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막힌 스토리> 초등생 골절수술 사망사고 전말

8살 지유는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체육활동 시간에 놀이터 구름사다리에 매달려 놀다가 떨어져 왼쪽 팔이 부러진 서지유(8)양. 당시 서양의 부모는 담당 교사를 원망하지 않았다. 놀다보면 다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괜찮다”며 교사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아이의 수술 일정을 잡았다. 수술 날, 담당 집도의는 “수술을 잘 마쳤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이는 전신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가족들과 이별했다. 이후 병원과 관련된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났다.

 
지난 5월19일, 충남 천안의 B정형외과에서 팔 골절 수술을 위해 전신마취를 받았던 서지유(8)양이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숨졌다. 끔찍이 아꼈던 딸의 죽음에 유가족은 망연자실했다. 유가족들에 따르면 서양은 지난 5월16일 초등학교에서 체육활동으로 구름사다리 놀이를 하던 중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서양은 왼쪽 팔이 부러졌다. 당시 서양의 담임교사는 서양의 부상이 심각한 줄 몰랐으나 서양의 계속되는 고통 호소에 결국 B정형외과를 찾았고 학부모에게 연락을 취했다.

의문점 투성이
 
B정형외과 측은 엑스레이 촬영으로 골절 사실을 확인했다. 서양은 병원에 3일 간 입원하게 됐다. 그런데 서양은 입원 기간 동안 몸에 열을 내며 코피를 흘렸다. 가족들은 담당의에게 이를 알렸지만 “아동용 약(해열제)이 없으니 필요하면 집에서 가져다 먹여라”는 대답을 들었다. 아동골절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지만 입원실에 가습기를 가져다 놓은 게 전부였다.
 
수술 당일, 마취전문의는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고 했다. 서양의 아버지 서동균씨는 “부분마취를 하면 안 되냐”고 물었지만 담당의사는 “그러면 아이 아파서 죽어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9시20분으로 예정된 수술을 앞두고 서양은 수술실 침대에 누웠다. 서양의 어머니는 걱정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며 “마취하는 거예요?”라고 물었고 “네”라는 대답을 들었다. 마취하는 장면을 그대로 목격한 것이다.
 
2시간 뒤인 11시20분. 집도의는 수술을 잘 마쳤다고 전했다. 그러나 서양은 회복실로 옮겨지지 않았다. 오후 2시가 되도록 깨어나지 않자 서양의 부모는 걱정됐다. 마취담당의는 “아이의 체력이 약해 좀 늦어지는 것 같다”며 부모를 안심시켰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불안한 마음에 서양의 부모는 인근 대학병원인 순천향대학병원으로 이송을 요구했지만 병원 측은 “기다려보자”는 말만 되풀이 했다. 오후 4시가 지나자 서양의 맥박과 혈압이 점점 떨어져만 갔다. 그리고 5시, 서양의 부모는 부작용이나 후유증을 우려했지만 의료진은 괜찮다고 답했다. 그리고 30분 뒤, 의료진이 다급히 수술실로 부모를 불렀다.
 
이내 서양의 어머니는 쓰러졌다. 아이의 심장에 제세동기를 이용,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던 것. 병원 측은 그제야 “대학병원에 이송요청을 했다”고 말했다. 서양은 인근 순천향대학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오후 8시48분 끝내 세상을 떠났다.
 
왼쪽 팔 부러져 정형외과서 수술
전신마취 깨어나지 못한 채 사망
 
유가족은 서양의 장례를 치른 뒤 병원에 가서 진료기록 등을 확보한 후 검토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충격적인 사실들을 발견하고 지난 5월29일부터 천안 고속버스터미널과 인근 백화점 앞에서 매일 피켓시위를 벌였다. 진실규명과 함께 이 정형외과의 실태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B정형외과는 소아병원을 표방하면서 ‘소아용 진통제’를 구비하지 않았다. 또한 법정 간호사가 5명 이상이 돼야 하지만, 정식 간호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서양에게 마취약을 투여한 것은 의사나 간호사가 아닌 무자격자 ‘간호조무사’였다. 그리고 서양에게 사용된 마취제는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이었다. 수술 전 서양이 고열과 코피를 쏟는 등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수술을 강행했다. 
 
