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만난' 아웃도어 상속자들 열전

캠핑재벌도 등산재벌도 피 튀기는 '후계전쟁'

[일요시사=경제2팀] 박효선 기자 = 아웃도어 시장이 패션업계 주요시장으로 성장하면서 최근 오너 2세들의 경영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다만 2세 경영인들은 아직까지 회사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경영수업을 받거나 회사 운영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만큼 후계자들의 경영 자질도 본격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아웃도어 시장 매출은 4조원에 달했다. 미국(11조원), 유럽연합(9조원)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큰 규모다. 올해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최소 6조원 이상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들-딸 경쟁

이렇게 아웃도어 업계가 급격히 팽창하면서 기업 오너 2세들이 경영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노스페이스, 블랙야크, 밀레 등 아웃도어업체들의 경영승계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는 모습이다.

특히 노스페이스로 대박을 낸 영원무역 성기학 회장 딸들의 거침없는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영원무역은 아웃도어 점유율 1위업체인 노스페이스의 제조·판매사다.

성 회장의 장녀 시은씨는 영원무역홀딩스의 대주주인 와이엠에스에이(YMSA)의 이사를 맡고 있다. 섬유제품 및 수입원단 수출입 업체인 와이엠에스에이는 영원무역그룹의 지배구조상 최상단에 위치한다. 꾸준히 지분을 사모으고, 유상증자 등의 과정을 거쳐 지난해 연매출 1조4000억원으로 끌어올려 영원무역홀딩스를 실질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 이로써 와이엠스에이와 영원무역홀딩스, 영원아웃도어 순으로 내려오는 지배구조가 확고해졌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시은씨가 부친의 자리를 이어받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영원무역의 승계구도를 확신할 수는 없다. 차녀 래은씨와 막내딸 가은씨도 경영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한 차녀 래은씨는 영원무역과 영원무역홀딩스 영업 및 관리 전무를 겸하고 있다. 두 계열사 지분을 각각 0.02% 가지고 있다. 막내 가은씨도 영원아웃도어 마케팅팀부터 시작해 이사로 승진했다. 노스페이스 브랜드 홍보와 영원무역의 광고, 홍보, 마케팅까지 총괄하고 있다. 지난 2006년에는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장남 주홍씨와 결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9년부터 차근차근 지배구조를 정리해온 영원무역그룹은 인적분할을 통해 영원무역홀딩스(존속회사)와 영원무역으로 분리해 지주사 체제를 갖췄다. 현재는 비상장사를 포함 39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계열사 중에서도 주요 계열사에 성 회장의 세 딸들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향후 장녀(와이엠에스에이)에서 차녀(영원무역홀딩스 및 영원무역), 삼녀(골드윈코리아)로 이어지는 경영구조 확립을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국내 아웃도어 3위 업체 K2 코리아 창업자의 아들 정영훈 대표의 경영 능력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 대표는 1972년 K2코리아의 전신인 한국특수제화를 창업한 고 정동남 회장의 장남이다.

부친이 북한산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서 2002년부터 그가 K2경영을 책임지게 됐다. 당시만 해도 30대 초반이었던 정 대표가 모든 경영을 떠맡게 되자 회사 내부에서는 뒷말이 많았다. 그런데 우려했던 바와 달리 정 사장은 K2를 크게 키웠다. 2002년 300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을 1500억원대 규모로 성장시킨 것이다. 이 정도면 아직까지는 탄탄한 기업의 2세로 가업을 무난히 승계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최근에는 젊은 층을 공략한 제2의 브랜드 아이더를 내세워 경쟁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 정 대표가 아이더 대표를 겸직하고 있다. 지난 2월 K2코리아는 세컨드 브랜드인 아이더를 별도 회사로 독립시켰다. 분사과정에서 아이더의 지분구조에 변화가 없어 정 대표가 아이더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토종 아웃도어브랜드 블랙야크도 오너의 큰딸과 아들이 경영을 돕고 있다.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에게는 2녀 1남의 자녀가 있다. 이 중 큰딸 주연씨는 블랙야크에서 설립한 아우트로의 대표직을 맡아 재무를 관리하고 있다. 아우트로는 미국의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 마모트를 운영하기 위해 지난 2007년 설립한 회사다.
 

