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의혹' 정보유출 파문

'검찰총장 찍어내기' 서초구청이 앞잡이 노릇?

[일요시사=사회팀] 지난 8월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강효상 <조선일보> 편집국장이 비밀 회동을 가졌다는 소문이 퍼졌다.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을 몰아내기 위해 청와대와 <조선일보>가 '합작'을 했다는 의혹은 정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특히 이들은 불법적인 자료 획득 과정을 거친 것으로 의심 받았다. 그런데 잠잠해지는 듯했던 '채동욱 사태'는 엉뚱하게도 서초구에서 재점화됐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과 관련 서초구청 소속 조모(53) 행정지원국장이 개인정보를 불법 조회·유출했다는 정황이 발견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진짜 몸통은?
누가 지시했나 

앞서 시민단체 한국여성단체연합·함께하는시민행동은 곽상도 청와대 전 민정수석과 <조선일보> 기자 2명, 개인정보 유출에 관여한 성명불상인을 가족관계의등록등에관한법률·초중등교육법·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해당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장영수)는 고발장 접수로부터 2달여가 지난 11월20일 서울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압수수색에서 조 국장의 사무실과 자택에 수사팀을 보내 컴퓨터 파일과 내부 문서, 전산 자료 등을 확보했다. 또 조 국장의 신체를 압수수색해 휴대전화 내역을 입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구청 한 관계자는 "원세훈 핵심 측근 중 1명이 조 국장"이라고 귀띔했다.

 

조 국장은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을 진행 중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절친한 사이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 국장은 원 전 원장이 서울시 행정1부시장을 역임했을 때 비서실에서 근무했으며 이후 원 전 원장이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취임하자 행정부 비서실로 자리를 옮겼다. 원 전 원장은 2008년 조 국장을 행정비서관으로 발탁했다.


이와 관련 <노컷뉴스>는 서울시 고위 관계자의 말 등을 인용해 "조 국장이 경북 포항 출신이고 ▲원 전 원장과 함께 국정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으며 ▲이른바 '영포회' 소속으로 ▲원 전 원장의 가정사도 맡아 처리하는 집사 역할을 수행했었다"고 보도했다.

잠잠해지다 엉뚱하게도 서초서 재점화
임모씨·채군 모자 서류 무단 조회·열람

기자가 확인을 위해 자문을 구한 서울시 전 직원의 설명도 비슷했다. 그는 "조 국장의 승진이 굉장히 빨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직급은 높았지만 서초구청으로 임용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아 높은 사람이 힘을 써 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 6월14일 조 국장은 행정지원국 소속 부하 직원을 통해 채 전 총장의 혼외아들로 지목된 채모군 모자의 가족관계등록부를 무단 조회·열람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 전 총장과 관련한 개인정보가 유출된 곳은 서초구청 행정지원국 산하 오케이민원센터로 특정됐다. 오케이민원센터는 서초구민의 개인정보와 관련한 서류 발급 및 민원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다.

검찰은 채군의 모친인 임모(54)씨의 가족관계등록부가 오케이민원센터에서 불법으로 유출된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이번 검찰의 압수수색은 혐의를 구체화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풀이됐다.

열람한 시기와
사건 시점 일치

압수수색을 기점으로 수사가 점차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서초구청 측은 임씨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열람하는 과정에서 관련 공문을 신청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법상 가족관계등록부 등의 증명서를 조회·열람·발급받기 위해선 증명신청서에 명확한 사유를 적시한 뒤 제출해야 한다.


단 당사자는 예외로 하며, 제3자가 가족관계등록부를 열람하기 위해선 이를 위임한 당사자나 배우자, 형제자매 등으로부터 본인동의서나 위임장을 전달받아 제출해야 한다.

직무상 필요에 따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관련 문서를 열람하는 일은 가능하지만 반드시 열람 사유와 근거법령을 기재한 신청기관의 공문, 관계 공무원의 신분증명서가 함께 제출돼야 한다. 또 가족의 동의 없이 관련 기록을 열람했다면 해당 열람 사실을 가족에게 고지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는 조 국장이 상기한 절차를 거쳤는지 여부다.




