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을 찾아서 ④경기 파주-궁시장 영집 유영기

활 잘 쏘는 나라의 혼과 맥을 잇다

주몽, 김윤후, 이성계 그리고 조선 정조.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역사적으로 활을 잘 쏜 인물이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활을 잘 쏘기로 유명했다. 활을 잘 쏘는 민족답게 활과 화살의 혼과 맥이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곳이 있다.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영집 궁시박물관이다. 중요무형문화재 47호 궁시장 영집 유영기 선생이 세운 활과 화살 전문 박물관으로, 5대째 이어 내려온 활과 화살에 대한 애정과 전통문화에 대한 신념과 고집이 오롯이 남아 있는 곳이다.

전통 활·화살의 숨은 이야기 흥미진진
한립토이뮤지엄ㆍ한향림 세라믹뮤지엄

영집 궁시박물관은 고유의 전통문화를 묵묵히 지키는 곳이다. 중요무형문화재 47호 궁시장 영집 유영기 선생이 평생 연구·수집한 우리나라의 전통 활과 화살, 해외의 활과 화살을 전시한 공간이다.
1층 전시관에는 우리나라 전통 활과 화살의 역사가 함축되었다. 물소 뿔과 쇠심줄, 대나무와 뽕나무, 민어의 부레(부레풀 재료) 등 각궁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부터 시대별로 다양한 화살까지 만나볼 수 있다. 적이 다시 사용하지 못하게 한 편전(아기살), 임금의 명령을 전달할 때 쓰던 신전, 소리 나는 명적, 고구려를 대표하는 육량시, 태조 이성계가 주로 사용했다는 명중률 높은 유엽전 등 화살에 숨은 이야기도 재미있다.

명품 손에
반하고

우리나라의 활과 화살은 단순히 무기가 아니었다. 활쏘기는 임금이 갖춰야 할 덕목이었고, 선비들은 활쏘기를 통해 호연지기를 기르고 한데 어울려 실력을 겨루며 풍류를 즐겼다. 요즘으로 치면 활쏘기는 당대의 스포츠였다. 특히 우리나라의 각궁은 탄력이 좋아 멀리 나가고, 파괴력이 좋아 단연 세계 최고다. 각궁은 대나무와 구지뽕나무, 물소 뿔과 쇠심줄이 어우러진 복합궁으로, 서양의 활과 비교되지 않는다. 서양식 활은 나무에 활시위를 달아 반달 형태가 되도록 잡아당겨 쏘는 방식이지만, 각궁은 물소 뿔과 쇠심줄을 붙여 둥글게 말린 나무를 180° 뒤집고, 다시 활시위를 걸어 쏘는 식이기 때문에 더 강하게 멀리 나간다.

팔순에 가까운 궁시장 유영기 선생의 얼굴에는 굴곡진 삶의 흔적이 역력하다. 선생의 고향은 파주와 가까운 북한 땅 장단면이다. 예부터 예천은 활, 장단은 화살이라 할 정도로 장단은 화살로 유명한 고장이었다. 당시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들은 격이 높았고, 유영기 선생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집문서를 두고 살 만드는 도구와 부레풀만 챙겨 피란할 정도로 장인 정신이 투철했다. 활과 화살 한 벌을 팔면 쌀 한 가마니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전수하는 제자가 많고, 멀리 신의주에서 화살을 구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유영기 선생은 아버지 어깨너머로 자연스럽게 화살 만드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양궁이 보급되고, 카본 화살이 등장하면서 시련이 닥치기 시작했다. 화살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130번이나 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칠 뿐만 아니라, 화살의 재료인 대나무와 꿩의 깃털을 구하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화살대 10만 개를 구해도 화살은 5000개 남짓 만드는 게 고작이고, 깃털 또한 꿩 한 마리에 10개 정도밖에 나지 않는다. 더구나 화살은 하루에 3개쯤 만들 수 있어, 기계에서 무수히 찍어내는 카본 화살의 공세를 당해낼 수 없었다.


활 만드는 과정은 복잡하고 다양한 과정을 거친다.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대나무의 물이 빠지고 가장 단단해지는 겨울이 되면 전국을 돌며 대나무를 구하는데, 해풍을 맞으며 2년 정도 자란 대나무가 가장 좋다. 대나무는 약 한 달간 건조 과정을 거쳐 숯불에 갈색으로 구운 뒤, 저울로 무게를 달아 분류한다. 이는 사수의 신체 조건에 맞는 화살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숯불을 피운 대잡이통에 살대를 넣고 구울 때는 졸대로 화살을 곧게 펴는 교정 작업을 한다. 이를 ‘졸을 본다’고 한다. 살대가 마련되면 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대나무의 마디를 갈아 없애고, 살대의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는다. 활시위가 걸리는 오늬와 촉을 끼우기 위해 살대의 끝을 깎는 작업부터 오늬를 끼우고, 깃을 달고, 촉을 만들어 끼운 뒤 다시 졸을 보면 비로소 화살 한 개가 만들어진다.