강태선 회장이 지난 1992년 미국 리노아웃도어 쇼에서 보고 반해 블랙야크를 통해 직수입해온 브랜드다. 서울여대 미생물학과를 졸업한 주연씨는 지난 2002년 블랙야크 모기업인 동진레저에 입사해 10여년동안 실무를 맡았다. 아우트로는 지난 5월 마모트 1호점인 논현점을 시작으로 한달여만에 30호까지 확장했다.


막내아들 준석씨는 해외 유학 후 현재 블랙야크 제품소싱팀 대리로 근무하며 바닥부터 다지고 있다. 이 남매는 신한은행이 지난 2009년부터 각 지점에서 추천한 우량 중견·중소기업인 자녀들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기량발전(MIP)’프로그램을 다니기도 했다. 다만 차녀 영순씨는 큐레이터로 미술계에 종사하며 경영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너 2세들 속속 대물림 위한 경영수업
후계자 자질 시험대 올라…합격은 누구?

한철호 밀레 대표의 장남 승우씨도 밀레 에델바이스홀딩스 관리부 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이 회사의 해외 브랜드 개척과 신규 사업 부문을 맡고 있다. 승우씨는 지난해 밀레가 론칭한 세컨드브랜드 ‘엠리밋’을 기획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미국 및 유럽 등에 거주하면서 해외 브랜드 및 신규 사업을 위한 업계 동향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스페이스의 ‘짝퉁’브랜드로 오해 받았던 국내 최장수 아웃도어 브랜드 레드페이스도 오너 2세가 경영에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유영선 레드페이스 대표의 장남 제원씨가 레드페이스 영업부에서 일하고 있다. 제원씨는 레드페이스의 중국 진출을 염두에 둔 유 대표의 계획에 따라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스포츠 브랜드 휠라 윤윤수 대표의 아들도 철저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윤 대표의 장남 근창씨는 카이스트에서 컴퓨터공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미국에서 MBA코스를 밟았다. 현재 근창씨는 휠라코리아가 미국에 설립한 글로벌 지주회사 GLBH홀딩스의 마케팅 디렉터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노스케이프, 와일드로즈 등의 아웃도어 브랜드를 운영하는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의 딸 혜원씨도 현재 형지의 경영기획실 이사로 일하고 있다. 최 회장의 아들은 계열사인 우성I&C에서 과장급으로 일하며 실무를 배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웃도어 저가정책을 펼치고 있는 콜핑의 오너 2세도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박만영 콜핑 대표 아들 상현씨는 과장직을 맡아 조용히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현씨는 회사 지분율 5%를 차지하고 있다.

지분 모으기

하지만 아웃도어 2세 경영을 두고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사실 역사가 짧은 국내 아웃도어 업체들이 여기까지 성장한데는 직원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 “우리나라 재벌기업 특성따라 아웃도어 업계도 결국 오너경영체제로 가고 있는데 경영능력이 떨어지는 2세가 가업을 물려받아 사업만 키우게 되면 다른 기업 사례와 마찬가지로 악순환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네파 상속은?


대부분의 아웃도어 오너들이 2세에게 가업을 물려주는 가운데 아웃도어 업체 네파의 승계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김형섭 네파 대표는 아직까지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김 대표는 3세 경영인이다. ‘독립문 메리야스’를 만들던 평안L&C(옛 평안섬유)가 네파의 모기업이다. 그는 할아버지 고 김항복 창업주와 부친인 김세훈 회장에 이어 가업을 물려받아 경영을 하고 있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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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