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세월에 묻힌 도시풍경 '천태만상'

급변하는 시대…사람냄새가 지워진다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시대가 변하면서 생활 속 풍경도 새롭게 바뀌고 있다. 구시대 유물로 느껴졌던 것들이 새 옷을 갈아입고 진화하면서 ‘신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라질 것 같았지만, 다양한 생존전략으로 다시 재탄생한 우리 주변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결혼정보회사의 시초는 결혼상담소였다. 1970년대부터 성행한 중매결혼은 대부분 결혼상담소를 통해 이루어졌다. 결혼상담소 간판을 내건 초기에는 “오죽 못났으면 스스로 결혼 상대자를 구하지 못하고 결혼상담소에 의뢰하느냐”는 말이 나왔지만 서서히 인식이 바뀌어 결혼상담소를 찾는 발길이 급격히 잦아졌다.

[결혼상담소-결혼정보회사]
 
결혼상담소 신청자들의 남녀비율은 약 1대2 정도로 여자가 많은 편이었다. 상담소에 따라서는 여자가 남자보다 4배나 많아 남자기근 현상을 빚기도 했다. 지금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당시 신청자들의 연령은 여자 22세부터 55세, 남자 25세부터 60세까지로 폭이 넓은 편이었지만, 여자 23세부터 26세, 남자 27세부터 33세까지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결혼상담소를 찾는 이들 대부분은 미혼이었다. 초기에는 본인보다는 부모가 상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결혼상담소에 대한 인식이 변하면서 당사자가 직접 신청하는 경우가 늘었다. 
 
이후 ‘보따리 중매장’이란 묘한 직업이 생겼고, 이들은 유수 기업체의 젊은 엘리트 사원의 명단이 든 두툼한 수첩보따리를 들고 다방을 누비며 10명 정도씩 그룹을 지어 수시로 각종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다. 이처럼 중매장이들이 몰려다니는 풍경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과거 성행했던 결혼상담소와 지금의 결혼정보회사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다만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현재 성행하고 있는 결혼정보회사 또한 중매를 목적으로 운영된다.
 
결혼정보회사는 1990년 중반, PC통신의 발달로 본격 등장했다. 2000년 8월부터는 결혼정보업이 자유업으로 바뀌어 사업자등록증만 제시하면 즉시 영업이 가능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들에게 만남을 주선하고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는 결혼정보업체는 500여 곳이 넘는다.
 

이 중에서도 특히 듀오, 선우, 에코러스, 피어리, 듀비스 등 몇몇 업체는 수천에서 수만명씩의 회원을 거느리고 ‘중매’ 시장을 이끌고 있다. 시장규모도 날로 커지고 있다. 이처럼 결혼정보업체가 호황을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경제적 변화다. 경쟁주의 속 개인주의 심화는 친분적 소개 문화의 쇠퇴를 불렀고, 결국 그 부분의 역할을 결혼정보 업체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결혼정보회사의 등급표는 일종의 진입장벽을 만들고 있다. 누구나 가입할 수 있지만, 등급에 따라 자신의 점수가 결정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배우자 선택 시 성격, 외모, 학벌, 직업, 가정환경 등 여러 가지 조건도 중요하지만, 결혼 전 충분한 시간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탁소-무인세탁소]
 
세탁소의 트렌드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 세탁소 간판을 걸고 있지만 직원 자체가 없는 ‘무인세탁소’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셀프빨래방과 세탁편의점의 장점만을 결합시킨 무인세탁소는 고객들이 무인 락커에 세탁할 옷을 맡기면 전문 세탁 업소에서 이를 수거해 말끔히 세탁한 후 다시 락커로 가져다주는 시스템이다. 이런 무인세탁소의 가장 큰 장점은 고객들이 원하는 시간에 언제나 사용할 수 있다는 점. 일반 세탁소는 영업시간이 한정돼 있어 맞벌이 가정에서 시간대를 맞추기 힘들 때가 있기 때문에 바쁜 현대인들이 무인세탁소를 자주 애용한다.   

[전당포-인터넷캐싱]
 
흔히 전당포는 급전이 필요할 때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귀중품을 담보로 손쉽게 금전을 확보할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애용해왔다. 사실 전당포는 사채업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캐싱’이라는 용어를 상호에 쓰기도 한다. 전당포의 시초는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인이 한국에 들어와 전당포 형태의 사채업을 시작한 것이었다. 이후 모방과 조합의 형태로 전당포가 곳곳에 생겨났고 서민들 사이에서 필요할 때 돈을 빌려 쓸 수 있는 유용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의 전당포는 일본과 달리 부동산도 담보로 취급했다. 1970년대에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나 텔레비전이 인기였고 80년대에는 비디오플레이어, 컴퓨터 등이 주요 품목이었다. 귀금속 등은 여전히 인기 품목으로 분류되며 최근에는 명품 패션이 주종을 이룬다. 
 

