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명 죽어나간' 형제복지원 원장 재산 추적

생지옥서 벌어 1000억 숨겨뒀다

[일요시사=사회팀]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활발한 입법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서울과 부산에서 시민을 상대로 서명을 받으며,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발생한 형제복지원의 비극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그러나 비극을 잉태한 형제복지원의 박인근은 여전한 침묵 속에 있다. 전두환정부와 결탁해 피의 대가로 돈을 불린 박인근 일가의 재산을 들여다봤다.

부산역에서 울산 방향으로 40여분을 차로 달리면 신시가지 개발이 한창인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굽이진 산길을 거슬러 올라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르면 차가운 쇠창살과 덤불 위로 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회와 완벽히 격리된 그곳엔 사람이 있었다.

형제복지원 사건
끝나지 않은 고통

형제복지원의 후신인 실로암의집은 여전히 건재하다. 건물 외벽에는 믿음·소망·사랑이란 문구가 또렷하다. 1991년 12월16일 설립된 실로암의집에는 47명의 중증 장애인이 거주하고 있다.

실로암의집을 운영하고 있는 법인은 형제복지지원재단(이하 형제재단)이다. 형제재단은 무연고 장애인과 여성·아동 등을 불법 감금해 강제노역을 시키고 구타와 고문, 성폭행, 암매장 등으로 수용인 531명의 목숨을 앗아간 '형제복지원 사건'의 당사자 박인근 원장(이하 박인근)이 설립한 사회복지법인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법원에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던 박인근은 출소 후 법인 이름을 재육원, 욥의마을, 형제재단 등으로 수차례 바꾸면서 복지사업과 수익사업을 병행했다.


1929년에 태어난 박인근은 2011년 4월7일까지 형제재단에서 이사로 활동하면서 사우나, 해수온천, 스포츠센터 등을 운영했다. 이후 형제재단은 박인근의 3남 박천광 이사(이하 박천광)에게 경영권이 넘어갔다. 한 관계자는 박천광이 형제재단을 물려받은 이유에 대해 "장남과 차남은 전처의 자식이라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소문이 있다"고 말했다.

형제재단은 중증장애인 요양시설인 실로암의집을 운영하면서 국고보조금을 받고 있다. 5년 평균 한 해 10억원의 예산이 법인 운영비, 장애인 생계급여 등을 명목으로 형제재단에 지원된다.

출소 후 법인명 바꾸면서 복지·수익사업
재산 불려 2010년 전후 자녀들에게 상속

실로암의집과는 별개로 박인근은 영리를 위한 사업체를 운영하며 돈을 굴렸다. 비교적 최근까지 형제재단은 사상해수온천과 빅월드레포츠센터라는 수익업체를 갖고 있었다.

지난 6일 발급한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형제재단은 2004년 1월 사상해수온천이 자리한 토지와 5층짜리 건물을 매입했다. 하지만 사상해수온천의 지번상 토지는 2012년 12월 부산시에 압류됐고, 2013년 4월과 8월에는 각각 건물이 압류됐다. 지난해 10월2일 해당 토지와 건물은 한꺼번에 임의 경매돼 채권의 소유가 한 은행에 넘어갔다. 박천광은 이렇듯 재산을 처분하고 있었다.
 

사상해수온천은 정상 운영 중이었다. 기자는 사상해수온천의 실질 소유자인 박천광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이사님은 자리에 안 계시다"는 말만 들었다. 해당 토지와 건물은 2009년 6월 100억여원의 은행 대출을 위한 담보로 사용된 전력이 있다.

빅월드레포츠센터 역시 정상 운영되고 있었다. 찜질방과 불가마, 사우나, 헬스 시설을 갖춘 빅월드레프츠센터는 2002년 1월 형제재단이 토지 및 건물을 전부 매입했다가 2011년 12월 A사로 소유권 일체가 이전됐다. A사는 노인을 상대로 한 서비스센터를 운영했던 법인으로 사회복지시설을 겸하고 있는 형제재단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한 관계자는 "몇 년 전 박인근이 수사를 받을 때 일부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대표들이 앞장서 구명운동을 벌인 적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그들은 '박인근은 부산에서 좋은 일을 한 사람'이라며 '시대가 어쩔 수 없어 그랬던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해진다.

횡령·사기 혐의
박인근 부자 기소

2012년 9월 부산시는 법인의 재산 매각 대금을 개인용도로 유용한 혐의 등으로 박인근을 형사고발했다. 당시 박인근은 법인 재산을 매각한 대금 중 36억여원을 공사비 지출과 차입금 상환에 사용한다며 시로부터 허가를 받은 뒤 14억5300만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았다. 형제재단은 사회복지법인이기 때문에 현행 사회복지사업법상 재산의 매매·증여·교환·임대·담보제공 등 처분과 관련한 사안은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돼있다.

하지만 박인근은 사상해수온천의 수익금 12억원가량을 유용하거나 장기차입을 명목으로 시의 허가를 받아 빌린 16억4000만원을 용도를 알 수 없는 곳에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시는 이 같은 감사 결과를 토대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사건을 인계받은 검찰은 이로부터 1년이 지나서야 사건 관련자들을 불구속 기소했다. 박인근 부자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지난해 10월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들이 공모하여 횡령한 돈이 18억4000만원이라고 밝혔다.

