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골프장, 스크린·해외골프 약진에 ‘휘청’

“본격 시즌인데 다들 어디 간 거야?”

국내 골프장이 좀처럼 기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본격 시즌인 5월이 됐지만 내장객 유치에 골머리를 앓는 골프장이 많다. 소치동계올림픽에 이어 FIFA 브라질월드컵(6~7월), 인천아시안게임(9~10월) 등 스포츠 빅 이벤트가 집중돼 있어 골프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난데없는 세월호 침몰 사태와 6월 지방선거까지 예정돼 있어 올해 골프장업계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5월에도 초저가 해외골프 인기
회원권 시장 연초 소폭 상승세
입회금 반환소송 전문 변호사 사무실 급증
골프장 인수, 모기업 안정성 최우선 고려

전국 대부분 골프장은 시즌에도 그린피 할인 등 다양할 할인행사를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골프텔을 보유한 지방 골프장은 10만원 이하의 1박2일 패키지 상품을 내놓는가하면 회원권 하나에 다양한 골프장에서 동등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콜라보 마케팅’을 전개하는 회원제 골프장도 크게 늘었다. 그야말로 골퍼들의 전성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장 내장객은 늘지 않고 있다. 스크린골프 대중화와 겨울철 반짝 특수에 그쳤던 해외골프 여행사가 봄철 고객 유치 경쟁에 팔을 걷어붙였기 때문이다.

여행사 해외골프 고객 유치 경쟁

특히 스크린골프 인구의 증가가 눈에 띈다. 한국창조산업연구소(소장 고정민)가 지난해 말 발표한 ‘시뮬레이션 골프 산업의 경제적 파급효과 분석’ 자료에 따르면 스크린골프 인구는 2008년 63만명에서 2012년 186만명으로 4년 만에 120만명 이상 증가했다. 골프존은 스크린 골프뿐 아니라 필드 부킹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스크린과 필드를 오가는 폭넓은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해외골프전문 여행사는 초저가 해외골프투어 상품을 선보였다. 그린피와 캐디피, 숙박, 전 일정 식사를 포함해 1박당 3만원 이하의 상품도 적지 않다. 거기에 비시즌 초저가 항공료가 더해져 알뜰골퍼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해외투어전문가들은 “5월은 해외골프 비수기지만 항공료가 저렴한 만큼 5월을 기다렸다 나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현지 골프장도 비수기에 접어들기 때문에 그린피를 무료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 국내 골프장 환경이 좋아졌다고 해도 해외골프만 찾는 사람은 여전히 많은 이유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국내 골프장이 경쟁력을 잃어가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갈수록 가족단위 레저가 확대되고 있지만 골프는 그런 트렌드와 역행한다”며 “특히 회원제 골프장은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지만 관리·운영만 잘하면 오히려 퍼블릭골프장보다 경쟁력이 있다. 더 늦기 전에 마케팅다운 마케팅으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전략이 절실한 때”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골프장 불황에다 체감경기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와중에 2008년 금융위기 직전 체결된 골프장 입회 계약의 만기가 돌아와 회원권 분양대금(입회금)을 둘러싼 분쟁이 늘어나 골프장 입장에선 악재가 ‘엎친 데 덮친 격’이 되고 있다. 골프장 운영업체들이 한꺼번에 몰린 회원들의 탈퇴 신청에 난색을 보이면서 법정공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서울 서초동 법원 주변에는 입회금 반환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 사무실이 우후죽순 영업을 개시하기도 했다.
2008년 3월 충남 서산시 소재 고급 골프장 회원으로 가입하며 1억7천만원을 낸 A씨는 작년 6월 입회금 반환 신청을 했다. 골프장 업체 측은 계약 당시 입회금을 5년 동안 예치했다가 탈퇴할 때 원금만 반환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이 업체는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여러 회원들의 반환 요청이 몰린 상황을 약관상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 사태’에 준하는 것으로 보고 지급정지 결정을 내렸다. A씨는 재판을 거쳐 입회금을 되찾을 수 있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홍이표 부장판사)는 A씨가 골프장 측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A씨에게 1억7000만원 전액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최근 밝혔다. 비슷한 사건의 판결문을 보면 골프장 업체들이 회원을 유지하기 위해 갖가지 변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08년 창립 회원을 모집하고서 2010년 등록한 충북 청원군 소재 한 골프장 업체는 입회 시기를 회원 모집이 아닌 등록 기준으로 해야 한다며 입회금 반환을 미루다가 소송에서 졌다.
경기도 여주시 소재 한 골프장은 약관상 입회금 반환 기간을 ‘서면 요청 후 3년 이내’로 슬쩍 고쳤다. 법원은 “회원들에게 지나치게 불리하다”며 수정된 약관을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런 일이 왕왕 벌어지는 것은 골프장 장사가 잘 안 되는 탓이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는 작년 11월 국내 회원제 골프장의 절반가량이 자본잠식 상태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관련 소송이 급증함에 따라 변호사들도 피해를 본 골프장 회원들을 상대로 ‘영업’에 나섰다. 최근 서초동에선 ‘입회금 반환 전문’을 광고하는 간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 판사는 “골프장 회원이 소송에서 이겨도 업체 측 유동성이 부족하면 실제 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며 “최근 입회금 반환 소송 증가는 불경기의 한 단면”이라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증권사, 금융사, 건설사 등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회원권을 팔아치우기 시작하면서 회원권 시장은 침체의 늪에 빠졌다.

