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정심정행 정치인' 정갑윤 신임 국회부의장

"정치는 천천히 가더라도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어"

[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세월호 참사로 엄중한 시기, 19대 국회 후반기를 이끌어갈 국회의장단이 새롭게 선출됐다. 새누리당 출신의 정의화 국회의장과 정갑윤 부의장, 새정치민주연합의 이석현 부의장이 그 주인공이다. 국회가 본연의 역할인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요즈음, 이들은 후반기 국회를 이끌어갈 책임자로서 어떤 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일요시사>는 새롭게 취임한 후반기 국회의장단을 차례로 만나 향후 국회운영에 대한 구상을 직접 들어볼 예정이다. 지난호(961호)에 정의화 의장을 만난 데 이어 이번호에는 정갑윤 신임 부의장을 만나봤다.

정갑윤 신임 국회부의장은 1991년 경남도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해 2002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울산 중구에서 내리 4선 의원을 지내며 국가와 지역 발전을 위한 의정활동을 펼쳐왔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 나설 것이라는 말이 돌았지만, 그는 세월호 참사로 정국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경쟁자 간 잡음이 날 것을 우려해 원내대표를 포기했다고 한다. 대신 국회부의장으로 방향을 틀어 지난달 30일 당당히 여당 몫 국회부의장에 선출됐다.

정치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비리에 연루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사회적·도덕적 물의를 일으킨 적도 없는 '깨끗한 정치인'의 표본인 정 부의장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소통과 친밀감'의 정치력을 최대한 발휘해 모범적 국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또 "비리와 실망으로 얼룩진 요즘 사회에 필요한 '정심정행(正心正行)'을 국회 내에서 자리 잡게 해 모든 국회의원들이 바른 마음과 행동으로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국회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정 부의장과의 일문일답.


-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에 선출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역대 국회부의장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자신만의 강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감사합니다. 저는 정치에 입문한 이후 지금까지 '소통의 정치'를 해왔습니다. 여당 부의장은 국회의장의 당적보유가 금지된 상황에서 야당과의 소통과 중재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2011년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던 시절, 결산안은 정기국회 전 결산심사를 완료해야 한다는 국회법이 2003년 개정된 이후 9년 만에 법정기한을 지켰습니다.

특히 예산안은 당시 '박근혜표 민생예산'을 대폭 증액시켜,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면서도 2007년 이후 5년 만에 여야 합의에 의한 예산안 처리를 이끌어 냈습니다. 여야를 아우르는 '소통과 친밀감'의 정치력을 발휘해 모범적 국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 앞으로 2년 간 국회부의장으로 함께 활동할 야당 몫 이석현 부의장에 대한 평가와 함께 바라는 점을 말씀해주신다면?
▲ 이석현 부의장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립을 지키며, 매우 공정하고 합리적인 정치를 해온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오랜 의정활동에서 여야를 넘나드는 소통과 화합을 보여주며 대립과 갈등을 조정해 발전적 결과를 이끌어 오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이 국회에 바라는 것은 '국민을 우선하고 섬기는 성숙한 국회'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여야 간 소통과 중재자 역할을 함께 해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 후반기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가장 시급한 현안들로 어떤 것들을 꼽고 계시는지요?
▲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도 선언했듯이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적폐를 청산하고 국가 개조를 이룩하기 위해 국회에서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동안 암묵적으로 자행되어 온 '관피아(관료+마피아)' 문제를 뿌리 뽑고 이른바 '김영란법'과 '유병언법' 등 후속적인 조치를 빠른 시일 내에 논의해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정부조직개편에 대한 국회차원의 논의와 처리가 시급한 현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일하는 국회, 열린 국회를 위해 상시국회로 가는 초석을 다져야 할 것이며 여야 간 소통과 타협을 위해 상시협의체를 구성해야 할 것입니다.

"여당 부의장 역할은 야당과의 소통과 중재"
"'소통과 친밀감'으로 모범적 국회 만들 것"

-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국회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 국민들은 '제발 싸우지 말고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요구로 우리는 지난 18대 국회에서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어 국회를 쇄신하고자 노력하기도 했지요. 그 결과 국회에서 거친 몸싸움은 사라졌지만, 국민들의 눈에는 아직 성에 차지 않은 상황입니다. 국회가 국민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당리당략에 매몰된 '불통의 정치'를 이어간 것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된 이유라 생각합니다.


- 국회가 잃어버린 신뢰를 다시 찾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 국회가 좀 더 성숙한 정치를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우선적으로 여야 간 소통과 타협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이 참여하는 '상임위갈등조정회'를 정례화해 서로 간의 이해의 폭을 줄여나가도록 할 것입니다.

