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뒷담화> 신선설농탕 '직원감시' 논란

직원끼리 서로 고자질

[일요시사=경제1팀] 한종해 기자 = 신선설농탕의 직원 평가 시스템이 구설에 올랐다. '다면평가'로 불리는 직원 상호간 평가 때문이다. 직원 개개인의 장·단점을 서로 평가하고 그 자료를 인사고과에 반영한다는 것.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은 직원들에게는 "앞으로 잘 하겠다"는 서약서까지 받는단다.

신선설농탕은 외식업체 ㈜쿠드가 운영하는 국내 대표적인 설렁탕 프렌차이즈다. ㈜쿠드는 신선설농탕을 비롯해 한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시·화·담', 구이전문점 '우소보소', 한정식 전문점 '수련', 인테리어 브랜드 '이노데코' 등 5개 브랜드를 갖고 있다. 신선설농탕은 2009년 40%가 넘는 시청률 속에 방영됐던 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배경으로 사용되면서 화제가 됐다.

겉으론 '좋은 기업'

㈜쿠드를 이끌고 있는 오청 대표는 1992년 대학을 막 졸업하고 27세의 나이에 아버지 손에 이끌려 얼떨결에 설렁탕 사업에 발을 들였다. 한양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의 그에게 설렁탕 사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주방 매뉴얼을 만들고 고객서비스 헌장을 만드는 등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94년에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설렁탕 포장 판매를 시작했다.

이후 95년 3월 오 대표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첫 점포를 냈다. 3개월가량 주방에서 근무하면서 식자재의 체계적 조리방법을 완성, 그에 따른 공장을 지었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지금 신선설농탕은 매장 수만 43개, 직원은 900여명에 이르는 거대 프렌차이즈 기업으로 성장했다.

신선설농탕은 대중들에게 모범적인 사회공헌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저소득층에 설렁탕을 무료로 급식하는 '사랑의 밥차', 전 임직원이 계좌당 1004원을 후원하는 '1004모금운동', 개점 10주년을 맞은 매장의 일 매출을 해당 구청에 기부하는 '오픈매출기부', 쌀 9만포를 시가보다 2000원씩 비싼 값에 사들여 차액을 농가에 지원하는 '우리쌀값 지켜주기', 고객이 양이 적은 '나누미밥'을 주문하면 남는 쌀을 모아 아프리카 결식아동을 지원하는 '나누미 캠페인' 등이 신선설농탕의 대표적인 사회공헌활동이다.

특히 오 대표는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수성가한 기업인' '앞장서는 사회공헌활동' 등 그럴싸한 겉모습과는 달리 속은 그렇지 못하다. 직원 관리에 있어서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직원이 직원을 평가하는 시스템인 '다면평가' 때문인데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곪을 대로 곪은 고름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퍼지고 있다.

다면평가는 신선설농탕에서 시행 중인 직원 평가 시스템의 한 종류다. 직원 개개인의 인성을 상호 평가하는 시스템인데 사실상 직원이 직원을 감시하는 셈이다. 신선설농탕 직원들은 1년에 한번 서로의 장·단점을 평가하고 있다. 결과는 본사에 보고되고 연말 인사고과에 반영된다.

임직원 상호간 장단점 평가 인사고과 반영
'나쁜 직원'에 "잘 하겠다" 서약서 강요도

본사는 해당 직원을 불러 결과를 발표한다. 장·단점을 적은 종이에 단점이 상대적으로 많으면 이른바 '나쁜 직원'으로 분류된다. 직원들은 결과에 따라 등급도 부여받는다. A부터 F까지 6등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선설농탕에서 근무 중인 한 직원의 말에 따르면 좋지 않은 결과를 받은 직원들은 그 수위에 따라 직위해제, 임금삭감, 임금동결 등의 징계를 받는다. 지난해 전체 직원의 5%가량이 임금동결 조치를 받았다.

재계 호사가들 사이에선 신선설농탕의 직원평가 시스템을 두고 말들이 많다. 자칫하다가는 '인민재판' '인민감시'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 앙심을 품은 직원이 의도적으로 상대를 나쁘게 평가해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신선설농탕의 다면평가 방식이 외부에 알려진 것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신선설렁탕을 고발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오면서 부터다. 신선설농탕에 근무했었다고 밝힌 A씨는 다면평가 방식을 공개하면서 "신선설농탕은 평가는 평가대로 하면서 직원에 대한 복리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라는 글을 개제했다.

A씨는 "(신선설농탕)은 1년에 한 번 개개인의 인성을 서로서로 평가한다"며 "평가서에 한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평가하는 건데 대략 결과는 한 달이 지나고 각 매장 직원을 차례로 불러 공개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예를 들어 장점과 단점이 각각 5줄이면 그 사람은 그냥 나쁜직원이 된다"며 "인간이 장·단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TV로 비춰지는 좋은 이미지를 연기하지 마라"고 덧붙였다.

신선설농탕의 직원평가 방식 중 주목할 만한 부문은 또 있다. 바로 서약서 작성이다. 신선설농탕은 다면평가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받아 든 직원들에게 서약서를 작성하게 하고 있다. "앞으로 더 잘 하겠다"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고 개선하겠다"는 일종의 '각서'다.

신선설농탕 한 직원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직원이 나를 평가한다는 것도 기분이 나쁜데 객관적 평가도 아닌 주관적인 평가에 따른 결과로 서약서까지 쓰는 것은 마치 반성문을 제출하는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회사는 "과도한 해석"이라는 반응이다. 다면평가는 신선설농탕의 직원 평가 방식 중 일부라는 것. ㈜쿠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고 퇴사한 전 직원이 회사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글을 쓰다 보니 와전된 부분이 적지 않다"고 반박했다.

