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김한길 대표 신년 기자회견문


[일요시사=정치팀] 김한길 민주당 대표 신년 기자회견문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민주당의 김한길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많은 국민이 안녕하지 못하다고 답하실 것을 잘 알기에 제1야당의 대표로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대통령께서 민생의 어려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아서 놀랐습니다.

지난 월요일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놀랐습니다. 대통령께서 보통사람들 민생의 어려움에 대해서 잘 모르시거나 혹은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아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막연하게 창조경제로 국민소득 4만불시대로 가자고 하시지만 하루하루가 너무나 고달픈 이들, 미래에도 희망을 걸 수 없는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매우 공허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고단한 민생,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절실합니다.


국민의 절반이 나는 하류층이라고 말합니다. 국민 10명중 8명이 부의 분배가 불공정하다고 말하고 국민 10명중 9명이 계층상승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전세 값이 72주째 연속적으로 오르고 있고 전월세 값 생각만 하면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린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자살률 1위인 나라, 청년자살률도 노인자살률도 1등인 나라, 젊은 사람도 나이든 사람도, 오늘이 힘들고 내일이 너무나 막막해서 어쩔 수 없이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 노인빈곤율도 이혼률도 세계 1위입니다.

800만명의 비정규직 한 달 평균임금이 백만원대 초반에 불과하고 600만명 자영업자의 절반 이상이 한 달에 백만원도 벌지 못합니다. 일자리가 없어서 취업과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3포세대' 젊은이들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이제 경제민주화로 어려운 분들에게 희망의 사다리를 놓아 드려야 합니다. 복지를 통해서 국민 누구나가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국가가 보살펴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시대정신이 된 것이고 그래서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도 갑자기 경제민주화와 복지의 전도사로 나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번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라는 단어가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민주당은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습니다.

민주당은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민생과 경제를 챙길 것입니다.


서민 중산층 중소기업 그리고 탐욕과 특혜를 버리고 동반성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기업과 함께하는 상생과 공존의 경제체제를 만들어가겠습니다. 경제민주화와 경제활성화의 최종목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이어야 합니다. 여기에 맞도록 경제체질을 지속적으로 변화시켜나가야 합니다.

과거에는 의·식·주가 삶의 기본이었다면 지금은 교육·주택·의료가 인간다운 삶을 좌우합니다. 교육·주택·의료에 대한 정책지원을 강화함으로써 중산층의 붕괴를 막고 계층상승을 가능케 하는 '희망의 사다리'를 적극적으로 복원하겠습니다.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고교무상교육과 대학생반값등록금 등의 실현으로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를 확대하겠습니다. 전월세 값 상한제 도입과 공공임대주택의 대폭 확대 등으로 주택문제를 풀어가겠습니다.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공공의료 시설을 늘려서 가족 중에 중증질환 환자나 치매환자가 생기면 온 가정이 파탄 나는 일을 나라가 막아야 합니다. 특히 노인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당 정책연구원에 별도로 '실버연구소'를 설치해서 종합적인 노인복지 정책을 마련할 것입니다.

특검은 반드시 관철해내겠습니다.

대통령께서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국정과제로 강조하셨습니다. 세상에 대통령선거에 국가기관들이 불법개입 한 사건만큼 비정상적인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대선관련 의혹들의 진상규명은 모두 특검에 맡기고 정치는 민생과 경제살리기에 집중할 것을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거듭 촉구합니다. 특검을 통한 진상규명으로 헌법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는 일은 불관용의 원칙에 따라 반드시 관철해낼 것입니다.

철도 민영화·의료 영리화, 반드시 막아내겠습니다.

역사교과서 왜곡, 철도 민영화, 의료 영리화 등은 모두 시대에 역행하는 비정상적인 일입니다. 민주당은 공공부문 개혁의 필요성에 동의하지만 공공성을 포기하는 민영화나 영리화가 곧 개혁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의료기관의 영리추구가 확대되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커지고 국민건강과 생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국민의 건강권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자 복지입니다. 의료 분야까지 돈만 더 많이 벌면 되는 산업의 영역으로 바라보는 정부의 발상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민주당은 민생을 위해 시장에 맡겨서는 안되는 가치들을 지키는데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우리당은 철도 민영화와 의료 영리화를 반드시 막아낼 것입니다.


사회적 대타협위원회의 설치를 촉구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4분 5열됐던 나라가 이제는 7분 8열돼가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저는 사회경제적 양극화로 다변화된 사회갈등의 해법을 찾기 위해 '사회적 대타협위원회'의 구성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노사정위원회에 맡기면 된다고 답했습니다. 노사정위는 노총의 탈퇴로 이미 기능이 마비된 틀입니다.

우리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는 '사회적 대타협위원회'의 설치를 다시 한 번 촉구합니다. 여기에는 여·야·정과 갈등의 주체들이 함께 참여하면 좋을 것입니다.

새로운 국민통합적 대북정책을 수립하겠습니다.

'통일은 대박'이라며 기반구축이 필요하다는 대통령의 말씀을 반갑게 들었습니다. '통일은 비용'이라는 잘못된 통념을 깰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통일만이 축복입니다. 북한의 급변사태로 느닷없이 맞게 되는 흡수통일은 오히려 재앙일 수 있습니다.

'해방은 도둑처럼 왔지만 통일은 도둑처럼 와서는 안된다'던 함석헌 선생의 말씀처럼 준비 없는 통일은 한반도에 큰 혼란을 불러올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를 국민에게 제시해야 합니다.


