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한국화가 임태규

"그림 보는 법? 그냥 보이는 대로 느끼세요"

[일요시사=사회팀] 한국화가 임태규는 자신의 그림과 관련한 온갖 질문에 대해 "그냥 보이는 대로 느껴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대학로 푸에스토에서 '흐린 풍경(Blurry Scene)'이란 주제로 전시를 연 임태규는 소탈한 웃음과 함께 "작품은 감상자의 것"이란 견해를 거듭 드러냈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이상으로 꼽는 임태규는 그림을 통해 관객과 예술가가 공존하는 세계를 그리고 있는지 모른다.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더 큰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가 있다. 임태규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진실로 말할 수 있는 것들만 말했다. 감상은 객관이 아닌 주관의 영역, 더구나 계량화가 불가능한 마음의 영역이다.

보이지 않는 것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밥은 얼마나 먹었고, 소주는 얼마나 마셨으며, 먹이나 물감은 얼마나 썼는지…. 이런 것들은 수치로 계산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림에 임하는 마음가짐, 그림을 그리며 내린 순간의 판단 등은 수치화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것조차 계량화시키려고 해요. '그림을 그리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냐' '작품의 주제가 한 마디로 뭐냐'처럼요."

임태규는 지난 전시 주제였던 '보여주는 것,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에서 자신의 철학을 슬쩍 드러냈다. 그는 관객에게 흐린 풍경을 '보여주면서' 작품 안의 특정 대상(인물이나 소나무, 나룻배 등)을 '보이도록' 했고, '보이지 않는 것'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뒀다. 시각적인 효과를 위해 장지 위에 백토를 쓴 다음 사포질을 하는 수고로움도, 세밀하다 못해 조심스럽기까지 한 정교한 붓놀림도 그에겐 설명의 대상이 아니다.

"제 그림은 그때그때의 감성을 표현한 건데 각각의 선과 색에 어떤 의도가 담겼냐고 물으면 실은 저도 기억이 나질 않아요. 나이가 들어 그런지 기억이 흐릿해지는 거 있죠? 그래서 이번 전시 주제가 '흐린 풍경'인 거고요(웃음)."


임태규의 작가 노트를 보면 '흐린'이란 말은 여러 의미로 쓰인다. 우린 비 내리는 날을 흐린 날이라고 하며, 새벽안개 자욱한 강가의 갈대를 볼 때도 시야가 흐릿하다고 한다. 또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떠올린 기억들이 가물가물할 때도 사람들은 흐릿하다는 말을 쓴다.

임태규는 이번에 걸린 작품들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밝혔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이곳저곳을 다니며 보았던 '구체적인 자연'의 '흐릿한 기억'과 '사실'로 남아있지만 떠오르는 '추억'들이 반영된 모습인 것이다.

"이번 작품은 강원도 풍경이 많아요. 영월, 정선, 평창 등 강원도를 다닌 지 한 30년은 된 거 같아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제 또래(40~50대)고,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진 나이죠.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도 있습니다. 바람을 현실로 보면 의인화된 소나무가 현실을 버티고 있는 걸 은유적으로 표현한 거고요. 나룻배 같은 경우에는 떠다녀야 하잖아요? 그런데 어딘가에 정박해 있어요. 자유롭고 싶은데 현실에 걸쳐져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 놓인 인물의 감정을 다룬 거죠."

흐릿함과 진함 대비로 관객 참여 유도
'동양의 미' 지키면서 현대 흐름 수용

임태규는 "모든 그림마다 사연 없는 그림은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그림도 동양적인 것을 지키면서 현대적인 흐름을 수용하는 과정 속에 탄생했다고 밝혔다. "흐린 풍경이라 처음 보면 잘 안보이지만 30분 정도 얘기하면서 천천히 보면 점점 잘 보인다"는 농담도 곁들였다.

"한국화는 서양화와는 접근을 달리해야 해요. 이건 인상파야, 이건 고흐풍이야. 이렇게 객관화 혹은 범주화해서 그림을 보는 건 서양식 감상법이죠. 동양의 감상법은 달라요. 그림도 주관적이라는 거죠. 작가마다 각각의 형식이 있고, 가장 중요한 건 내용이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냥 그리는 풍경은 재미없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제 그림에 빈 땅과 빈집이 많이 등장하는데 요즘 시골에서 생긴 어떤 사회문제를 읽으시는 분도 있더라고요."




임태규의 풍경은 어느 한 시점으로 시선이 고정되지 않는다. 흐릿함과 진함의 대비는 시선의 변화를 자연스레 유도한다. 이를 따라가는 관객은 마을로부터 다리를 건너기도 하고, 호수를 지나 산 위로 오르기도 한다. 작품 안으로 빨려 들어가 (작가가 의도한) 인생의 갈래를 경험하는 셈이다.


사연 있는 그림

임태규는 작품 활동 중 원래부터 관심이 있던 도가 철학을 배우고자 서울 한 유명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인간을 자연의 지배자로 보지 않는 그의 감성은 장자의 가르침과 맥이 닿아있다.

"여기저기서 동양미학에 대한 번역이나 출판 요구가 많아 고생입니다. 하지만 장자 연구도 그림에 도움이 되고 있어요. 다가올 5월에는 아내와 함께 2인전을 하게 될 것 같아요. 300호 정도 되는 대작을 준비 중인데 작업이 끝나면 또 오십견이 올까 걱정이네요(웃음)."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임태규 작가는?]

▲ 홍익대 동양화과 및 동대학원 동양화 전공
▲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예술철학 박사
▲ 개인전 18회(인데코화랑,백송화랑,샘터갤러리,가나아트스페이스,조선화랑 등)
▲ 기타 기획전 및 초대전 250여회
▲ 동아미술제 회화1부 '동아미술상' (92, 국립현대미술관)
▲ 대한민국미술대전 구상부문 '우수상' (93, 국립현대미술관)
▲ 『장자 미학 사상』『의경(意境) 동아시아 미학의 거울』(2013) 저
▲ 성균관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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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