"와전…오해다"

이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신선설농탕은 프랜차이즈라는 특성상 각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매장의 직원들을 일일이 관리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다면평가를 직원 평가 방식의 일부로 선정했다. ㈜쿠드는 직원을 6등급으로 나누고 서약서를 작성하게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이 관계자는 "다면평가 방식에 그치는 게 아니라 매장 실적, 서비스 모니터링 등을 종합해 직원을 평가하고 있다"며 "관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인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상호 평가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라고 이해해 주면 고맙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han1028@ilyosisa.co.kr>

 

<알려왔습니다>

<일요시사>는 2014년 7월14일자 「<재계뒷담화> 신선설농탕 '직원감시' 논란」기사에서 신선설농탕의 직원 평가 방식 중 하나인 ‘다면평가’에 관한 보도를 했습니다.

이에 신선설농탕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위 기사에 대해 신선설농탕은 다음과 같이 반론했습니다.

▲다면평가. 직원 개개인의 인성을 상호평가하는 시스템, 사실상 직원이 직원을 감시하는 셈이다.

-당사에서 다면평가를 하게 된 계기는 2004년 광우병 파동을 맞으면서 매출이 급락하는 위기를 맞자 대표가 밤낮으로 열흘간 전 매장을 돌면서 현장직원들과 직접 한 명 한 명 면담을 했다. 이때 직원들이 매장내의 왕따나 편가름의 현실을 호소하거나 인성이 안 좋은 관리자의 전횡과 소왕국화, 선임직원들이 신입직원이나 파트사원을 함부로 다루고 차별대우 등을 하고 있음을 파악하게 됐다.

심지어 왜 이제야 저희 얘기를 직접 들으러 오셨냐고 우는 직원들도 있었다.

이 면담을 계기로 점포 관리자의 평가를 본사 특정 부서에 맡기지 않고 각 매장별로 직원들이 관리자를 평가하는 다면평가 시스템을 도입하게 되었으며 주요 평가 항목은 인성과 표정, 미소, 의욕, 리더쉽, 업무능력 입니다. 당사의 인재상이 "올바른 인성을 가진 의욕과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기에 그 중 인성을 가장 우선시 여기고 평가란에 좋은 점과 개선할 점을 기록하게 됐다.

이 후 당사는 다면평가를 통해 실제 현장에서 인성이 바르지 못하여 동료들을 힘들게 하거나 직위만 내세워 직원을 존중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으며 권위적, 억압적 관리 형태를 바로 잡아왔다. 이로 인해 동료간의 갈등이 현저히 줄고 서로 배려하고 예의를 갖추는 근무분위기를 형성하게 됐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고쳐보려고 노력하는 직원에게는 동료들의 인정과 지지를 받게 되어 더 높은 관리자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서로 장, 단점을 평가한다. 장점과 단점이 각각 5줄이면 그 사람은 그냥 나쁜직원이 된다.

- 신선설농탕은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서비스업으로 평가항목이 개인의 좋은 점과 개선할 점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인성 외 표정, 미소, 의욕, 열정, 업무능력, 리더십 등의 여러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관리자가 직원을 평가하는데 그치지 않고 직원도 평가에 참여하는 양방향 평가로 10여년 동안 운영 노하우를 쌓으며 진행되고 있는 당사 고유의 평가제도다.

또한 피평가자의 좋은 점과 개선할 점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평가에는 매출 등의 경영 성과, 모니터링 서비스, 위생평가, 교육 및 역량 등 다양한 평가를 종합하여 진행하고 있다.

▲다면평가에 따라 직위해제, 임금삭감, 임금동결 등의 징계를 받는다.

- 다면평가를 통한 징계는 하위 5% 정도만이 임금 동결에 해당되고, 직위해제나 임금삭감의 경우는 심각한 사건사고에 적용되며 이 또한 회사의 징계 절차를 밟고 진행된다.

다면평가를 잘 받지 못해도 직위해제, 임금삭감의 징계를 받지는 않는다.

또한 적극적인 개선을 다짐하기 위해 서약서를 쓰기도 하지만 평가 이후 스스로 고쳐나가고 개선된 모습을 보이면 좋은 평가를 받는 직원들도 많이 있다.

▲앙심을 품은 직원이 의도적으로 상대를 나쁘게 평가해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런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 다면평가는 같은 점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모두 평가에 참여하는 것으로 일부 직원들이 개인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잘못된 생각으로 참여할 수 도 있다. 그러나 점포별로 적게는 열명, 많게는 수십명이 동시에 평가를 하기에 잘못된 의도를 가지고 평가를 하면 분석과정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럴 경우, 다면평가에서 제외되는 필터링 시스템이 있어 우려하는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평가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기명이 아닌 실명을 쓰고 평가를 하기에 앙심을 품은 의도적인 평가는 금방 드러나게 되어있어 그 내용은 제외된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직원이 나를 평가한다.

- 앞서 말씀드린 대로, 다면평가는 점포별로 진행됩니다. 점포 내에서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만 참여할 수 있는 제도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직원이 평가 할 수 없다.

▲직원 복리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직원 복리가 거의 없다는 주장은 터무니 없다. 복리후생이 변경된 부분은 경기침체에 따른 매출하락과 금값 폭등으로 장기근속 시상 중 금을 주던 것 대신 휴가를 늘리고 제품 시식권을 드리는 것으로 변경된 정도다.

그 외 경조휴가, 경조사 지원, 근속기념선물 및 정기휴가, 건강검진, 여가생활지원, 자기계발지원, 콘도 지원, 제품가격 할인 등을 운영하며 동종업계 중 상위의 복지제도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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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