검찰은 최근 조사한 행정지원국 직원으로부터 조 국장의 지시로 관련 문서를 무단 조회·열람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검찰은 조 국장의 해당 행위가 직무권한 범위 내에 있었는지를 법리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더불어 조 국장이 열람·조회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를 준수하지 않고 개인정보를 유출했는지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행법상 가족관계등록부를 불법으로 조회·열람·발급받거나 사용 목적 외의 부정한 용도로 유용했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또 정보주체의 동의를 얻지 않고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 부정한 수단이나 방법 등으로 개인정보를 취득한 경우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누설하는 행위 등에 대해서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처벌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살펴봤을 때 조 국장에 대한 형사 처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서초구청 측은 지난 11월27일 "조 국장에 대한 자체 징계나 내부 감사는 현재 시점에서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수사 결과가 나오면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기자는 조 국장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다는 직원을 만나고자 했으나 "휴가 중이라 출근하지 않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또 조 국장에게서 직접 해명을 들으려고 했으나 만날 수 없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다음날 조 국장은 검찰에 소환됐다.

11월28일 오전 10시께 검찰은 조 국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시켜 임씨 등의 가족관계등록부를 무단으로 조회·열람한 경위와 목적, 자료의 외부 유출 또는 임의로 사용한 의혹, 국정원 등 다른 정부기관의 개입 여부 등을 캐물었다.

조 국장은 검찰 조사에서 지인의 부탁으로 가족관계등록부를 열람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원 전 원장의 지시나 국정원의 개입은 없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가족관계등록부 기록내용을 유선전화로 전달했을 뿐 문서 형태로 출력하거나 외부로 유출한 사실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복수 언론 및 관계자는 조 국장이 개인정보를 무단 열람한 시기와 원 전 원장이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시점이 일치하는 것에 착안, 그 배후에 국정원이나 청와대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경위와 목적,
유출 의도는?

<조선일보>의 혼외 아들 의혹 보도는 지난 9월6일에 있었다. <조선일보>는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아들 숨겼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정보를 입수해 기사를 작성한 것으로 의심받았다.

해당 기사를 위해 준비된 것으로 보이는 자료는 가족관계등록부, 주민등록초본, 출입국증명서가 있다. 이들 문서는 행정기관에서 발급 업무를 위해 전산망에 접속하면 열람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1월29일 검찰과 대법원 등에 따르면 수사팀은 최근 가족관계등록부 사무를 관장하는 대법원과 안전행정부의 전산망 서버 내역을 확보해 조사했다. 이는 전국의 가족관계등록부 전산 조회 기록을 전수 조사하기 위한 것으로 각 기관은 가족관계등록부를 보관·관리·처리하고 있다. 전국 관공서에는 가족관계 업무 담당자가 1만3237명 지정돼 있다.



이들은 가족관계 업무 전산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부여받아 관련 업무를 전담한다. 때문에 담당 공무원이 특정인의 가족 정보를 조회하면 전산망 서버에는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는다. 특정 아이디를 갖고 있는 사람이 어느 기관에서 '몇월 며칠 몇시 몇분'에 누구의 가족부를 열람했는지까지 확인된다.

현재까지 조 국장의 지시로 직원들이 임씨의 기록을 조회한 횟수는 2회로 파악됐다. 향후 조사 결과에 따라 조회수는 늘어날 수 있다. 관련 조사를 마친 검찰은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조 국장과 함께 압수수색을 당했던 서초구청 감사담당관 임모 과장을 소환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임 과장은 <조선일보>가 채 전 총장에 대한 의혹을 보도한 다음날인 9월7일 청와대 관계자의 공문 요청으로 임씨 등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조회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임 과장은 '채동욱 찍어내기'의 배후 인물 중 1명으로 지목된 곽 전 수석과 함께 근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임 과장은 지난 2003년 곽 전 수석이 서울지검 특수3부장으로 있을 때 같은 부서 소속 검사이던 이중희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방에서 파견 근무를 했다. 때문에 청와대가 채 전 총장의 개인 정보 유출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원세훈·곽상도 측근 수사선상
청와대·국정원 개입여부 관건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곽 전 수석은 파견 나온 임 과장과 함께 근무하면서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는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곽 전 수석이 임 과장을 특별히 챙겼던 기억이 있다. 파견이 끝난 뒤에도 곽 전 수석이 임 과장 등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던 것으로 안다"고 보도했다.