전당포는 현재도 진화 중이다. 쇠창살과 골방, 음침한 복도는 이제 더 이상 전당포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아니다. 요즘 전당포는 건물 외관은 물론 내부도 깔끔한 편이다.
 
최신식 인테리어로 이용자들의 거부감을 줄이고 있다. 카페처럼 음료를 제공하는 건 기본이다. 전당포의 기본인 보안시스템도 날이 갈수록 튼튼해지고 있고, 다루는 품목도 진화했다. 요즘엔 명품 전당포가 대세지만 각종 IT 기기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도 증가하는 추세다. 
 
과거엔 전당포를 찾기 위해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지만 이제는 도심 한복판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신촌, 강남, 압구정, 건대입구 등 서울 도심 주요 상권엔 최소 1∼2개씩 현대식 전당포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가맹점 형태로 지점을 늘리며 기업화하는 현상도 보인다.
 
금융감독원과 저축은행중앙회, 한국대부금융협회 등에 따르면, 저신용자용 전당포는 전국에 1000여개로 10년 전 대비 80% 가량 줄었다. 대신 명품 전당포나 IT 전당포와 같은 현대식 전당포는 전국적으로 300개 이상 운영되고 있다고 추정된다. 전당포에 들어오는 물건은 달라지고 있지만 전당포의 개념 자체는 변함이 없다.
 
헌책방, 미니콘서트장으로…전당포는 인터넷 거래
이발소, 카페 미용실로…세탁소, 무인빨래방 변신

[꽃집-데이트카페]
 
꽃집도 시대 변화에 카멜레온처럼 변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꽃카페’인데, 요즘 꽃집은 꽃을 판매하며 더불어 커피, 건강음료, 칵테일 등을 내놓고 있다. 꽃을 사러 온 고객들은 꽃을 사러 온 건지, 커피를 마시러 온 건지 헷갈릴 정도라고 전해진다. 이러한 ‘궁합마케팅’ 덕분에 꽃집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아름다운 정원에서 데이트를 즐길 수 있어 특히 커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헌책방-카페방]
 
헌책을 사고파는 헌책방은 1960∼70년대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몇 달 일하면 일 년 정도 쉬어도 될 정도로 당시엔 헌책방을 찾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헌책방들이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그렇다고 아예 없어진 건 아니다. 변신을 꾀해 새로운 전략으로 손님을 끌어들이는 헌책방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헌책방들은 온라인을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인터넷 거래가 일반화되면서 헌책방을 직접 찾아오는 손님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판매 방식을 바꾸니 매출이 꾸준히 증가한다고 전해진다. 또한 단순히 책만 사고파는 게 아닌,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변모한 헌책방도 있다.
 
무려 51년 간 자리를 지켜온 한 서점은 분위기 있는 카페로 재탄생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추억의 책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커피 한 잔의 여유와 함께 독서를 만끽한다. 휴일에는 작은 콘서트를 열기도 해 마니아층을 확보한 상태다. 이처럼 추억의 헌책방들이 신선한 모습으로 새롭게 거듭나면서, 도시 속 유물에서 도시 속 보석으로 빛나고 있다.


[이발소-이색미용실]
 
이용원, 이발관, 이용소라고 부르기도 했던 이발소는 많은 남성들이 머리를 짧게 깎기 위해 찾던 장소였다. 이발소가 남성 전용이라면 미용실은 여성전용으로 인식됐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남성들의 머리가 길어지면서 짧게 깎기보다는 긴 머리를 다듬게 되면서 남성들의 미용실 출입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지금의 미용실은 남녀구분이 없어졌고, 미용실 이름도 여러 가지 브랜드 명칭으로 쓰고 있다. 전통적인 이발소는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이발소는 그 자체로 존재 의미가 컸다. 동네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왔던 것이다. 휴식이 필요할 땐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누워서 책이나 신문을 읽거나 잠을 청하기도 했다. 이발할 때는 기계 보단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이발 가위를 썼다. 또한 이발소는 개운한 면도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발소는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고, 대신 미용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콘셉의 미용실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 소비자의 눈길을 끈다. 미용실 내부에 작은 카페를 마련한 곳, 와인바로 단골 손님을 끄는 곳, 다양한 음료 및 과자, 떡볶이 등의 간식을 제공하는 곳, 손님의 머리털로 그림을 그려주는 곳 등 이색적인 서비스로 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처럼 요즘 미용실은 단순히 머리 손질에만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도로 단골 확보에 애쓰고 있다.
 
