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연금보험의 함정

노후 집 준다더니 '없던 일로'

[일요시사=경제2팀] "평생토록 연금이 지급되므로 안락한 노후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28년 전 우정사업본부(옛 체신부·이하 우본)가 '행복한 노후보장 연금보험'을 홍보하면서 안내했던 문구다. 당시 우본은 연금보험 가입자들에게 "장차 체신부가 건립하게 될 노후생활의 집에 입주할 수 있는 우선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노후생활의 집을 짓지 않고 있다.




1985년 5월 민모씨는 체신부가 건립하기로 한 '노후생활의 집'에 입주할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우체국 연금보험에 가입했다. 민씨는 20년이 넘도록 매달 4만1000원을 체신부에 입금해왔다. 

그러나 2009년 만기일 연금수령을 위해 우체국을 찾은 민씨는 크게 실망했다. 가입당시 안내된 '노후생활의 집' 입주 우선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정사업본부는 "노후생활의 집은 보류됐다"고 답변했다. 24년 동안 민씨가 품어왔던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깨진 믿음

 

우본의 '행복한 노후보장 연금보험'은 당시 첫 국영 연금보험이었으며, 1985년 5월부터 1991년 3월까지 약 5년11개월 동안 '행복한 노후보장 연금보험'을 판매했다.


우본은 연금에 들면 '노후 생활의 집' 200호를 지어 입주 기회를 주겠다고 광고했다. 당시 첫 국영 연금보험이었기에 우호적인 언론들의 보도가 쏟아졌다.

우본은 "평생토록 연금이 지급되므로 안락한 노후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라며 "행복한 노후는 준비하는 분에게만 약속됩니다"라고 광고했다. 특히 '노후생활의 집' 이용에 관한 안내서에는 "이 보험에 가입하신 계약자는 장차 체신부에서 건립하게 될 '노후생활의 집'에 입주할 수 있는 우선권을 드립니다"라며 "다만 입주자격의 부여는 따로 체신부 장관이 정하는 조건에 의합니다"라고 밝혔었다. 

우본은 '행복한 노후보장 연금보험'을 판매하기 위해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로 실버타운을 전국 9개소에 건립하는가 하면, 가입자들이 실비만 내면 노후에 입주해 생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이를 위해 1984년 '노후생활의 집 추진 계획'을 수립하고,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이후로 '노후생활의 집' 건립을 위해 지난 1986년부터 1992년까지 안성시 마정리 일대 토지 6만9000여㎡를 매입했다. 그렇게 우본은 '노후생활의 집' 입주 우선권 자격을 걸고 ‘행복한 노후보장 연금보험’을 판매해왔다.

그러나 이 계획은 당초 계획과는 달리 무산됐다. 우정사업본부는 '노후생활의 집'을 한 곳도 건립하지 못했다. 우본이 매입한 토지는 애초부터 복지시설을 지을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안성시청에 따르면, 마정리 산 29번지 일대는 공원 등 도시계획시설만 조성할 수 있는 지역이다.

또한 가입자 증가율 둔화와 기금 적자 탓에 체신부는 결국 노후 생활의 집 건립사업을 보류했다. 그러나 우본은 만기일까지 사업이 무산됐다는 사실을 가입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연금보험 가입자들의 입주 요구가 있었지만 우본은 '약관에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해왔다.

 


"연금 들면 입주" 28년 전 약속
대대적 광고했지만 끝내 모르쇠
단 한 곳도 건립하지 못해 무산

 

'행복한 노후보장 연금보험'에 가입한 후 계약을 유지하고 있는 가입자들은 2011년 5월 기준 약 3300명으로 추산된다.

'행복한 노후보장 연금보험'에 대한 전화민원이 지속적으로 쏟아지다가 본격적 소송은 2010년부터 시작됐다. 한 노후보장 연금보험 가입자가 합의배상요구 1인 시위를 하면서부터다.

이후 일부 노후보장 연금보험 가입자들은 지난 2011년 우본을 상대로 계약위반에 대한 책임을 물어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2년 피해자들의 소송은 기각됐다.

연금보험 약관과 계약 청약서에는 노후 생활의 집 관련 내용이 기재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체신부의 안내문과 광고, 신문 보도 등은 청약 유인에 불과할 뿐 보험 계약 내용은 아니었다며 재판부는 원고의 패소로판결 처리했다.


이를 빌미로 우본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항변했다. 실버타운은 부가 서비스에 불과하다는 부연이다.

지난해 2심 원고에서는 주장이 일부 수용돼 3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났다. 재판부는 "국가 보험상품에 대한 일반인의 신뢰는 민영 보험사와 같을 수 없다"며 "안내문과 언론 보도를 본 민씨 등은 노후 생활을 보낼 집의 입주권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고 그 신뢰가 연금보험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가입자들의 구체적인 손해액을 확정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 배상액을 월 단위로 산정하지 않고 1인당 300만원으로 정했다. 그러나 가입자들은 보상금액이 터무니 없이 적다며 판결에 불복했다.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집단소송 확산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보험업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공공기관에서 사전에 충분한 준비 없이 보험을 판매하면서 문제가 발생된 것"이라며 "일반 금융사도 아닌 공공기관에서 불완전판매와 책임회피로 인해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대표적 사례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빠르면 2월 중에 대법원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우정사업본부 등 관련부처가 가입자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지 않을 경우 공동소송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효선 기자 <dklo21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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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