지난 9월 <조선일보> 보도 직후 진위 파악에 나선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사실 확인을 위해 평소 알고 지내던 임 과장에게 공문을 보내 관련 문서를 조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검찰 한 관계자는 <연합뉴스>를 통해 "임 과장의 경우 정식 공문을 받은 뒤 업무 권한에 따라 기록을 조회해 정상적으로 업무 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채군 모자의 가족관계등록부 유출 의혹을 받는 서초구청 관계자들이 각각 원 전 원장과 곽 전 수석의 측근이란 사실이 드러나면서 안팎의 시선은 '진짜 몸통이 누구냐'에 쏠리고 있다.

더구나 채군 모자의 주소지는 강남구인데 엉뚱하게도 서초구청에서 정보가 새나갔다는 점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힘들다는 해석이다. 이에 기자는 좀 더 정확한 입장을 듣기 위해 임 과장에게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그는 결국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강남구 사는데
서초구서···왜?

검찰은 지난달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을 압수수색해 채군 모자의 항공권 발권기록 자료를 넘겨받았다. 아울러 채군의 학교생활기록부 유출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서버에서 로그인 기록 등을 뒤졌다. 검찰이 이르면 이번 달 중순 수사결과를 발표하기로 함에 따라 가족관계등록부 이외의 유출 경위가 드러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청와대 개입설은 증명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을 건드렸다가 내홍을 겪은 검찰 입장에서 수사를 확대할리 없다는 예상이다. 정권 입장에서도 달가워하지 않았던 채 전 총장의 '명예'를 위한 수사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채동욱 의혹' 정보유출

"진익철은 알았나 몰랐나" 원세훈과 친분 눈길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관련한 개인정보 유출 의혹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진익철 서초구청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친분이 주목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복수 제보자는 "서울시 5급 이상 공무원 중 진익철과 원세훈의 친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며 관련 내용을 증언했다. 제보자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진 구청장과 같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1995년부터 2002년까지 7년간 서울시청에서 함께 일했다. 그런데 단순히 같은 직장을 다니는 수준이 아닌 핵심 측근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앞서 원 전 원장이 서울시에서 법무과장을 맡았을 때 진 구청장은 법무계장으로 원 전 원장을 보좌했다. 이어 원 전 원장이 기획관리실장에 부임하자 진 구청장은 재정기획관으로 원 전 원장과의 인연을 이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재정기획관은 기획관리실장의 직속 참모다. 이게 끝이 아니다. 원 전 원장이 행정1부시장을 역임했을 때 진 구청장은 공보관으로 활동했다. 복수 관계자는 "진익철과 원세훈은 부부끼리 동반 모임을 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키맨'인 조이제 행정지원국장은 검찰 조사에서 "진 구청장은 유출 사실을 몰랐으며 사전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진 구청장은 한 지역 공식행사에 참여해 "조 국장 개인의 불법 행위"라며 자신과 관련 의혹을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석>

 

[바로잡습니다]

일요시사는 2013년 12월 1일자 '채동욱 의혹 정보유출 파문' 중 하단 기사인 '채동욱 의혹 정보유출, 진익철은 알았나 몰랐나'에서 "원(세훈) 전 원장이 서울시 법무과장을 맡았을 때 진(익철) 구청장은 법무계장으로 원 전 원장을 보좌했다. 원 전 원장이 기획관리실장에 부임하자 진 구청장은 재정기획관으로 원 전 원장과의 인연을 이었다. 원 전 원장이 행정1부시장을 역임했을 때 진 구청장은 공보관으로 활동했다"고 보도했으나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다음과 같이 바로잡습니다.

원 전 원장은 1986~1988년까지 '기획관리실 법무담당관'에 재직했으며 1993년 3월부터 같은해 9월까지 '기획관리실 기획담당관'을 맡았습니다. 진 구청장은 1989~1993년까지 '기획관리실 법무담당관'을 지냈습니다.

진 구청장이 '기획관리실 재정기획관'으로 있던 1997년, 원 전 원장은 '내무국'을 거쳐 '중앙공무원교육원'에 파견을 나갔습니다. 원 전 원장은 1999년 12월부터 2002년 1월까지 '시의회 사무처장'을 맡았고, 진 구청장은 2001년~2002년까지 '공보관'으로 활동했습니다. 원 전 원장이 '행정1부시장'을 지낸 기간은 2003년 11월부터 2006년 6월이며, 진 구청장은 2003~2005년까지 '환경국장'으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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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