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행복을 그리는 서양화가 엄옥경

"모란과 연꽃을 보세요, 위로와 치유가 된답니다"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행복을 위해서는 힘들었던 시간의 고리를 먼저 끊어야 합니다." 한국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화려하면서도 깊이 있는 작품 세계를 선보였던 서양화가 엄옥경 작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평단과 미술 애호가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던 엄 작가는 최근 서울에서 귀국전시를 가졌다. 사회를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그의 작품은 관객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언어이자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언어다. 멀게만 느껴졌던 행복은 오 작가의 작품 안에서 어느덧 무지개를 꽃피우고 있었다.

엄옥경 작가는 한국의 민화라는 전통 주제를 서양화의 재료를 통해 한 화면에 드러내는 일종의 융합(컨버전스)예술을 선보이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각기 다른 이미지들은 동일한 공간에 어우러져 새로운 조형적 의미를 생성한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노스탤지어에 가깝다. 파편화된 기억들이 하나의 심상으로 모여 관객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이다.

오방색과 민화 차용

"제 그림 안에 민화를 들여 놓게 된 계기를 설명하자면요. 전 할머니 품에서 자랐습니다. 할머님은 상당히 검소한 분이셨는데 여간해서는 낡은 물건도 잘 버리는 일이 없으셨어요. 그러다보니 제게는 우리 옛 물건에 대한 향수가 진하게 남아있습니다. 예쁜 자수가 놓인 규방공예나 세월의 때가 고스란히 묻은 소품·가구 등이 떠오르는 거죠."

미술계에서는 종종 엄 작가를 이해할 때 팝아트의 정의를 차용하고는 한다. 실제로 엄 작가는 민화와 팝아트의 공통점을 나열하며 '대중예술'이라는 말을 썼다. 대중은 팝아트의 주된 소비자이며 민화 역시 마찬가지다. 엄 작가의 작품이 한정된 컬렉터가 아닌 보다 넓은 의미의 관객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입체나 원근, 비례를 무시한 구도나 형태, 이것들은 민화와 팝아트의 공통분모라고 볼 수 있는데요. 제 작품에도 일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맞겠죠. 그런데 앞서 말씀하신 동서양의 장르를 결합했다는 말은 사실 컨버전스의 개념입니다. '오방색과 민화를 차용한 (서양)회화'가 제 연구 주제였기도 하고요. 저는 그림에서 전통색채인 오방색을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색채가 화려하고 장식성이 높은 것이 특징이죠. 또 저는 민화에서 꽃과 새를 그린 화조도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모란과 연꽃을 많이 그립니다. 모란과 연꽃은 위로와 치유 그리고 소통과 나눔을 통한 행복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겠어요."


엄 작가는 모란과 관련한 특별한 기억을 갖고 있다. 엄 작가에게 모란은 '어머니의 꽃'이다. 그는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찾던 중 모란자수가 놓인 천에 담겨 있는 생모의 사진을 발견했다. 얼마나 울었을까. 그 뒤로 모란은 엄 작가에게 치유와 용서, 나아가 행복의 꽃이 되었다.

전통 주제를 서양화 재료로 표현 눈길
왕성한 대내외 활동…중국 평단서 반향

"처음에는 모란이라는 대상에만 집중해서 작업을 했는데요. 차츰 스토리텔링이 됐어요. 북경에서 그린 그림들이 이러한 변화를 두드러지게 나타냈고죠. 주로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사소한 풍경에 모란이 등장해요. 실제로는 허리춤까지 자라는 작은 식물인데 일부러 커다란 상상의 나무에 주렁주렁 피어나게 했죠. 모란이 가진 상징성, 즉 행복의 이미지를 극대화하려고 상상 속의 식물을 만든 겁니다. 전 '모란나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요. 행복을 기원하는 강한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모란나무는 뿌리까지 보이게 그리고 있습니다."

엄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본 관객들이 기분이 밝아진다거나, 그림에 붙여진 제목이 재미있다는 등의 반응을 보일 때 행복을 느낀다. 엄 작가는 얼마 전 열린 개인전에서 만난 20대 후반의 관객을 떠올렸다.
 

"박사까지 마친 재원으로 참 예쁜 아가씨였어요. 그런데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았죠. 전시장에 바람을 쐬러 왔다고 했는데 저와 환담을 하다가 이런 말을 했어요. '죽을 것 같았는데 그림을 보고 나니 기분이 나아졌다'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봐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절대 붓을 놓지 않을 거다'라고 다짐했습니다."

화려한 색감

지난 2008년 가족과 함께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갔던 그는 오직 작품만을 갖고 중국 평단의 커다란 반향을 이끌었다. 엄 작가의 작품은 중국 미술의 메카라 불리는 베이징798예술구의 화랑에 걸렸고, 상하이·베이징 옥션 등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다. 왕성한 대외 활동으로 중국 내에서 한국 미술계의 이름을 드높였던 엄 작가는 이제 서울에 머무르며 또 다른 도약을 준비 중이다. 다가올 11월 서울 명동 세종호텔의 세종갤러리에서 열리게 될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 엄 작가. 그의 특별한 행보에 남다른 시선이 쏠린다.

 


<angeli@ilyosisa.co.kr>

 

[엄옥경 작가는?]
 
▲홍익대 미술대학 및 동대학원 회화전공
▲개인전 21회 인사아트센터 1층 본전시장 幸福之中(2012, 서울) 등
▲KIAF, SOAF, Art EXPO YORK, Ron 등 국내외 아트페어 다수
▲그룹전 서울·베이징·상하이·개성공단 등 100회 이상
▲고등학교 미술교과서 작품 수록(미술창작/교학사 P39)
▲농협·국민은행·LG생활건강·한국투자금융지주 등 아트꼴레보레이션
▲대한민국 글로벌 미술대전 전체대상 등 수상 다수
▲북한 개성공단 관리위원회. 국립국악원, KOEX 등 작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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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