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명 죽어나간' 형제복지원 원장 재산 추적

생지옥서 벌어 1000억 숨겨뒀다

[일요시사=사회팀]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활발한 입법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서울과 부산에서 시민을 상대로 서명을 받으며,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발생한 형제복지원의 비극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그러나 비극을 잉태한 형제복지원의 박인근은 여전한 침묵 속에 있다. 전두환정부와 결탁해 피의 대가로 돈을 불린 박인근 일가의 재산을 들여다봤다.

부산역에서 울산 방향으로 40여분을 차로 달리면 신시가지 개발이 한창인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굽이진 산길을 거슬러 올라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르면 차가운 쇠창살과 덤불 위로 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회와 완벽히 격리된 그곳엔 사람이 있었다.

형제복지원 사건
끝나지 않은 고통

형제복지원의 후신인 실로암의집은 여전히 건재하다. 건물 외벽에는 믿음·소망·사랑이란 문구가 또렷하다. 1991년 12월16일 설립된 실로암의집에는 47명의 중증 장애인이 거주하고 있다.

실로암의집을 운영하고 있는 법인은 형제복지지원재단(이하 형제재단)이다. 형제재단은 무연고 장애인과 여성·아동 등을 불법 감금해 강제노역을 시키고 구타와 고문, 성폭행, 암매장 등으로 수용인 531명의 목숨을 앗아간 '형제복지원 사건'의 당사자 박인근 원장(이하 박인근)이 설립한 사회복지법인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법원에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던 박인근은 출소 후 법인 이름을 재육원, 욥의마을, 형제재단 등으로 수차례 바꾸면서 복지사업과 수익사업을 병행했다.


1929년에 태어난 박인근은 2011년 4월7일까지 형제재단에서 이사로 활동하면서 사우나, 해수온천, 스포츠센터 등을 운영했다. 이후 형제재단은 박인근의 3남 박천광 이사(이하 박천광)에게 경영권이 넘어갔다. 한 관계자는 박천광이 형제재단을 물려받은 이유에 대해 "장남과 차남은 전처의 자식이라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소문이 있다"고 말했다.

형제재단은 중증장애인 요양시설인 실로암의집을 운영하면서 국고보조금을 받고 있다. 5년 평균 한 해 10억원의 예산이 법인 운영비, 장애인 생계급여 등을 명목으로 형제재단에 지원된다.

출소 후 법인명 바꾸면서 복지·수익사업
재산 불려 2010년 전후 자녀들에게 상속

실로암의집과는 별개로 박인근은 영리를 위한 사업체를 운영하며 돈을 굴렸다. 비교적 최근까지 형제재단은 사상해수온천과 빅월드레포츠센터라는 수익업체를 갖고 있었다.

지난 6일 발급한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형제재단은 2004년 1월 사상해수온천이 자리한 토지와 5층짜리 건물을 매입했다. 하지만 사상해수온천의 지번상 토지는 2012년 12월 부산시에 압류됐고, 2013년 4월과 8월에는 각각 건물이 압류됐다. 지난해 10월2일 해당 토지와 건물은 한꺼번에 임의 경매돼 채권의 소유가 한 은행에 넘어갔다. 박천광은 이렇듯 재산을 처분하고 있었다.
 

사상해수온천은 정상 운영 중이었다. 기자는 사상해수온천의 실질 소유자인 박천광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이사님은 자리에 안 계시다"는 말만 들었다. 해당 토지와 건물은 2009년 6월 100억여원의 은행 대출을 위한 담보로 사용된 전력이 있다.

빅월드레포츠센터 역시 정상 운영되고 있었다. 찜질방과 불가마, 사우나, 헬스 시설을 갖춘 빅월드레프츠센터는 2002년 1월 형제재단이 토지 및 건물을 전부 매입했다가 2011년 12월 A사로 소유권 일체가 이전됐다. A사는 노인을 상대로 한 서비스센터를 운영했던 법인으로 사회복지시설을 겸하고 있는 형제재단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한 관계자는 "몇 년 전 박인근이 수사를 받을 때 일부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대표들이 앞장서 구명운동을 벌인 적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그들은 '박인근은 부산에서 좋은 일을 한 사람'이라며 '시대가 어쩔 수 없어 그랬던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해진다.

횡령·사기 혐의
박인근 부자 기소

2012년 9월 부산시는 법인의 재산 매각 대금을 개인용도로 유용한 혐의 등으로 박인근을 형사고발했다. 당시 박인근은 법인 재산을 매각한 대금 중 36억여원을 공사비 지출과 차입금 상환에 사용한다며 시로부터 허가를 받은 뒤 14억5300만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았다. 형제재단은 사회복지법인이기 때문에 현행 사회복지사업법상 재산의 매매·증여·교환·임대·담보제공 등 처분과 관련한 사안은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돼있다.

하지만 박인근은 사상해수온천의 수익금 12억원가량을 유용하거나 장기차입을 명목으로 시의 허가를 받아 빌린 16억4000만원을 용도를 알 수 없는 곳에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시는 이 같은 감사 결과를 토대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사건을 인계받은 검찰은 이로부터 1년이 지나서야 사건 관련자들을 불구속 기소했다. 박인근 부자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지난해 10월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들이 공모하여 횡령한 돈이 18억4000만원이라고 밝혔다.

