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허재호 수수께끼' 키맨들

'검은돈 가득' 판도라 상자 열린다

[일요시사=사회팀] 일당 5억원의 사나이.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224억원(최근 허 전 회장은 벌금 50억원을 선납하고, 남은 벌금에 대한 납부계획을 밝혔다)이나 되는 벌금을 납부하지 않고 "돈이 없다"며 버티고 있는 꼴이 꼭 '그분'과 닮았다. 그렇지만 "29만원 밖에 없다"던 할아버지도 끝내는 꼬불친 돈을 토해냈다. 여론의 힘이었다. 이제 관심은 '황제 노역' 대신 추징이 가능한지에 쏠린다. 차명으로 은닉된 재산, 그를 비호한 정관계 스폰서가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통칭 '허재호 의혹'의 핵심 키맨들을 꼽아봤다.

지난 2007년 <일요시사>는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두 얼굴을 도려낸 적이 있다. 당시 <일요시사>는 대주그룹의 기형적인 성장사와 족벌경영 폐해, 허 전 회장이 쥐락펴락한 법조계 인맥, 풀리지 않는 뉴질랜드 미스터리 등을 연속 시리즈로 고발했다. 특히 압류 대비용 은닉 재산을 추적하는가 하면 여성편력 등 위험한 사생활도 과감히 파헤쳤다.

실제 허 전 회장은 조세포탈과 횡령 혐의로 기소돼 지난 2010년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선고받았다. 2011년 대법원은 허 전 회장에 대한 벌금형을 확정하며 그의 죗값을 물었다. 그러나 허 전 회장은 내라는 벌금은 내지 않고 뉴질랜드로 도피했다.

해외 재산도피
도운 인물은?

뉴질랜드에서 허 전 회장은 황제마냥 호화생활을 했다. 초고급호텔로 지인들을 초청해 파티를 여는가 하면 입버릇처럼 "돈이 없다"면서도 카지노는 꼭 들렀다. 카지노 VIP룸에서 베팅을 할 때면 어디서 났는지 없던 돈이 생겼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하루 3000달러 이상을 꾸준히 쓴 것으로 추정된다. 뉴질랜드 현지 언론은 "허 전 회장이 80억원대 저택을 샀다"고도 보도했다. 세계일주를 위한 호화 요트는 덤이었다. 그러나 허 전 회장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빼돌린 재산이 없다"며 관련한 의혹을 부인했다.

허 전 회장이 '5일 노역'으로 탕감 받은 30억원(체포됐던 1일도 노역에 포함)을 제외하고 남은 벌금은 224억원(최근 허 전 회장은 벌금 50억원을 선납하고, 남은 벌금에 대한 납부계획을 밝혔다)이다. 여기에 국세 136억원, 지방세 24억원도 추징 대상이다. 또 금융권 빚 233억원은 언젠가 갚아야 할 부채다.


허 전 회장의 주요 재산 목록은 다음과 같다. 동양저축은행 땅 100여평, 오포 땅 2만여평, 전남·광주 일대 임야 13곳, 압수한 미술품 및 도자기 141점. 이밖에도 관련 재산을 모두 처분하면 최소한 벌금만큼은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추정가는 300억∼500억원이다.

하지만 공매를 했을 때 유찰이 되면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밀린 세금을 받으려고 세무당국 등에서 근저당을 설정해 놓은 것도 변수다. 추징 작업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지난해 있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 환수 때처럼 허재호 일가에게도 강도 높은 추징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관건은 허 전 회장이 빼돌린 차명 재산의 흐름을 파악하는 일. 자연스레 의혹의 눈초리는 그의 측근들에게 쏠린다.

허재호 차명재산
문어발 관리됐다

지난 3일 검찰은 허 전 회장의 차명재산 의혹과 관련해 명의를 빌려준 것으로 알려진 10여명을 소환조사했다고 밝혔다. 사건을 맡은 광주지검 특수부(부장 김종범)는 지난 2002년께부터 허 전 회장의 차명 주식을 보유했던 것으로 전해진 대주그룹 고문변호사 유모씨와 이를 폭로한 하청업체 대표 백모씨 등을 조사했다고 알렸다. 관련자들은 검찰조사에서 "명의를 빌려줬다"며 혐의를 대부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백씨는 허 전 회장을 협박해 5억원을 받아낸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 "허 전 회장이 다른 사람 이름으로 수십억원 상당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그동안 백씨는 허 전 회장의 '금고지기' 역할을 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의 설명을 종합하면 백씨는 전직 농협 직원으로 1980년대부터 허 전 회장과 친분을 맺었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이용, 허 전 회장의 재산형성에 상당한 도움을 준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백씨는 농협에서 나온 후 대주건설과 관련한 하청업체를 20년 가까이 운영했다.


