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돈되는' 금융상품의 비밀-이상한 ‘통일적금’

대통령 '통일대박' 한마디에…

[일요시사=경제2팀] 박효선 기자 = 한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다. 남북통일은 우리의 필연이자 책무였다. 그러나 이제는 경기불황의 늪에 빠져 나부터 살기 급급하다. 통일은 뒷전이 된 지 오래다. 한 신용카드 회사는 광고를 통해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고 외쳤다. 그렇게 우리는 부자가 되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번다. 0.1%라도 높은 금리를 주는 금융상품에 관심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권에 느닷없는 ‘통일바람’이 불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 대박’을 외치고 난 후부터다. 통일과 돈. 어딘지 이상한 조합이다. 부작용이 예상된다.

시중은행들이 줄줄이 통일금융상품을 내놓고 있다. 우리은행부터 시작해 최근에는 KB국민은행이 통일과 관련된 금융상품 출시했다. 다른 시중은행에서도 통일 관련 상품을 기획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사들은 통일 상품을 준비하면서도 회의적인 분위기다. 보여주기 식 정책에 따라 출시한 상품인 만큼 단발성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효성 논란

최근 KB국민은행이 정부의 통일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기부금을 출연하는 ‘KB통일기원적금’을 선보였다. 국민은행은 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목적으로 통일관련 우대이율을 제공하는 ‘KB통일기원적금’을 판매한다고 밝혔다.

KB통일기원적금은 영업점 및 인터넷뱅킹을 통해 판매된다. 1년제는 연2.5%, 2년제 연2.7%, 3년제 연2.9%의 기본이율을 제공한다.

이 상품에 가입할 때 통일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작성하면 연0.1%의 우대이율을 받을 수 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 ‘드레스덴’ 선언을 기념해 가입기간별 우대이율(1년 연0.1%, 2년 연0.2%, 3년 연 0.3%)도 제공 받는다.


특히 이북 실향민, 북한이탈주민, 통일부, 통일캠프 수료자, 개성공단 입주업체의 임직원 등은 연 0.3%의 우대금리를 받는다. 다만 증빙서류를 함께 제출해야 한다. 즉, 3년제 기준 최고 연3.6%의 이율을 받을 수 있다.

KB통일기원적금의 만기이자(세전) 1%에 해당하는 금액은 은행비용으로 대북 지원사업과 통일 관련단체 등에 기부된다. 국민은행은 국민과 함께 대한민국 통일 실현을 위한 상품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이북 실향민, 북한 이탈주민, 통일 캠프 수료자, 개성공단 임직원 등에게 0.3%의 우대금리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가입대상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일반 고객들도 통일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쓰면 0.1%의 우대금리를 제공받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통일에 대한 공감이 상품에 대한 목적이고, 정부의 통일 정책에 지원하기 위한 부분도 있다"며 "아직 출시한 지 얼마 안 돼서 반응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답했다.

앞서 우리은행도 통일금융상품을 출시했다. ‘우리겨레통일패키지’는 은행권에서 최초로 통일기금 조성을 위한 금융상품이다. 우리겨레통일패키지는 입·출식 통장과 정기예금, 펀드 세 가지로 구성된다.

우선 우리겨레통일통장은 통장의 우대이자금액이 대한적십자사로 자동 기부되는 통장이다. 기본 금리는 연0.1%다. 결산이자 원가 일에 대한 대한적십자사로 기부자동이체 등록이 되어 있으면 연0.1% 우대해준다. 즉 최대 0.2%의 이자가 붙는다. 대한적십자사로 기부이체 동의하면 이자지급일에 우대이율에 해당하는 세후이자금액이 대한적십자사로 자동 기부된다.

‘우리겨레 통일 정기예금’은 고정금리 연 2.6%에 대한적십자사로 기부자동이체를 등록하면 연 0.1% 우대금리가 제공된다. 최고 3000만원까지 가입할 수 있는 1년 만기 정기예금이다. 이 상품 역시 우대금리가 예금주 명의로 대한적십자사에 기부된다.


