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선거 '로또선거' 전락 내막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4.01.14 10:5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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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군지? 아무나 찍자!"

[일요시사=정치팀] 요즘 정치권에서는 교육감선거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교육감은 '지역 교육대통령'이라 불리는 중요한 자리다. 하지만 현행 교육감선거 제도는 지난 선거에서 '로또선거', '깜깜이선거', '묻지마선거' 등으로 불리며 많은 문제점을 낳았다. 로또선거로 전락한 교육감선거 실태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앉아 긴장감이 역력한 얼굴로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거나 눈을 감고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곧 이어진 추첨. 첫 번째로 추첨에 나선 사람이 상자에 손을 집어넣고 한참 동안이나 공을 섞었다. 그러나 5번 공을 뽑자 크게 낙심한 얼굴이다.

그는 잠시만 공을 들고 포즈를 취해달라는 사진기자들의 요청도 무시하고 자리로 돌아가 침묵에 잠겼다. 반면 다음 사람은 1번 공을 꺼내들자 동료들과 일제히 환호하며 뛸 듯이 기뻐했다. 마치 로또 추첨장을 방불케 했다. 지난 2010년 교육감선거 순번 추첨 현장의 모습이다.

로또 교육감?

이 같은 코미디는 전국 16개 시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치러진 시도교육감 후보자의 투표용지 순번 추첨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지역 정치 성향에 따라 첫째나 둘째 순번을 뽑은 후보자와 지지자들은 마치 당선이나 된 것처럼 만세를 부르거나 환호성을 질렀다.

교육감 선거는 정당공천이 금지되어 있다. 기호도 따로 부여하지 않고 추첨을 통해 투표용지에 게재되는 순서를 결정한다. 그런데 인지도가 낮은 교육감 선거이다 보니 상위번호를 뽑는 것만으로 높은 득표율을 기대할 수 있다. 유권자들이 특정순번을 특정정당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세가 뚜렷한 대구·경북 교육감 선거의 경우 다른 선거에서 여당의 기호인 1번의 평균 득표율이 46.2%고, 기호 2번은 15.2%로 나타났다.

반면 민주당 지지세가 강했던 광주·전남은 다른 선거에서 야당 기호인 기호 2번이 평균 32.1%로 가장 많은 평균 득표율을 보였고, 기호 1번은 17.7%에 그쳤다. 특히 보수색이 강한 강원도에서는 진보진영의 민병희 후보가 깜짝 당선됐는데 민 후보가 1번을 뽑았기 때문이라는 게 지역 교육계의 평가다.

결국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는 전국 16개 시ㆍ도 중 '1번' 또는 '2번'이 당선된 지역이 10곳이나 돼 당선율(62.5%)이 절반을 넘었다. 특히 교육감 선거보다 더 인지도가 낮은 교육의원 선거에서는 82개 선거구 중 78곳이 1번 또는 2번 순번의 후보가 당선돼, 무려 95.1%의 당선율을 기록했다. 교육의원 역시 시ㆍ도 교육청이 제출한 교육정책과 예산안에 대한 의결권을 갖는 중요한 자리다.

공약이나 인물보다는 투표용지 기재 순서가 당선을 좌우했다는 지적이다. 교육감은 '지역 교육대통령'이라 불리며 각 시·도의 막대한 교육재정과 교육자치를 책임지는 중요한 자리지만 이처럼 번호추첨만 잘하면 당선되는 로또선거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교육감 선거를 로또선거로 만든 결정적 원인은 '정당공천 배제' 때문이다. 교육이 정치논리에 휘둘려선 안 된다는 점에서 정당공천이 금지됐다. 하지만 정당공천 배제 원칙은 지난 선거에서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진보와 보수진영으로 나뉜 교육감, 교육의원 후보자들은 특정 정당 상징색의 선거현수막과 포스터 등을 만들어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투표 순번 추첨이 당락 좌우
"선거일보다 떨리는 추첨일"

정당 관계자들도 유세현장에 나와 찬조연설만 하지 않았을 뿐 후보자 옆에 서 있는 방식으로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보수ㆍ진보진영으로 나뉜 교육감 후보들에 대한 정당들의 음성적인 지원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선거가 끝난 후에는 성향을 달리하는 광역단체장과 교육감이 교육방침을 달리하며 갈등을 빚다 충돌하는 일도 잦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상급식 예산을 놓고 갈등을 빚다 중도사퇴까지 했다.




한 전문가는 "지난 교육감 선거는 정책대결이 아니라 사실상 이념대결이었다. 정치인들의 선거와 다를 바가 없었다"며 "도대체 무엇을 위해 정당공천 배제하고 교육감 선거를 로또선거로 전락시킨 것인지 알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교육감 선거는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면서 더욱 깜깜이 선거로 변질됐다. 정당 공천이 배제돼 후보들이 우후죽순 난립한 데다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니 아무래도 유권자들의 관심은 광역·기초단체장 선거에 더 쏠릴 수밖에 없었다. 후보자의 정책 및 인물검증 기회도 제도적으로 부족했다. 지난 교육감 선거가 끝나고 유권자들 사이에선 '사실상 찍었다'는 하소연이 줄을 잇기도 했다.

이렇게 순번추첨에 따라 희비가 크게 엇갈리면서 웃지 못 할 상황도 연출됐다. 불리한 순번을 뽑은 후보들이 순번추첨이 끝나자마자 대거 사퇴하고 나선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후보자들의 사퇴를 지켜보며 교육감선거가 기탁금 5천만원짜리 로또가 됐다며 혀를 찼다. 

게다가 교육감 후보들은 평생을 교육자로 살아온 사람들인데 막대한 선거자금을 부담해야 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자칫 선거에서 패하고 나면 평생 모아온 재산을 탕진하게 될 수도 있다. 교육감의 법적 선거비용 한도액은 서울 39억원, 경기도는 41억원에 달했다. 급기야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은 후보자 매수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을 해야 했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위 공청회에서도 참가자들은 교육감 직선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여야 간 입장 차이는 뚜렷했다. 새누리당 측 인사들은 직선제 폐지와 임명제 부활안을 적극 내세운 반면, 민주당 측 인사들은 현행 제도를 유지하되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뺑뺑이?

한 전문가는 "교육감 선거 제도의 폐해는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충분히 이야기가 나왔고 심각했다. 그런데 지난 4년간 아무런 논의도 하지 않다가 선거를 코앞에 두고서야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라며 "선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는 여야 간 기싸움과 이권다툼 때문에 합의가 더더욱 쉽지 않다. 물리적 시간도 부족해 결국 올해 교육감 선거도 깜깜이, 로또선거가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 된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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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