렀는데, 테넌트 매장까지 싸잡아 욕먹고 있다”며 “요즘 매출도 안 좋은 상황에 소비자들이 홈플러스 불매 운동까지 벌인다니까 정말 죽을 맛”이라고 토로했다.

고객정보 제공
당국 감시 시급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개인정보수집이다. 홈플러스가 금융사에 개인정보를 넘기면서 발생한 피해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인천에 사는 주부 A씨는 지난6월 홈플러스에서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내면 핸드카트를 준다는 말에 개인정보를 써냈다. 가족들의 정보도 함께 적어냈다. 그런데 며칠 뒤 신한카드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건 카드사 영업직원은 “홈플러스 경품에 당첨되시길 바란다”며 “고객님이 동의해서 전화 드렸다”고 자연스럽게 카드신청을 유도했다. 영문도 모른 채 이 전화를 받은 A씨의 아들은 신용카드를 덜컥 신청했다. 카드가 오고 나서야 A씨는 당시 적어냈던자신의 가족정보가 카드사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A씨는 “홈플러스에서 고객 관리 차원에서 연락처를 요구했다고 생각했지 금융사에 내 정보를 넘길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며 “이런 정보에 무지했던 내 잘못이 크겠지만 애초에 홈플러스가 카드사에 정보를 모두 제공한다고 충분히 알아듣게 공지를 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더이상 ‘착한기업’아니다
도성환 대표 윤리경영 흠집

금융소비자원은 마트가 행사를 통해 개인정보 수집하는 것 자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소비자원 관계자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경품만 생각하고 자신의 정보를 생각 없이 적어낸다”며 “마트는 이런 소비자의 심리를 파고들어 교묘하게 개인정보를 모아놓고 문제가 커지면 고객의 동의를 받았다고 핑계를 대곤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마트와 금융사는 동의만 받을 게 아니라 소비자에게 어떤 용도로 수집하는지 이후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면서 “사실상 마트에서 보험가입을 목적으로 한 행사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이어 당국의 책임을 물었다. 그는 “올 초부터 금융사의 개인정보가 큰 문제로 지적돼 왔는데, 아직까지도 마트에서의 금융사 개인정보 수집을 막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금융당국이 이런 경품 행사를 미끼로 한 개인정보 수집 자체를 금지해야 하고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는 ‘봉’
상생은 ‘최악’

홈플러스는 ‘착한 기업’ 홈플러스를 내세워 신뢰성 있는 이미지를 표방해왔다. 지난해 5월 취임한 도성환 홈플러스 대표는 ‘상생과 성장’을 다짐했다. 그런데 착한 얼굴 뒤로 소비자를 이용해 악덕 상술을 펼치고, 직원들에게는 등을 돌렸다. 노동자들과의 상생은 최악이다.


최근 발표된 동반성장위원회 동반성장지수 평가에서 홈플러스는 3년 연속 꼴찌를 차지했다. 3년 연속 최하위는 재계에서 홈플러스가 유일하다. 그래서인지 대형 유통 업체 중 유독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상인들과의 마찰이 많았다.

협력업체에 불공정 행위, 자체브랜드(PB) 제품 하자, 키즈랜드 관련 ‘갑을논란’에 이어 매장 내 입점한 중소상인은 쉽게 내쫓았다. 이러한 불명예를 꾸준히 얻으면서 홈플러스는 숱한 도덕성 논란에 휩싸여왔다.
 

특히 지난해부터 불거진 노조와의 갈등은 도성환 대표의 도덕성에 커다란 흠집이 되고 있다. 조직관리 시스템 부재와 내부 감사 질서의 허점을 보여주고 있다.

