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가격으로 집주인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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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동산 분양시장에서 지역주택조합 아파트와 지식산업센터의 약진이 돋보인다. 조금이라도 저렴한 비용으로 내집 마련을 하려는 실수요자들에게 착한 가격을 앞세운 지역주택조합 아파트와 공급과잉으로 수익률이 떨어지고 있는 오피스텔이나 도시형 생활주택의 자리를 지식산업센터가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주택조합 아파트·지식산업센터 약진
지방서 서울·수도권으로 빠르게 확산

주로 지방을 중심으로 되살아난 지역주택조합 아파트가 서울·수도권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지역조합 아파트는 장기간 사업이 지연되는 등의 문제로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지만 조합원 신청 자격이 완화됐다. 착한 가격으로 조합원 모집에 나서는 등 최근 1000〜2000여가구 이상 매머드급 대단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곳곳서 조합원 모집
매머드급 단지 등장

지역주택조합이란 무주택자나 소형주택(전용면적 60㎡ 이하)을 1채 소유하고 있는 지역주민이 자기집을 마련하기 위해 건설 예정세대수의 1/2 이상이 주택조합을 구성하고 집지을 땅을 매입해 등록업자와 공동으로 주택을 건립하는 제도다. 시행사 이익분, 토지금융비 등이 절감되므로 일반분양대비 저렴한 분양가로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서는 ‘상도 스타리움’지역조합 아파트가 홍보관을 열고 조합원 모집에 나섰다. 지하철 7호선 장승배기역 초역세권 단지로 총 2300가구 대단지다. 동작구 신대방동 355 일대에서도 ‘동작 트인시아’조합주택 아파트(935가구)가 1차 조합원을 모집 중이다. 성동구 용답동 명문예식장 자리에 들어서는 364가구 규모의 ‘청계 현대아산’(가칭)도 지역조합 아파트로 최근 조합 설립 인가를 마쳤다.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묵현리 일대에서는 이달 중 ‘남양주 화도 엠코타운’지역주택조합이 신규 조합원 모집을 시작한다. 지하 2층〜지상 33층 규모의 총 1602가구(전용 59〜84㎡)로 이뤄졌다. 현재 사업부지 매입이 끝났고, 시공은 현대엔지니어링이 맡을 예정이다. 경기 광주시 오포읍 문형리 일대에 들어서는 ‘오포 우림필유’지역주택조합도 조합원을 모집 중이다. 총 1028가구(전용 84㎡) 규모다.
조합원 모집이 사업 성공의 관건인 지역조합 아파트는 정부가 잇따라 규제완화책을 내놓으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작년 8월엔 조합원 모집이 가능한 지역 범위가 당초 사업지와 같은 시·군에서 시·도 거주(6개월 이상)자로 확대돼 조합원 모집이 수월해졌다.
올해 6월13일부터는 지역주택조합도 최대 25%가량은 전용면적 85㎡를 초과하는 중대형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조합원 추가 모집이 끝난 뒤 일부 잔여 주택을 일반분양으로 판매할 때 유리하다. 국토부는 무주택자나 전용면적 60㎡ 이하 소형주택 1가구 소유자를 대상으로 한 조합원 자격도 전용 85㎡ 이하까지 확대할 방침으로 지역조합 아파트는 조합원이 50%만 모이면 조합 설립 후 사업계획 승인, 착공까지 절차가 간소해진다.
지역조합 아파트는 특정 지역 내 조합원끼리 땅을 사 아파트를 짓는 방식으로 대개 초기에 조합을 대행하는 시행사 등이 부지를 매입해 조합원을 모집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조합원들은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1000만원 안팎의 초기 운영비를 내고 아파트 건립 사업에 참여한다.
