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총동창회 내홍 내막

동창회장이 뭐라고! '치고 받고'

[일요시사=사회팀] 조계종 종립대학인 동국대학교(이하 동국대)가 동국대총동창회(이하 동창회) 신임 회장 선출을 놓고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현 동창회장인 이연택 전 대한체육회장(현 새만금위원회 위원장)이 회장직에서 강제 해임되고, 차기 회장 후보군인 송모씨가 동창회 사무실을 기습 점거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더구나 갈등의 이면에는 조계종 일부 스님이 개입돼 있다는 의혹이 있어 파문은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4일 동국대 한 관계자는 "동국대 총동창회가 양측으로 갈려 다툼을 벌이고 있다"고 제보했다. 회장 추대와 관련한 동창회 내부 갈등이 심화되면서 각 후보를 지지하는 세력이 양측으로 갈라섰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갈등 양상을 꼼꼼히 살펴보면 단순한 '진흙탕 싸움'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동창회 안에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일촉즉발 상황

관련한 내막을 듣기 위해 문제를 제기한 이 회장 측 관계자와 만났다. 최근까지 동창회 최고위 간부로 활동한 그는 "사실상 쿠데타나 다름없는 전횡으로 사무실을 빼앗겼다"고 말했다. 이 회장 측이 밝힌 사건 개요, 동문들에게 발송한 메일, 동창회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들을 종합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앞서 동창회는 후임회장 선출을 놓고 지난해 10월 선거 후보등록 기간(4~25일)을 공고했다. 그러나 등록자가 없자 추대위원회(이하 추대위)를 구성, 모두 8차례에 이르는 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추대위는 마땅한 후보자를 찾지 못했고, 후임회장 선임 절차는 논의를 거쳐 추대위가 현 회장에게 일임하는 것으로 의결됐다. 즉 차기 회장 선임 권한을 이 회장에게 넘긴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후보자 추천 과정에 있었다. 앞서 추대위는 4차 회의까지 송씨를 차기 회장으로 추대하기 위한 설득 작업을 했다. 그러나 송씨는 "회장직을 맡을 생각이 없다"며 "동창회가 문을 닫을 상황이 되면 그때나 맡겠다"고 고사했다. 이후 송씨는 한 추대위원과의 사적인 만남에서도 "회장직을 수락할 수 없으니 양해해달라"고 반려했다.


유력 후보인 송씨가 모두 4차례나 거절하자 추대위는 그가 회장직에 관심이 없다고 판단, 다른 후보자를 물색했다. 하지만 승낙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4차 회의 후 추대위는 후임회장 선임건과 관련해 이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회장이 직접 나서서 차기 회장을 설득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추대위가 후보자를 찾기 힘들었던 실질적인 이유는 돈, 규정상 동창회장이 되면 임기동안 모두 6억원을 납부해야 하는데 금전적인 부담이 커 하마평에 오른 후보들은 한사코 수락을 거부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이 회장은 추대위의 추천을 받은 12명의 후보 중 A씨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추대위가 A씨를 신임 회장으로 추대하고, 공표하는 과정만 남아있었다.

그런데 추대위원 중 송씨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B씨가 회장 선임에 제동을 걸었다. 송씨도 회장 후보인 만큼 단독 추대를 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진통 끝에 추대위는 이 회장에게 선임 권한을 일임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으고 추대위를 해산했다. 당시 B씨는 "송씨와 A씨를 놓고 표결을 했을 경우 동창회가 둘로 갈라질 수 있다"며 "이 회장에게 전권을 넘겨야 한다"고 요구했다.

권한을 위임받은 이 회장은 결국 A씨를 후임자로 내정했다. 그러자 송씨는 "회장직을 안 하겠다"고 했지만 하루 뒤 "회장에 나가겠다"며 또다시 입장을 바꿨다. 이 과정에서 전직 안기부(현 국정원) 출신 모씨가 중재에 나섰지만 실패했고, 동국대 본교 최고위 관계자가 추대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A씨 말고) 송씨를 회장으로 밀어 달라"며 청탁을 하는 등 동창회를 둘러싼 갈등은 점입가경의 양상을 띠었다.

