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그레 '김호연 유령법인' 실체 추적

비밀 들통…애국자라더니 미국서 ‘허걱’

[일요시사=경제2팀] 박효선 기자 = ‘인생2모작’을 위해 정계에 뛰어들며 돌연 회장직을 던지고 떠났던 김호연 전 빙그레 회장. 올 초 빙그레로 돌아왔다. 그런데 김호연 전 회장의 경영 복귀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국회의원 시절 해외에서 부동산을 취득하고도 이를 숨긴 사실이 발각됐기 때문이다.

KBS <시사기획 창> 보도팀이 국내 재벌과 부호들의 수상한 해외 부동산을 집중 취재했다. 그 중에서도 김호연 전 빙그레 회장 일가가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김 전 회장 일가가 페이퍼컴퍼니 7곳과 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빙그레-에버그린
수상한 관계

방송에 따르면 김호연 전 회장은 18대 국회의원을 지내던 당시 딸 정화씨의 명의로 시가 20억원 상당의 하와이 콘도를 보유했다. 김 회장 측은 이 콘도를 지난해 ‘클리어워터(CLEARWATER GROVE)’라는 회사에 매각했다. 그런데 이 ‘클리어워터’라는 회사의 주소가 김 회장 가족의 미국 주소와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 전 회장의 부인과 딸 명의로 되어 있는 ‘클리어워터’는 장모씨가 이사로 재직하며 관리하고 있었다. <시사기획 창> 보도팀은 장씨를 통해 김 전 회장 가족이 서류상 회사들을 만들어 여러 건의 미국 부동산을 거래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김 전 회장 가족이 장씨를 통해 조세회피처 등에 서류상 회사를 만들어 미국 부동산을 거래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와이·시카고 등에 수상한 회사들 존재
모두 페이퍼컴퍼니…현지 부동산 사고팔아


그 중에서도 에버그린(EVERGREEN GLOBAL)이라는 회사는 빙그레와 관련돼 있었다. 1995년 설립된 에버그린은 20여년 동안 빙그레에 식품 원료를 수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빙그레가 자사의 대표적인 상품 ‘바나나 우유’에 들어가는 바닐라향, 딸기향, 초코향 등의 원료를 에버그린으로부터 수입해온 것이다. 알려진 수출입 규모는 연간 40억∼50억원에 달했다.

게다가 김 전 회장의 딸 정화씨가 이 회사를 운영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에 있는 딸 회사가 서울에 있는 아버지 회사와 거래를 해온 셈이다. 그러나 빙그레는 이 같은 사실을 금융감독원에 단 한 차례도 공시하지 않았다.
 

빙그레는 에버그린의 수출입 규모에 대해서는 시인하면서도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빙그레 관계자는 “보도됐던 대로 공시 요건이 되지 않아 공시하지 못했다”면서도 “당시 우리도 국적상황을 잘 몰랐다”고 답했다.

하지만 회계법인에 따르면 상장사는 특수관계자와의 거래를 감사보고서에 명확하게 기재해야 한다. 상장사가 이를 위반하게 되면 금융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게 된다. 기업의 재무 상황 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대주주나 임원 등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조치 중 하나다.

국회의원 시절
해외재산 누락

이밖에도 장씨와 관련된 서류상의 회사 6곳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버넌(VERNON HOLDINGS), 데이 크리크(DAY CREEK), 하이랜드(HIGHLAND GROVE), 하이우드(HIGHWOOD HOLDINGS), 배넉번(BANNOCKBURN HOLDINGS), 샤이엔(SHYENNE INCORPORATION) 등이다.

특히 샤이엔이라는 회사는 조세회피처로 유명한 미국 플로리다 영국령 케이먼제도에 설립됐다. 이 업체 역시 페이퍼컴퍼니로 파악됐다. 샤이엔사는 지난 1997년 시카고 외곽에 있는 저택을 사들였다. 이 곳에서 김호연 전 회장 가족이 실제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식으로 김 전 회장 일가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부동산을 거래하고 소유했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은 지난 2010년 국회의원 시절 이 같은 내용을 숨겼다. 