 

수술 후 서양이 깨어나지 않자 부모는 대학병원으로 이송을 요구했으나 병원 측은 5시간 이상 방치했다. 서양에게 투여한 마취주사와 마취약 등은 기록돼 있지 않았다. 수술 전 발열과 코피가 난 사실도 차트에 기록하지 않았다. 수술 후 맥박, 호흡, 심박수 등이 정상으로 표시돼 있는 등 조작도 의심스럽다. B정형외과는 서양 사망에 대한 의료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진심어린 사과도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달 9일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B정형외과 마취전문의 김모(49)씨가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한 것이었다. 경찰은 김씨가 컴퓨터를 이용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유서 추정 문서를 확보했으나 자세한 내용은 알리지 않고 있다. 김씨는 서양 사고와 관련해 경찰 조사를 앞두고 있었다. 이후 서양의 유가족은 피켓시위를 중단했다.
 
코피·고열에도 수술 강행
깨어나지 않는데 5시간 방치
조무사가 마취약 투여 의혹
 
지난 1일 기자는 천안 B정형외과를 찾았다. 서양 수술과 관련된 문제를 언급하자 B정형외과 수술실장 임모씨는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는 짧은 대답만 건넸다. 논란이 지속됐지만 병원은 평온했다. 주차장엔 차량이 가득했다. 사고와 무관하게 영업은 버젓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B정형외과는 마취제 유효기간 문제로 보건소 차원의 행정처분을 받아 8월3일까지 마취와 관련된 업무가 정지될 예정이다. 때문에 병원 측이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고 말 하는 건 어불성설.
 
<일요시사> 취재에 앞서 한 방송사가 이 사건을 취재했다. 그러나 병원 측은 직접적인 취재를 거부하고 변호사가 대신 취재에 응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고는 서면으로 인터뷰를 하겠다며 태도를 바꿨다. 이후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지난달 마지막 주에 방송될 예정이었던 방송분이 보류상태로 남아있다고 전해졌다.
 
서양의 아버지 서동균(36)씨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아이가 수술 전 코피도 났고 고열도 났다. 근데 간호 차트를 확인해보니 아무런 기재가 없었다. 한마디로 개판이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서씨는 “사고 후 불과 며칠뒤인 6월4일부터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 날인 6월5일 쫓아가서 따지려고 수차례 병원을 갔으나, 병원장은 진료실에서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며 “공식적인 사과 한마디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후 서씨 가족들은 처참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서씨 부부는 서양이 숨진 이후 건강이 악화돼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서씨는 “사고 이후 단 하루도 악몽을 안 꾼 날이 없고, 단 하루도 잠을 편히 자본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서씨의 아내는 아이의 모습이 보이고 환청이 들린다며 매일 괴로워했다. 이를 지겨보던 서씨는 결국 아내와 장모 그리고 어린 두 딸을 서양의 흔적이 덜한 미국으로 보냈다.
 
혼자 남은 서씨는 지금 외로운 싸움을 이어 가고 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한편, 최근 B정형외과에서 혹을 제거하려던 한 환자가 멀쩡한 부위에 부분마취를 잘못 받았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사과 없이 뻔뻔
 
기자는 서양이 다니던 W초등학교를 찾았다. 마침 하교 시간이었다. 몇몇 학부모들은 실내화 주머니를 들고 나오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교문 밖으로 나갔다. 운동장과 놀이터에는 인적이 없었다. 서양이 매달려 놀던 구름사다리는 철거된 상태였다. 놀이터엔 놀이 기구가 없었다. 놀이 ‘터’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을 뿐. W초등학교 관계자는 “서양 사고 이후 안전 문제를 이유로 철거했다”고 말했다.
 

천안=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간호사 vs 간호조무사] 비교해 보니…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간한 ‘2013 노인장기요양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2013년말 기준 65세 이상 노인 619만명 중 11.1%인 68만6000명이 장기요양신청을 했고, 이중 54만여명의 판정을 진행해 37만8000명이 등급내 인정(1∼3등급)을 받았다.
 
간호조무사는 7552명으로 전년대비 15.1% 증가하는 등 전체적으로는 인력이 늘어나는 추세다. 반면 간호사는 2009년부터 매년 종사인력이 줄어들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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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