일반분양 아파트에 비해 이자 등 금융비용이 적은 것도 장점이다. 시행사나 조합 대행사 등이 가져가는 일정 수준의 수수료를 빼면 다른 아파트 사업처럼 조합이나 시공사가 이윤을 많이 남길 필요가 없어 땅값과 건축비 원가에 아파트를 제공한다. 조합원 입장에선 청약 통장이 필요 없고 초기에 동·호수 등을 우선 선택할 수 있어 좋다.
일반분양에선 경쟁률이 치열해 분양받기 어려운 소형 평형도 선점할 수 있다. 최대 장점은 주변 시세보다 10〜20%가량 저렴한 집값이다. 다만 재개발·재건축과 달리 초기에 투자금을 내고 중도금 무이자 등의 혜택이 별로 없고 조합원 모집이 안 되면 사업이 장기화되거나 추가 부담금이 늘어나는 것은 단점으로 꼽히고 있다.
지역주택조합 아파트의 최대 장점을 꼽으라면 뭐니 뭐니 해도 인근 시세보다 저렴한 ‘분양가격’이다. 사업초기부터 수요자들이 직접 조합원 자격으로 주택건설 프로젝트에 참여, 개발하는 방식이어서 사업절차가 간소하고 추가 금융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사업추진비와 분양 마케팅 비용을 최소화 할 수 있어 일반 건설사들이 직접 개발·분양하는 주택에 비해 최대 20〜30%가량 저렴한 비용으로 내집 마련이 가능하다.
최근 공급되는 매머드급 사업장들은 기존 대단지 아파트의 장점도 누릴 수 있을 전망이다. 대단지 아파트들은 전반적으로 커뮤니티, 조경, 편의시설, 기반시설 등이 잘 갖춰지며 공용관리비가 저렴하다. 그러나 지역주택조합은 조합원들이 시행사가 되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하다는 메리트는 있지만 그 만큼 주의할 점도 적지 않다.
토지 매입이 50%도 안 된 상태라면 사업이 장기적으로 진행된다거나 무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토지사용승락서를 80% 이상 받은 단지인지 확인이 필요하고, 만약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단지라면 바로 사업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분양가가 저렴한 만큼 단지의 위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가격이 싼 만큼 입지와 단지 규모 등도 고려할 사항 중 하나다. 그렇다면 지역주택조합아파트와 일반분양 아파트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는 내집 마련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주택조합을 결성해서 토지 매입과 시공사 선정을 통해 저렴한 자금으로 땅을 사서 아파트를 짓는다. 개인들이 모여 조합을 만든 후 조합원을 모집하는데 조합원들이 낸 비용으로 토지를 계약하고, 건설회사에 돈을 주고 아파트를 짓게 하는 방식이다.
지역주택조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합원 확보다. 조합원이 제대로 모집되지 않으면 자금 충당이 어렵고, 사업 지연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기존 조합원들이 떠안게 된다. 토지 매입 문제도 중요하다. 토지매입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 사업장의 경우 토지매입에만 10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어 큰 손실을 볼 수 있다.
인·허가비, 개발 관련 부담금 등 여러 가지 항목의 생각지 못했던 추가부담금이라는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시공하는 건설사가 믿을 만한 곳인지도 중요하다. 이밖에 초기 투자금 부담이 크고 사업 지연에 따라 목돈이 묶일 우려도 있다.