신세대 입맛에 맞게 탈바꿈  
다양한 생존전략으로 재탄생
 

[사진관-포토존]
 
증명사진이나 가족사진을 찍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동네 사진관. 이제는 가족 전문, 아기 전문, 취업 전문사진관 등으로 세분화 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 최근 사진관은 단순히 사진만 찍는 데 그치지 않고 잡지 화보 같은 가족사진, 흑백 필름만 사용해 아날로그 방식으로 찍는 사진, 톡톡 튀는 팝 아트 초상화 등 진화된 사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자신의 취향에 맞게 사진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어린자녀를 둔 30∼40대 부부들 중에서는 연예인 화보 같은 가족사진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야외 공간에서 가족끼리 서로 마주보며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며 자연스러운 순간을 담는다. 그리고 항공촬영(헬리캠)까지 아우르는 스튜디오도 등장했다. 또한 내부 인테리어를 카페처럼 꾸미고 실제로 카페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진관이 늘고 있다. 사진관을 찾는 손님들의 대기 시간까지 사로잡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특색 있는 사진관은 일부다. 요즘 사진관들은 대부분 ‘디지털 인화’ ‘이미지 백화점’으로 진화해 생존하고 있다. 사진 촬영, 현상, 인화는 물론 액자, 캘린더, 디지털 카메라, 주변기기 등 사진과 관련된 모든 것을 취급하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따른 극적인 변화다. 

[복덕방-중개소]
 
집을 잘 골라야 ‘복’과 ‘덕’이 들어온다는 의미로 흔히 쓰인 ‘복덕방’은 1900년대 초 ‘가괘(집 흥정을 붙이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무실을 차린 것이 시초다. 서구문물이 들어오고 상업이 성행하게 되자 주거지 이동이 빈번해지면서, 풍수지리와 택일의 관습 때문에 이사를 할 때에는 가괘의 도움이 필요하게 됐다.
 
초기 복덕방은 밑을 여러 갈래로 가른 누런 삼베를 간판으로 사용했다. 누런 삼베는 수수해서 복이 잘 붙고 감이 질겨 오래 갈 수 있다는 뜻이며, 밑을 여러 갈래로 갈라놓은 것은 출입하기 편하다는 뜻에서 한 것이다. 복덕방은 대체로 노령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모여 소일로 했다. 손님이 찾아오면 거간노릇을 해주고 보답으로 작은 선물을 받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매도금액에 약간의 웃돈을 붙여 매매를 성립시킨 뒤 그 차액을 수수료로 얻었다.
 
 
60년대 초 경제개발계획이 강력히 추진되면서 각종 도시개발계획에 의해 다양한 용도의 택지와 주택 수요가 늘어남으로써 복덕방의 역할이 커지기 시작했다. 점차 복덕방 간판은 ‘○○개발’ ‘○○개발공사’ 등 다양하게 바뀌기 시작했고, 중개 대상도 주택과 아파트뿐 아니라 전국의 상가·공장·빌딩·임야·레저시설 등으로 확대됐다.
 
이같은 복덕방의 확대·발전은 투기조장, 가격조작, 과다경쟁 및 불건전한 거래 유발과 선의의 피해자 발생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지속적으로 유발했고, 결국 규제의 필요성이 부각돼 1983년 ‘부동산중개업법’이 제정됐다. 이후 복덕방이라는 말 대신 ‘○○부동산중개회사’ ‘공인중개사 ○○사무소’ ‘○○부동산중개인영업소’ 등으로 표기하도록 규정됐다.
 
그리고 부동산 유통시장 개방에 따라 부동산업계는 법인화, 종합대형화 추세로 부동산거래정보망과 함께 전국적인 체인 형성이 나타났고, 이제는 온라인을 통한 중개·거래도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 복덕방은 부동산 중개를 주로 했지만, 현재의 공인중개사무소, 부동산 컨설팅업체는 중개뿐 아니라 부동산 컨설팅, 분양, 관리, 개발, 신탁 등 전문적인 재산 상담 기능까지 하고 있다.

[당구장-이색레포츠]
 
볼링장, 당구장 등 마니아들의 스포츠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레포츠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볼링장에서 단순히 볼링만 치는 것에서 벗어나 맥주를 마시며 서로 어울리는 소통의 공간으로 변모하면서 각광을 받고 있다.
 
