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중에서도 최악의 패륜범죄는 다름 아닌 근친상간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끼리, 친인척끼리 벌어지는 이 범죄는 한 인간의 인격을 파괴하고 그의 미래까지 말살한다는 점에서 전 인류가 추방해야할 ‘공적 1호’라고까지 할 수 있다. 이 범죄는 인간성을 말살한다는 점에서 절도와 같은 범죄와는 그 질적인 차원 자체를 달리한다.
간혹 언론에서 ‘인면수심’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이런 패륜 범죄를 보도하면 이에 많은 시민들이 분노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도 그때일 뿐, 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우리의 머릿속에서 지워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디어헤이>에서 국내 근친상간 범죄의 현황과 실제 사례를 집중 취재했다.
패륜범죄는 인격 파괴·미래 말살…추방해야 할 ‘공적 1호’
피해자 다수 ‘처벌 당사자가 가족이란 이유로 신고 꺼려’
한국성폭력상담소(KSVRC)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7년 성폭력 상담건수는 총 1948건.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상담건수를 기록한 것은 직장 내 성폭력 상담건수로서 490건에 달한다. 그 다음이 바로 근친상간. 273건으로 전체의 14%에 달했다. 그 뒤로 친밀한 관계에 의한 성폭행 174건, 초중고 대학에서의 성폭행 149건, 주변 지인에 의한 성폭행이 118건이었다.
여성부 장관
“근친상간 많아요”
근친상간이 주변 사람들에 의한 성폭행보다 많다는 것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수치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2006년에는 215건이었다. 사회는 점점 더 발달하고 물질적으로는 더 풍요로워지지만 성폭행은 더욱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수치상으로는 적어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통계에는 하나의 맹점이 있다.
신고를 하지 않으면 수치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현재 국내의 근친상간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성부 변도윤 장관은 올해 초 모 통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성폭력도 저소득층이 많이 당한다. 사례는 근친상간이 많다. 사촌오빠, 심지어는 남매까지…. 우리나라는 근친상간이 적지 않다. 온 가족이 패륜을 저지르는 것도 많다”고 근친상간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다른 사람의 말도 아니고 여성부 장관의 말이라는 점에서 사뭇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만큼 많은 근친상간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간에 많은 근친상간 뉴스들이 보도되곤 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공분을 하고 격렬한 지탄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실제 그것을 체계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사회적인 활동은 많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1회성 분노와 1회성 처벌이 횡행하면서 근친상간이라는 패악적 범죄는 오늘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근친상간의 더욱 큰 문제점은 그것이 겉으로 잘 노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족의 망신이다’란 저급한 논리로 한 개인의 인격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특히 자신이 신고를 했을 경우 처벌받는 사람이 자신의 가족이란 점에서 더욱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다.
차라리 모르는 타인이라면 ‘죗값을 치러야 한다’며 정당한 신고 절차를 밟을 수 있겠지만 가족이라는 점이 오히려 이런 노출을 꺼리게 만드는 아이러니를 발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실제 근친상간에 대해 상담을 하는 많은 정신과 의사들은 “현재 노출된 근친상간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도대체 근친상간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친오빠의 성폭행 불구
“가족이기 때문에…”
익명을 요구한 서울 강북의 한 정신과 의사는 자신의 상담 사례를 들려줬다. 피해 대상자는 1남1녀의 둘째 김모(27)씨. 김씨는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친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님은 물론 모든 집안사람들이 친오빠의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학교 성적을 칭송해마지 않았다는 점이다.그녀는 바로 그 점이 제일 두려웠다고 한다.
만약 자신이 성폭행 사실을 밝혔을 경우 자신이 어떤 대우를 받을 것인가 혹은 앞으로 어떻게 이 집안에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두려움이 그녀를 주저하게 만들었고 이 기간 속에서도 친오빠는 끊임없이 자신의 동생을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김씨가 겨우 오빠의 마수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오빠가 결혼을 하고나서부터다. 드디어 분가를 했기에 그녀는 더 이상 원하지 않으면 오빠 얼굴을 보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명절이나 집안의 대소사가 있는 날이었다.
특히 오빠는 결혼을 한 상태였기에 늘 아내와 함께 자리를 했고 그때마다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느낌이 아닐 수 없었다. 때로는 자신을 성폭행하는 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저렇게 멀쩡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증오의 감정이 솟아올라 이제 과거의 모든 것을 폭로할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결국에 가족들에 의해 자신만 ‘이상한 여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
어차피 자신만 사라지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혹시 그렇게 폭로를 했다가는 자신을 정신병동에 집어넣지 않을까 하는 극단적인 걱정까지 했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자신이 안고 가기로 했지만 마음의 내면 속에 숨어있는 증오와 분노의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 김씨는 현재 남자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못하고 있다.
어쩌다가 미팅이나 소개팅을 한다고 하더라도 상대방 남자의 얼굴과 오빠의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과거의 그 끔찍했던 기억이 다시 현실로 닥쳐올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친오빠의 성폭행으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삶마저 제대로 꾸려가지 못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지속적 관찰·계도, 엄정한 법집행만이 막을 수 있다
피해자 결혼해도 후유증 시달려
때로는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결혼 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결혼을 한 후 이미 6살짜리 여자 아이가 있는 이모(32·여)씨의 경우에는 과거의 자신의 경험이 아이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대표적 사례다. 이씨는 어렸을 때 한동안 친척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부모님의 사업이 망해 친척 집에 얹혀사는 동안 고등학생 오빠에게 약 1년에 걸쳐 장기적인 성폭행을 수시로 경험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당시 자신의 처지를 호소할 수가 없는 처지였다. 그렇지 않아도 얹혀사는 ‘주제에’ 그런 일까지 있었다고 말했을 경우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1년 뒤에 그 집을 나올 수 있었지만 문제는 성인이 된 이후 남편과의 결혼생활, 그리고 자녀에 대한 양육에 문제가 발생했다. 성폭행의 경험은 그녀의 성생활을 원활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남편과의 섹스가 마치 더럽고 불결한 것처럼 느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그렇게 회피적인 태도로 섹스에 임하니 남편이 그에 만족할 리도 없었다. 특히 딸아이다 보니 그녀는 과민할 정도로 남자 아이들과의 접촉을 꺼리는 편이다. 심지어는 함께 손을 잡는 것에 대해서도 화를 낼 지경이다. 어떤 때는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남자 아이들을 너무 싫어한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는 얘기까지 들었다.
물론 아이가 그렇게 된 것은 거의 부모 교육 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도 이런 사실을 머릿속으로는 이해한다. 때로는 ‘그러지 말아야지’란 다짐을 해도 과거의 기억이 자신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고 그것이 아이에게 투영되면서 또다시 남자아이들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근친상간은 이토록 심대한 피해를 주는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는 않다. 일단 가정 내에서 가족끼리 일어나는 범죄이기 때문에 외부 노출이 극히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딸 교육에도
영향 미쳐
또한 피해자 스스로 범죄 사실이 드러나지 않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심’해서 범죄를 덮으려는 꼴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근친상간은 교육기관의 끊임없는 관찰, 시민사회단체의 계도, 정부의 엄정한 법집행만이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