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세월호 참사에 묻힌' 새누리당 '차떼기 경선' 내막

"서초구 경선에 당원들 실어 날랐다"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새누리당 서초구 지역경선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확인 결과 경선에 참여한 한 후보자를 상대로 모두 3건의 고발이 이뤄진 걸 알 수 있었다. 고발 내용은 동일했다. '차떼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여러 의혹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불거졌다. 비록 정식으로 고발되진 않았지만 지난 정권 핵심실세의 딸의 이름이 사건에 등장했다.

꽃다운 아이들이 차디찬 물속에 가라앉았다. 지난 4월16일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온 나라가 비통함에 잠겼다. 그러나 이 시각에도 "나를 뽑아 달라"며 선거 운동을 해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지방선거 공천
당내경선 과열

세월호 참사 다음날인 17일 새누리당은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시·구의원 후보자 선정을 위한 당내 경선 투표를 서초구에서 진행했다. 이날 서초구청 2층 대강당에 마련된 투표장에는 이른 시각부터 투표를 하기 위해 당원들이 모여들었다.

이번 당내 경선은 새누리당이 공천 방법을 '상향식'으로 조정하면서 처음 치러지는 선거였다고 한다. 시의원 후보는 제1선거구부터 제4선거구까지 모두 12명이 경쟁을 벌였고, 구의원 후보는 가선거구부터 마선거구까지 모두 22명이 공천을 받기 위해 경합했다.

기자가 입수한 '경선 후보자별 득표율 현황'을 보면 당시 선거인수는 7000명(구의원 투표 기준), 투표자수는 1512명이었다. 새누리당 측은 해당 선거의 공정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투·개표 작업을 서초구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서초구선관위)에 위임했다. 서초구선관위는 "당내 선거 전반을 관리한 것이 아니라 단순 투·개표만 위탁받아 진행했다"고 밝혔다.


서초구선관위의 개표 결과 지방선거에 나갈 후보군의 윤곽이 드러났다. 각 선거구 최다 득표자는 새누리당이 자체 선임한 공천심사위원들에게 우선 추천됐다. 공천심사위원들은 별다른 이의 없이 최다 득표자(구의원의 경우 차순위까지)를 공천하기로 합의했다.

예상된 인물이 하나둘 공천자 명단에 올랐다. 정치 신인들 대부분은 당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겉으로 봤을 때는 별 무리 없이 마무리된 선거였다. 그러나 다수 당원은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증언했다.

먼저 익명을 요구한 한 당원은 "새누리당 당직을 갖고 있는 공천심사위원이 선거가 끝난 후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고 말했다. 17일부터 1박2일로 당원들을 인솔해 갔다는 것이다. 당시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직함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부적절한 처사란 지적도 나왔다.

그런데 또 다른 당원은 "경선이라도 공정하게 했으면 이런 말이 왜 나왔겠느냐"고 했다. 무슨 뜻일까. 이 당원은 경선 당일(17일) 이른바 '차떼기'가 있었으며, 지역 유력 인사 간의 '담합'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폭로했다. 좀 더 정확한 내막을 따져 물었다.

'묻지마 투표'
선거과정 혼탁

지역 다수 관계자의 정황 설명 및 새누리당 강석훈 의원실 등으로 보내진 투서를 종합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초을 구의원선거구(라) 출마자인 김수한 후보(현 서초구의원 및 서초구의회 운영위원장)는 지역 부녀회장 등을 동원해 투표 당일 수차례에 걸쳐 투표권이 있는 당원들을 실어 날랐다. 김 후보의 측근으로 전해진 강모씨 등은 2층 투표장 입구까지 사람들을 직접 안내했는데 이는 사전 합의된 경선룰상 금지된 행위라고 이들은 주장했다.


다수 관계자는 "강씨 등 4명이 미리 4개조를 편성해 승용차 2대, 봉고차 2대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실어 날랐다"고 말했다. 이들이 각각 '행동대원'으로 지목한 4인 중에서는 김 후보의 부인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차떼기'의 타깃은 주로 노인과 장애인이었다. 투표가 시작된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강씨 등은 수차례에 걸쳐 서초구청을 들락거리며 사람들을 동원해 투표시켰다고 했다. 한 당원은 "강씨가 왔다 갔다 하는 걸 수상히 여겨 녹화·녹음한 자료가 있다"고 말했다.

