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기사회생한 남재준

버틴 원장님…정권 약점 쥐고 있나?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국정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해 남재준 국정원장의 거취가 초미의 관심으로 떠올랐다. 아직까지는 유임에 무게가 실리고 있지만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기 때문에 언제 다시 해임론이 고개를 들지 알 수 없다.

이미 야권에서는 특검 카드를 꺼내드는 등 총력전을 선언한 상황이다. 반면 여권에서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으로 주류·비주류 간 온도차가 감지된다. 얽히고설킨 정치권의 이해관계는 또 다른 '대형사건'을 예고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괴물'이 된 국정원이 있다. 정가에서는 "국정원을 무너뜨리려면 청와대를 먼저 무너뜨려야 할 것"이라는 뼈 있는 말이 나온다. 이렇듯 박근혜정부의 '중추'는 지금도 꼿꼿하다.

국정원의 간첩사건 증거조작 수사결 과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사과했다. 지난 15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박 대통령은 "유감스럽게도 국정원의 잘못된 관행과 철저하지 못한 관리체계의 허점이 드러나면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된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사과
남재준 꼿꼿

비록 공개석상은 아니었지만 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했다. 이는 박근혜정부 출범 후 4번째 있는 일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정부조직 개편안과 관련한 대국민담화 발표 이후 윤창중 성추문 사태, 기초연금 공약후퇴 논란 당시 사과의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태풍의 한 가운데 인물이 살아남은 사례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유일하다. 앞서 정부조직 개편안과 관련한 마찰이 있었을 때는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사퇴했다. 또 윤창중 성추문 사태 때는 윤창중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옷을 벗었다. 아울러 기초연금 공약후퇴 논란 때는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청와대와 각을 세우면서 물러났다.


이들 모두는 '청와대의 의지와 동떨어진 행동으로 권력에서 멀어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 남 원장만큼은 예외적으로 면죄부가 떨어졌다.

지난달 10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검찰 수사 결과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실제 수사 결과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다. 국정원이 간첩 행위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중국 공문서를 위조하는 등 범법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탄로 난 것이다.

검찰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한 후 서천호 국정원 제2차장은 사표를 제출했고 청와대는 지체 없이 사표를 수리했다. 그리고 다음날 박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법원 선고가 있기 전 유감을 표명했다. 이는 청와대가 서둘러 사과하고 적절한 선에서 책임을 따지는 게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박 대통령 입장에서도 자신의 임기 내에 일어난 일인 만큼 먼발치에서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관측됐다.

청와대 차원
사표 반려한 듯

그러나 정치권 안팎에서 요구된 '남재준 해임'은 수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논란거리다. 거듭된 실책에도 박 대통령은 남 원장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청와대 측에서 가이드라인을 정하자 남 원장도 거침없었다. 그는 이날 증거조작 의혹이 불거진 후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A4 용지 1장 남짓한 대국민사과문을 들고 국정원 본원에서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박 대통령의 사과 발언보다 1시간 앞선 시각, 남 원장은 "증거서류조작 혐의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된 것을 머리 숙여 사과한다"며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국정원장으로서 참담하고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남 원장이 썼던 '뼈를 깎는 개혁', '환골탈태' 등의 표현을 박 대통령도 똑같이 사용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의전 구조상 표현이 중첩된 것을 미뤄봤을 때 청와대와 국정원의 사전 교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내부적으로 남 원장의 유임을 결정한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의중이 남 원장에게 전달됐고, 이를 확인한 남 원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시나리오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왜 정치적인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남 원장을 감싸고도는 것일까.

남 원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전사'라고 부른다. 국정원장에 취임한 후 "나는 전사가 될 각오가 돼 있다"고 말한 그다. 남 원장은 쉽사리 남들에게 고개를 숙이거나 아부를 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오히려 남 원장은 청렴하고 강직한 군인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나친 원칙주의 탓에 주위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한다는 소문이 적지 않다. 주변에 적도 많다고 한다. 참여정부 시절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던 그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등을 돌리면서 종국에는 계급장을 떼야했다.

지난 2004년 있었던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남 원장은 육군 장성 진급비리 괴문서 사건과 관련한 의혹이 제기되자 전역지원서 제출로 맞섰다. 직을 걸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 것이다. 당시 노 대통령은 여러 사정을 고려해 남 원장의 사표를 반려했다.

