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의혹' 정보유출 파문

'검찰총장 찍어내기' 서초구청이 앞잡이 노릇?

[일요시사=사회팀] 지난 8월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강효상 <조선일보> 편집국장이 비밀 회동을 가졌다는 소문이 퍼졌다.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을 몰아내기 위해 청와대와 <조선일보>가 '합작'을 했다는 의혹은 정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특히 이들은 불법적인 자료 획득 과정을 거친 것으로 의심 받았다. 그런데 잠잠해지는 듯했던 '채동욱 사태'는 엉뚱하게도 서초구에서 재점화됐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과 관련 서초구청 소속 조모(53) 행정지원국장이 개인정보를 불법 조회·유출했다는 정황이 발견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진짜 몸통은?
누가 지시했나 

앞서 시민단체 한국여성단체연합·함께하는시민행동은 곽상도 청와대 전 민정수석과 <조선일보> 기자 2명, 개인정보 유출에 관여한 성명불상인을 가족관계의등록등에관한법률·초중등교육법·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해당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장영수)는 고발장 접수로부터 2달여가 지난 11월20일 서울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압수수색에서 조 국장의 사무실과 자택에 수사팀을 보내 컴퓨터 파일과 내부 문서, 전산 자료 등을 확보했다. 또 조 국장의 신체를 압수수색해 휴대전화 내역을 입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구청 한 관계자는 "원세훈 핵심 측근 중 1명이 조 국장"이라고 귀띔했다.

 

조 국장은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을 진행 중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절친한 사이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 국장은 원 전 원장이 서울시 행정1부시장을 역임했을 때 비서실에서 근무했으며 이후 원 전 원장이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취임하자 행정부 비서실로 자리를 옮겼다. 원 전 원장은 2008년 조 국장을 행정비서관으로 발탁했다.


이와 관련 <노컷뉴스>는 서울시 고위 관계자의 말 등을 인용해 "조 국장이 경북 포항 출신이고 ▲원 전 원장과 함께 국정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으며 ▲이른바 '영포회' 소속으로 ▲원 전 원장의 가정사도 맡아 처리하는 집사 역할을 수행했었다"고 보도했다.

잠잠해지다 엉뚱하게도 서초서 재점화
임모씨·채군 모자 서류 무단 조회·열람

기자가 확인을 위해 자문을 구한 서울시 전 직원의 설명도 비슷했다. 그는 "조 국장의 승진이 굉장히 빨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직급은 높았지만 서초구청으로 임용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아 높은 사람이 힘을 써 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 6월14일 조 국장은 행정지원국 소속 부하 직원을 통해 채 전 총장의 혼외아들로 지목된 채모군 모자의 가족관계등록부를 무단 조회·열람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 전 총장과 관련한 개인정보가 유출된 곳은 서초구청 행정지원국 산하 오케이민원센터로 특정됐다. 오케이민원센터는 서초구민의 개인정보와 관련한 서류 발급 및 민원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다.

검찰은 채군의 모친인 임모(54)씨의 가족관계등록부가 오케이민원센터에서 불법으로 유출된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이번 검찰의 압수수색은 혐의를 구체화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풀이됐다.

열람한 시기와
사건 시점 일치

압수수색을 기점으로 수사가 점차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서초구청 측은 임씨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열람하는 과정에서 관련 공문을 신청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법상 가족관계등록부 등의 증명서를 조회·열람·발급받기 위해선 증명신청서에 명확한 사유를 적시한 뒤 제출해야 한다.


단 당사자는 예외로 하며, 제3자가 가족관계등록부를 열람하기 위해선 이를 위임한 당사자나 배우자, 형제자매 등으로부터 본인동의서나 위임장을 전달받아 제출해야 한다.

직무상 필요에 따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관련 문서를 열람하는 일은 가능하지만 반드시 열람 사유와 근거법령을 기재한 신청기관의 공문, 관계 공무원의 신분증명서가 함께 제출돼야 한다. 또 가족의 동의 없이 관련 기록을 열람했다면 해당 열람 사실을 가족에게 고지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는 조 국장이 상기한 절차를 거쳤는지 여부다.