국내 회원제 절반 자본잠식 상태

게다가 지난해 말 수원지방법원이 골프클럽Q안성의 회생계획안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회원들의 입회금 가운데 17%만 돌려주라고 결정하고 가산노블리제CC는 퍼블릭으로 전환했다가 매각돼 입회금을 한 푼도 건지지 못하게 되는 사태가 빚어지면서 회원권시장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6년째 속절없이 하락한 회원권 = 회원권 시장의 황금기는 2006~2008년이었다. 상당수 골프장이 이 기간에 역대 최고 시세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6년째 시장 침체가 이어지면서 현재는 최고가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소위 ‘황제 회원권’으로 불리던 남부CC는 2008년 6월 21억5000만원으로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지만 현재 8억원으로 62.8% 급락했다.
이스트밸리CC와 가평베네스트GC, 남촌CC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가평베네스트는 2008년 19억3000만원을 찍은 뒤 현재 7억6000만원으로 60.63% 내렸다. 16억~17억원대였던 이스트밸리와 남촌은 각각 6억2000만원, 5억9000만원으로 하락했다.
서원밸리CC는 2008년 7월 9억7000만원을 기록했으나 현재 1억7000만원으로 8억원이 빠졌다. 송추CC도 2008년 3월 9억3000만원을 찍은 뒤 2억9600만원으로 68.2% 하락했다. 9억원까지 갔던 아시아나CC도 2억4000만원으로 내려갔다.

▲‘삼성 회원권’ 얼마나 오를까 = 레이크사이드 서코스(18홀)의 회원권 가격은 2000년 4억 8000만원에서 2003년 6억8600만원으로 오른 뒤 2006년 10억6000만원을 기록했다. 2008년에는 역대 최고가인 13억원대를 찍었다.
이후 하락세로 돌아서 2010년 8억9000만원으로 떨어졌고 2011년에는 2003년 시세인 6억6000만원으로 급락했다. 2012년 5월부터 레이크사이드의 공개 매각이 진행되면서도 하락세는 멈추지 않아 2012년 4억1600만원으로 추락했고 지난해에는 3억4000만원, 현재는 3억원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삼성의 인수로 레이크사이드 회원권 가격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회원권 시장에는 입회금 반환이 최고의 화두로 등장해 모기업의 안정성이 최우선 고려 대상으로 부상했다. 국내 최고의 기업 삼성이 보장하는 회원권이라는 점에서 레이크사이드의 인기는 치솟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레이크사이드의 회원권 가격은 당연히 상승하리라 예상한다”며 “삼성에서 바로 시설 투자를 진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골프장 간의 시너지 효과를 고려한 사업이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삼성 관련 회원권은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회원권 시장’에도 긍정적인 영향 = 회원권 시장은 연초에 소폭 상승세를 보였다. 중가 회원권보다는 고가와 저가 위주로 매수세가 몰리면서 호가가 올라갔다. 시장은 삼성의 레이크사이드 인수가 상승기폭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전문가들은 “삼성이라는 후광이 골프장 인수합병(M&A), 회원권 거래 및 분양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장기간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골프장 업계에는 분명 호재”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악재가 너무 많다는 시각도 있다. 한 회원권거래소 관계자는 “입회금 반환 폭탄 등 기존의 악재에 여전히 정부가 골프를 사치업종으로 보고 있는 데다 기업들이 골프 자제령을 내리고 있어 회원권 가격이 상승하기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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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