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6·4지방선거 6대 격전지 판세 전망

민주당 '수성' vs 새누리 '탈환' vs 안철수 '도전'

[일요시사=정치팀]올해 최대 정치이벤트인 6·4전국동시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두고 정치권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한 쪽은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여야 모두 사활을 걸고 벌써부터 선거 대비에 착수한 것이다. 실제로 내달 초 시·도지사 및 교육감 예비후보 등록을 앞두고 후보들의 출마러시도 시작됐다. '지키느냐, 빼앗느냐' 지방선거 전쟁의 서막이 오른 상황에서 <일요시사>가 주목할 격전지를 살펴봤다. 




다가오는 6·4지방선거는 박근혜정권 2년 차에 전국 단위로 치러지는 첫 선거여서 정권 중간평가의 성격이 짙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지난 2010년 지방선거 승리로 야당이 차지하고 있는 야당 소속 지자체장에 대한 '평가의 장'이 될 것이라는 정반대의 분석도 나온다. 이에 따라 여야는 각각의 명운을 걸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해 생존을 위한 명승부를 펼칠 전망이다.

여야, 사활 건
명승부 돌입

내달 4일 시·도지사 및 교육감 예비후보 등록을 앞두고 후보들의 출마 러시가 시작됐다. 이번 지방선거는 결과에 따라 여야 한쪽은 치명상을 입을 공산이 크기 때문에 여야 지도부도 벌써부터 지방선거 대비 총력체제로 전환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새누리당 승리 시 박근혜정부의 국정운영에 더욱 힘이 실리면서 각종 국정과제를 힘 있게 밀어붙일 수 있지만, 반대로 야권이 이길 경우 정국 주도권은 야권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지방선거 바로 다음달 열리는 10곳 안팎의 7·30국회의원 재·보궐선거도 지방선거의 연장선에서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결과에 따라 현재의 여대야소 구도가 뒤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야권의 속사정은 좀 더 복잡하다. 안철수신당의 성과에 따라 야권질서가 재편될 수도, 아니면 민주당이 제1야당으로서의 위상을 회복할 수도 있다. 물론 안철수신당의 성과는 야권을 넘어 전체 정치지형에도 중대한 변화를 야기할 전망이다. 

가장 주목할 격전지는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는 서울·인천·충남·충북·강원 등 5개 지역과 서울·인천과 함께 '빅3'로 꼽히는 경기도 등 6곳이다. 영호남 지역구도가 아직 확고한 상황에서 이들 지역에서의 결과가 곧 지방선거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빅3', 박원순·송영길 재선
김문수 출마 여부 관심

지방선거의 꽃이라고 불리는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는 민주당 소속 박원순 현 시장이 가장 앞서 나가고 있다. 당내 4선의 신계륜·추미애 의원, 3선의 박영선 의원 등이 출마를 고심하고 있지만 일찍이 재선의지를 밝힌 박 시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야 맞대결뿐 아니라 안철수신당 후보를 포함한 가상 3자대결에서도 모두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와 관련, 박 시장은 지난 7일 오찬을 겸한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여론조사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새누리당의 후보로 나서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인사는 이혜훈 최고위원뿐이다. 하지만 '서울 탈환'이 절실한 새누리당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박 시장과 맞상대가 가능할 후보군으로 대선주자급인 7선의 정몽준 의원, 김황식 전 국무총리, 권영세 주중대사 등을 올려놓고 출마를 권유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출마 가능성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정 의원은 최근 서울시장 후보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내가 직접 후보가 되는 것보다 능력 있는 다른 후보를 돕는 것이 역할"이라고 선을 그었다. 실제로 서울시장보다 차기 대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정 의원이 당내 차기 대선후보 경선을 감안하면 임기를 3년도 못 채우고 관둘 서울시장직에 정치적 생명을 거는 것은 도박일 수도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반면 추대 형식으로 후보가 될 경우에는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김 전 총리 측도 추대가 아닌 당내 경선이 진행될 경우에는 출마에 부정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정 의원이 차기 대권에 도전하려면 서울시장에 나와야만 한다"며 "일부에선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추대하자는 주장도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창당 준비에 들어간 안철수신당에서는 최근 민주당을 탈당해 안 의원 측에 합류한 이계안 전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

여야 운명 좌우할 지방선거 열기 '후끈' 
서울·경기·인천·충남·충북·강원 격전 전망

인천광역시는 지난 7일 민주당 소속 송영길 시장이 공식적으로 재선도전 의사를 밝혀 그의 수성 여부가 주목된다. 송 시장은 이날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올해 지방선거 출마 의사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인천은 인프라를 만들어가는 성장단계에 있기 때문에 서울보다도 일이 많고 복잡하다"며 "4년 동안 시민이 저에게 엄청나게 월급을 줘가면서 누구도 대치할 수 없는 경험과 정보를 축적하게 했는데 이걸 써먹지 않고 버리기엔 아깝다고 재선 의지를 드러냈다.