검찰은 최근 조사한 행정지원국 직원으로부터 조 국장의 지시로 관련 문서를 무단 조회·열람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검찰은 조 국장의 해당 행위가 직무권한 범위 내에 있었는지를 법리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더불어 조 국장이 열람·조회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를 준수하지 않고 개인정보를 유출했는지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행법상 가족관계등록부를 불법으로 조회·열람·발급받거나 사용 목적 외의 부정한 용도로 유용했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또 정보주체의 동의를 얻지 않고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 부정한 수단이나 방법 등으로 개인정보를 취득한 경우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누설하는 행위 등에 대해서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처벌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살펴봤을 때 조 국장에 대한 형사 처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서초구청 측은 지난 11월27일 "조 국장에 대한 자체 징계나 내부 감사는 현재 시점에서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수사 결과가 나오면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기자는 조 국장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다는 직원을 만나고자 했으나 "휴가 중이라 출근하지 않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또 조 국장에게서 직접 해명을 들으려고 했으나 만날 수 없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다음날 조 국장은 검찰에 소환됐다.

11월28일 오전 10시께 검찰은 조 국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시켜 임씨 등의 가족관계등록부를 무단으로 조회·열람한 경위와 목적, 자료의 외부 유출 또는 임의로 사용한 의혹, 국정원 등 다른 정부기관의 개입 여부 등을 캐물었다.

조 국장은 검찰 조사에서 지인의 부탁으로 가족관계등록부를 열람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원 전 원장의 지시나 국정원의 개입은 없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가족관계등록부 기록내용을 유선전화로 전달했을 뿐 문서 형태로 출력하거나 외부로 유출한 사실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복수 언론 및 관계자는 조 국장이 개인정보를 무단 열람한 시기와 원 전 원장이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시점이 일치하는 것에 착안, 그 배후에 국정원이나 청와대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경위와 목적,
유출 의도는?

<조선일보>의 혼외 아들 의혹 보도는 지난 9월6일에 있었다. <조선일보>는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아들 숨겼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정보를 입수해 기사를 작성한 것으로 의심받았다.

해당 기사를 위해 준비된 것으로 보이는 자료는 가족관계등록부, 주민등록초본, 출입국증명서가 있다. 이들 문서는 행정기관에서 발급 업무를 위해 전산망에 접속하면 열람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1월29일 검찰과 대법원 등에 따르면 수사팀은 최근 가족관계등록부 사무를 관장하는 대법원과 안전행정부의 전산망 서버 내역을 확보해 조사했다. 이는 전국의 가족관계등록부 전산 조회 기록을 전수 조사하기 위한 것으로 각 기관은 가족관계등록부를 보관·관리·처리하고 있다. 전국 관공서에는 가족관계 업무 담당자가 1만3237명 지정돼 있다.



이들은 가족관계 업무 전산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부여받아 관련 업무를 전담한다. 때문에 담당 공무원이 특정인의 가족 정보를 조회하면 전산망 서버에는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는다. 특정 아이디를 갖고 있는 사람이 어느 기관에서 '몇월 며칠 몇시 몇분'에 누구의 가족부를 열람했는지까지 확인된다.

현재까지 조 국장의 지시로 직원들이 임씨의 기록을 조회한 횟수는 2회로 파악됐다. 향후 조사 결과에 따라 조회수는 늘어날 수 있다. 관련 조사를 마친 검찰은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조 국장과 함께 압수수색을 당했던 서초구청 감사담당관 임모 과장을 소환조사한다는 방침이다.

임 과장은 <조선일보>가 채 전 총장에 대한 의혹을 보도한 다음날인 9월7일 청와대 관계자의 공문 요청으로 임씨 등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조회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임 과장은 '채동욱 찍어내기'의 배후 인물 중 1명으로 지목된 곽 전 수석과 함께 근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임 과장은 지난 2003년 곽 전 수석이 서울지검 특수3부장으로 있을 때 같은 부서 소속 검사이던 이중희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방에서 파견 근무를 했다. 때문에 청와대가 채 전 총장의 개인 정보 유출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원세훈·곽상도 측근 수사선상
청와대·국정원 개입여부 관건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곽 전 수석은 파견 나온 임 과장과 함께 근무하면서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는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곽 전 수석이 임 과장을 특별히 챙겼던 기억이 있다. 파견이 끝난 뒤에도 곽 전 수석이 임 과장 등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던 것으로 안다"고 보도했다.

