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오희국 한국정보보호학회장 '보안을 말하다'

“정보유출 대란, 이상하죠? 심각한데 국민들은 침착하니…”

[일요시사=경제2팀] "보안의 시작은 어떤 것도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오희국 한국정보보호학회 신임 회장(한양대 교수)이 보안의 출발점에 대해 말했다. 오 회장은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환경에서 검증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결국 보안은 신뢰를 향해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KB국민, 롯데, NH농협 카드3사, KT, 티몬, CJ대한통운 등 고객정보 유출 사건이 줄줄이 터졌다. 이번에는 카드3사에서 유출된 개인정보가 대출 중개업자에게 추가로 팔린 사실이 드러났다. 2차로 판매된 개인정보는 1억 건에 육박한다.

"이번 개인정보유출 사태는 20년 만의 대형 붕괴 사건입니다. 과거 1994년 성수대교,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던 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는 이야기죠. 그런데 국민들의 반응이 의외로 침착합니다. 다들 체념했기 때문이죠."

오희국 한국정보보호학회 회장이 연이어 터지는 기업들의 정보유출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에 씁쓸해했다. 오 회장도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그는 "국민카드, 롯데카드 확인해보니 나도 털렸다"며 "안 쓴 지 10년이 넘은 카드사 정보도 털렸다"고 웃었다. 안산의 한양대 캠퍼스 연구실에서 오희국 한국정보보호학회 신임 회장을 만나 정보유출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오 회장과의 일문일답.

- 최근 카드3사 정보가 또다시 유출됐다.

▲ 우선 카드3사 1차 고객정보유출 당시 금융당국의 안이한 대책에 있다. 1차 고객정보 유출 사태 후 금융당국은 유출된 정보를 '회수'했다며 국민들에게 안심하라고 했다. 유출정보를 '회수'했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표현이다. 어떻게 디지털 정보를 '회수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 학회에서 정말 경악했다. 디지털 정보는 결코 회수할 수 없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원본인지 복사본인지 구분할 수 없다. 디지털 정보의 속성조차 모르는 금융당국의 태도에 2차 정보유출사태는 예상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 금융사들은 오히려 억울하다는 입장인데.

▲ 이번 사태는 어떤 고급기술을 가진 뛰어난 해커들에 의해 유출된 것이 아니다. 보안은 사슬과 같다. 모든 것이 단단해도 하나만 터져도 보안은 붕괴된다. 그런데 금융사들은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철저한 감시는커녕 USB 통제도 허술했고, 고객정보에 대한 원본데이터도 덥석 외주업체에 넘겨줬다. 그만큼 내부통제가 허술하다보니 보안망이 쉽게 뚫린 것이다. 명백한 인재다.

- 인증수단은 적절한가. 해커들의 개인정보 수집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할 수 있는 식별 번호가 필요하다. 애초부터 주민등록번호가 인증수단이 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주민등록번호 자체는 한 사람에게 부여하는 고유의 ID로서의 기능만 해야 한다. 쉽게 바꿀 수 있는 카드 번호나 비밀번호와 달리 주민번호는 바꾸기 어렵다. 불변의 정보다. 그런데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주민번호를 요구하는 곳이 너무 많다.

비밀스러워야 하고 다른 사람이 알아서는 안 되는 정보가 너무 쉽게 이용되는 셈이다. 이미 주민등록번호는 많은 곳에 퍼져있다. 또한 불행하게도 주민등록번호 안에는 개인의 많은 정보가 담겨있다. 주민번호만 알아도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나온다. 생년월일, 지역, 성별까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찝찝한 거다. 식별 가능한 정보들을 암호화해서, 나중에 누군가 빼가더라도 알아볼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 비용이 너무 많이 들 것 같다. 다른 방법은 없나.


▲ 비용이 들더라도 암호화해서 저장하는 방식을 추천할 수밖에 없다. 가장 강력한 인증수단은 지문인식이나 홍채인식이다. 그런데 너무 강력해도 문제다. 지문인식, 홍채인식은 한번 노출되면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추천할 만한 방식은 아니다. 노출이 되더라도 쉽게 바꿀 수 있는 인증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 외국은 어떻게 관리하나.