또 검찰은 지난해 12월 국고보조금 1억7700만원을 편취한 혐의(사기)로 박인근 부자를 추가 기소했다. 같은 혐의로 생활지도원 김모씨와 형제재단도 피고인에 이름을 올렸다. 이 사건은 지난 1월13일 법원에 접수됐다.

박인근은 지난 2007년 1월부터 2011년 3월까지 무자격자인 김씨를 물리치료사인 것처럼 속여 부산 기장군으로부터 1억2700만원 상당의 보조금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박인근은 정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김씨를 결원이 생긴 물리치료사로 둔갑시켰다. 본래 김씨는 생활지도원으로 고용돼야 했지만 생활지도원은 정원이 초과돼 보조금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을 박인근은 악용했다. 또 박인근은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후에도 아들 박천광과 공모해 같은 수법으로 보조금 5000만원을 추가로 편취한 혐의를 받았다.

이처럼 박인근 부자는 횡령과 사기사건 등에 연루된 상황이다. 그렇지만 햇수로 2년이 지났음에도 형제재단에 대한 행정·사법당국의 조처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부산시 장애인복지과 담당자는 "형제재단의 경우 채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해산을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는 "외부 감사를 도입하고, 법인이사 7명 중 4명을 공익이사로 선임하는 등 재단이 스스로 자정할 수 있도록 힘을 싣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은 법인의 노력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며 "법인의 모든 운영에 지자체가 간섭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곳곳에 부동산
자녀가 받았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부산시가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한 관계자는 "만약 형제재단을 해산하면 요양시설을 행정기관으로 귀속시키거나 다른 사회복지법인을 통해 운영권을 이양해야 하는데 그 절차가 까다로워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형제재단이 장기차입 허가를 받을 때 부산시에서 편의를 봐준 건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거액을 대출받는 과정에서도 부산 지역 유력 정치권 인사가 거론될 정도로 박인근 일가와 연관한 정·관계 유착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박인근은 "돈으로 여러 인사를 구워삶았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그의 막대한 부가 방패막이가 된 셈이다. 일각에선 박인근 일가의 재산을 1000억원대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박인근의 재산은 2010년을 전후로 그의 자녀들에게 폭넓게 상속된 것으로 보인다.

부랑인들 모아 감금하고 강제 노역
사망 500명 등 3000여명 피해 집계
폭행고문에 성폭행…진상규명 착수

먼저 큰딸이 대표이사로 이름을 올린 사회복지법인 신양원은 박인근이 형제재단 소유의 토지 및 건물을 담보로 대출받은 돈 일부가 흘러간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박인근은 지난 2008년 신양원 산하의 대안학교 신영중·고교의 대표이사로 부임한 후 2010년 학교 운영권을 첫째 딸에게 넘겼다. 사실상 증여인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첫째 딸 사위가 목사인데 거제도에 있는 교회가 박인근의 재산이라는 얘기가 있다"고 귀띔했다.

호주 시드니에 있는 골프연습장도 박인근의 재산으로 유명하다. 박인근은 이 해외 부동산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차명으로 송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재 해당 골프연습장은 박인근의 셋째 딸과 사위에게 넘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인근이 둘째 사위를 위해 병원을 지어줬다는 의혹도 있다. 부산에서 울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병원은 의사 신분인 사위가 운영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또 박인근은 부산·울산·경주 등 동남권 곳곳에 부동산을 소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부동산 중 일부는 매각을 거쳐 형제재단의 채무를 갚는 데 사용됐다.


박인근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상황이다. 박천광 역시 대표이사에서 퇴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형제재단은 박인근 부자의 후광이 워낙 강한 터라 이들이 어떤 형태로든 재단 운영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는 거둘 수 없다.

실로암의집
해결책 없나

실로암의집은 기자의 방문취재를 거부했다. 실로암의집 관계자는 "우리는 말할 것이 없다"며 "장애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설득 끝에 실로암의집과 관련한 한 가지 의혹에 대한 해명을 들을 수 있었다.

복수 제보자는 "실로암의집을 방문했을 때 교회 간판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요양시설에 특정 종교시설을 함께 운영하는 건 불법이다. 해당 교회는 박인근 일가의 돈세탁 창구로 의심됐다.

하지만 실로암의집은 "지난 부산시 감사 때 지적 받은 뒤 지금은 교회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실로암의집은 형제재단과 다르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실로암의집이 있는 지번상 토지와 건물은 모두 가압류가 들어온 상황이다. 부산시 장애인단체의 한 관계자는 "실로암의집 시설에서 근무하는 선생님 대부분은 여자인데 실로암의집에서 실제로 생활하는 장애인은 모두 남자"라며 "여기서 오는 고충도 헤아렸으면 한다"고 충고했다.

기자는 실로암의집에서 내려오며 주위를 둘러봤다. 차도로 한참을 내려가서야 간신히 인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설에서 빠져나온다 한들 어디로도 빠져나갈 곳은 없었다. 1990년대부터 2000년 무렵까지 그곳에서 살았다는 한 장애인은 "도망치면 반드시 잡혀와요"라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다만 지금은 과거와 같은 폭력이 아닌 사랑으로 요양인들을 대하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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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