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돈되는' 금융상품의 비밀-간병보험

'100세 시대' 노후생활 지켜줄까

[일요시사=경제2팀] 박효선 기자 = 노년은 어둡고 슬프고 아프다. 방치된 노후생활은 고스란히 금전 부담으로 직결된다. 100세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간병보험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보험사마다 보장기간, 보장금액 등 차이가 있어 가입 전 상품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또 같은 회사의 상품이라도 가입자의 나이, 성별, 가입유형, 직업 등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내달부터는 간병보험의 보상 기준이 되는 장기요양등급 기준이 바뀌면서 보험사마다 약정과 보장내역이 조금씩 변경될 전망이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국민의 노후보장 여건을 조성하겠다며 추진하고 있는 ‘노후보장 특화보험’ 정책에 따라 보험사들이 간병보험을 내놓고 있다. 고령화 시대에 따라 간병보험은 보험업계의 차세대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등급 확인부터

간병보험은 보험기간 중에 치매 등 상해, 질병으로 다른 사람의 간병이 필요한 경우 간병자금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이 보험은 치매나 중풍과 같은 노인성 질환으로 장기요양이 필요할 때 간병비와 간병연금 등을 보장해준다. 일반 상해나 질병으로 사망시 일시지급 보험금 외에 5년간 매월 유족연금을, 50% 또는 80% 이상 후유 장해 시 5년간 매월 후유장해 연금을 지급한다는 점이 주요 특징이다.

다만 간병보험은 고령이나 치매로 인한 생활 불편을 지원하는 정부 요양보험과 운영 기준이 다르다. 중증치매나 활동불능 상태 등 특정사유가 발생해야 보험금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간병보험을 따로 들기 부담될 경우 연금보험을 가입할 때 장기간병 연금보험을 선택하거나 연금보험 안에서 관련 특약을 넣을 수 있다.

2000년 초기 도입당시만 해도 간병보험은 소비자들에게서 외면을 받았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당연시됐던 당시 분위기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8년 이후 건강보험공단의 ‘노인장기요양보험’ 요양등급을 기준으로 삼은 상품들이 출시되면서 현재는 손해보험사들의 주력종목이 됐다.

간병보험이 성장세를 거듭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시절 공약 철회와 관련이 있다. 대선후보 당시 박 대통령은 건강보험 내 간병비 추가 항목을 공약에서 제외했다.


이후 민영 간병보험의 시장성이 확보된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금융업 경쟁력 강화방안의 일환으로 고령층에 특화된 다양한 상품을 주문했다. 손보업계는 즉시 관련 상품 출시와 판매에 박차를 가했다. 치매 진단시 보험금을 지급하거나 장기요양등급 판정시 장기요양자금이나 간병비를 보상하는 상품이 주류다.

최근 들어 간병보험은 고령화시대와 맞물려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LIG손해보험, 현대해상, 동부화재, 메리츠화재, 롯데손해보험, MG손해보험 등 6개사가 판매한 간병보험 신계약건수는 46만건으로 전년(17만건)보다 크게 증가했다. 작년에는 4개사(메리츠화재, 한화손보, 흥국화재, 롯데손보)가 상품을 새로 출시해 취급하는 손보사도 8개로 늘었다.

신계약건수로 보면 지난해에 15만건을 넘게 판 LIG손보가 가장 돋보였다. 2012년 9월에 ‘100세LTC간병보험’을 내놨던 LIG손보는 지난해 만기를 110세로 연장했다. 보장 나이를 늘리면서 LIG손보의 간병보험은 상승세를 이어갔다. 출시 이후 총 판매건수는 20만건이 넘는다.

동부화재는 2012년 8월 ‘가족사랑간병보험’을 출시해 지난해 말까지 14만9139건의 판매실적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기세를 멈추지 않고 지난 한 해 동안만 13만4007건의 판매실적으로 상승세를 탔다.

대부분의 간병보험은 치매나 활동불능 진단을 받아도 90일이 지나야 보험금이 지급된다. 보험계약을 체결한지 치매는 2년, 활동불능 상태는 90일이 지나야 보장이 시작된다.