또 검찰은 지난해 12월 국고보조금 1억7700만원을 편취한 혐의(사기)로 박인근 부자를 추가 기소했다. 같은 혐의로 생활지도원 김모씨와 형제재단도 피고인에 이름을 올렸다. 이 사건은 지난 1월13일 법원에 접수됐다.

박인근은 지난 2007년 1월부터 2011년 3월까지 무자격자인 김씨를 물리치료사인 것처럼 속여 부산 기장군으로부터 1억2700만원 상당의 보조금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박인근은 정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김씨를 결원이 생긴 물리치료사로 둔갑시켰다. 본래 김씨는 생활지도원으로 고용돼야 했지만 생활지도원은 정원이 초과돼 보조금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을 박인근은 악용했다. 또 박인근은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후에도 아들 박천광과 공모해 같은 수법으로 보조금 5000만원을 추가로 편취한 혐의를 받았다.

이처럼 박인근 부자는 횡령과 사기사건 등에 연루된 상황이다. 그렇지만 햇수로 2년이 지났음에도 형제재단에 대한 행정·사법당국의 조처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부산시 장애인복지과 담당자는 "형제재단의 경우 채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해산을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는 "외부 감사를 도입하고, 법인이사 7명 중 4명을 공익이사로 선임하는 등 재단이 스스로 자정할 수 있도록 힘을 싣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은 법인의 노력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며 "법인의 모든 운영에 지자체가 간섭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곳곳에 부동산
자녀가 받았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부산시가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한 관계자는 "만약 형제재단을 해산하면 요양시설을 행정기관으로 귀속시키거나 다른 사회복지법인을 통해 운영권을 이양해야 하는데 그 절차가 까다로워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형제재단이 장기차입 허가를 받을 때 부산시에서 편의를 봐준 건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거액을 대출받는 과정에서도 부산 지역 유력 정치권 인사가 거론될 정도로 박인근 일가와 연관한 정·관계 유착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박인근은 "돈으로 여러 인사를 구워삶았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그의 막대한 부가 방패막이가 된 셈이다. 일각에선 박인근 일가의 재산을 1000억원대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박인근의 재산은 2010년을 전후로 그의 자녀들에게 폭넓게 상속된 것으로 보인다.

부랑인들 모아 감금하고 강제 노역
사망 500명 등 3000여명 피해 집계
폭행고문에 성폭행…진상규명 착수

먼저 큰딸이 대표이사로 이름을 올린 사회복지법인 신양원은 박인근이 형제재단 소유의 토지 및 건물을 담보로 대출받은 돈 일부가 흘러간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박인근은 지난 2008년 신양원 산하의 대안학교 신영중·고교의 대표이사로 부임한 후 2010년 학교 운영권을 첫째 딸에게 넘겼다. 사실상 증여인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첫째 딸 사위가 목사인데 거제도에 있는 교회가 박인근의 재산이라는 얘기가 있다"고 귀띔했다.

호주 시드니에 있는 골프연습장도 박인근의 재산으로 유명하다. 박인근은 이 해외 부동산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차명으로 송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재 해당 골프연습장은 박인근의 셋째 딸과 사위에게 넘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인근이 둘째 사위를 위해 병원을 지어줬다는 의혹도 있다. 부산에서 울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병원은 의사 신분인 사위가 운영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또 박인근은 부산·울산·경주 등 동남권 곳곳에 부동산을 소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부동산 중 일부는 매각을 거쳐 형제재단의 채무를 갚는 데 사용됐다.


박인근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상황이다. 박천광 역시 대표이사에서 퇴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형제재단은 박인근 부자의 후광이 워낙 강한 터라 이들이 어떤 형태로든 재단 운영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는 거둘 수 없다.

실로암의집
해결책 없나

실로암의집은 기자의 방문취재를 거부했다. 실로암의집 관계자는 "우리는 말할 것이 없다"며 "장애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설득 끝에 실로암의집과 관련한 한 가지 의혹에 대한 해명을 들을 수 있었다.

복수 제보자는 "실로암의집을 방문했을 때 교회 간판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요양시설에 특정 종교시설을 함께 운영하는 건 불법이다. 해당 교회는 박인근 일가의 돈세탁 창구로 의심됐다.

하지만 실로암의집은 "지난 부산시 감사 때 지적 받은 뒤 지금은 교회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실로암의집은 형제재단과 다르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실로암의집이 있는 지번상 토지와 건물은 모두 가압류가 들어온 상황이다. 부산시 장애인단체의 한 관계자는 "실로암의집 시설에서 근무하는 선생님 대부분은 여자인데 실로암의집에서 실제로 생활하는 장애인은 모두 남자"라며 "여기서 오는 고충도 헤아렸으면 한다"고 충고했다.

기자는 실로암의집에서 내려오며 주위를 둘러봤다. 차도로 한참을 내려가서야 간신히 인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설에서 빠져나온다 한들 어디로도 빠져나갈 곳은 없었다. 1990년대부터 2000년 무렵까지 그곳에서 살았다는 한 장애인은 "도망치면 반드시 잡혀와요"라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다만 지금은 과거와 같은 폭력이 아닌 사랑으로 요양인들을 대하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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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