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방위비협상 타결 '득실' 엿보기

한미동맹 강화 위해 퍼줄 수밖에 없다?

[일요시사=정치팀]제9차 한미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이 타결됐다. 기한은 5년이며, 올해 한국이 부담할 비용은 전년 대비 5.8% 인상된 9200억원이다. 내년부터는 전년도 방위비에 전전년도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되 최대 4%를 넘지 않도록 하기로 했다. 협상을 진행한 정부와 미국, 그리고 여권의 평가는 '성공적 협상'이라는 호평 일색이다. 반면 야권과 시민단체는 '굴욕적 협상'이라는 정반대의 혹평을 쏟아내며 국회 비준과정에서의 진통을 예고했다. 과연 우리가 얻은 '성공'은 무엇이며, '굴욕'은 뭘까.

 



"주한미군의 한국 부담 방위비는 감독상에 약점이 있고, 사실상 '공돈'으로 취급했다."
지난해 4월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가 채택한 '해외미군 주둔비용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에 대해 미국 의회조차 주한미군이 '공돈'으로 인식, 방만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그간 미군에 지급한 방위비가 어떻게 사용됐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최근 타결된 제9차 한미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SMA)은 어떨까.

505억원 인상

한미 당국이 협상에 돌입한지 6개월여 만인 지난 12일 9차 SMA가 타결됐다. 외교부 조태영 대변인은 이날 서울 도렴동 외교부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정부의 올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총액이 지난해(8695억원)보다 5.8%(505억원) 인상된 9200억원으로 확정됐다. 또 한미 양국은 방위비 분담금 사용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분담금 배정 단계에서부터 사전조율을 강화키로 하는 등 제도개선에 합의했다"고 SMA 협상 결과를 발표했다.

조 대변인은 또 "협정 유효기간은 2018년까지 5년이며, 내년부터는 전전년도 물가상승률을 전년도 방위비에 반영해 지급하되 최대 4%를 넘지 않도록 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방위비 분담 제도 시행 이래 최초로 방위비 분담금 전반에 걸친 포괄적인 제도 개선을 이끌어 냈다"며 "분담금 대부분은 우리 근로자의 인건비와 군수·군사건설 업체 대금으로 우리 경제로 환류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번 협상에서는 방위비 분담금의 이월, 전용, 미집행 등 문제와 관련해 ▲분담금 종합 연례집행 보고서 매년 한미통합국방협의체, 국회에 보고 ▲현금 미집행액 현황 보고 연 2회 제출 등을 통한 투명성 개선안이 포함됐다.

그간 주한미군이 별다른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요구한 주둔비 총액의 절반 가까이(42%)를 방위비 분담금으로 내주며 정작 사용처, 미집행 규모 등은 알 수 없었던 상황에서 투명성을 제고할 길이 열린 것이다. 

이에 군 당국은 "우리 정부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서 협상을 했고, 상당히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호평했다. 새누리당도 "그간 여러 상황 변화로 인해 한미동맹이 이전보다 덜 탄탄하다는 우려가 제기돼왔으나 이번 타결은 동맹을 더 단단히 다질 계기가 될 것"이라며 "동맹 강화와 관련해 우리 측 분담금 인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주한 미국대사관도 보도자료를 통해 "미국과 한국은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며 "양국이 한미동맹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지역 평화와 안정의 핵심축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와 여당은 물론 협상의 대상이었던 미국도 앞 다퉈 '성공적 협상'이라는 평가를 내린 것이다. 

향후 5년 주한미군 방위비 집행 사전조율·투명성 제고
미집행 방위비 '1조' 이상 불구 10년 만에 최고액 인상
 

반면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는 '굴욕적 협상'이라는 혹평을 쏟아냈다. 그간 지급된 방위비 분담금 중 미사용액이 1조1000억원이 넘는 상황에서 지난 2004년(전년 대비 840억원 증액) 이후 10년 만에 최고액(505억원)을 인상시키기로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방위비 분담금을 미2사단 기지의 평택 이전 사업에 전용하는 것을 계속 허용하고, 미군이 축적해 둔 미사용 분담금 1조1000억원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별다른 해결책도 없어 미국의 요구가 더 많이 반영된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특히 정부는 당초 1조원 이상을 요구했던 미국의 요구를 크게 삭감한 것이라고 홍보했지만, 1조원 이상의 천문학적 미사용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505억원의 분담금 대폭인상을 합의한 이유와 근거는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제도적 측면에서 다소 진전이 있었지만 지나친 '미국 퍼주기'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5년의 기한 설정이 너무 길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연 2~3%의 물가상승률로만 따져도 5년 내에 방위비 분담금은 1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미 2사단 등의 평택 이전기한인 2016년으로 3년의 유효기간을 정했다면, 미군기지 이전 완료 후 재협상을 통해 방위비를 상당부분 낮출 가능성이 높지만 정부가 이를 스스로 포기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간 협정 기한은 1991년 첫 협정 체결 이후 노무현정부 때까지는 2~3년 단위로 협정을 갱신해왔으며 5년 기한의 협정은 이명박정부 들어 처음 체결된 바 있다.

정부의 대표적 홍보 내용인 방위비 분담금 사용에 대한 제도 개선도 강제성이나 구체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어 실효성은 의문이다. 미군은 분담금 사용에 대해 한국과 협의는 하지만 반드시 동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어서 협의 내용을 미군 측이 꼭 준수할 필요는 없다.

정부는 우리 측이 분담금의 사용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되면 사업 타당성 등에 대한 의견을 미군 측에 개진할 수 있어 미군이 한국 국민 세금으로 마련된 분담금을 좀 더 책임감 있게 사용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정부 당국자도 "분담금 사용 내역이 공개되면 과거와 같은 (미군의) 전용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핵심문제 미해결

이에 대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민주당 백군기 의원은 "이번 협상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큰 한걸음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반보 전진에 머문 아쉬운 협상"이라며 "미집행 분담금 문제, 분담금 '소요형' 지급방식 전환 등 근본적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굴욕적인 퍼주기, 미국의 일방적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 부실·졸속 협상"이라며 "미국이 부족하다고 하면 아무 말 않고 방위비 분담금을 올려주는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냐. 이번 협정에 대한 국회 비준동의를 엄격히 진행하겠다"고 비준과정의 진통을 예고했다.

 

허주렬 기자 <carpedie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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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