그러나 보험사마다 보장개시일이나 지급사유 등이 달라 꼼꼼히 살펴보고 비교해보고 가입해야 한다. 간병보험은 갱신형과 비갱신형으로 나뉘는 만큼 보험료를 손해 보지 않으려면 각각의 보험회사 공시자료를 직접 찾아보고 가입하는 것이 좋다.

사고의 발생 원인에 따라 보험료가 지급되는 보장 개시일도 보험사마다 다르다. 치매 등의 진단을 받은 뒤에도 일정 기간이 지나야 보험금이 지급된다. 중증치매나 활동불능상태로 진단받아야만 보험금을 주는 경우도 있고 보장기간이 종신, 100세, 110세로 상품마다 차이가 있다.


각 손보사 주력 상품…보장 비교 필수
같은 회사 상품도 개별에 따라 달라져

특히 다음 달부터는 간병보험의 보상 기준이 되는 장기요양등급이 바뀐다. 내달부터 장기요양등급체계가 기존 3등급에서 5등급으로 변경된다. 기존에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치매 등 환자의 상태를 장기요양인정 점수로 환산해 1∼3등급까지 분류하고 판정해왔다.

1등급은 혼자서는 아무 일도 못하는 사람으로 95점 이상인 경우다. 2등급은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75∼95점 이하), 3등급은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장기요양 인정 점수가 51∼75점 이하로 판정됐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등급별 수급자간 기능 차이가 큰데 따른 불필요한 비용 증가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구간 폭이 넓은 3등급을 두개의 구간으로 분할하기로 했다. 즉 기존 3등급을 3∼4등급으로 세분화해 장기요양인정점수를 3등급은 60∼75점 이하로, 4등급은 51∼60점 이하로 새로 설정했다. 신설된 5등급은 45∼51점 이하다.

대부분의 손보사들은 내달부터 보장범위를 4등급 까지 확대할 전망이다. 다만 5등급 이하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LIG손해보험 관계자는 “그동안 3등급까지만 간병보험이 적용됐지만, 등급 기준이 바뀌면서 4등급까지 보장 범위를 확대할지 검토하고 있다”며 “약정은 정부의 방침에 따라 7월 1일자부터 바뀔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바뀌는 보장내역에 대해 “보험사 마다 다르겠지만 아직까지 우리는 보장내역에 대해서 조율 중”이라며 “새로 생긴 4등급에 대해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살펴보겠지만, 5등급 이하는 우리 뿐 아니라 대부분의 손보사들도 보장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답했다.

한편, 정부는 공공 간병보험 신설 공약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이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사회보험 방식의 공공 간병보험을 국민건강보험 내에 추가로 신설하는 내용을 담았다. 간병을 개인의 책임에서 국가가 함께 부담하는 방향으로 전환해 베이비부머 세대의 부모 부양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에서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따르면 공공 간병보험이 도입되면 건강보험 가입자는 매월 5220원만 납부하면 된다. 가족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간병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2017년 도입할 계획이다.

묻고 따져야

공공 간병보험 공약이 실현된다면 그동안 간병보험으로 재미를 봤던 손보사들은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표정관리에 신경 쓰고 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보험사들의 간병보험은 고객이 평소 생활해왔던 경제수준까지 맞춰 보상금을 주지만 정부에서 지원하게 될 간병보험 보장 범위가 보험사 수준까지 맞출 수 있을지 미지수”이라며 “공공 영역에서 지원하게 될 간병보험금은 사람이 최소한 살 수 있는 의식주 정도만 보장해주는 수준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장기요양등급 악용 주의보


장기요양등급이 변경되면서 일부 보험설계사들이 이를 악용해 가입자들을 끌어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판매는 불완전판매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장기요양등급이 바뀐다면서 간병 진단금이 줄어들거나, 보험금을 받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잘못된 정보로 보험가입자 유치에 나서는 사례가 있었다”며 “이러한 보험영업조직의 판매를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효>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