최근 금강산관광 재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정부의 전향적인 입장변화를 환영합니다. 5·24 조치의 해제와 같은 실질적인 대북관계 개선조치가 뒤따라야 박근혜정부의 통일기반조성 노력이 진정성과 힘을 얻을 것입니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시도로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개발이 현실화돼 있습니다. 이제 새로운 사고와 대책이 시급한 시점입니다. 민주당은 국민통합적 대북정책을 마련하겠습니다. 대북정책이 더 이상 국론분열의 빌미가 돼서는 안 됩니다.

동북아 정세를 포함한 우리의 외교는 무엇보다 먼저 남북 간의 긴장을 해소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동북아 정세의 격랑 속에서 우리의 발언권과 영향력을 확보하려면 우선 우리 내부의 통합된 목소리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여야의 초당적인 협력이 요긴할 것입니다. 남북간의 소통을 통해 우리 정부가 한반도 문제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의 위상을 확보해야 합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민주당은 북한의 인권 문제 등에 대해서도 직시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인권과 민생을 개선하기 위한 '북한인권민생법'을 당 차원에서 마련할 것입니다.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 폐지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박근혜 대통령의 기자회견에는 정치개혁도 없었습니다. 정치개혁 공약을 지키는 데에는 돈이 드는 것도 아닙니다. 대통령의 의지만 있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기초지방선거에서의 정당공천 폐지는 대통령의 대표적인 정치개혁 공약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들의 기득권을 버리라는 국민적 요구이고 또 새누리당의 대표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시로 국민들께 약속했던 문제입니다.

민주당은 이미 전당원투표를 통해 정당공천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했고 국민의 대다수가 이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이 시간을 끈다고 국민의 명령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새누리당은 기초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폐지하겠다고 한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민주당이 걸어온 길 : 민생 우선, 소통, 실사구시의 정치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지난해 5월 당대표를 맡으면서 민주당이 가야할 길을 깊이 고민했습니다.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부터 생각하는 '민생 우선의 정치',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소통의 정치', 좌우의 극단을 경계하고 합리적 대안을 찾는 '실사구시의 정치', 이 세 가지가 민주당이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대표가 되자마자 '을(乙)을 위한 정당'을 선언하고, 즉각 '을지키기 위원회(세칭 을지로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현장에서 민생을 챙기는 을지로위원회의 활약상은 '민생우선 정치'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 작년 연말국회에서 법안과 예산안 처리가 여야간 입장 차이로 난항을 겪고 있을 때 제가 타협을 결단했던 것도 한쪽의 승리나 쌍방 모두가 패배하는 정치가 아니라 바로 '실사구시 정치'를 선택한 결과였습니다.

민주당이 철도노조 파업에 중재자로 나서서 합리적인 타협안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도 대화와 타협의 정치, '소통의 정치'가 맺은 소중한 결실이었습니다. 특히 국정원등 국가기관의 정치개입을 차단한 개혁입법은 국정원 창설 이래 최초로 국회가 주도한 의미 있는 국정원 개혁의 성과였습니다.

지난 총선과 대선 패배의 교훈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민주당이 국민 여러분의 기대에 온전히 부응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우리 민주당이 여전히 백척간두에 서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패배 이후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가장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대선에 국정원 등이 불법개입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반성과 성찰은 분노와 규탄으로 변했습니다.

하지만 대선 불법개입 사건이 우리의 반성을 가로막는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자각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지난 총선과 대선의 뼈아픈 패배의 교훈을 우리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저질러진 부정은 그것대로 척결하고 우리 내부의 문제를 직시하는 자기반성과 성찰을 계속하겠습니다.

제2창당의 각오로 정치혁신을 통해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겠습니다.

'제2의 창당'을 한다는 각오로 낡은 사고와 행동양식에서 벗어나는 정치혁신에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혁신을 통해 당 조직의 역동성을 회복함으로써 국민에게 신뢰받는 민주당으로 거듭나겠습니다.

이와 함께 우리 내부에 잔존하는 분파주의를 극복해서 민주당이 하나로 뭉치는 데에 진력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선당후사의 자세로 하나가 되겠습니다.

민주당이 고품격 고효율의 정치에 앞장서겠습니다. 소모적인 비방과 막말을 마감시키고 국민의 요구에 빠르게 응답하는 정치를 만들어가겠습니다.

지방선거가 5달 뒤로 다가왔습니다. 민주당이 승리하지 못하면 불통과 무능의 정치가 계속되고 민생과 민주주의가 파탄날 것입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지방선거 기획단'을 확대개편하는 동시에 당을 '혁신과 승리를 위한 비상체제'로 가동할 것입니다.

당 지도부와 국회의원,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당원에 이르기까지 당의 모든 구성원들이 당의 사활을 건 혁신운동에 나설 것입니다.

민주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명한 공천을 실천하겠습니다. 상향식 공천과 개혁공천으로, 호남을 포함한 전 지역에서 당내외 최적 최강의 인물을 내세워 승리할 것입니다. 당대표와 지도부에게 부여된 권한을 오로지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엄정하게 행사할 것입니다.

저는 민주당의 지난 전당대회에서 야권의 재구성이 필요하게 된다면 민주당이 앞장서서 주도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정치혁신으로 경쟁해가면서 야권의 재구성이 필요한지의 여부를 국민의 뜻에 따라 판단하겠습니다.

민주당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6월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갑오년 새해에 여러분 가정에 좋은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해웅 기자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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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