곳곳서 조합원 모집
매머드급 단지 등장

이처럼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는 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여러 가지 신경 써야 할 부분과 크고 작은 리스크를 떠안게 된다. 때문에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는 저렴한 비용으로 내집 마련의 기회를 얻을 수 도 있지만 꼼꼼히 체크해야 할 것들도 많다. 반대로 일반분양 아파트의 경우 지역주택조합에 비해 사업 지연에 대한 리스크가 적다. 중도금 대출 등을 통한 초기 투자비용도 상대적으로 적어 부담이 덜하고, 청약을 통해 원하는 평형대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
지식산업센터도 인기다. 수익률이 떨어지고 있는 오피스텔이나 도시형 생활주택의 자리를 지식산업센터가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지식산업센터라고 무조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 시장에 영원한 강자는 없기 때문에 지식산업센터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구로 및 가산디지털단지 등 기존 지식산업센터가 중소기업 위주로 첨단제조, 지식기반, 정보통신산업 등으로 입주 업종이 제한됐던 것과 달리 최근 분양되는 지식산업센터는 금융업, 서비스업 등으로 입주 가능 업종이 확대되고 있고, 1〜2인 소기업도 입주할 수 있는 작은 공간까지 규모도 다양하다.

대보건설은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지식산업센터 하우스디비즈 227실을 분양한다. 평균 분양가는 3.3㎡당 650만원대로 2016년 5월 입주예정이다. 지하 3층〜지상 14층의 오피스형 외관과 구조로 꾸며지며, 벤처와 소규모 창업자를 위해 전체의 60%(139실)를 전용 46~99㎡로 설계했다. 계약금 10%, 중도금 30% 무이자 조건에 입주시점에는 서울신용보증재단과 중소기업진흥공단을 통해 분양가의 80%까지 장기저리 융자도 받을 수 있다. 전체 분양면적의 20% 가량은 일반 업무시설(오피스)로 용도변경이 가능해 일반 사무실처럼 매매 및 임대를 할 수도 있다.
중소기업이 지식산업센터로 분양받으면 취득세(50%)와 재산세(37.5%)가 감면된다. 지식산업센터분양 자격요건은 제조업뿐 아니라 건축기술, 엔지니어링, 광고·디자인, 영화·방송 제작, 출판, 번역, 부동산 컨설팅, 학원, 연구시설 등 다양하다. 도림천역과 문래역(2호선) 양평역(5호선)을 도보로 이용할 수 있는 역세권에 위치하고 있다. 서부간선도로와 올림픽도로가 인접해 영등포, 목동, 여의도를 10분대에 갈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벤처산업이 발달된 영등포벤처밸리, 서울디지털밸리 등과도 인접해 높은 업무효율도 기대된다.
송파구 문정지구 내 들어서는 ‘송파 유탑테크밸리’는 55.41㎡(약16평), 64.74㎡(약 19평) 66.64㎡(약20평형) 등 다양한 소형 크기 평형대가 많은 게 특징이다. 내부 계단을 통해 아래층과 위층을 하나의 공간처럼 연결해 공간을 넓고 더 다양하게 쓸 수 있도록 한 국내 최초 선택형 ‘듀플렉스(Duplex)’ 타입으로 지었다.
대우건설이 인천 송도신도시에 공급하는 ‘송도 스마트밸리’는 전 호실을 남향 위주로 배치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 보육시설, 세미나실, 대회의실, 체력단련실 등 다양한 입주사 편의시설을 갖췄다. SK건설이 서울 성수동 일대에 시공하는 ‘서울숲 SK V1 타워’는 특히 전체 호실에 발코니를 제공해 공간 활용도가 높다. 한강과 서울숲이 내려다보이는 옥상정원을 꾸몄다.
지식산업센터는 정부의 임대 제한 규제 완화 추진에 따라 호재를 맞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지식산업센터 분양 대상을 기업으로만 한정하던 데서 개인도 임대목적으로 분양받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겠다고 방침을 밝혔다. 최근 지식산업센터 상품 가운데는 10인 이하 소규모 창업자와 투자자를 위한 소형 상품이 많은 건 이 때문이다.
업종도 제조업뿐 아니라 건축기술, 광고, 디자인, 영화·방송제작, 출판, 번역, 부동산, 컨설팅, 학원 등 다양하게 확대되고 있어 수요층도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 건설사 개발사업팀 부장은 “지식산업센터의 가장 큰 장점은 낮은 분양가와 안정적인 수익구조”라면서 “일반인이 임대목적으로 분양을 받을 수 있게 된다면 오피스텔과 오피스를 대체하는 수익형 투자상품으로 인기를 누릴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수익형 부동산과 비교할 때 지식산업센터의 장점은 많다. 일반적으로 분양가가 오피스텔, 오피스보다 10〜20% 저렴하며, 세제혜택(취득세 50%, 재산세 37.5% 감면)을 누릴 수 있다. 대부분 장기 임차로 공실 위험이 오피스텔이나 오피스보다 낮은 것도 장점이다.

‘영원한 강자 없다’
진화에 진화 거듭

관리비도 싸다. 3.3㎡당 관리비(1만원 이내)가 오피스(2만〜3만원)의 절반 이하다. 이에 따라 임대 수익률도 높은 편이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5월 서울지역 오피스텔 평균 임대 수익률은 5.6%를 나타낸 반면 지식산업센터는 7%대를 기록하고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지식산업센터도 다른 수익형 상품처럼 입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비슷한 지역이라도 지하철역과의 거리 등에 따라 임차인 선호와 월 임대료 차이가 크므로 현장을 직접 찾아가 대중교통 상황, 주변 환경 등을 확인한 후 분양받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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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