▲ 미국의 경우 주민번호를 인증수단으로 요구하지는 않는다. 미국은 소셜시큐리티넘버(SSN)로 인증을 하기도 하지만 인터넷에서 인증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회사자체에 인증 수단을 갖춰놓았다. 따라서 어떤 은행에서 고객정보 유출사태가 터졌다 해도 해당 은행 거래자의 정보만 유출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주민번호를 인증수단으로 쓰다 보니 한번 터지면 다 같이 터지는 것이다.

주민번호 자체가 개인정보…단순 ID화 절실
"정보 회수했으니 안심? 이미 엎질러진 물"

- 해커들은 주로 어디를 노리나.

▲ 역시 금융사다. 돈이 관련된 은행, 카드사 등의 금융사 정보가 가장 효용가치가 높다. 금융사 고객의 정보는 마케팅에 쓸 수 있는 정보들이 많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과 카드사의 고객정보는 그 사람의 재정 상태까지 알 수 있어 이용가치가 높다. 금융사의 고객 신용정보를 통해 어떤 사람이 대출받을 만한 상황인지 파악이 된다. 해커들 입장에서도 팔아넘기기 굉장히 좋은 정보다.

- 그렇다면 소규모 사이트의 보안은.

▲ 쇼핑몰 등 작은 업체들의 보안 상태는 너무나 취약하다. 보안에 신경 쓸 여력도 없고 거의 뚫려있다고 보면 된다. 웹하드 업체를 조사한 적 있는데 이곳 보안도 굉장히 취약한 것으로 보였다. 밝혀지지 않았을 뿐 이미 많은 정보들이 유출됐을 것이다. 다만 업체 규모가 워낙 작다보니 고객정보 양이 많지 않고, 금융사처럼 재정 상태에 대한 정보가 없어 해커들에게 매력적인 곳은 아니다. 털어봐야 별 게 없기 때문이다.

- IT투자 현황 등 국내 보안의식은.

▲ 보안은 지속적으로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분야다. 보안은 보초와 같다. 따라서 보안투자는 국방비의 개념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보안이 이익창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보안투자를 말 그대로 나가는 돈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보면 보안을 못해서 잃는 손실이 너무 많지 않은가. 지난 2011년 농협에서 고객정보를 유출했다.

이후 금융사들이 부랴부랴 보안투자를 잠깐 늘린 적이 있다. 그러다 1년쯤 지나면서 조용해지니까 금융사들이 또다시 보안을 방치하기 시작한 것이다. 보안투자를 동결하거나 더 줄였다. 특히 이번에 고객정보를 유출한 카드3사(KB국민, 농협, 롯데카드)는 지난해 모두 보안투자를 줄였다. 전쟁 평화시라고 국방비를 안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

- 기업과 금융당국의 자세는.


▲ 안보는 외주에 맡겨서는 안 된다. 보안 작업은 내부에서 전문 인력을 채용해서 작업을 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기업들은 보안작업을 외주에 맡겨버린다. 여기서 사고가 터지는 것이다. 금융사의 경우에도 비대면 업무가 90%를 차지할 정도로 IT화되고 있다.

그만큼 IT분야가 전문화돼야 하는데 대부분의 IT업체들은 소규모 형태다. 금감원,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에도 IT분야 전문가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보안 전문가가 있더라도 의사 결정하는 데 참여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많은 분야가 IT화 되고 있는데 IT에 투자하는 예산은 터무니없이 적다. 시대는 변하는데 정부의 IT 개념은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다.

 

박효선 기자 <dklo216@ilyosisa.co.kr>

 

[오희국 회장은?]

▲한국정보보호학회 19대 회장
▲방송통신위원회 민관합동조사단 위원
▲경기도의회 정보화위원회 위원
▲대검찰청 디지털수사자문위원
▲한양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전임교수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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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