볼링 실력을 떠나서 누구나 함께 웃고 떠들며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칙칙한 내부 인테리어를 벗고 야광으로 도배해 클럽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 곳도 늘어나고 있다. 신나는 음악과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돼 특히 커플들 사이에서 인기다.
 
당구장도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카페식 당구장이 눈길을 끈다. 카페 같은 당구장에서 수제버거와 커피를 들고 당구를 즐기는 곳이 있어 반응이 좋다. 또한 과거와 달리 금연 당구장이 늘어나 여성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또한 근래 들어서는 미녀 직원을 당구장에 다수 고용해 젊은 남성 고객을 유치하는 업소가 크게 늘고 있다. 이러한 ‘미인 당구장’ 등장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동종업종 간 극심한 경쟁 탓에 탈선할 개연성은 언제든 있는 것이 현실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진화한 사랑의 메신저
편지 → PC → 스마트폰 → 이모티콘…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메시지의 방식도 점차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집 전화나 편지로 마음을 전하는 아날로그 감성이 주 연애 방식이었지만, 통신이 발달되면서 PC가 청춘남녀들의 데이트 문화에 큰 혁명을 불러왔다.
 
이후 스마튼의 등장은 또한번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현재 스마트폰으로 SNS를 사용하는 것은 일상화 된 지 오래, 낯선 사람과 소통하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더 나아가 ‘문자’ 보단 ‘이모티콘’을 주로 사용하며 신속한 메시지 전달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디지털 기기의 발달이 가속화되는 만큼 스마트 세대의 연애법도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할 전망이다. <광>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한상진 기자 =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28일 실행에 옮겼다.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란 핵 보유 가능성 차단’ ‘이란 정권교체’ ‘중동지역 미국 영향력 강화’ ‘석유 패권 우위’ 등이다. 아울러 이란 석유의 상당 부분을 수입하는 중국 견제 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란과 8차례에 걸쳐 핵 협상을 진행했다. 이란 측에서 트럼프정부에 큰 사업적 이익을 제안하기도 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봤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란이 핵 능력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이란 수뇌부 제거 없이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공습 이틀 후인 지난 2일(현지시각) 37년간 이란 최고 지도자로 군림해 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공습 결정 여러 요인 하메네이는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 및 국방 관련 요직을 거치며 권력기반을 다졌다. 이후 국회의원과 이슬람공화당 지도부를 역임했고, 지난 1981년 대통령에 선출돼 두 차례 연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 여성,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며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란 내에서 발생하는 시위에 대해서도 잇달아 강경하게 진압했다. 지난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반발하는 시위를 비롯해, 지난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며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특히 올해 초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해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였다. 이 시위는 이란 핵개발에 따른 서방의 제재가 수년간 이어지며 경제난이 누적됐고, 테헤란 상인들의 항의가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번진 것이었다. 이란 당국은 이 사태로 인한 사망자를 3117명으로 집계했지만, 외부에서는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이란 내 정치 지형은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행동이 끝난 후 이란인들에게 “여러분의 정부를 장악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직접 나서 정권교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초 있었던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다시 붙으면 친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트럼프정부는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처럼 직접 모든 것을 통제하지는 않더라도, 향후 이란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는 세력이 원유 문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미·이 전쟁 여파 국내 강타 금융, 산업 등 전방위 요동 이렇게 되면 이미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중동지역 원유 생산에도 관여하게 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훨씬 넘어서는 시장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 지난 3일 코스피가 역대 최대 낙폭(452.22포인트)을 기록했고,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377조원 넘게 줄었다. 주요 코피스 종목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4769조4000억원으로 전 거래일인 지난달 27일 대비 376조9396억원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전 거래일 대비 약 126조6803억원 감소했다. 주가는 이날 9.88% 급락하며 5거래일 만에 20만원 선을 내줬다. SK하이닉스도 100만원 선이 깨지며, 시총이 86조9497억원(11.50%) 줄었다. 이 밖에 현대차(-11.72%), LG에너지솔루션(-7.96%), 삼성바이오로직스(-5.46%) 등 주요 기업들의 시총 감소분이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방산주는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가가 19.83% 오른 143만2000원, 한화시스템은 29.14% 오른 14만67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LIG넥스원은 11.15% 오른 68만8000원을 기록하며 상한가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투자심리가 악화하며 7.24% 급락한 5791.91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다.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고,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 전쟁의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지난 3일과 4일 이틀 연속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중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금융권 직격타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건 지난달 6일 이후 한 달 만이다. 지난 4일 오전 9시25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189.43포인트(3.27%) 내린 5602.48에 거래되고 있다. 지수는 199.32포인트(3.44%) 내린 5592.59에 개장했다. 코스닥지수는 35.83포인트(3.15%) 내린 1101.87에 거래 중이다. 지수는 전날보다 25.62포인트(2.25%) 내린 1112.08에 개장했다. 