홈플러스와 노조의 갈등은 극에 치달은 상태다. 지난달 11일부터 노조는 “10년을 일해도 월급은 100만원이라는 기막힌 현실을 바꾸겠다”며 부분파업과 정시출퇴근, 집단휴가 등 쟁의행위를 하고 있다. 노조는 최저임금 수준의 낮은 급여를 최소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생활임금 보장 수준으로 올려달라고 사측에 요구했다. 요구 사항은 ▲2013년 도시노동자 평균임금(261만원)의 57%(148만원)를 기본급으로 지급 ▲상여금 400% 지급 ▲감정노동수당 지급 등이다.

홈플러스는 노조와 충분히 협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노조 측과 협의 진행 중에 있다”고 답했다.

노조의 의견은 달랐다. 노조는 논평에서 “임금교섭이 회사 설립 15년 만에 처음으로 열렸지만 수개월째 난항을 겪고 있음에도 사측은 책임 있게 나서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종일관 ‘회사사정이 어려워 노동조합 요구안에 대해 사측 안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만 반복해 왔다고 노조는 주장했다.

반면 도성환 대표는 영국 테스코사에 엄청난 로열티를 지급하는 등 본사에 대해서는 ‘해바라기 경영’을 펼쳤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로열티로 영국 본사에 616억1700만원을 지급했다. 이는 전보다 약 20배 가까이 늘어난 금액이다. 도 대표가 한국 고객과 한국 시장보다는 영국 본사를 더 신경 쓰는 게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업계에서는 영국 본사가 국내 홈플러스에 비용절감을 강하게 주문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테스코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영국 본사가 비용통제를 강하게 밀어붙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도성환 대표 입장에서는 영국 본사의 요구에 따라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홈플러스가 임금을 올려달라는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고, 고가의 경품행사를 통해 고객정보를 모아 이상한 형태로 수익을 끌어 올린 것도 영국 본사의 요구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실제로 테스코는 지속적인 실적악화로 지난달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교체했다. 최고경영자 필립 클라크도 오는 10월 자리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취임 2년차를 맞이한 도성환 대표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홈플러스 ‘로열티 퍼주기’논란
한국서 벌어 영국으로 송금

도성환 홈플러스 대표의 영국 본사를 향한 ‘해바라기’ 경영이 논란에 휩싸였다. 홈플러스가 영국 테스코 본사에 매년 30억원 안팎으로 지급해왔던 상표 수수료를 갑자기 616여억원으로 인상 지급한 것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영국의 Tesco Stores Limited와 ‘TESCO’의 상표, 로고 및 라이센스의 사용에 대해 지난해 616억1700만원을 지급했다. 이는 홈플러스의 지난해 영업이익 2509억여원의 25% 수준이다. 또한 홈플러스가 2012년 37억7000여만원을 상표 수수료로 지급했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16배가 넘는 규모다.

유럽의 경기 침체로 테스코 본사의 수익이 줄자,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상표 수수료를 대폭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향후 이보다 더 많은 비용을 내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급증한 로열티가 일시적 비용이 아닌 고정비용이기 때문이다.

상표 수수료 갑자기 16배 인상
갈수록 ‘등골 빼먹기’ 심해져

게다가 국내 홈플러스는 ‘TESCO’라는 상표명을 사용하는 곳이 없는데도 600억원이 넘는 상표 수수료를 지급했다. 법인명에서도 ‘테스코’는 빠졌다. 반면 중국·인도·말레이시아·체코 등에서는 국가명 앞에 ‘TESCO’라는 상표를 붙이고 있다. 따라서 도성환 대표가 영국 본사에 지나치게 휘둘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홈플러스는 1999년 삼성물산과 영국의 대형 유통업체 테스코가 출자한 네덜란드 법인 테스코 홀딩스가 1대 1로 합작해 만든 삼성테스코㈜가 모태다. 이후 2011년 3월 삼성과 테스코의 상호 계약기간이 만료돼 법인명이 삼성테스코㈜에서 홈플러스㈜로 변경됐다. 즉 간판만 국내 기업인 셈이다.

최근 발표된 동반성장지수 평가에서는 3년 연속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한국 시장 정서를 외면하는 외국 기업의 전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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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