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아모레퍼시픽 폭풍전야 내막

도대체 얼마나?…과징금 폭탄 투하된다

[일요시사=경제1팀] 한종해 기자 = 아모레퍼시픽의 상승세가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최근 국내외에서 좋은 실적을 기록한 영향이다. 잔치를 벌여도 모자랄 판에 서경배 회장은 납작 엎드려 냉가슴을 앓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에서 불어 닥친 '외풍'이 심상치 않아서다. 공정위 조사가 마무리되면서 '이상기류'가 감지됐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형국이다.

국내 최대 화장품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이 올 1분기에만 931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 동기 대비 16.3% 증가한 수치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1757억원과 1229억원으로 각각 25.3%와 35.6% 늘었다. 최근 국내외에서 좋은 실적을 기록한 영향이다.

실제로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사업은 올 1분기 국내에선 12%, 해외에선 50%에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했다. 면세점과 디지털, 해외 사업이 고성장세를 이어갔다. 중국에서만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35%, 88% 증가율을 나타냈다.

매출 증가에도
웃지 못하는 사연

이에 따라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의 지분가치도 크게 상승했다. 국내 최상위 주식부호 순위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을 제치고 3위로 올라섰다.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서 회장의 지분가치 평가액은 3조7951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1조782억원 늘어났다.

현재 서 회장은 아모레G 보통주 444만4362주(55.70%)와 우선주 12만2974주(13.50%), 아모레퍼시픽 보통주 62만6445주(1072%)를 보유하고 있다. 올해 들어 아모레G와 아모레퍼시픽 주가 상승분으로만 각각 7907억원, 2875억원을 벌었다.


잔치를 벌여도 모자랄 판에 서 회장은 납작 엎드려 냉가슴을 앓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가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공정위에 따르면 최근 공정위 서울사무소는 아모레퍼시픽이 대리점에 행한 '대리점 쪼개기' '밀어내기' 등의 불공정행위 사건 조사를 마무리했다.

아모레퍼시픽의 '갑의 횡포' 논란은 지난해 6월경 촉발됐다. 진보정의당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등은 지난 6월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전국 을의 피해사례 보고대회'를 열고 '갑의 횡포'를 내놨다. 이들이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은 목표한 영업실적에 도달하지 못한 대리점에 밀어내기로 상품을 강매하고 무상으로 지급해야 할 판촉물도 강제로 구매하도록 했다.

판촉물 강제 구매로 지난 2012년 한 해 각 대리점은 1800만원씩 부담해야 했다. 영업사원의 교육·훈련 비용도 점주가 내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적을 달성했다고 해도 계약을 해지해 우수 대리점을 직영화하고 영업사원을 다른 대리점에 넘기거나 직영점으로 빼가기도 했다.

실제로 경남 마산의 전직 아모레퍼시픽 특약점 점주였던 서행수씨가 공개한 공문을 보면 회사는 2007년 12월 서씨에게 '경영개선 요청 내용'을 보내 2006∼2007년 매출이 역성장을 했다며 2008년 판매 증대 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서씨는 2008년 판매를 5.0% 성장시키기로 했지만 9월까지 2.4%에 그쳤고 회사는 결국 그해 말 거래를 종료했다.

회사는 계약을 해지하면서 서씨와 10년 동안 계약을 맺은 60여명의 카운슬러를 모두 다른 특약점으로 가도록 했다. 서씨와 일하던 카운슬러의 절반은 그해 아모레퍼시픽을 퇴직한 점주가 운영하는 다른 특약점으로 이동했고 나머지도 이듬해 직영점으로 이동했다.

공정위 조사 완료…과징금 수백억 예상
남양유업 123억원 기록 깰까 초미 관심

진보정의당 김제남 의원실은 아모레퍼시픽은 상품 강제출고는 물론, 특약점주들에게 무상판촉물의 비용까지 전가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부산 지역 한 특약점의 '2012년 월별 영업 현황'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은 해당 특약점의 매출보다 적게는 300만원에서 많게는 2000만원이 넘는 정도의 제품을 강매시켰다.