김 회장 측이 공직자 재산신고를 한 곳은 36곳. 모두 국내에서 가지고 있는 부동산 뿐이었다. 김 전 회장 일가가 보유한 하와이에 있는 콘도를 비롯한 해외 재산은 모두 빠져있었다. 공직자윤리법을 어긴 것이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4급 이상의 고위공직자는 배우자 및 직계존속 등이 소유하는 재산, 비영리법인에 출연한 재산, 외국에 있는 재산을 공개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그러나 빙그레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빙그레 관계자는 “그때 김호연 전 회장은 개인적인 정치활동을 하기 위해 퇴사한 상태였기에 회사 측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라며 “회장직을 내려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회사차원에서는 정치사안(보유재산)까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라고 해명했다.

부인·딸 회사 수상한 거래
빙그레에 식품 원료들 수출
‘부당’일감 몰아주기 의혹

김 전 회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그는 한화그룹 창업자인 고 김종희 회장의 차남이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동생이다.

김 전 회장은 1986년 빙그레 상무이사를 거쳐 한양유통 대표이사에 취임해 최고 경영자의 길을 걸었다. 1992년부터 2008년까지는 빙그레 대표이사 회장을 맡아 적자 기업이었던 빙그레를 흑자 기업으로 올려놓았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1년에는 은탑산업훈장, 2004년에는 한국의 경영자상, 2005년에는 제2회 한국 리더십 대상, 2008년에는 한국마케팅 최고경영자(CEO)대상 등을 수상했다.

그는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사위이기도 하다. 1993년 김 전 회장은 사재 200억원을 털어 김구재단을 설립했다. 이후 지난해부터 김 전 회장은 김구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미국 하와이에서 독후감 대회를 여는 등 백범 정신 알리기에 나섰다.

성공한 CEO라는 타이틀을 얻고 남부러울 게 없어보였던 김 전 회장은 2008년 돌연 회장직을 던지고 정치인의 길을 선택했다.

2008년 한나라당 공천을 받고 천안을에서 제18대 국회의원에 도전했지만 당시 현역이었던 박상돈 전 의원에 밀려 국회 입성에 실패했다. 그는 다음을 기약하며 지역구를 지켰다.

2010년 김 전 회장은 천안을에 다시 출마해 국회의원 당선에 성공해 4년간 의정활동을 펼쳤다.

2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낙선했지만 그는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을 보좌했다. 김 전 회장은 박 대통령의 서강대 4년 차이 선후배 사이로 서강대 총동문회 회장을 5대째 역임해 대표적인 ‘친박’ 인사로 분류된다.


그는 박 대통령의 장충초등학교 후배이기도 하다. ‘국민행복캠프’ 총괄 부본부장, 중앙선대위 종합상황실 부실장 등을 맡아 박 대통령의 숨은 조력자로 활약했다. 

그렇게 6년간 김 전 회장은 경영권을 내놓고 회사를 떠나 최대주주 자리만 지켰다. 당시 빙그레 지휘봉을 경기고와 서강대 동기동창 친구 겸 전문경영인(CEO)인 이건영 사장에게 맡겼다.

하지만 정계에서 그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대선이 끝나고 재단법인 김구재단의 이사장만 맡았을 뿐 정치적인 활동에는 일체 나서지 않았다. 동시에 재계는 그의 복귀를 점쳤다. 지난해부터 정계에서 마땅한 역할이 없어졌다는 점이 회사로 복귀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경영복귀 앞두고
웃음기 사라져

실제로 지난3월 김 전 회장은 빙그레 등기이사로 복귀했다. 빙그레는 경기도 남양주시 도농공장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김 전 회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이를 두고 업계는 빙그레가 오너경영 체제로 전환하는 신호탄이라고 해석했다. 

빙그레로 돌아오면서 김 전 회장은 잇따라 자사주를 매입했다. 공시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지난달11일부터 18일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보통주 2만 6042주를 매입했다. 이러한 지분 매입으로 김 전 회장의 지분율은 34.61%에서 34.88%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김 전 회장이 빙그레 회장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하지만 빙그레 측은 아직 정해진 게 없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자사 매입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이유로 매입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빙그레 관계자는 “특별한 계기로 자사주를 매입했다기 보다는 대주주로서 책임경영을 한다는 의미에서 매입하셨을 것”이라며 “당장 대표이사나 회장직을 맡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김 전 회장의 경영 복귀설에도 업계의 시선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김 전 회장이 여의도에서 정치 외유하는 동안 이건영 사장의 회사 경영 실력이 그다지 신통치 않았기 때문이다. 빙그레 일각에서는 김 전 회장이 구원투수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이런 시점에 해외 부동산 매입 사실이 드러나면서 김 전 회장의 경영복귀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김 전 회장의 행보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dklo21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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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