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허재호 수수께끼' 키맨들

'검은돈 가득' 판도라 상자 열린다

[일요시사=사회팀] 일당 5억원의 사나이.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224억원(최근 허 전 회장은 벌금 50억원을 선납하고, 남은 벌금에 대한 납부계획을 밝혔다)이나 되는 벌금을 납부하지 않고 "돈이 없다"며 버티고 있는 꼴이 꼭 '그분'과 닮았다. 그렇지만 "29만원 밖에 없다"던 할아버지도 끝내는 꼬불친 돈을 토해냈다. 여론의 힘이었다. 이제 관심은 '황제 노역' 대신 추징이 가능한지에 쏠린다. 차명으로 은닉된 재산, 그를 비호한 정관계 스폰서가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통칭 '허재호 의혹'의 핵심 키맨들을 꼽아봤다.

지난 2007년 <일요시사>는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두 얼굴을 도려낸 적이 있다. 당시 <일요시사>는 대주그룹의 기형적인 성장사와 족벌경영 폐해, 허 전 회장이 쥐락펴락한 법조계 인맥, 풀리지 않는 뉴질랜드 미스터리 등을 연속 시리즈로 고발했다. 특히 압류 대비용 은닉 재산을 추적하는가 하면 여성편력 등 위험한 사생활도 과감히 파헤쳤다.

실제 허 전 회장은 조세포탈과 횡령 혐의로 기소돼 지난 2010년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선고받았다. 2011년 대법원은 허 전 회장에 대한 벌금형을 확정하며 그의 죗값을 물었다. 그러나 허 전 회장은 내라는 벌금은 내지 않고 뉴질랜드로 도피했다.

해외 재산도피
도운 인물은?

뉴질랜드에서 허 전 회장은 황제마냥 호화생활을 했다. 초고급호텔로 지인들을 초청해 파티를 여는가 하면 입버릇처럼 "돈이 없다"면서도 카지노는 꼭 들렀다. 카지노 VIP룸에서 베팅을 할 때면 어디서 났는지 없던 돈이 생겼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하루 3000달러 이상을 꾸준히 쓴 것으로 추정된다. 뉴질랜드 현지 언론은 "허 전 회장이 80억원대 저택을 샀다"고도 보도했다. 세계일주를 위한 호화 요트는 덤이었다. 그러나 허 전 회장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빼돌린 재산이 없다"며 관련한 의혹을 부인했다.

허 전 회장이 '5일 노역'으로 탕감 받은 30억원(체포됐던 1일도 노역에 포함)을 제외하고 남은 벌금은 224억원(최근 허 전 회장은 벌금 50억원을 선납하고, 남은 벌금에 대한 납부계획을 밝혔다)이다. 여기에 국세 136억원, 지방세 24억원도 추징 대상이다. 또 금융권 빚 233억원은 언젠가 갚아야 할 부채다.


허 전 회장의 주요 재산 목록은 다음과 같다. 동양저축은행 땅 100여평, 오포 땅 2만여평, 전남·광주 일대 임야 13곳, 압수한 미술품 및 도자기 141점. 이밖에도 관련 재산을 모두 처분하면 최소한 벌금만큼은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추정가는 300억∼500억원이다.

하지만 공매를 했을 때 유찰이 되면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밀린 세금을 받으려고 세무당국 등에서 근저당을 설정해 놓은 것도 변수다. 추징 작업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지난해 있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 환수 때처럼 허재호 일가에게도 강도 높은 추징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관건은 허 전 회장이 빼돌린 차명 재산의 흐름을 파악하는 일. 자연스레 의혹의 눈초리는 그의 측근들에게 쏠린다.

허재호 차명재산
문어발 관리됐다

지난 3일 검찰은 허 전 회장의 차명재산 의혹과 관련해 명의를 빌려준 것으로 알려진 10여명을 소환조사했다고 밝혔다. 사건을 맡은 광주지검 특수부(부장 김종범)는 지난 2002년께부터 허 전 회장의 차명 주식을 보유했던 것으로 전해진 대주그룹 고문변호사 유모씨와 이를 폭로한 하청업체 대표 백모씨 등을 조사했다고 알렸다. 관련자들은 검찰조사에서 "명의를 빌려줬다"며 혐의를 대부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백씨는 허 전 회장을 협박해 5억원을 받아낸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 "허 전 회장이 다른 사람 이름으로 수십억원 상당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그동안 백씨는 허 전 회장의 '금고지기' 역할을 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의 설명을 종합하면 백씨는 전직 농협 직원으로 1980년대부터 허 전 회장과 친분을 맺었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이용, 허 전 회장의 재산형성에 상당한 도움을 준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백씨는 농협에서 나온 후 대주건설과 관련한 하청업체를 20년 가까이 운영했다.


