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을 찾아서 ②충북 충주-삼화대장간 야장 김명일

그 곳엔 담금질과 두드림의 연금술사가 산다

충주는 예부터 철의 으뜸 생산지였다. 고려시대 몽골에 대승을 거둔 곳도 충주지역으로, 몽골보다 월등한 철제무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전해진다. 충주시 무학시장 입구 누리장터에 자리한 ‘삼화대장간’은 60년 넘는 세월 동안 쇠를 녹여 철제기구들을 제작해온 야장(충북 무형문화재 13호)이 운영하는 곳이다. 올해 75세인 도지정 무형문화재 야장 김명일 선생이 직접 제작한 화로에서 쇠를 담금질하는 과정과 다양한 도구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고려시대 사찰인 단호사 대웅전에 모셔진 철조여래좌상(보물 512호)은 철로 제작된 불상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전통무예 택견을 체험할 수 있는 충주시 택견전수관과 충주세계무술박물관이 있는 충주세계무술공원도 함께 돌아보자.

2005년 충북도 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
‘충청 모팔모’ 쇠붙이와 함께한 삶 고스란히

벌겋게 달궈진 화로 앞, 탕탕 망치질하는 소리가 마치 심장을 두드리는 듯하다. 일흔다섯 나이가 무색하게 육중한 망치를 들어 모루를 향해 내리치는 어깨에 기운이 넘친다. 60년 넘는 세월 동안 망치를 놓지 않은 도지정 무형문화재 야장 김명일 (충북 무형문화재 13호) 선생이다.
대장간을 뜻하는 한자 풀무 야(冶), 장인을 뜻하는 장(匠)이 합쳐진 야장은 우리말로 대장장이다. 요즘은 대장간을 만나기 어렵기도 하지만, 옆에서 작업 과정을 지켜보면 달군 쇳덩어리로 도구를 만드는 그에게 ‘장인’이라는 호칭이 붙는 까닭을 알 수 있다.

작은 호미 하나를 만드는 데 20번 가까운 담금질과 1000번이 넘는 망치질이 필요하다. 손잡이를 끼우는 슴베 작업을 하고 마무리하기까지 한 시간 넘게 걸린다. 기계로 찍어내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노력과 시간, 정성이 더해지는 것이다.
고관대작의 안방에 걸리는 장식품도 아니고 값나가는 물건도 아니지만, 모루에 올려놓고 모양을 잡아가는 동안 눈빛에 흐트러짐이 없다. 때로는 거침없고, 때로는 아이를 달래듯 조심스러운 망치질 소리는 묵직하면서도 변화무쌍하다.

풋풋한 봄
장인의 숨결 따라

요즘은 공장 기계를 통해 몇 분 만에 수십 개씩 물건들이 쏟아지지만, 김명일 선생의 삼화대장간에 똑같은 물건은 없다. 모두 하나하나 손으로 제작한 명품이기 때문이다. 호미며 낫, 칼은 물론이고 쇠스랑과 긁개 같은 농사 도구부터 소 목에 거는 도래, 문고리, 화로 같은 생활용품까지 다양하다. 원래 대장간 자리에서 누리장터의 현대식 건물 안으로 들어왔지만, 그가 만들어낸 물건들은 화로와 모루 앞을 지킨 세월을 말해주는 듯 한결같이 듬직하고 믿음직스럽다.

손바닥에 박힌 굳은살과 상처마저 보듬어준 시간은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시절 마차 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 밑에서 재미 삼아 풀무질을 배웠고, 1953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인근 대장간 일을 거들며 용돈을 벌고 취직도 했다. 다른 일을 하리라 마음먹고 입대했지만, 육군 무기 보급창에 배치되어 또다시 철을 녹이고 두드리며 3년을 보냈다. 야장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오는 동안 호기롭던 청년은 백발이 되었지만, 여전히 망치를 들고 모루 앞에 선다. 아버지의 마차 공장에서 사용하던 모루며 바이스 같은 도구와 연장도 함께 나이를 먹었지만, 그에게는 자랑스러운 가보다.
한때 호황을 누리던 대장간도 이제는 힘겹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농번기가 되어도 사람들은 값싼 중국산을 찾는 것이 현실이다. 손님이 적어도 전통방식을 고집하며 물건을 만드는 이유는 자부심 때문이다. 도지정 무형문화재 김명일 선생이 만든 농사도구를 써본 사람은 평생 단골이 된다. 몇 번 쓰면 부러지고 자루가 빠지는 중국산 제품과 달리 삼화대장간의 물건은 튼튼하기로 유명하다.

대장간에 오는 어린 학생들과 함께 망치질 체험도 하고, 앙증맞은 호미를 기념품으로 선물하는 것 또한 큰 즐거움이다. 책이나 영화에서 보던 대장간을 직접 보고 쇠를 두드리는 이색적인 체험을 하기 위해 일부러 대장간에 오는 여행자도 많다.