피해점주들이 내놓은 아모레퍼시픽과 대리점주 단 거래약정서를 보면 ▲제9조(대금결제) 2항 "갑은 수시로 을에게 상품대금 지급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을은 이에 따라 지체 없이 변제해야 한다" ▲제15조(판촉물 사용관리) 3항 "갑은 제2항의 무상의 판촉물 제작비용 일부를 을과 사전에 합의하여 을의 부담으로 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김 의원 측은 "계약대로라면 '합의를 통해' '비용의 일부'만을 을에게 부담시킬 수 있지만 아모레퍼시픽은 '합의 없이' '전액'을 떠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아모레퍼시픽 측은 "전체 550여개 대리점의 매출과 비교해 해당 점포의 매출이 낮으면 경영의지가 없다고 판단해 계약을 종료하도록 한다"며 "특히 2003년과 올해 80개 직영점의 영업사원 수를 비교하면 오히려 감소해 영업사원을 빼갔다는 것은 억지"라고 반박했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7월18일에는 민주당 우원식 최고위원이 "남양유업 같은 막말 녹취록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언급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증폭됐다. '아모레퍼시픽 피해대리점주협의회'(이하 협의회)는 5개 정도의 녹취록을 확보해 이를 우 최고위원 측에 전달했다. 협의회 측은 녹취록에 "너무 나서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것이다" "순순히 특약점을 내놓지 않으면 옆에 직영점을 열어서 내놓을 수밖에 없게 만들겠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녹취록은 바로 공개되지 않았다. 녹취록에 담긴 막말 수위가 남양유업 사태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남양유업 사태에서 공개된 녹취록은 '아버지뻘 되는 대리점주에 대한 폭언' 때문에 심한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아모레퍼시픽 측도 "녹취록이 있다면 이미 공개했을 텐데 '갑의 횡포' 물타기만 하고 있다"며 "내부조사 결과 막말직원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계약서 무시하고
을에게 전액 부담

아모레퍼시픽의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난 것은 지난 10월13일 2007년 녹음된 50분 분량의 녹음파일이 공개되면서다. 녹음파일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 영업직원은 대리점주에게 "사장님이 철밥통이요? 사업하는 사람이 공무원 됩니까? 능력이 안 되고 성장하지 못하면 나가야지" "니 잘한 게 뭐 있나? 1년 동안 뭐한 거야? 열받지, 열받지?" "나이 마흔 넘어서 이 XX야, (다른 대리점에) 뒤지면 되나, 안 되나?" 등의 폭언이 담겨져 있었다.

이에 대리점주가 '만약 내가 버티면 어떻게 되냐?'라고 묻자 영업직원은 "만약 사장님께서 말 그대로 협조 안 해주시면 물건은 안 나가고 인근에 영업장을 또 내는 거죠"라며 대리점 강탈 과정을 밝혔다.

아모레퍼시픽은 녹음파일이 공개된 지 하루 만에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손영철 사장 명의의 '아모레퍼시픽을 사랑해 주시는 고객님께 드리는 글'을 통해 "해당 사안이 수년 전에 발생한 것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 다소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저희 직원의 부적절한 언행에 책임을 통감하며, 빠른 시일 내에 진상을 파악하고 피해를 입으신 분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모레퍼시픽은 기자들에게 보낸 손 사장 명의의 이메일에서도 "불미스러운 일로 아모레퍼시픽을 사랑해 주시는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하여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이번 일을 자기반성의 계기로 삼겠다"고 전했다.

징계 결정 코앞
갑질 대가는?


손 사장은 지난 10월15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내가 잘못 가르쳐서 이런 문제가 일어났다"며 "현재 근무하는 직원이나 관계자라면 불러서 충분히 교육을 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불공정거래 조사 착수 후 매듭을 짓는 단계에 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진위 여부가 파악되는 대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협의회와 진보정의당은 아모레퍼시픽의 불공정행위와 대리점주들에 대한 횡포를 고발하고 아모레퍼시픽 본사와 공정위에 시정조치를 요구했다. 화장품 업계 갑을 논란이 불거지자 공정위는 지난해 7월 아모레퍼시픽을 포함한 8개 화장품 업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직원 8명을 아모레퍼시픽 본사에 급파해 방문판매 대리점 등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등 아모레퍼시픽에 대해서만 추가 조사를 벌였다. 1년 가까이 진행된 조사는 최근 마무리됐다. 공정위는 조사 결과를 소회의에 상정하고 조사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아모레퍼시픽에 송부한 상태다. 2주 이내 아모레퍼시픽이 의견서를 제출하면 공정위는 심의 기일을 확정지을 예정이다.