'간첩사건 증거조작' 사실상 면죄부…경질론 선긋기
청와대-국정원 기자회견 앞서 사전 교감설 '솔솔'

그러나 남 원장은 노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군 수뇌부들을 초청한 골프대회에는 아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사석에서 참여정부의 국방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국방부 문민화와 군 검찰 독립 등의 사안을 성토한 이른바 '정중부의 난'에 남 원장이 연루되기도 했다. 물론 남 원장은 해명 과정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남 원장은 육군 장성 진급비리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자 "책임을 진다"며 군을 떠났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자괴감을 갖는다"던 그였다. 이로부터 10년 뒤 남 원장은 똑같은 상황에 직면했다. 하지만 남 원장의 선택은 10년 전 과거와 달랐다. 지금 그는 전방위 사퇴압박을 정면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남 원장의 '노욕'인 것일까.

정권 지킨 공신
토사구팽 어려워

복수 관계자는 남 원장이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남 원장은 증거조작 파문이 불거졌을 때부터 거취 문제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수사결과 발표 직후에도 청와대 쪽에 사의 표명을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남 원장을 재신임했다.

남 원장의 유임 배경을 놓고 여러 가지 설이 불거졌다. 가장 유력한 설은 '공신설'이다. "정권에 큰 공을 세웠는데 어떻게 취임 2년 차에 토사구팽을 할 수 있겠냐"는 설명이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16일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남 원장이 (과도 있지만) 그동안 공도 많았다"며 "임기를 잘 마쳤으면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남 원장은 박근혜정부가 중대한 기로에 설 때마다 파격 행보로 청와대를 도왔다.

일례로 국정원은 지난해 국가기밀문서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언론과 정치권에 공개했다. 당시 여권은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로 수세에 몰려 있었다. 이를 남 원장이 NLL 국면으로 단박에 전환한 것이다.


또 남 원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진행과정에서 부하 직원에게 진술 거부를 지시하거나 출석에 불응토록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정상적인 수사를 방해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국정원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뒷조사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된다. 정보를 수집한 컨트롤타워는 청와대였지만 국정원이 외곽에서 지원했다는 게 정설이다. 박근혜정부의 눈엣가시였던 채 전 총장을 쫓아낸 1등공신이 남 원장인 것이다.

더불어 남 원장은 이석기 진보당 의원이 연루된 이른바 RO 사건으로 공안몰이에 성공했다. 만약 이번 유우성 사건까지 랑데부가 됐다면 야권의 지방선거 패배는 한층 가시화될 터였다. 증거조작 파문은 남 원장 입장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였겠지만 그간 국정원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돼 왔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였다.

관련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정보에 의존한 통치를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직 청와대 출신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정보를 컨트롤하지 못하고 보고받은 정보에 좌지우지 될 때 공무원들의 사기는 저하되고 정상적인 업무 처리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입장에서 정보를 쥐고 있으면 공무원들을 다루기 쉽다. 정적이 되면 언제든 치명적인 정보로 상대를 쳐낼 수 있는 까닭이다. 채 전 총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공무원들은 '윗선'의 눈치를 보게 된다. 또 정보의 맛을 본 대통령은 조직 장악에 필요한 정보를 갈구하게 된다. 이럴 때 가장 신뢰받는 기관이 정보를 다루는 국정원이란 것이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워낙 의심이 많은 스타일이다보니 믿을 수 있는 사람만 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VIP(대통령)와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춘 남 원장을 해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오랜 청와대 생활로 '정보가 갖고 있는 힘'을 알고 있는 박 대통령 입장에서 핵심 권력기관을 믿지 못할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지 않느냐는 말이다.


때문에 오히려 국정원 측에서 박 대통령과 관련한 정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남 원장과 자칫 틀어졌을 경우 남 원장이 노 대통령을 대화록 공개로 공격했던 것처럼 박 대통령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겠냐는 추측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둘의 관계는 원만한 것으로 보인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 원 장에 대한 박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은 충성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코드가 달랐던 '노통'과는 달리 '박통'과는 합이 잘 맞는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지방선거 앞두고
공안사건 터질까

올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형 공안사건'이 터질 것이라는 관측도 남 원장의 유임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아직 정확한 실체는 나오지 않았지만 RO 사건에 버금가는 파괴력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복수 사정기관 관계자는 "서울중앙지검과 기무사가 국정원을 돕는 형태로 수사팀을 꾸려 시기를 조율 중"이라고 확인했다. 피의사실이 공표되면 또 한 번의 '공안 광풍'이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수사 책임자인 남 원장의 역할이 누구보다 중요한 이유다.

지난 한 해 동안 남 원장은 정치권을 들었다 놨다 했다. 여의도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올 초 기자와 만나 "정치를 남재준이 다 했다"고 했을 정도다. '남재준 해임론'도 한 주 사이 쏙 들어갔다. 키를 쥐고 있는 국회 상임위 개최도 물 건너갔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박근혜정부의 호위무사인 남 원장. 호위무사의 죽음은 곧 '높은 분'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야권은 어찌 보면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