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조형작가 이민호

"예술은 다른 세계로 연결된 통로"

[일요시사=사회팀] 프랑스 유학파 출신인 조형작가 이민호의 작품 상당수는 사진을 질료로 한다. 하지만 회화적 특성이 혼재돼 있다는 점에서 범주화가 어렵다. 작품과 유리된 작가 개인의 캐릭터 역시 한 마디로 정의하긴 힘들다. 유럽에선 이방인으로 한국에선 시스템 안에 편입되지 않았던 그의 이력은 통념으로부터 해방된 그의 작품과 맥이 닿아있다.



조형작가 이민호는 시각예술가란 평가에 동의했다. 그는 대학에서 독일 문학을 전공한 뒤 취미로 그림을 시작했다. 하지만 취미는 곧 직업이 됐고 회화에서 사진으로 사진에서 조형으로 변화를 거듭했다. 정제된 색감과 독특한 구성이 인상적인 그의 작품들은 세련된 화면으로 미적 쾌감을 극대화한다.

15년 외국생활

"한국에 있을 때는 주로 아카데믹한 미술을 했어요. 이건 이렇게 그리고, 저건 저렇게 그리고 정해진 대로 그리는 거 있죠? 그런데 프랑스 유학 과정에서 미술에 개념을 넣는 공부를 하게 됐어요.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었죠. 전 미술 입문을 회화로 했어요. 하지만 작업 특성이 사진과 더 가깝다는 걸 알게 되면서 카메라를 만지게 됐습니다. 담당 교수의 권유가 결정적이었죠. 그렇다고 정통 사진작가라고 보긴 어려워요. 사진의 매체적 특성을 이용해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시각예술가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작가는 15년간 프랑스에서 살았지만 당시 생활을 "이방인의 삶이었다"고 회고했다. 덕분에 유학 생활 동안 자신을 좀 더 객관화시켜 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세계 예술의 중심지인 파리. 그 곳에서 느꼈던 문화적 충격과 영감은 이 작가를 있게 한 동력 중 하나다.

"아시다시피 파리라는 도시는 영화면 영화, 전시면 전시 등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제공해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현지 미술학교에 다니는 프랑스인들을 보면 예술적 감각이 한국인 전공자를 뛰어넘는 부분이 있어요. 재밌는 건 한국 유학생들의 경우 프랑스 중·고교 과정에서 읽을 법한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걸 봤다는 거죠. 반면 유럽인들은 (문화적 소양을 중요시 해서) 책을 많이 접해요. 물론 10년 전과 지금은 환경이 많이 달라졌지만 우리 예술가들이 한국과 외국을 오가면서 각각의 장점을 배합하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사진 작업에 전념하고 있지만 이 작가는 10년 전까지 회화를 고집했다. 대개는 풍경보다 인물에 포커스를 맞춘 익명성에 관한 그림이었다고 이 작가는 소개했다.

프랑스 유학파…'회화부터 사진까지' 시각예술
"초현실 작품 선호" 인공풍경으로 상상력 전달

"외국에서 살다보면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 생겨요. 내국인들에게 있는 사회적 위치가 없기 때문이죠. 어디에나 있을 법하지만 어디에도 섞일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 제 그림의 소재가 됐어요. 서로 알아볼 수 없는 익명성에 기댄 존재들이죠. 그런데 개인 사정으로 귀국하게 되면서 시멘트 바닥 위에 세워진 회색 건물들을 보게 됐어요. 건물 형태도 똑같고, 건물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도 똑같고. 여기서 신기한 게 프랑스에도 한국과 같은 곳이 있거든요. 그래서 생각했죠. 프랑스와 한국의 차이는 뭘까. 자연스럽게 공간이 가진 의미에 주목하게 됐고요. 인물에서 풍경으로 외연을 넓혔죠."



이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인공 풍경을 자주 등장시킨다. 이 작가는 “인간이 만든 풍경도 자연 그대로의 풍경과 (정서적인)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즉 이 작가의 작업은 자연을 조망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본 여러 개의 세계를 조합하는 것에 특징이 있다.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이 충돌된 이미지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예술가들이 조금 더 아방가르드한 작품으로 새로운 흐름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런 면에서 안정적인 서구 사회보다 우리 사회는 역동성을 갖고 있고, 개개인으로 봤을 때는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사진 작업만 하다가 요즘은 다시 물감을 사기 시작했어요. 회화로 표현하고 싶은 부분도 있거든요. 전 초현실적인 작업을 선호하는데 (관객에게) 상상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게 좋더라고요. 제 모든 작품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상상력 바탕

이 작가는 "클래식도 처음엔 생경하지만 듣다보면 익숙해지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늘 듣던 음악도 어느 날 새롭게 들리는 경우가 있다"며 "예술가라면 일반인에게 정서적인 환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자신의 작품이 "다른 세계로 연결돼 있는 통로 같은 느낌을 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 작가가 그린 또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통로는 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이민호 작가는?]

▲성신여대 독일어 전공
▲파리 소르본느 대학 조형예술학 박사과정 졸업
▲국립고양 창작 스튜디오 프로그램 입주 (05∼06년)
▲드뷔시갤러리(01년 파리) 등 해외 개인전 13회
▲트렁크갤러리(12년 서울) 등 국내 개인전 6회
▲경기도미술관, 동덕 아트갤러리 등 그룹전 다수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생시프리앙미술관 작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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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