재산은닉 의혹 눈덩이…핵심 주변인 누구?
금고지기 백씨 구속 차명재산 윤곽 드러나

둘의 관계는 2000년대 후반부터 급속히 악화됐다고 한다. 허 전 회장이 재판을 받고 있던 2010∼2011년 사이 백씨는 허 전 회장 측을 협박해 모두 5억원을 갈취한 혐의로 지난달 구속됐다. 당시 허 전 회장은 백씨로부터 "국외 재산 반출과 차명 주식거래 등에 관한 사실을 알리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백씨는 "과거 대주그룹 계열사였던 대한화재 주식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제3자 명의로 맡겨 뒀던 회사 주식을 허 전 회장이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과거 허 전 회장은 2곳의 계열사와 함께 대한화재 주식 56%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허 전 회장은 경영난이 오자 해당 주식 전량을 3500억원을 받고 롯데그룹에 매각했다. 만약 백씨의 주장대로 허 전 회장이 빼돌린 주식을 거래에 이용했다면 그에겐 횡령 혐의가 씌워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백씨가 허 전 회장의 재산관리인 자격으로 재산 은닉에 깊숙이 관여한 만큼 불법적인 외환거래나 부동산 매입이 있었는지 등을 따지고 있다. 또 검찰은 허 전 회장 부부와 대주그룹 계열사들이 뉴질랜드 현지 법인과 거래하는 과정에서 250만달러(한화 약 26억원)를 비밀리에 주고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허 전 회장과 관련한 자금 흐름을 추적하던 금감원은 이 같은 정황을 포착하고 증빙 자료를 검찰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허 전 회장은 뉴질랜드에 KNC건설 등 10여개 법인을 설립하면서 관계 당국에 알리지 않는 등 관련법을 위반했다. 이들 회사는 대부분 허재호 일가가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거나 출자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띄는 이름이 있다. 허재호 일가가 아닌데도 등기이사를 꿰찬 이모씨다.

이씨는 뉴질랜드 교민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물이다. 민주평통 뉴질랜드 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해 KNC건설의 새로운 CEO로 자리했다. KNC는 대주그룹의 후신이며 주력회사 KNC건설의 경우 허 전 회장의 아들로 알려진 '스캇허'씨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허 전 회장이 이씨에게 부탁해 일가의 재산관리를 맡겼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비슷한 시기 KNC건설이 뉴질랜드에서 대규모 아파트 사업을 벌였다는 사실은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한다. 또 이씨는 KNC글로벌매니지먼트 이사를 겸임했는데 같은 회사 대주주(지분 85%)는 스캇허씨로 확인된다. 여러모로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따라서 스캇허씨를 대리인으로 내세운 허 전 회장과 '조력자' 이씨의 특별한 관계는 허 전 회장의 호화 도피생활에 상당부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씨는 자신이 등기이사로 있던 KNC엔터테인먼트 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허 전 회장의 차명재산 의혹이 불거진 직후다. 이밖에도 허 전 회장 측근들이 다수 이사로 포진한 '페이퍼컴퍼니'는 결국 허 전 회장의 자금 세탁을 위한 창구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크다.

허재호 친인척
뭉칫돈 주고받고

정황상 백씨와 이씨는 숨겨진 키맨이다. 배후에 있던 이들과 달리 허 전 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황모씨는 핵심 키맨으로 부각되며 사정당국의 타깃이 되고 있다. 황씨는 허 전 회장의 차명 재산으로 강하게 의심받는 담양다이너스티(골프장)를 운영하고 있다. 이 골프장을 소유한 법인 HH레저는 황씨가 대주주다. 그는 HH레저 지분 50%를 갖고 있다.

앞선 검찰 조사에서 황씨는 "담양 골프장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팔아서라도 벌금을 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HH레저의 총자산은 800여억원으로 파악된다. 이중 400억원 가량이 골프장 회원권 입회 보증금이다. 보증금과 같은 유형자산을 담보로 거액을 대출받겠다는 건 위험성이 높아 은행 입장에서 대출을 거부할 확률이 높다. 골프장 매각 역시 단 시간 내에 이뤄질 리 만무하다.


그런데 허 전 회장은 해당 골프장 입회 보증금 명목으로 40여억원 규모의 채권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한 매체는 보도했다. 또 HH레저에 무이자로 빌려준 단기채권이 100억여원이라는 보고서도 있다. 즉 허 전 회장이 갖고 있는 140억원 상당의 채권을 현금화하는 게 순서임에도 담보대출이나 매각을 운운하는 건 눈속임이란 지적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황씨가 뉴질랜드에 소유한 30억원대 아파트가 허 전 회장의 차명재산이란 정황도 드러났다. 이 아파트는 거래 과정에서 허 전 회장이 세운 회사(페이퍼컴퍼니)가 최초 매입하고, 회사 이름을 바꾼 뒤, 다시 회사를 황씨에게 넘기는 복잡한 수법이 가동됐다. 다시 말해 허 전 회장이 빼돌린 돈이 뉴질랜드로 들어왔고, 아파트를 통해. 다시 황씨에게 전달된 것이다. 징세 회피나 세금 탈루 등 악의적인 의도도 엿보인다. 하지만 황씨는 묵묵부답이다.