지난 9월 <조선일보> 보도 직후 진위 파악에 나선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사실 확인을 위해 평소 알고 지내던 임 과장에게 공문을 보내 관련 문서를 조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검찰 한 관계자는 <연합뉴스>를 통해 "임 과장의 경우 정식 공문을 받은 뒤 업무 권한에 따라 기록을 조회해 정상적으로 업무 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채군 모자의 가족관계등록부 유출 의혹을 받는 서초구청 관계자들이 각각 원 전 원장과 곽 전 수석의 측근이란 사실이 드러나면서 안팎의 시선은 '진짜 몸통이 누구냐'에 쏠리고 있다.

더구나 채군 모자의 주소지는 강남구인데 엉뚱하게도 서초구청에서 정보가 새나갔다는 점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힘들다는 해석이다. 이에 기자는 좀 더 정확한 입장을 듣기 위해 임 과장에게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그는 결국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강남구 사는데
서초구서···왜?

검찰은 지난달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을 압수수색해 채군 모자의 항공권 발권기록 자료를 넘겨받았다. 아울러 채군의 학교생활기록부 유출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서버에서 로그인 기록 등을 뒤졌다. 검찰이 이르면 이번 달 중순 수사결과를 발표하기로 함에 따라 가족관계등록부 이외의 유출 경위가 드러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청와대 개입설은 증명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미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을 건드렸다가 내홍을 겪은 검찰 입장에서 수사를 확대할리 없다는 예상이다. 정권 입장에서도 달가워하지 않았던 채 전 총장의 '명예'를 위한 수사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채동욱 의혹' 정보유출

"진익철은 알았나 몰랐나" 원세훈과 친분 눈길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관련한 개인정보 유출 의혹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진익철 서초구청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친분이 주목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복수 제보자는 "서울시 5급 이상 공무원 중 진익철과 원세훈의 친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며 관련 내용을 증언했다. 제보자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진 구청장과 같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1995년부터 2002년까지 7년간 서울시청에서 함께 일했다. 그런데 단순히 같은 직장을 다니는 수준이 아닌 핵심 측근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앞서 원 전 원장이 서울시에서 법무과장을 맡았을 때 진 구청장은 법무계장으로 원 전 원장을 보좌했다. 이어 원 전 원장이 기획관리실장에 부임하자 진 구청장은 재정기획관으로 원 전 원장과의 인연을 이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재정기획관은 기획관리실장의 직속 참모다. 이게 끝이 아니다. 원 전 원장이 행정1부시장을 역임했을 때 진 구청장은 공보관으로 활동했다. 복수 관계자는 "진익철과 원세훈은 부부끼리 동반 모임을 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키맨'인 조이제 행정지원국장은 검찰 조사에서 "진 구청장은 유출 사실을 몰랐으며 사전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진 구청장은 한 지역 공식행사에 참여해 "조 국장 개인의 불법 행위"라며 자신과 관련 의혹을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석>

 

[바로잡습니다]

일요시사는 2013년 12월 1일자 '채동욱 의혹 정보유출 파문' 중 하단 기사인 '채동욱 의혹 정보유출, 진익철은 알았나 몰랐나'에서 "원(세훈) 전 원장이 서울시 법무과장을 맡았을 때 진(익철) 구청장은 법무계장으로 원 전 원장을 보좌했다. 원 전 원장이 기획관리실장에 부임하자 진 구청장은 재정기획관으로 원 전 원장과의 인연을 이었다. 원 전 원장이 행정1부시장을 역임했을 때 진 구청장은 공보관으로 활동했다"고 보도했으나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다음과 같이 바로잡습니다.

원 전 원장은 1986~1988년까지 '기획관리실 법무담당관'에 재직했으며 1993년 3월부터 같은해 9월까지 '기획관리실 기획담당관'을 맡았습니다. 진 구청장은 1989~1993년까지 '기획관리실 법무담당관'을 지냈습니다.

진 구청장이 '기획관리실 재정기획관'으로 있던 1997년, 원 전 원장은 '내무국'을 거쳐 '중앙공무원교육원'에 파견을 나갔습니다. 원 전 원장은 1999년 12월부터 2002년 1월까지 '시의회 사무처장'을 맡았고, 진 구청장은 2001년~2002년까지 '공보관'으로 활동했습니다. 원 전 원장이 '행정1부시장'을 지낸 기간은 2003년 11월부터 2006년 6월이며, 진 구청장은 2003~2005년까지 '환경국장'으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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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