영집 궁시박물관에서는 활 만들기와 활쏘기 체험을 할 수 있다. 활 만들기는 전통 방법 그대로 하는 알짜배기 체험으로 추천할 만하다. 만든 활과 화살 한 개는 가져갈 수 있으며, 체험 비용은 2만원이다. 활쏘기는 바른 자세를 숙지하고 직접 활을 쏘아보는 체험이다. 자세에 따라 화살이 날아가는 모습이 제각각이다.
헤이리 예술마을은 박물관과 미술관, 갤러리 카페와 체험 시설이 많아 가족이나 연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가족과 함께 가볼 만한 곳으로는 한립토이뮤지엄, 연인과 함께라면 한향림 세라믹 뮤지엄을 추천한다. 한립토이뮤지엄은 40년 가까이 완구회사를 운영하면서 각국에서 수집한 장난감을 전시한 완구 박물관이다. 한정판 교복을 입은 흑백 아톰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뽀로로까지 어른들에게는 향수와 동심을 자극하고,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장난감의 세계를 선사한다. 지하 1층에는 경찰서, 소방서, 방송국 등 18개 체험 시설로 꾸며진 스토리 랜드가 있다. 아이들이 직업의 세계로 들어가 미래의 이야기를 맘껏 풀어낸다.

전통숨결에
취하다

한향림 세라믹 뮤지엄은 옹기박물관과 현대도자미술관으로 구성된다. 옹기박물관은 규모는 작지만, 각 지역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옹기들이 지역별로 전시되어있다. 소주를 내리는 소줏고리, 제주의 물허벅, 300년 전 청자 기법으로 제작된 강진옹기 등 다양하고 독특한 옹기를 만나볼 수 있다. 현대도자미술관은 근현대 도화 작품을 전시한 공간으로, 조선 순종의 어진을 그린 김은호 선생과 피카소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현대도자미술관 건물은 모 제약 회사의 CF가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최근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촬영된 갤러리 카페 아다마스253도 들러볼 만하다.

영집 궁시박물관 인근에는 모산목장이 있다. 송아지 우유 주기, 여물 주기, 젖짜기, 아이스크림과 치즈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다. 피자 만들기 체험을 곁들이면 가볍게 한 끼 식사도 가능하다.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모산목장 체험→영집 궁시박물관→헤이리 예술마을(한립토이뮤지엄, 한향림 세라믹 뮤지엄)


1박2일 여행 코스

· 첫째 날 : 모산목장 체험→영집 궁시박물관→헤이리 예술마을(한립토이뮤지엄, 한향림 세라믹 뮤지엄)
· 둘째 날 : 오두산통일전망대→반구정→임진각 평화누리→자운서원→벽초지문화수목원→파주삼릉


관련 웹사이트 주소
· 파주시 문화관광 http://tour.paju.go.kr
· 영집 궁시박물관 www.arrow.or.kr
· 헤이리 예술마을 www.heyri.net
· 한립토이뮤지엄 www.hanliptoymuseum.co.kr
· 한향림 세라믹 뮤지엄 www.heyrimuseum.com
· 모산목장 www.mosanfarm.com


문의 전화
· 파주시청 문화팀 031)940-4354
· 영집 궁시박물관 031)944-6800
· 헤이리 예술마을 070-7704-1665
· 한립토이뮤지엄 031)957-8470
· 한향림 세라믹 뮤지엄 070-4161-7271
· 모산목장 031)946-8026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 광화문역 6번 출구나 서울역 YTN 앞에서 9709번 광역버스 승차(혹은 합정역 1번 출구에서 2200번 광역버스 승차), 맥금동 종점에서 하차, 영집 궁시박물관까지 도보 약 1km.
* 문의 : · 신성교통 www.shinsungbus.com
             · 맥금동 종점 031)949-6040
지하철> 서울-금촌 : 경의선 하루 25회(05:50~23:30) 운행, 50분 소요. 공덕-금촌, 경의선 하루 56회(05:32~23:10) 운행, 45분 소요. 금촌역에서 900번 시내버스나 36번 마을버스 이용, 시그네틱스에서 하차, 도보 약 0.7km.
* 문의 : · 서울메트로 1577-1234, www.seoulmetro.co.kr
             · 금촌역 031)946-0788


자가운전 정보
서울외곽순환도로 자유로 JC→문산 방면 자유로→금촌·법흥리 방면 오른쪽→파주프리미엄아울렛 경유 통일촌삼거리에서 금촌 방면으로 우회전→법흥삼거리에서 좌회전→영집 궁시박물관


숙박 정보
· 파주칼튼호텔 : 탄현면 성동로, 031)942-3955, www.carltonhotel.co.kr (굿스테이)
· 마당안숲 :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031)8071-0127, www.forestgarden.kr
· 게스트하우스 모리 :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031)944-0760, http://heyrimori.com
· 모티프원 :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031)949-0901, http://motif.fortour.kr
· 게스트하우스 지지향 : 파주시 회동길, 031)949-0901, www.pajubookcity.org/jijihyang
· 알베로산토 : 탄현면 새오리로, 031)947-5558, http://alberosantto.com


식당 정보
· 프로방스 레스토랑 : 스파게티, 탄현면 새오리로, 031)945-0230, www.provence.co.kr
· 옛날시골밥상 : 시골밥상, 탄현면 새오리로, 031)945-5957
· 오두산막국수 : 막국수, 파주시 평화로, 031)944-7022, www.odusan.co.kr
· 복드림한우 : 한우, 탄현면 새오리로, 031)944-8060, www.bokdream.kr
· 카페 아다마스253 : 파스타,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47, 031)949-1296, www.adamas253.com
· 헤이리묵요리전문점 : 묵정식, 탄현면 새오리로, 031)946-9920


주변 볼거리

파주출판단지, 파주프리미엄아울렛, 파주삼릉,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보광사, 벽초지문화수목원,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화석정, 반구정, 심학산 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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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