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순방 징크스’ 왜?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4.02.05 11: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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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만 나가면 대형사건 ‘펑펑’

[일요시사=사회팀] 최근 ‘카드사태’와 ‘AI’가 확산되면서 어지러운 형국을 맞고 있는 가운데, 일명 ‘순방 징크스’가 어김없이 찾아왔다. 대통령이 해외출장을 가면 국내가 시끄러워진다는 것. 실제로 대통령이 외교무대에 설 때 마다 초대형 악재들이 펑펑 터졌다. 대통령이 해외만 나가면 사고가 터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순방만 다녀오면 국정지지도가 상승한다. 큰 폭은 아니지만 순방 전보다 높은 수치를 보인다. 이번 인도·스위스 순방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달 24일 ‘갤럽’ 주간 정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 대통령이 인도·스위스 순방을 다녀온 뒤 54%의 응답자가 직무수행도를 묻는 질문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37%는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2% 포인트 올랐다.


우연? 필연?


지난달 박 대통령이 새해 첫 해외순방을 나섰다. 8일 간 인도와 스위스를 방문하며 경제외교에 집중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주특기로 자부하는 ‘창조경제’를 위해 스위스 경제구조를 벤치마크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아시아 거대 시장 인도에서는 현지에 진출한 포스코 등 우리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했다.

마지막 일정인 다보스포럼에서는 개막기조연설을 통해 규제를 확 풀겠다며 한국 투자확대를 권유했다. 박 대통령은 “제가 직접 주재하는 규제개혁장관회의를 통해 꼭 필요한 규제가 아니면 모두 풀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포럼에 이어 퀄컴·아람코 등 유명기업 CEO들과 잇따라 만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해외순방으로 미소를 띠고 있을 때, 국내 상황은 엉망이 됐다. 대통령의 외교무대 뒤에서는 금융정보유출 사태와 AI(조류인플루엔자) 확산 같은 초대형 악재가 터졌다.


우선 AI의 경우 철새인 가창오리가 감염원으로 지목되면서 방역을 실시했지만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어 장기화가 우려된다. 또 금융정보유출 사건과 관련해 야당은 국회 청문회와 국정조사까지 염두에 두고 있어 거대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이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이 자신의 대선공약인 ‘기초의원 정당공천 폐지’ 공약을 여당에 떠넘기는 방식으로 사실상 고개를 돌린 데 대한 반발 역시 거세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과 원외 당협위원장들에게 선물한 ‘박근혜 시계’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인 것도 위 사건들과 궤를 같이한다.

이러한 사건들이 제대로 수습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의 국정관리 능력 부재론 등이 국정 운영에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렇듯 ‘순방 징크스’가 새해에도 이어지고 있는 상태다. 대통령이 나갔다 하면 시끄러워지는 정국. 과연 이번뿐일까.

박 대통령은 지난 한 해 동안 총 9개국을 방문했다. 국제기구(EU)까지 포함하면 총 10번 해외로 나갔다. 일정은 다자정상회의 5번과 G20(Group of 20:선진7개국·EU의장국·신흥12개국) 정상회의,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 등이었다.


인도·스위스 떠나자…카드사태에 AI 확산
외교무대 설 때마다 초대형 악재들 터져


지난해 5월 박 대통령은 미국을 공식 방문했다. 당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방문길에 동행했다. 윤 전 대변인은 방미 도중 성추행 사건으로 전격 경질됐다. 순방 성과는 증발하고 청와대 얼굴에 먹칠만 했다. 윤 전 대변인은 칩거 중이며, 현재 수사는 끝난 상태로 곧 발표를 앞두고 있다.


이어 6월에는 중국을 다녀왔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했다. 박 대통령 출국 직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회의록 공개 명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서해 북방한계선) 포기 발언 논란을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 회의록 논란은 일파만파 번져 박 대통령이 귀국한 이후로도 수개월간 ‘회의록 정국’이 지속됐다.

9월에는 러시아와 베트남으로 향했다. 그리고 30년 만에 ‘내란 음모’가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되면서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이 파묻혔다. 채동욱 전 검찰청장의 혼외아들 논란까지 더해져 여야 간 대립은 극심한 혼란으로 치닫았다.




10월도 이변은 없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 다녀온 박 대통령은 기초연금 공약 파기 논란으로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 하지만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연계를 반대하며 사표를 던진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이른바 ‘항명사태’로 박 대통령의 이미지에도 흠집이 생겼다.

11월에는 프랑스, 영국, 벨기에, EU(유럽연합) 등 유럽순방길에 올랐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박근혜는 합법적인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부정선거 규탄 집회가 잇따라 열렸다. 프랑스 에펠탑과 루브르 앞에는 한국인 유학생과 동포들이 플래카드를 걸고 규탄시위를 벌였다.

박 대통령의 ‘순방 징크스’는 새해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복잡한 정국을 ‘외교 이미지’로 만회하려 하지만, 혼란스러운 정국은 변함이 없다. 이러한 징크스에는 불가항력적인 문제가 원인이 된 적도 있었지만 청와대와 정부가 정국 혼란을 일으킨 당사자인 경우도 있었다.

집권 첫해인 지난해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순방 징크스가 집권 2년차에도 여지없이 발목을 잡은 셈.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심이 출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단순 징크스?


한편, 전 대통령들의 징크스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순방 징크스에 시달렸다. 지난 2011년 10월 미국 국빈방문 직전에 내곡동 사저 사건이 터지며 방미 성과를 덮어버렸고 임기 중 네 번째 특검으로 번졌다. 지난해 1월 중국을 방문했을 땐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이 불거져 레임덕을 가속화시켰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징크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2003년 노 전 대통령이 미국 방문 중 청와대로 전화를 걸어 화물연대 운송 거부 사태에 대해 알아보려 했지만 전화를 받은 사람이 없었다. 2006년에는 이해찬 총리가 ‘철도파업 중 3·1절 골프 파문’으로 사의를 표명하면서 아프리카로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불운을 피할 수 없었다. 1999년 옷로비 사건을 비롯해 간첩선 사건과 한일어업협상 비준동의안 파동, 불법대출 사건 등으로 정국이 시끄러웠다. 김 전 대통령 러시아 순방 땐 손숙 환경부 장관이 러시아 공연 무대에서 돈 봉투를 받았다는 이유로 한 달 만에 사퇴하기도 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통령 해외순방 최다 보좌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 순방길에 거의 개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총수 중 가장 활발한 사절단 활동을 보여준 것이다. 박 대통령의 새해 첫 순방길인 인도 방문까지 동행하며 총 5번째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현 회장은 유럽 순방 일정만 제외하고는 모두 참석하며 대기업 총수로서는 가장 많이 참석했다. 유럽 일정의 경우 유망 중소·중견기업들이 한-EU FTA를 활용해 유럽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 위한 자리여서 동행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현 회장이 여성기업인을 대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사명감으로 대통령의 순방길에 동행한 것으로 분석하는 시각도 있다. 박 대통령이 같은 여성인 현 회장을 챙기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함께 나온다. 일각에서는 현 회장의 외삼촌인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의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후문도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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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