서초구의회 운영위원장 선거법위반 혐의 고발
"승용·봉고차 4대로 선거인 실어 날라" 주장

또 다른 당원은 "김 후보 측이 '시의원은 A후보(현 서울시의원)를 찍고, 구의원은 나(김수한)를 찍어달라'고 선거기간 동안 말했다는 소문이 지역 내에 파다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이 당원은 "봉고차로 실어 나르는 순간에도 '시의원은 A, 구의원은 김수한'을 주지시키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해당 선거구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은 "김 후보 측이 본인과 A후보의 지지를 말하고 다닌 적이 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그는 "그 사람들 입이 무거운데 사실대로 말하겠느냐"고 우려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김 후보 측은 왜 본인도 아닌 A후보를 지지한 것일까.

익명을 요구한 구 관계자는 "김 후보가 평소 A후보와 원만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로가 견제하는 사이였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경선이 임박하자 갑자기 러닝메이트가 됐다는 것이다.

경선에 참여했던 후보들은 "두 사람이 모종의 거래를 한 건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한 후보의 경우는 당시 상황을 상세히 묘사했다. 그는 "A후보가 처음에는 나에게 접근하더니 나중에는 김 후보와 붙었고, 어떤 날은 김 후보가 나를 만나자고 하더니 '당신은 안 될 거니까 사퇴하는 게 좋을 거다'라고 하는 등 선거가 혼탁했다"고 말했다.

경선 후보자별 득표수를 보면 이들의 주장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으로 추론된다. A후보는 제3선거구(구의원 라선거구 포함)에서 3명의 후보 중 모두 222표(총 투표수 367표)를 득표했다. A후보와 선거구(양재동·내곡동)를 대부분 공유하고 있는 김 후보는 라선거구에서 276표(총 투표수 388표)를 득표했다. 200표가 넘는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된 후보는 이들이 '유이'하다.

다른 선거구는 대략 100표 안팎에서 당락이 확정됐다. A후보가 당선된 선거구와 비슷한 투표율을 보인 제2선거구(총 투표수 394표)의 경우 최다득표자는 이모씨로 105명의 선택을 받았다. 또 김 후보가 당선된 선거구와 비슷한 투표율을 보인 나선거구(총 투표수 384표)는 137명이 최모씨를 찍었다. 그러나 투표 결과만 갖고 담합을 예단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세월호 참사와 맞물려 '부정경선'에 관심을 보였던 일부 언론이 등을 돌린 터였다.

선거법 위반했다
당에 수차례 투서

앞서 사퇴압박을 받았다고 말한 구의원 후보 B씨는 이번 사건을 직접 검찰에 고발했다. B씨는 지난 4월 김 후보 등을 선거법위반 혐의로 고발하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새누리당중앙당에도 같은 내용의 투서를 넣었다. 피고발자는 김 후보였다. A후보는 피고발인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발장을 접수한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로 사건을 배당한 뒤 서초경찰서로 수사지휘를 내렸다. 서초경찰서가 하명수사에 들어간 시점은 지난 4월24일께로 파악된다.


경찰은 이미 B씨를 불러 사전조사를 진행했고, 김 후보와 강씨 등을 차례로 소환해 사실여부를 캐물은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경찰은 서초구청 내에 있는 CCTV 기록 등을 입수해 고발의 진위여부를 가리고 있다.

수사팀 한 관계자는 지난 22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수사진행 상황은 말할 수 없고, 절차대로 사건을 처리하고 있으며 현재 법리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수사 진행이 더딘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선 "천천히 할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성급하게 할 이유도 없고 평소처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사실 규명의 키를 쥐고 있는 CCTV 기록이 증거물로 쓰이게 될지는 미지수다. 서초구청은 모두 2차례에 걸쳐 CCTV 기록을 관련기관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날 서초구청 홍보정책과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초 신고를 접수한 서초구선관위가 CCTV 기록을 USB 형태로 가져갔지만 보안이 걸려 있었고, 그래서 다시 CCTV 기록을 넘겼지만 카메라 방향이 생각했던 것과 달라 혐의 입증이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서초구선관위 관계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신고를 듣고 현장에 가보니 주차장과 연결된 서초구청 정·후문, 2층 대강당에 설치된 CCTV가 중요할 것으로 보여 관련 자료를 확보토록 했고 검찰로 송부했다"며 "말끔한 화질이 아니었다는 통화를 수사당국과 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B씨는 답답한 눈치다. 그는 다른 곳은 몰라도 새누리당이 신고를 묵살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B씨는 "수차례에 걸쳐 인터넷 게시물과 팩스, 이메일 등으로 진상조사를 요구했지만 새누리당은 이를 기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B씨는 경찰조사를 받고 나온 이들로부터 수차례 협박성 전화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내부 고발자의 비밀보장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B씨는 자신의 신원을 공개한 이를 특정하기도 했다.

