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 이중잣대 논란

정권 옹호 방송은 '편애', 정권 비판 방송엔 '재갈'?

[일요시사=정치팀]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공정성과 객관성이 결여된 심의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권 비판 내용을 실은 방송에 대해선 '중징계' 처분을 내리면서 정부·여당을 옹호하는 방송에 대해선 '문제없음' 결정을 잇달아 내놨기 때문이다. 방심위는 징계 근거로 공정성과 객관성 위반을 들고 있지만, 이 잣대가 사안마다 오락가락하며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균형을 잃은 방심위의 편파 심의 실태를 <일요시사>에서 점검해봤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 6일 발표한 '2013 언론인 의식조사'에 따르면 현직 기자들은 4년 전인 2009년에 비해 언론환경이 나빠지거나 제자리걸음 상태인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언론활동 수행 자유도가 3.06에서 2.88로 가장 많이 떨어졌다.(5점 척도) 박근혜정부 출범 1년도 채 안 돼 언론자유를 후퇴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명박정부보다 더 못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언론장악의 첨병?

전문가들은 이명박정부에선 공영방송사 낙하산, 반대·비판 기자 해직 방식으로 언론장악을 시도했고,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규제'를 통해 언론장악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전면에는 방송통신심의위가 있다.

방심위는 누리집에서 "방송 내용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고, 정보통신에서의 건전한 문화창달과 올바른 이용환경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계 안팎은 물론 방심위 내부에서도 공정하지 못한 심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방심위의 '수상한 심의'는 수차례 반복됐다. 가장 최근 사례는 지난 8일 방심위 산하 방송심의소위(이하 심의소위)에서 KBS <미디어인사이드>의 지난해 12월8일 '종북 논란 부추기는 언론'이라는 주제의 보도에 대해 '의견진술'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의견진술은 방송사 재허가시 감점대상이 되는 법정제재(주의, 경고, 관계자 징계 및 경고)에 앞선 조치다.


당시 <미디어인사이드>는 "종북이라는 표현에 대해 언론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보도를 했지만, 심의소위는 야권 추천 심의위원 2명(김택곤·장낙인 위원)의 '정치 심의 보이콧' 속 여권 추천 위원 3명(권혁부 소위원장, 엄광석·박성희 위원)이 공정성과 객관성이 결여됐다며 의견진술 결정을 내렸다.

앞서 지난 3일에도 심의소위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가 지난해 11월25일 방송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독도 문제에 비유하는 발언을 한 박창신 원로신부 인터뷰가 부적절했다(공정성·객관성 위반)며 중징계에 해당하는 '주의' 이상의 법정제재 의견을 냈다. 이날 심의에서도 야권 추천위원 2명은 정치 심의라며 보이콧을 선언, 여권 추천 위원들 3명만이 심의를 진행했다. 

양병삼 CBS 제작부장의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사안에 대해 박 신부 발언의 정확한 진의와 핵심을 알고자 인터뷰를 진행한 것이며, 오히려 공세적 질문으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는 반박은 가볍게 무시됐다. 
비록 여권 추천위원 3명이 '주의', '경고', '관계자 징계 및 경고' 의견 등 제재 수위를 다르게 제시해 전체회의에서 최종결정이 내려질 예정이지만, 전체회의 인적 구성도 여권 추천위원 6명, 야권 추천위원 3명이어서 중징계는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방심위, 편파·표적 심의 증가
4년 전 비해 언론자유도 후퇴

특히 가장 큰 관심을 모은 징계 결정은 수년째 언론인 영향력 1위를 달리고 있는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종합편성채널 JTBC <뉴스9>의 통진당 정당해산심판청구 관련 보도(12월5일 방송)에 대한 '관련자 징계 및 경고’라는 중징계 처분이다. 당시 방송에서 <뉴스9>는 김재연 통합진보당 대변인과 김종철 연세대 교수를 출연시켜 장시간 반대·비판론을 내보낸 것이 문제가 됐다.

이외에도 최근 KBS <추적 60분>이 방송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무죄 판결 전말'도 방심위는 법정제재에 해당하는 '경고' 처분을 내렸다. 방심위는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재판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국정원·검찰의 무리한 수사 및 기소에 대한 1심 판결 무죄 결과도 보도해선 안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논란이 일었다.  

지난해 7월에는 RTV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 <백년전쟁-프레이저 보고서(제1부)>도 특정자료만을 근거로 역사 편향적 해석의 방송을 했다며 각각 '관계자에 대한 징계'와 '경고' 처분을 받았다. 이에 대해 RTV는 "방심위의 징계는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허용치 않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과 의구심이 이어지고 있다"며 "법원에 역사 논란에 대한 최종적 판단을 구할 것"이라고 법적 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방심위의 수상한 심의의 화룡점정은 지난해 8월22일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카이스트 석좌교수 시절인 2009년 MBC <황금어장-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방송에 대한 '권고' 처분이다. 당시 방심위는 해당 방송이 예능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영향력 있는 인사의 진위 확인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뒤늦은 처분을 내려 '안철수 죽이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반면 종북몰이, 막말방송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일부 종편방송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사례가 많다. 일례로 정미홍 전 KBS 아나운서가 박원순 서울시장 등 야권 소속 3명의 지자체장을 '종북'으로 매도한 TV조선 <뉴스쇼 판> 발언에 대해선 지난 12월18일 심의소위가 명예훼손 '문제없음', 공정성·객관성 조항 위반에 대해선 가장 낮은 수위의 행정제재인 '의견제시' 의견을 냈다. 또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 의혹을 전하며 채 전 총장의 반론을 받지 않은 TV조선에 대해서도 '문제없음' 결정을 내렸다.


이와 관련해 한 야권 추천위원은 "방심위가 '여6 대 야3' 구도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논의하고 합의하려고 해도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여권 측 위원들이) 요지부동"이라며 "야권 추천 위원들은 끝없는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했다.

내부 불만 폭발

방심위의 공정성·일관성이 사라진 잇따른 심의결과에 방심위 내부 불만도 폭발했다. 방심위 노조는 지난 7일 편파 정치 심의를 일삼은 '권혁부·엄광석 위원은 즉각 사퇴하라'는 제하의 성명을 내고 "여권 추천위원들의 자의적이고 일관성 없는 심의로 국민과 우리가 안녕하지 못하다. 자의적이고 비일관적인 심의를 일삼고 있는 권혁부 소위원장, 엄광석 위원의 행태에 우리는 부끄러움과 분노를 느낀다"며 "권 소위원장과 엄 위원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허주렬 기자 <carpedie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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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