이어 "올해 6월에 임기가 끝나고 9월에 인천아시안게임이 열리는데 시장이 바뀌면 이·취임식 하다가 대회를 치러야 한다"며 "전쟁을 앞두고 장수를 바꾸지 않는 것처럼 지속해야 아시안게임을 무사히 치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송 시장의 대항마로는 새누리당 이학재·박상은 의원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도 후보군으로 거론되며, 상황에 따라서는 황우여 대표 차출설까지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강력한 카드인 황 대표의 경우 출마 가능성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대신 황 대표는 후반기 국회의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인천과 함께 '빅3'로 꼽히는 경기도는 새누리당 소속 4선 원유철·정병국 의원, 민주당 소속 4선 원혜영 의원이 출마를 공식화했다. 현재 지역 언론의 지지율 조사에서 김문수 현 지사를 제외하고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민주당 김진표 의원은 20일께 출마를 공식화할 예정이다. 김 지사는 대권 도전을 위해 3선 도전에 부정적인 입장을 수차례 언론을 통해 밝혔다.

이외 새누리당 후보로 당내 차기 원내대표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유효한 카드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남경필 의원과 유정복 안정행정부 장관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또 확실한 승리를 위한 김 지사의 출마 요구 목소리도 높은 상황이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수성 여부 주목

충남은 민주당 소속 안희정 지사의 수성 여부가 관전 포인트다. 전통적으로 보수성향이 강한 충남도민들은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안 지사를 선택하며 최초의 진보출신 도지사를 맞이했다. 이후 안 지사는 보수적인 충남 민심을 의식해 전임 도지사 초청간담회를 갖고 선배 지사들이 이끌어 온 도정의 역사를 이어가겠다고 밝히는 등 신중한 행보를 보였다.

그러면서 임기 동안 뚜렷한 실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내포신도시로의 성공적인 도청 이전과 3대 혁신과제 추진, 내실 있는 기업유치 등 나름 연착륙에 성공했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다. 이에 따라 민주당 내에서는 이번 선거에 안 지사가 무난히 민주당 후보로 선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새누리당은 이에 맞서 여러 명의 후보들이 출마의 뜻을 보이고 있지만 확실한 대항마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현역 의원인 예산·홍성의 홍문표 의원과 아산의 이명수 의원, 3선 제한으로 시장에 출마할 수 없는 성무용 천안시장,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강력한 대항마로 안 지사와 같은 논산 출신의 6선 의원인 이인제 의원 출마 가능성이 당내 일부에서 거론되고 있지만, 이 의원은 지방선거 출마에 부정적 뜻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충남 시군지역의 풀뿌리언론연대모임인 '충남지역언론연합'이 지난해 12월19~27일 '피 트렌드 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새누리당 도지사후보 적합도에서 홍 의원이 1위(28.48%), 성 시장이 2위(24.52%), 이 의원이 3위(17.98%)를 차지했다. 이들과 안 지사와의 가상대결에서는 모두 안 지사가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새누리당 후보경선이 본격화 될 경우 후보 간 시너지 효과로 지지율이 역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안철수신당 변수는 충남에서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자유선진당 출신의 류근찬 전 의원이 선진당을 탈당, 신당에 참여했지만 도지사 출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따라 이번 충남지사 선거는 안 지사와 경선을 거치며 몸집을 키운 새누리당 후보의 한판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충북지사, '선거 불패'
후보 간 맞대결?

충북은 '선거 불패' 기록을 이어온 민주당 소속 이시종 지사의 수성과 이기용 충북교육감의 맞대결 성사 여부가 주목된다. '선거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이 지사는 지방자치제 부활 원년인 1995년 충주시장에 당선된 후 내리 3선 연임에 성공했고, 이후 충주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국회의원직을 던지는 배수의 진을 치고 당시 지사였던 새누리당 정우택 최고위원과 맞붙어 승리했다.

이 교육감은 새해 들어 충북 지사 출마 결심을 굳히고 본격적인 행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이 교육감 역시 지금까지 치른 선거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선거 불패의 기록을 갖고 있다. 그는 2005년 충북교육감 보궐선거에 나서 당선된 뒤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연임제한 규정에 묶여 교육감선거에 출마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충북지사로 눈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중앙대 동문인 친박(친박근혜)계 핵심 서청원 의원이 재보선을 통해 정계 복귀에 성공하면서 든든한 우군을 얻었다는 점도 강점이다.

이 교육감 외에는 일찍이 출마 결심을 굳힌 서규용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한대수 전 청주시장이 새누리당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민주당, 현역프리미엄 살릴 수 있을까?
새누리 '탈환', 안철수 '도전' 의지 거세

강원도는 뚜렷한 당내 경쟁자가 보이지 않는 민주당 소속 최문순 지사가 가장 앞서 나가고 있는 모양새다. 최 지사의 재선 의지와 자신감도 높다. 그는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거물급이 출마해야 선거가 재미있고, 이는 강원도의 정치적 위상과 직결된다"며 "새누리당 후보로 이재오 의원을 포함한 국회의원 중에서 나왔으면 좋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 의원은 동해 출신으로 지방선거 때마다 지역 정치권에서 도지사 후보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으나 본인은 의중을 밝힌 바 없다.

이에 따라 대항마로는 한기호·권성동·황영철 의원, 이광준 전 춘천시장, 최흥집 하이원리조트 대표, 육동한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정창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국민의 선택'
여야 명운 좌우

정치권 한 관계자는 "아직 선거가 5개월여나 남은 상황에서 변수는 많다"면서도 "지난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의 수성 여부와 안철수의 정치실험 성공 여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선거 결과는 결국 국민의 선택이 좌우한다. 여야의 치열한 선거전이 시작된 상황에서 국민들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허주렬 기자 <carpedie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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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