재산은닉 의혹 눈덩이…핵심 주변인 누구?
금고지기 백씨 구속 차명재산 윤곽 드러나

둘의 관계는 2000년대 후반부터 급속히 악화됐다고 한다. 허 전 회장이 재판을 받고 있던 2010∼2011년 사이 백씨는 허 전 회장 측을 협박해 모두 5억원을 갈취한 혐의로 지난달 구속됐다. 당시 허 전 회장은 백씨로부터 "국외 재산 반출과 차명 주식거래 등에 관한 사실을 알리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백씨는 "과거 대주그룹 계열사였던 대한화재 주식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제3자 명의로 맡겨 뒀던 회사 주식을 허 전 회장이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과거 허 전 회장은 2곳의 계열사와 함께 대한화재 주식 56%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허 전 회장은 경영난이 오자 해당 주식 전량을 3500억원을 받고 롯데그룹에 매각했다. 만약 백씨의 주장대로 허 전 회장이 빼돌린 주식을 거래에 이용했다면 그에겐 횡령 혐의가 씌워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백씨가 허 전 회장의 재산관리인 자격으로 재산 은닉에 깊숙이 관여한 만큼 불법적인 외환거래나 부동산 매입이 있었는지 등을 따지고 있다. 또 검찰은 허 전 회장 부부와 대주그룹 계열사들이 뉴질랜드 현지 법인과 거래하는 과정에서 250만달러(한화 약 26억원)를 비밀리에 주고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허 전 회장과 관련한 자금 흐름을 추적하던 금감원은 이 같은 정황을 포착하고 증빙 자료를 검찰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허 전 회장은 뉴질랜드에 KNC건설 등 10여개 법인을 설립하면서 관계 당국에 알리지 않는 등 관련법을 위반했다. 이들 회사는 대부분 허재호 일가가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거나 출자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띄는 이름이 있다. 허재호 일가가 아닌데도 등기이사를 꿰찬 이모씨다.

이씨는 뉴질랜드 교민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물이다. 민주평통 뉴질랜드 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해 KNC건설의 새로운 CEO로 자리했다. KNC는 대주그룹의 후신이며 주력회사 KNC건설의 경우 허 전 회장의 아들로 알려진 '스캇허'씨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허 전 회장이 이씨에게 부탁해 일가의 재산관리를 맡겼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비슷한 시기 KNC건설이 뉴질랜드에서 대규모 아파트 사업을 벌였다는 사실은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한다. 또 이씨는 KNC글로벌매니지먼트 이사를 겸임했는데 같은 회사 대주주(지분 85%)는 스캇허씨로 확인된다. 여러모로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따라서 스캇허씨를 대리인으로 내세운 허 전 회장과 '조력자' 이씨의 특별한 관계는 허 전 회장의 호화 도피생활에 상당부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씨는 자신이 등기이사로 있던 KNC엔터테인먼트 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허 전 회장의 차명재산 의혹이 불거진 직후다. 이밖에도 허 전 회장 측근들이 다수 이사로 포진한 '페이퍼컴퍼니'는 결국 허 전 회장의 자금 세탁을 위한 창구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크다.

허재호 친인척
뭉칫돈 주고받고

정황상 백씨와 이씨는 숨겨진 키맨이다. 배후에 있던 이들과 달리 허 전 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황모씨는 핵심 키맨으로 부각되며 사정당국의 타깃이 되고 있다. 황씨는 허 전 회장의 차명 재산으로 강하게 의심받는 담양다이너스티(골프장)를 운영하고 있다. 이 골프장을 소유한 법인 HH레저는 황씨가 대주주다. 그는 HH레저 지분 50%를 갖고 있다.

앞선 검찰 조사에서 황씨는 "담양 골프장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팔아서라도 벌금을 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HH레저의 총자산은 800여억원으로 파악된다. 이중 400억원 가량이 골프장 회원권 입회 보증금이다. 보증금과 같은 유형자산을 담보로 거액을 대출받겠다는 건 위험성이 높아 은행 입장에서 대출을 거부할 확률이 높다. 골프장 매각 역시 단 시간 내에 이뤄질 리 만무하다.


그런데 허 전 회장은 해당 골프장 입회 보증금 명목으로 40여억원 규모의 채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한 매체는 보도했다. 또 HH레저에 무이자로 빌려준 단기채권이 100억여원이라는 보고서도 있다. 즉 허 전 회장이 갖고 있는 140억원 상당의 채권을 현금화하는 게 순서임에도 담보대출이나 매각을 운운하는 건 눈속임이란 지적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황씨가 뉴질랜드에 소유한 30억원대 아파트가 허 전 회장의 차명재산이란 정황도 드러났다. 이 아파트는 거래 과정에서 허 전 회장이 세운 회사(페이퍼컴퍼니)가 최초 매입하고, 회사 이름을 바꾼 뒤, 다시 회사를 황씨에게 넘기는 복잡한 수법이 가동됐다. 다시 말해 허 전 회장이 빼돌린 돈이 뉴질랜드로 들어왔고, 아파트를 통해. 다시 황씨에게 전달된 것이다. 징세 회피나 세금 탈루 등 악의적인 의도도 엿보인다. 하지만 황씨는 묵묵부답이다.