우리겨레통일펀드는 교보악사 자산운용사의 주식형 펀드상품으로 운용수익 중 40%가 대한적십자사에 기부된다. 기부된 금액에 대해서는 연말 정산 때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이 상품을 통해 기부되는 금액은 대한적십자사가 통일 관련 사업에 운영할 예정”이라면서 “아직 출시한 지 한 달도 안 됐기 때문에 소비자의 반응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정책에 따른 상품은 단발성이 될 수 있다는 지적에 이 관계자는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고,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통일에 대한 좋은 취지로 의욕적으로 출시했는데, 아직 어떤 상품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말했다.

눈치 보는 시중은행들 통일 상품 출시
소비자 무관심 속 사라질 가능성 높아

IBK기업은행도 통일에 대비해 상품명을 만들었다. 기업은행은 'IBK 진달래 통장' 'IBK 모란 통장'을 상표권 등록했다. 북한 주민들이 좋아하는 꽃인 진달래와 모란이라는 단어를 공략한 것이다. 통일 이후 다른 은행들이 상품명을 쓰지 못하도록 미리 등록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통일에 대비해 상품명만 등록한 상태”라며 “아직 출시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업은행은 개성공단 등 북한 내 산업단지 입주를 목표로 하는 탈북자들을 상대로 대출과 마케팅, 경영컨설팅까지 포함한 창업대출상품을 연말까지 출시할 계획이다. 나진, 신의주 개발 사업, 개성공단 등으로 북한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에 투자하는 펀드 상품도 기획하고 있다.
 

이밖에도 NH농협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도 통일 관련 상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러한 통일 관련 금융상품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속적인 경기불황으로 사람들은 높은 금리의 상품에 몰리기 때문이다. 통일 금융상품의 금리가 시중은행의 금리보다도 낮은 가운데 그나마 붙는 이자까지 기부하는 구조라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부류의 금융상품은 전 정권 때도 있었다. MB정부가 녹색성장을 강조하면서 시중은행들이 우후죽순 만들었던 ‘녹색금융’상품과 같은 경우다. 당시에도 ‘녹색금융’이라는 슬로건 아래 비슷한 상품들이 줄줄이 출시됐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결국 녹색금융 상품의 실적은 저조했고, 많은 금융사들이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다.

정책상품 부작용

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예금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치 못한 (북한 실향민, 새터민 등)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금융상품에 가입할 수 있겠느냐”라며 “전형적인 탁상 금융정책에 따라 만들어진 상품”이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출시 후 단발성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며 “이런 상품을 만들기 전 시장조사부터 제대로 하고 만들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개인정보유출 방지책 금융보안전담기구 논란

카드3사의 개인정보유출 사태 이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보안전담기구가 설립하기도 전 진통을 겪고 있다. 1일 금융소비자연맹,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주관으로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금융보안전담기구’ 설립에 대해 졸속·전시행정이라고 비판했다.

발제를 맡은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정부는 일만 터졌다하면 별도 기구를 설립하려고만 한다”며 “비용대비 효용성, 업무 중복성, 이해관계자들의 입장 등을 신중히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상임대표는 “개별금융사와 전담기구의 중복투자를 방지하고 민간기구보다는 공적인 전담기구와 콘트롤타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정부 측 토론자로 나선 전요섭 금융위 전자금융과장은 “감사원에서 금융권 IT감사를 실시했는데, 현 상태로는 일부 중복이 있고 비효율적이라 기능의 조정을 하는 방안을 구상하라는 결과가 나왔다”면서 “전담기구 설립은 정부에서 기구를 신설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기존 기관들이 가진 기능을 한 군데로 모으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현재 정부는 금융보안연구원과 금융결제원, 코스콤의 금융ISAC(정보공유분석센터) 기능과 조직을 통합한 ‘금용보안전담기구’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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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