송씨 측이 강경한 입장을 취하자 이 회장 측은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동문 원로들을 만났다. 그리고 송씨도 A씨도 아닌 '제3의 후보'를 회장으로 추대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민주당 권노갑 상임고문 등이 포함된 원로단은 앞서 해산한 추대위를 대신해 지난 2월 새 추대위를 구성했고, 박종윤 전 한국로터리총재단 의장을 만장일치로 신임 회장에 추대했다.
 

그러나 박 회장의 회장직 수락에도 송씨 측은 신임 회장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회장 측은 "지난 5일 송씨 측이 7∼8명의 사람을 모아 서울 종로구에 있는 동창회 사무실을 급습, 무단으로 사무실을 점거했다"고 밝혔다.


점거 도중 송씨 측 관계자는 잠겨있는 사무실의 문을 따고 들어가 재물손괴 등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관계자는 사무실 점유 과정에서 송씨 등 윗선의 지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회장직 추대 두고 내부갈등 심화
각 후보 지지세력 양측으로 갈려 
유명 정치인이 나선 중재도 무산

지난 11일 송씨 측은 긴급 상임이사회를 소집, 동창회 감사를 맡았던 이모씨의 감사보고를 근거로 이 회장의 자격 상실을 의결했다. 송씨 측은 "이 회장의 임기가 지난해 말 끝났으며, 감사 결과 이 회장이 약속한 동창회비 6억원을 납부하지 않아 자격이 상실됐기 때문에 송씨가 회장 직무 대행 자격으로 이사회를 소집한 건 절차상 문제 될 게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회장 측은 "회칙상 회장의 유고가 아니면 직무 대행이 불가능한데 이 회장이 공무상 중국 출장을 간 사이 이사회를 소집한 건 꼼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 동창회비 미납건과 관련해서도 "이 회장은 25·26대를 연임했는데 26대로 선출되는 과정에서 본인(이 회장)이 회장직을 고사해 동창회 한 간부가 회장을 맡아달라며 2억원을 기탁했고, 그 2억원을 준 사람이 바로 송씨 측 사람인데 이제 와서 감사한다는 게 말이나 되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회장은 동국대 종단인 조계종과 불편한 관계에 놓여있다. 앞서 그는 이사회 인원 구성을 놓고 종단과 마찰을 빚었다. 지난해 조계종은 이사회 모든 구성원을 승려로 바꾸길 원했으나 이 회장은 학교법인 투명화 등을 요구하며 "오히려 외부 인사를 늘려야 한다"고 맞섰다.

때문에 이 회장을 눈엣가시로 여기던 종단의 입김이 이번 사태에 작용하지 않았겠냐는 의혹도 불거진다. 당시 이사회에 배석했던 한 관계자는 "몇몇 스님이 분위기를 잡으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구조였다"면서 "오직 이 회장만 종단과 배치되는 의견을 피력했다"고 증언했다.

"제가 할 겁니다"

서울 중구에 있는 한 호텔, 최근 송씨와 권 고문은 사태 수습을 위한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권 고문은 "박 회장이 1년만 하고 후배가(송씨가) 바톤을 넘겨받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러자 송씨는 "6개월도 안 됩니다. 제가 하겠습니다"라며 윽박질렀다고 한다.

또 얼마 전 박 회장은 송씨를 따로 만나 "나를 도와달라"고 읍소했다. 하지만 송씨는 "(선배가) 나를 도와주면 안 되는 거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이처럼 양측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달은 사이 이 회장 측과 송씨 측은 각각 같은 날, 다른 곳에서 열릴 총회를 준비하고 있다. 현 상황에서 둘로 쪼개진 동창회가 해법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송씨 측 입장은?
"동창회 정서를 너무 모른다"


송씨 측 핵심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돈 문제'를 가장 먼저 꺼냈다. 그는 "이연택 회장이 약속한 동창회비를 납부하지 않았으면서 학교와 척을 지는 건 동창회를 너무 모르는 처사"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회장 측에서 송씨를 배제하기 위해 자신들끼리 회의를 열고, 박 회장을 세운 건 정당하냐"고 따졌 물었다. 또 그는 "동창회는 어디까지나 동창회비를 많이 내는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의무는 지지 않으면서 권리만 찾는 것 같아 개탄스럽다"고 덧붙였다.

한편 송씨 측은 사무실 불법점거 의혹과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은 건 맞지만 우리 중에도 동창회 사무국 직원이 있는데 며칠 전부터 문이 잠겨 있어 따고 들어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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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