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①7·30재보선과 박근혜정권 명운

대통령이 바보 되거나 국민이 바보 되거나 ‘둘 중의 하나’

[일요시사=정치팀] 이민기 기자 = 역대 최대 규모인 7·30재보선 결과에 따라 박근혜정권의 명운이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여야 성적표’가 향후 정국 주도권은 물론 나아가 특히 현 정권의 국정운영 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요시사>가 재보선과 집권 2년차인 박근혜 정권 간 함수관계를 면밀히 들여다봤다.

여권이 지방선거에 이어 또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이번 재보선은 판이 크다. 15곳에서나 치러져 미니총선으로 불릴 정도다. 이런 만큼 지난 6·4지방선거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여야는 각각 이번 재보선판에 거물급 인사들을 총동원하는 등 필승의 각오를 다지고 있다. 판의 기저엔 세월호 침몰 참사의 정치적 여진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니 총선=정권 명운 
또 시험대 오른 박근혜

새누리당은 지방선거에서 기사회생했다. 4월16일 일어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총체적 부실 대응이 국민적 공분을 사면서 당시 새누리당이 참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주를 이뤘다.

여론을 등에 업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세월호 책임론’을 부각시키며 정부·여당을 코너로 몰자 선거 막판 서청원 공동선대위원장을 중심으로 여당이 ‘박근혜정부를 지키자’는 구호를 전면에 띄우며 “도와 달라”고 읍소할 정도였다.

관측은 크게 빗나갔다. 새누리당은 광역단체장선거에서 8곳을, 새정치연합은 9곳을 각각 승리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새누리당은 광역·기초의원 선거에서는 우위를 점하기까지 했다. 새누리당은 광역의원 375명을, 새정치연합은 309명의 당선인을 배출했다. 기초의회 선거 역시 당선인 2519명 가운데 새누리당이 1206명을 차지한 반면 새정치연합은 989명에 그쳤다.

여당이 만만찮았던 ‘세월호발(發) 여론’을 딛고 선방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국민들이 임기 초인 박 대통령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준 것”이라며 “참사 이후 정부를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었던 점을 볼 때 일할 수 있는 발판을 다시 준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해석했다.

여야 재보선 성적표, 레임덕 여부 결정   
세월호 사태 정치적 여진 멈추지 않아 


일각에선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정치적으로 불리한 세월호 국면은 벗어난 게 아니냐는 풀이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로 시작된 여권의 위기는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에서 비롯된 인사 난맥상 등 여권 내 여러 문제점이 7·30 시즌에서 도마 위에 올라 폭발할 가능성이 적잖기 때문이다.

새누리, 지선서 기사회생
세월호 국면 현재진행형

국가적 재난사태로 규정되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던 정홍원 국무총리가 지난달 26일 결국 유임됐다. ‘안대희·문창극’ 두 총리후보자가 연쇄 낙마한 뒤 후임 총리를 끝내 찾지 못한 박 대통령이 내린 결정이다.

정 총리 유임은 재보선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사안으로 보인다. 즉 정 총리가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음에도 유임된 만큼 유권자들이 이에 대한 찬반을 7·30재보선 투표를 통해 밝힐 것이라는 얘기다.

주목되는 것은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하락 일변도인 점이다. 유임 결정이후 <내일신문>이 디오피니언에 의뢰해 성인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5%p)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40.1%를, 국정 수행 부정평가는 54.9%를 각각 기록했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달 23~27일까지 전국 유권자 2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0%p) 역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43.4%를 기록한 반면 국정 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는 50.0%에 달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2월 취임한 뒤 참사 전까지 평균 50~60%대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이어온 점을 볼 때 아직도 출구를 못 찾고 있는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번 재보선에 투영될 가능성이 높다. 실례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했던 지난해 4월과 10월에 치러진 총 5곳의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은 4승1패를 거뒀다. 지지율이 표심에 영향을 준 것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정홍원 유임 후 여론 악화 기류
여권, 재보선 관문 통과 주목

세월호 여진은 청와대 안까지 뒤흔들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비롯된 총리 인선과 관련, 청와대 내 검증 실무책임자인 김기춘 비서실장이 ‘안대희·문창극’ 두 총리후보자의 잇따른 낙마 사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퇴 촉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야당은 초강경 모드다.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지난달 27일 <한수진의 SBS전망대>에 출연, “(김 실장은) 대한민국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소 중 하나다. 김 실장 문제는 시간을 끌 일이 아니다”라고 강력 비판했다. 여당에서조차 유력 당권주자인 김무성 의원 등이 ‘책임론’에 동조하고 있다.

디오피니언의 지난달 30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 실장의 거취를 묻는 질문에 66.4%가 ‘사퇴해야 한다’고 답한 반면 사퇴 반대는 25.8%에 불과했다.

일련의 사정을 볼 때 여권이 지방선거에서 거둔 선전은 미완으로 보인다. 7ㆍ30재보선을 통해 또 한번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여권이 만만찮은 상황에 처해 있는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여, 세월호 출구 못 찾아
새누리 지선 선전 ‘미완’


만약 새누리당이 미니총선에서 패배할 경우 박근혜 정권의 ‘힘’은 집권 2년차 만에 상당히 소실될 것이란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통상 집권 4년차에 벌어지는 레임덕 현상이 조기에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문제가 정리되지 않았고,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지는 재보선인 점 등을 감안할 때 이번 선거판은 정권의 명운이 걸린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정권의 국정 운영에 제동이 걸리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국정 주도권을 쥐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과 여권이 정권의 레임덕 여부가 판가름 나는 재보선 관문을 ‘무사통과’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mkpeace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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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