손끝 따라 떠나는
멋의 기행

수십 년 전만 해도 삼화대장간이 있는 달천변을 따라 대장간이 많았다. 조선시대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충주에서 생산되는 것 중 으뜸으로 철을 꼽았을 만큼 충주에는 철이 많았다고 한다. 백제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제철 유적지도 여러 곳에서 발굴되었다. 몽골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 우수한 철제 무기로 아홉 번 중 여덟 번을 승리한 곳도 충주로 알려졌다. 충주 지역에 유일하게 남은 삼화대장간의 의미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까닭이다.
삼화대장간이 있는 달천 변에는 자유시장과 공설시장, 무학시장이 이어져 장터 나들이하기에 그만이다. 의류상과 잡화상이 주를 이루는 자유시장과 순대골목 등 다양한 먹을거리가 있는 무학시장 사이에 공설시장까지 충주 전통시장 삼총사다.


특히 끝자리 5·10일에 서는 충주풍물시장은 달천변을 따라 350여 개 난전이 그야말로 문전성시다. 무학시장 안에 자리한 반선재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던 본가로, 반 사무총장의 학창시절과 부모님의 모습을 담은 사진, 생활 모습 등을 재현했다.

고려시대 사찰 단호사에는 충주가 철의 고장임을 말해주는 철조여래좌상(보물 512호)이 있다. 조선 숙종 때 중건된 약사전에 모시던 철조여래좌상은 최근 신축된 대웅전으로 옮겨졌다. 흔히 보는 금불상이 아닌 검은빛 철제 불상으로, 긴 눈매와 자연스럽게 표현된 여섯 겹 옷 주름이 특징이다. 
충주시 택견전수관은 전통무예 택견(중요무형문화재 76호)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졌을 만큼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택견은 유네스코 지정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었다. 사전에 신청하면 품밟기, 활갯짓, 발질 등 기본 동작을 익히는 수련 체험을 할 수 있다.

세계무술공원은 세계 여러 나라의 무술과 택견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충주세계무술박물관을 중심으로 수석 공원, 돌 미로원, 야외 공연장 등이 함께 있는 복합 공원이다. 아름드리 플라타너스가 멋진 풍광을 만들어주는 벤치와 미니 도서관도 좋고, 자전거를 빌려 강변길을 즐기기에도 그만이다.


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삼화대장간→무학시장(반선재)→자유시장→충주시 택견전수관→충주세계무술박물관→단호사(철조여래좌상)


1박2일 여행 코스
· 첫째 날 : 삼화대장간→무학시장(반선재)→자유시장→충주시 택견전수관→충주세계무술박물관→단호사(철조여래좌상)→숙박(계명산자연휴양림)
· 둘째 날 : 계명산자연휴양림→종댕이길 걷기→귀가


관련 웹사이트 주소
· 충주문화관광 www.cj100.net/tour
· 충주시 택견전수관 www.taekgyeon.net


문의 전화
· 충주시청 관광과 043)850-6723
· 충주시청 경제과(무학시장, 오일장 관련) 043)850-6021
· 삼화대장간 043)848-4079
· 충주시 택견전수관 043)850-7304
· 단호사 043)851-7879
· 충주세계무술박물관 043)848-8483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충주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8회(08:10~23:00) 운행, 약 1시간40분 소요.
·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하루 2회(09:30, 15:30) 운행,
약 1시간50분 소요. 충주공용버스터미널에서 143번 버스 승차, 무학시장 정류장 하차, 누리장터 주차장까지 도보 5분.
* 문의 :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www.ti21.co.kr
· 서울남부터미널 02)521-8550, www.nambuterminal.co.kr
· 전국시외버스통합예약안내서비스 02)2088-2635, www.busterminal.or.kr
· 충주공용버스터미널 043)856-7000, www.cjterminal.co.kr


자가운전 정보
중부내륙고속도로 충주 IC→중원대로 따라 약 9km 이동→문화사거리에서 시청·시의회 방면 좌회전→삼원로터리에서 직진→대봉교 건너 우회전→누리장터 주차장


숙박 정보
· 필림 37.2 : 충주시 연원로, 043)842-0515 (굿스테이)
· 계명산자연휴양림 : 충주시 충주호수로, 043)850-7313, http://gmf.cj100.net
· 봉황자연휴양림 : 가금면 수룡봉황길, 043)850-7315, http://bhf.cj100.net
· 호텔 더베이스 : 충주시 호암대로, 043)848-9900, www.hotelthebase.com


식당 정보
· 금능가든횟집 : 송어·향어회, 충주시 국원대로, 043)848-5101, http://kumnung.smphone.kr
· 만나밥집 : 황태해장국, 충주시 동수2길, 043)852-9590
· 신라정 : 장어구이, 충주시 국원대로, 043)845-9591, http://cityfood.co.kr/h9/sinlajeong
· 중앙탑오리집 : 오리백숙, 가금면 중앙탑길, 043)857-5292
· 진풍가든 : 꿩 요리, 살미면 세성로, 043)851-0771


축제와 행사 정보
탄금대, 충주고구려비전시관,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충주 미륵대원지, 수안보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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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