뉴질랜드 실세 주목 '조력자' 의심
친인척 총동원된 자금 세탁 의혹도

황씨의 곁에는 그의 형부(황씨 언니 A씨의 남편) 차모씨가 있다. 담양다이너스티 대표이사로 활동한 그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명품가구 전문점 '뮤제오'를 운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5년 문을 연 뮤제오는 유럽에서 수입한 고급 가구만을 취급했다고 한다. 당시 임대계약자는 차씨, 하지만 여러 정황상 황씨가 이 회사 실소유주란 소문이 파다했다. 당시 허 전 회장 측은 "뮤제오와 황씨는 관련이 없다"며 날을 세웠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뮤제오 지분은 HH레저 관련사인 HH개발이 100% 보유하고 있다. 뮤제오의 대표이사는 허모씨, 등기이사는 황씨다. 허씨는 허 전 회장과 황씨 사이에 태어난 맏이로 알려져 있다. 뉴질랜드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허씨는 앞서 밝힌 스캇허씨와 다른 인물로 현재 스캇허씨는 대학생이라고 전해진다.

허 전 회장의 조카인 허숙 전 대주건설 상무는 황씨와 공동 명의로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있는 주차장 부지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가 270억원으로 추정되는 이 땅은 2008년 허 전 회장이 90억원을 들여 매입한 땅이다. 허 전 상무는 최근 빅토리아타워개발로 이름을 바꾼 대주하우징의 이사로 선임됐고, KNC엔터테인먼트 이사에선 '조력자' 이씨와 함께 동반 사퇴했다.


대주하우징은 뉴질랜드 현지 분양 등을 담당하는 핵심 계열사로 광범위한 '허재호 해외 은닉 부동산'의 뿌리로 의심받고 있다. 대주하우징은 법인 유토피아타워가 대주주(지분 76%)인데 유토피아타워는 허재호 부부가 100%의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다. 즉 허 전 상무는 허재호 부부의 대리인으로 부동산을 관리하고 있는 셈이다.
 

대주건설에서 일했던 황씨의 언니 A씨도 P건설을 운영하며 자금 세탁에 관여했는지 관심이다. P건설은 광주 금남로에 있는 건물관리업체로 황씨 자매가 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회사는 HH개발과 관계회사임에도 감사보고서상 이를 명시하지 않아 의문을 자아낸다.

허 전 회장 측은 주로 HH개발을 통해 개인자금을 다른 곳으로 분산했다. 일각에선 HH개발을 허 전 회장의 개인금고로 보고 있다. 그만한 이유도 있다.

HH개발의 자금 흐름을 살펴보면 허 전 회장은 2007년 138억원을 HH개발에 빌려주고, 34억원을 상환 받았다. 2008년에는 회사에 맡긴 채권 466억원 중 263억원을 한꺼번에 돌려받았다. HH개발의 총 자산규모가 403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한 눈에 봐도 이상한 거래다. 이후에도 허 전 회장은 HH개발에서 수십억원의 현금을 빼낸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HH개발로 흘러간 돈이 허 전 회장의 차명재산으로 둔갑해 빠져 나간 셈이다. 

쏟아지는 의혹
숨겼나 막았나

허 전 회장의 동생 B씨는 지난 2월 근로기준법 위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항소 중이다. B씨는 기아자동차 직원으로 취업시켜 줄 것처럼 속여 2명으로부터 3200만원을 절취한 혐의로 징역 8월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그는 얼마 후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간 B씨는 법조계에 쌓아 놓은 인맥이 비교적 탄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그는 2000년대 중반 법조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된 '법구회'의 스폰서로 소개된 바 있다. B씨는 법구회에서 수년간 총무역할을 하며 판사들의 차명 골프예약을 하고 식사비 등을 내주며 친목을 쌓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마당발로 알려진 B씨는 대주그룹 성장과정에서 대외업무를 담당했다고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 2006년 허재호 일가의 횡령·탈세 및 분양 비리 의혹과 관련한 투서가 접수됐을 때 B씨가 부회장직에서 물러났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미리 수사기관과 각본을 맞춘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아직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약 정관계 로비가 있었다면 키맨은 B씨가 될 것이란 게 주된 예측이다. 다만 검찰 입장에서 허 전 회장의 탈세 및 배임 등에 대한 재수사가 시작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이미 무혐의로 종결된 사건을 다시 파고드는 것도 부담이지만 자신들의 허물을 들춰야 하기 때문에 '환부'만 도려내는 수준에서 수사가 마무리 될 것이란 전망이다. 검찰 수뇌부 역시 "이번 수사는 조속한 벌금 집행을 위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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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