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커피감정사 스티븐 길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11.19 10: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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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직업으로 평생 살기엔 아깝죠"

[일요시사=사회팀] 바야흐로 인생 3모작 시대. 한 가지 직업만으로 평생을 살기엔 도전할 일이 정말 많다. 그런 면에서 길성용(42) 한국스페셜티협회 대표는 누구보다 도전적인 삶을 살고 있다.


 

좋은 커피에는 풍부한 맛이 담겨 있다.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믹스 커피처럼 마냥 달기 만한 커피는 좋은 커피라고 할 수 없다. 커피감정사이자 한국스페셜티협회 대표인 길성용씨는 '좋은 커피'처럼 풍부한 인생 경험을 갖고 있다. 좋은 커피를 계속 마셔봐야 그 맛을 아는 것처럼 길씨는 다양한 이력을 통해 인생의 맛을 배웠다.

인생 3모작

길씨는 신문사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1998년에는 프로골퍼 박세리 선수의 미국 매니저로 변신했다. 박 선수와 함께 미국 LPGA를 호령했던 길씨는 이후 건설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지금은 국내 최고의 커피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다. 다음은 박 선수가 지난 2007년 본인의 육필일기에 회고한 길씨에 대한 기억이다.

"그는 미국의 한 골프잡지 기자였다. 내가 Q 스쿨 경기를 하고 있을 때 취재를 왔다가 처음 만났다. 내가 매니저를 구하고 있을 때 스티븐(길 대표의 미국 이름)은 '내가 매니저를 해 볼 테니 한 번 맡겨달라'고 말했다. 하루는 '내가 까다롭게 구는데 왜 하루 종일 고생만 하는 이 일을 택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스티븐은 IMG 회장인 마크 맥코맥이 평범한 변호사에서 세계 최고의 매니지먼트사 회장으로 클 수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면서 가능성이 있는 선수를 매니지먼트 해야 시장에서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길씨의 매니저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당시 길씨는 박 선수를 따라 미국 곳곳을 다니면서 현지 커피 시장을 눈여겨봤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커피 시장은 마르지 않는 블루 오션이었다. 하지만 길씨는 커피가 아닌 건설 사업에 뛰어들었고, 간혹 사회면 박스기사에 등장했다. 뒤늦게 여유를 찾은 길씨. 그는 2009년 한국에서의 커피 사업을 위해 커피의 맛부터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제가 교육하고 있는 큐그레이더(Q-Grader)는 커피 품질에 대해 평가하고 등급을 매기는 직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큐그레이더 자격증을 따려 했던 시점엔 국내에 전문가가 딱 1명 있었죠. 그런데 나흘 과정에 300만원이나 할 정도로 교육비가 비쌌어요. 효율도 없었고. 그래서 전 아예 미국 현지로 가서 큐그레이더 과정을 밟았습니다. 다행히 언어의 문제가 없어서 배우는 속도가 빨랐고, 시험 2번 만에 합격했습니다."

이제는 한국의 손꼽히는 커피 전문가가 된 길씨는 세계무대로 진출했다. 동양인 최초의 큐크레이더 감독관, SCAA 미국커피교육 감독자, SCAE 유럽커피교육 감독자, WBC 센서리 국제심사위원, 월드라떼아트 국제심사위원 등 커피와 관련한 거의 모든 경력을 섭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에선 카페베네와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의 자문을 해주고 있다.

신문 기자서 박세리 매니저로 LPGA 호령
건설사업 하다 국내 최고 커피전문가로
"비싼 커피보단 좋은 커피"

"전 세계에 큐그레이더가 1900여명 정도 있는데 한국 사람은 400여명입니다. 이중 300여명은 저에게 커피를 배웠던 사람이고요. 카페베네, 던킨도너츠, 스타벅스, 코카콜라 등 내로라한 커피 관련 회사에는 3년 전부터 큐그레이더 교육 과정을 밟은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개인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도 큐그레이더 자격증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요."

길씨는 큐그레이더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성실함을 꼽았다. 길씨에 따르면 오히려 타고난 미각을 가진 사람들이 프로가 되기 더 어렵다고 한다. 이들은 미각적 주관이 뚜렷한 탓에 표준화에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또 큐그레이더에 걸맞는 미각과 후각을 향상시키기 위한 훈련은 좋은 것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란 설명도 곁들였다.

"주위를 보면 자격증만 따고 끝내는 분들이 있어요. 하지만 미각과 후각은 감각의 영역이기 때문에 훈련을 게을리 하면 그 능력이 떨어집니다. 결국은 좋은 품질의 커피를 개발하기 위한 거잖아요. 비싼 커피를 마시라는 게 아니라 좋은 커피를 마시라는 겁니다. 좋은 커피가 뭔지 알려면 배워야죠."

커피 전도사


'국내 커피시장은 이미 포화상태가 아니냐'는 질문에 길씨는 "아직도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젠 양이 아닌 질로 승부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최근 커피숍이 많아진 건 그만큼 경기가 어렵다는 방증입니다. 경기가 좋으면 어려운 것도 해보겠지만 경제가 어려우니 사람들이 리스크가 큰 사업은 피하고 진입장벽이 낮은 커피숍을 선택하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면 안 돼요. 100년이 넘은 숍들을 보면 모두 질을 추구했어요. 국내 커피 시장도 좋은 커피들이 유입되면서 질적 성장을 겪고 있습니다. 돈을 더 내더라도 좋은 커피를 찾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진 거죠. 그리고 전 큐그레이더 1세대인 만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환경에서 배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큐그레이더가 꼽는 '스페셜티'란?

큐그레이더는 소믈리에(와인감정사)처럼 커피의 향, 맛, 질감까지 포함한 평가를 통해 1점부터 10점까지의 점수를 매긴다. 이중 8점이 넘는 커피는 '스페셜티'로 따로 분류한다.

 

스페셜티는 생두 1㎏당 4000원에서 4만원, 혹은 40만원을 호가하는 등 초고급 커피로 불린다.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선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는다.

 

그런데 스페셜티는 어떤 면에서 '공정무역 커피'다. 생두값이 비싸질수록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몫도 커지기 때문. 국내 프렌차이즈 커피 업계의 성장률이 주춤한 사이 스페셜티는 국내 커피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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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