- 현재 국회의 가장 큰 이슈는 세월호 국정조사입니다. 하지만 기관보고 시기, 자료제출 범위 등을 놓고 여야가 충돌을 거듭하며 국정조사가 순탄치 않을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 여야는 세월호 국정조사의 기관보고 시기를 두고 '월드컵은 피해야 한다' '보궐선거와 겹쳐서는 안 된다' 등의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습니다. 세월호 국정조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두어야 할 부분은 유가족들의 심정일 것입니다. 유가족들은 하루라도 빨리 이번 사태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하고 관련자들이 마땅한 책임을 질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월드컵 이후에 기관보고를 시작하는 것은 보궐선거도 있겠지만, 월드컵 기간인 1개월 동안 국회가 일하지 않는 것으로 비춰질 우려가 있습니다. 세월호 국정조사를 하루라도 빨리 실시해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고, 시정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언급하신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으신지요?
▲ 저 역시 어떠한 방법이든지 국회선진화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폭력국회'의 오명을 씻어내기 위해 마련된 '국회선진화법'이 오히려 '공전국회' '식물국회'라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법안의 처리에 있어 국민이 우선되지 않고 당리당략이 우선되었으며, 정당 간의 대화와 소통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국회선진화법 제정 이후 이전보다 더 많은 법안이 통과되었다고 하지만, 여야가 의견을 대립하는 법안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반대로 통과에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의결 과정에서 일방적이거나 폭력적인 부분을 개선하고 충분한 소통과 타협을 통해 의결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향으로 국회선진화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 정 의장께선 '상시 국회'를 열겠다고 하셨습니다.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 시대가 변화하고, 사회가 발전하며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매년 수천 개의 법안이 발의되고, 엄청난 액수의 예산이 집행되며, 거의 매일 새로운 현안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일회성 국정감사와 예·결산으로는 행정부를 견제하고 사회 현안에 적절히 대응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상시국회를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잘못을 시정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다만, 매번 장관을 부르거나 증인을 세우는 등 비효율적인 지금의 방식과 룰은 지양하고 대화와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당리당략에 매몰된 '불통정치'가 국회불신 원인"
"성숙한 정치 위해 끊임없는 여야 소통·타협 필요"

- 세월호 참사 정국 속에서 열린 6·4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보고 국민들의 현명함에 매우 놀랐으며, 한편으로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전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정부와 여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쳐, 여당의 선거 참패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적절한 안배를 통한 현명한 선택과 결과를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집권여당에게는 정국현안을 이끌고 갈 추진력을 남겨주면서 반성과 쇄신을 명령했고, 야당에게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힘을 주면서도 내부 개혁을 요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 부의장님의 지역구가 있는 울산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이 시장과 구·군 단체장을 싹쓸이 했습니다. 앞서 19대 총선에서도 울산의 6개 지역구를 새누리당이 싹쓸이 한 바 있어 울산의 보수진영 강세가 날로 강화되는 모양새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울산의 경우 새누리당을 대신할 뚜렷한 대안이 존재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봅니다. 그동안 국민들은 진보정당에 대해 많은 기대와 지지를 보내주셨습니다. 특히, 울산시민들은 진보정당을 울산 제1야당으로 키워주시는 등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주셨습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통합진보당 폭력사태와 분열, 2013년 이석기 국가 내란음모사건, 정당해산심판청구 등으로 진보정당은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진보정당들은 시대와 사회 흐름에 맞는 가치를 제시하고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고자 노력했어야 하는데,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6·4교육감선거가 진보의 압승(13곳 당선)으로 끝난 가운데 여권에서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 이번 교육감선거를 통해 교육감 직선제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진보니 보수니 하며 교육을 정치화시키고 당선에 매몰되어 포퓰리즘이 넘쳐났습니다. 이로 인해 학부모와 아이들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선택을 위한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였습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개(百年之大計)'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만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은 수장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뀌고 선거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포퓰리즘으로 학부모와 아이들은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볼 때, 교육은 선거를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연구와 노력으로 완성되는 만큼 교육감 직선제는 폐지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봅니다.

-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씀이 있으시다면. 
▲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서로 소통하며 더불어 하는 것입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멀리 가기 위해서는 함께 가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도 천천히 가더라도 함께 가야 실수 없이 멀리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여야 간의 소통과 중재역할을 충실히 해 국민들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국회를 건설해 나갈 것입니다.

또한, 비리와 실망으로 얼룩진 요즘 사회에 필요한 '정심정행(正心正行)'을 국회 내에서 자리 잡아 모든 국회의원들이 바른 마음과 행동으로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국회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아울러 국회부의장으로서 국회를 국민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는 '참된 국회' '민주주의 가치가 존중되는 국회'가 되도록 제 모든 힘을 쏟겠습니다.

 

<carpediem@ilyosisa.co.kr>

 

<정갑윤 국회부의장 프로필>

▲ 경상남도의회 의원
▲ 한국청년회의소 중앙부회장
▲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
▲ 4선 의원(16·17·18·19대)
▲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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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