뉴질랜드 실세 주목 '조력자' 의심
친인척 총동원된 자금 세탁 의혹도

황씨의 곁에는 그의 형부(황씨 언니 A씨의 남편) 차모씨가 있다. 담양다이너스티 대표이사로 활동한 그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명품가구 전문점 '뮤제오'를 운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5년 문을 연 뮤제오는 유럽에서 수입한 고급 가구만을 취급했다고 한다. 당시 임대계약자는 차씨, 하지만 여러 정황상 황씨가 이 회사 실소유주란 소문이 파다했다. 당시 허 전 회장 측은 "뮤제오와 황씨는 관련이 없다"며 날을 세웠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뮤제오 지분은 HH레저 관련사인 HH개발이 100% 보유하고 있다. 뮤제오의 대표이사는 허모씨, 등기이사는 황씨다. 허씨는 허 전 회장과 황씨 사이에 태어난 맏이로 알려져 있다. 뉴질랜드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허씨는 앞서 밝힌 스캇허씨와 다른 인물로 현재 스캇허씨는 대학생이라고 전해진다.

허 전 회장의 조카인 허숙 전 대주건설 상무는 황씨와 공동 명의로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있는 주차장 부지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가 270억원으로 추정되는 이 땅은 2008년 허 전 회장이 90억원을 들여 매입한 땅이다. 허 전 상무는 최근 빅토리아타워개발로 이름을 바꾼 대주하우징의 이사로 선임됐고, KNC엔터테인먼트 이사에선 '조력자' 이씨와 함께 동반 사퇴했다.


대주하우징은 뉴질랜드 현지 분양 등을 담당하는 핵심 계열사로 광범위한 '허재호 해외 은닉 부동산'의 뿌리로 의심받고 있다. 대주하우징은 법인 유토피아타워가 대주주(지분 76%)인데 유토피아타워는 허재호 부부가 100%의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다. 즉 허 전 상무는 허재호 부부의 대리인으로 부동산을 관리하고 있는 셈이다.
 

대주건설에서 일했던 황씨의 언니 A씨도 P건설을 운영하며 자금 세탁에 관여했는지 관심이다. P건설은 광주 금남로에 있는 건물관리업체로 황씨 자매가 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회사는 HH개발과 관계회사임에도 감사보고서상 이를 명시하지 않아 의문을 자아낸다.

허 전 회장 측은 주로 HH개발을 통해 개인자금을 다른 곳으로 분산했다. 일각에선 HH개발을 허 전 회장의 개인금고로 보고 있다. 그만한 이유도 있다.

HH개발의 자금 흐름을 살펴보면 허 전 회장은 2007년 138억원을 HH개발에 빌려주고, 34억원을 상환 받았다. 2008년에는 회사에 맡긴 채권 466억원 중 263억원을 한꺼번에 돌려받았다. HH개발의 총 자산규모가 403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한 눈에 봐도 이상한 거래다. 이후에도 허 전 회장은 HH개발에서 수십억원의 현금을 빼낸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HH개발로 흘러간 돈이 허 전 회장의 차명재산으로 둔갑해 빠져 나간 셈이다. 

쏟아지는 의혹
숨겼나 막았나

허 전 회장의 동생 B씨는 지난 2월 근로기준법 위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항소 중이다. B씨는 기아자동차 직원으로 취업시켜 줄 것처럼 속여 2명으로부터 3200만원을 절취한 혐의로 징역 8월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그는 얼마 후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간 B씨는 법조계에 쌓아 놓은 인맥이 비교적 탄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그는 2000년대 중반 법조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된 '법구회'의 스폰서로 소개된 바 있다. B씨는 법구회에서 수년간 총무역할을 하며 판사들의 차명 골프예약을 하고 식사비 등을 내주며 친목을 쌓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마당발로 알려진 B씨는 대주그룹 성장과정에서 대외업무를 담당했다고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 2006년 허재호 일가의 횡령·탈세 및 분양 비리 의혹과 관련한 투서가 접수됐을 때 B씨가 부회장직에서 물러났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미리 수사기관과 각본을 맞춘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아직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약 정관계 로비가 있었다면 키맨은 B씨가 될 것이란 게 주된 예측이다. 다만 검찰 입장에서 허 전 회장의 탈세 및 배임 등에 대한 재수사가 시작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이미 무혐의로 종결된 사건을 다시 파고드는 것도 부담이지만 자신들의 허물을 들춰야 하기 때문에 '환부'만 도려내는 수준에서 수사가 마무리 될 것이란 전망이다. 검찰 수뇌부 역시 "이번 수사는 조속한 벌금 집행을 위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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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