기자가 입수한 '새누리당 서초구(을) 당원협의회 경선 설명자료'를 살펴보면 금지된 선거운동 예시에 차량기부행위가 추가 명시돼 있다. 이에 대해 B씨는 "강석훈 의원실 주관으로 4월2일 열렸던 설명회에 참석해 이 같은 경선룰을 모든 후보자와 공유했다"고 강조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 착수
서초서 "절차대로 조사"
새누리당 진상규명 쉬쉬 왜?
포상금 노린 허위신고 가능성?

또 "연락처가 담긴 선거인명부는 5일 전 교부받기로 했는데 막상 전화를 돌려보니 죽은 사람도 있고 이사 간 사람도 많았다"며 "1200명 중 500명만 번호가 살아있는 엉터리 당원명부였다"고 분노했다. 기자가 자문을 구한 선관위 관계자 역시 이 같은 주장에 수긍하면서 "지구당을 없앤 뒤 당원관리가 잘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전했다.

당시 녹음된 당원 간의 녹취파일을 들어보면 한 자원봉사자는 '차떼기'로 추정되는 위법행위를 인정하면서 "(관내) 노인들을 모셔다드린 거죠"라고 했다. 또 "우리만 하는 게 아니라 다 해요"라면서 "한 사람 앞에 (배당된 인원이) 수백명씩, 기본이 200∼300명이에요"라고 통화했다.

공천 노림수?
포상 노림수?

B씨 등 다수 당원은 김 후보의 위법행위를 확신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신중한 입장을 피력하면서 "(만약 혐의가 사실이라면) 그분이 왜 무리했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관내 인지도나 현직이라는 프리미엄을 고려하면 굳이 차량을 동원하지 않았어도 당선 확률이 높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이런 리스크를 자초했냐는 것이다.

앞서 서울 모처에서 기자와 만난 또 다른 신고자는 '포상금을 노린 신고가 아니냐'는 질문에 "숲을 보라는데 나무를 가리키고 있다"며 불쾌해했다. 이어 그는 "핵심은 선거법 위반이 있었는지 여부"라며 "공모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는데 그쪽에선 그냥 유야무야 덮이길 바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기자는 의혹을 사고 있는 당사자들의 해명을 듣기 전 강석훈 의원실과 접촉했다. ▲서초구(을) 공천심사위원의 제주여행에 대한 입장과 ▲경선 과정에서 후보 B씨가 제기한 의혹들을 외면한 이유 ▲김 후보 등의 득표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의원실 측은 "여행은 정말 처음 듣는 얘기고, 경선 과정에서 있었던 사건은 자세히 모른다"며 "김 후보와 A후보는 워낙 일을 열심히 하셨던 분들이라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아니겠냐"고 답했다. 기자가 B씨에게 확인을 요청하자 B씨는 "강석훈 의원실 측 사람이 당협(당원협의회)을 겸해 선거 교육을 했고, 고발 후에도 카카오톡 메시지로 상황을 전달했는데 어떻게 사건을 모른다고 할 수 있냐"고 답답해했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김 후보는 자신과 관련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22일 저녁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가 조사를 받으면서 그놈들의 '목을 따다가 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진술했는데 반드시 (기사에도) 똑같이 적어 달라"며 "내 아내는 운전도 못하는데 어떻게 사람을 실어 나를 수 있겠나. 저들이 집단으로 짜서 나를 음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 후보는 "내가 우리 지역에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구민들이 다 알 것"이라며 B씨와 고소인들에 대한 인신모욕을 퍼부었다.

이에 기자가 '왜 시의원은 A, 구의원은 김수한이라고 말하고 다녔느냐'고 묻자 김 후보는 어림잡아 30초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기자가 거듭 묻자 "증거가 있으면 가져와 보라. 지금 당장 현장으로 가자. 정보관들이 (나를 음해하려고) 역정보를 흘리는 거다. 그런 일 없다"고 해명했다.

A후보는 지난 23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적극 해명했다. A후보는 "얼핏 그분(김 후보)과 관련한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지만 내가 그런 일을 부탁하거나 요구한 적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A후보는 "아마 그분이 자의적으로 선거운동과정에서 제 이름을 얘기하고 다녔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 얘기를 지금껏 몰랐고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또 "어차피 (내가 현직의원이니까) 당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뭣 하러 그런 일을 하겠나. 안 그래도 내가 선거할 때 '아버님이나 어머님들 모시고 오면 안 될까'라고 김 후보한테 물은 적이 있는데 '선거법에 걸려서 안 된다'고 했던 분이 김 후보다. 나중에 김 후보가 고발당했다는 얘기를 듣고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어서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것 말고는 모른다. 어디에서 연락 받은 적도 없다. 김 후보와 통화한 적도 없다. 믿어 달라"고 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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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