공정위 측은 "일단의 소회의에 상정했지만 전원회의 상정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밝힌 뒤 "일정상 다음 달에는 전원회의나 소회의에서 시정명령, 과징금, 검찰 고발 등의 시정조치가 내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업계는 아모레퍼시픽에 내려질 징계 수위에 대해 중징계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불공정 거래행위 사안은 '남양유업 사태'와 유사한 점이 많다. 지난해 남양유업은 '욕설 녹취록'과 '밀어내기' 등 불공정 행위로 사회적 비난을 받았다.

쪼개기, 밀어내기…남양사태 판박이
검찰에 고발 등 중징계 내려질 전망


남양유업 사태는 지난해 5월 유튜브에 '남양유업 싸가지 없는 직원'이라는 제목으로 30대 영업직원과 50대 대리점주가 나눈 대화녹취 파일이 올라오면서 불거졌다. 2010년 녹음된 2분45초 분량의 파일에는 영업직원이 대리점주에게 예정됐던 물량보다 훨씬 많은 물건을 더맡기는 내용이 담겨있다.

음성 파일 속 영업직원은 "죽기 싫으면 받으라고요. 끊어 빨리. 받아. 물건 못 받겠다는 그 따위 소리 하지 말고"라거나 "(물건을 받을 상황이 안 된다면) 버리든가 그럼. 버려"라고 몰아붙였고, 대리점주는 "지난달에도 목표치 넘게 물건을 받았다"며 "이번에는 물건 보관할 창고도 없으니 더 이상 받을 수 없겠다"고 읍소했다.

그러자 영업직원은 "차라리 망해라" "죽여 버리겠다" "제품 못 받겠으면 버려라" "개 XX야" "씨XX아" "맞짱 뜨자" 등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부었다.

앞서 지난해 4월에는 남양유업 대리점주들이 남양유업이 2012년 5월부터 최근까지 전산 프로그램을 조작해 대리점 발주 물량을 부풀리고 명절 떡값 등을 갈취했다는 내용의 고발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대리점주 측은 고발장에서 남양유업이 주문관리 시스템을 조작해 대리점에서 낸 주문보다 2∼3배 많은 양의 제품을 대리점에 보냈다고 주장했다. '밀어내기'를 한다는 것. 유통기한이 짧은 유제품 특성상 제품 대부분이 버려졌다.

또 남양유업이 떡값 및 임직원 퇴직위로금과 대형마트 판매 직원의 급여도 대리점에서 내도록 강요했다고 말했다. 명절에 떡값 명목의 돈을 각 대리점마다 10만∼30만원씩 착취하고 유통업체 파견직 사원의 임금을 20∼30%만 지급한 채 나머지 임금을 납품 대리점에게 부담하게 했다는 것.

대리점주 측은 이를 거부하면 남양유업 측에서 계약 해지, 보복적 밀어내기, 투자비용의 매몰가능성 등을 이용해 협박과 압력을 가한다고도 주장했다.

남양유업 측은 당초 "불만을 가진 일부 대리점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관련의혹을 부인했으나 '폭언 음성파일' 파문으로 남양유업 횡포에 대한 국민 공분이 커지자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이를 일부 시인했다.

징계 철회·조정
기대 어려울듯

하지만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남양유업 제품 불매운동이 이어졌고 남양유업은 매출감소 직격탄을 맞았다. '갑의 횡포'가 사회 전반에 화두로 던져지기도 했다. 식품업계는 물론이고, 주류, 편의점, 화장품, 베이커리 등 유통업계 전반과 자동차 협력업체에서도 갑의 횡포를 고발하고 바로 잡으려는 을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공정위는 남양유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 123억원의 과징금과 함께 전현직 임직원을 검찰 고발했다.

남양유업 사태를 전례로 볼 때 아모레퍼시픽의 징계 수위는 이보다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위반행위와 관계된 매출액과 내용 정도 기간 가중 및 감경 요소 등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이 불공정거래행위를 통해 얻은 매출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매출(3조8953억원)은 남양유업(1조2298억원)의 3배가 넘고 불공정 행위 사안이 크고 악질적이라는 점에서 더 강한 징계를 받을 것이라는 것. 징계가 철회되거나 수위가 낮아지는 것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남양유업은 과징금 부과 뒤 "너무 많다"며 이의신청을 냈지만 공정위는 이를 기각한 바 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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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