환율 역시 급등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 자산 회피 심리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돌파했다. 1500원 돌파는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이다. 4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9원 오른 1479.0원에 개장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20분쯤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은 1506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1500원 밑으로 하락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돼 환율이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산업계도 고환율에 따른 환경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 단가 측면에서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과 결합할 경우 실질적인 부담이 커지게 된다. 반도체와 조선 업종은 단기 방어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항공과 철강은 비용 부담이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현재 시장의 공급 제약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가 상승 일정 부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선의 경우 수주 산업인 만큼 이미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고환율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수주한 선박을 건조해 선주사에 인도하는 구조라, 이미 3~4년치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 환율 흐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울러 조선 업계 특성상 달러로 수주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단기적 관점에서 환율 상승은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 양날의 검이다. 미국 수출 및 매출이 늘어나고 있어 달러 강세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자동차 한 대에 수백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원자재 부담이 상존한다. 다른 업종 대비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하지만, 역시 환율 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종 별로 희비 교차 항공의 경우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 주요 비용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업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3~4월은 항공업계 전통적 비수기다. 개학과 함께 공휴일이 적어 여객 수요가 일시적으로 둔화되기 때문이다. 항공기 이용률이 낮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 부담도 확대돼 수요 위축이 나타날 수 있다. 보통 항공사들의 유류할증료는 1개월 시차를 두고 항공권 가격에 반영된다. 다음 달에 항공권을 구매할 경우 인상된 유류할증료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철강업계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가운데, 고환율 부담까지 겹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철강은 업종 특성상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이를 철강 제품 가격에 즉시 반영하기 구조다.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정유업계에는 환율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다. 달러 상승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지만, 수출할 때에도 높아진 달러가 적용돼 비용 부담이 상쇄된다. 특히 이전에 저렴하게 사들인 원유에 대한 재고 평가이익 인식은 재무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원유 재고 평가이익은 정유사가 보유한 원유(재고) 가치가 시세 변동으로 장부상에 이익으로 올라가 실적에 반영되는 현상을 뜻한다. 유가 상승 시 저가로 산 원유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기름값도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 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기준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L당 56.9원 오른 1845.4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18일(1802.7원) 이후 약 2개월 반 만이다. 주가·환율·유가 변동 산업계 직결 모건스탠리 “수출지향 한국 더 민감”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L당 61.6원 상승한 1784.6원을 기록했다. 경유 가격 상승 폭은 더 컸다. 서울 지역 경유 평균 판매가는 1811.2원으로 전날보다 103.8원 뛰었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도 1741.8원으로 하루 만에 1700원을 돌파했다. 싱가포르 석유 제품 시장가에 연동된 국내 주유소 가격은 통상 2∼3주 차이를 두고 국제 유가 변동이 반영된다. 다만 전쟁 확산 우려 등에 따라 주유 수요가 늘고 환율 변수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 국제 유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2일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공식 경고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을 틈타 기름값을 과도하게 올리는 주유소들을 제재하기 위해 ‘최고가격 지정’ 작업에 착수했다. 주유소 담합 조사 등 시간이 필요한 조치에 앞서, 즉각적인 가격 통제에 나선 것이다. 또 주유소 담합 적발 시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리기로 하는 등 유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 장관 태스크포스(TF)를 주재하고 ‘중동 사태에 편승한 시장교란 행위 근절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현재 국내 석유류 수급 상황은 안정적이며 국제 가격의 국내 반영 시차 등을 고려할 때 아직 국내 가격에 실질적 영향을 줄 시점은 결코 아니다”며 “석유류 최고 가격의 지정 등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행정 조치를 활용해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임시 국무회의에서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 가격 지정을 지시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가운데,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수입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쟁에 따른 경제적 여파가 심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중국보다 원유·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일(현지시각)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체탄 아야 등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전망했다. 보고서는 “아시아 국가들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지향 경제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유가 변동에 더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진짜 대전 터지면… 이어 석유·가스 무역적자 수준을 근거로 한국을 포함해 태국·대만·인도 등이 상대적으로 성장 측면에서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전쟁에 따른 아시아의 전체적 여파는 유가 상승 수준과 고유가 지속 기간에 달려있다”면서 “현재까지는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jins.h@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