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서양화가 이병헌

관객 홀리는 여체의 선

[일요시사=사회팀] 지난 4일 서양화가 이병헌 작가의 36번째 개인전이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을 대표한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그의 누드화는 섬세하면서도 도발적인 자태로 관객을 만났다. 한국 누드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이 작가를 <일요시사>가 만났다.




여성의 속살이 내비치는 신비로움과 매혹적인 선의 만남. 생동감 있는 묘사와 매끄러운 터치는 그림 안의 모델이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한 착각을 안겼다.

누드화의 장인

이 작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모델을 마주한 채로 부끄러움 없는 아름다움을 포착했다. 그의 손을 통해 표현되는 여체는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둥근 가슴과 매끄러운 피부, 가감 없이 그려진 체모는 사실 그대로이기에 더욱 아름답다.

전시 마지막 날임에도 이 작가의 그림이 걸린 전시장은 관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더러는 그의 세밀한 묘사에 감탄했고, 더러는 팔짱을 푼 채 그림 안으로 몰입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누드화는 서양이 더 발달했기 때문에 주로 외국 작품집을 보는 편이에요. 남들이 찍거나 그리지 않았던 포즈를 발굴하는 데 흥미를 느끼죠. 실제 작업에 들어가면 평소 생각했던 포즈를 모델에게 취하게 하고 5분 내로 모든 걸 스케치합니다. 크로키만 놓고 보면 저보다 빨리 인체를 그릴 수 있는 화가는 아마 없을 거예요."


누드화는 고정된 정물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모델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림도 그림이지만 모델과의 호흡 또한 중요하다. 이 작가는 "일반인도 작가와의 교류가 있으면 섭외에 응한다”고 말했다. 또 반드시 여자 모델만 그리는 건 아니란 설명도 곁들였다.

생동감 있는 묘사와 매끄러운 터치 눈길
50세에 프랑스 유학…매일 3시간 드로잉

"내가 남자라서 그런지 조형적으로 봤을 때 여자의 신체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데 남자도 근육이 잘 발달한 훌륭한 모델이 있어요. 로마의 다비드상 같은 몸을 보면 '정말 아름답구나'란 생각을 하죠. 그런데 한 번은 남자 그림과 여자 그림을 같이 전시해보니까 남자 그림은 한 점도 팔리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경제 논리에 따라 전시를 하면 여자 그림만 걸고 있습니다(웃음)."

이 작가는 이번 전시를 기획하면서 모델들에게 좀 더 포스티브(적극적인)한 포즈를 주문했다고 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감추는 것이 아닌 과감하게 드러내는 쪽으로 작업 방향을 잡았다는 것. 그래서인지 이 작가의 누드화들은 '회화와 사진의 중간 지점'이란 인상을 준다. 정적인 회화의 특성과 동적인 사진의 특성이 혼재돼 있는 까닭이다.

"보시다시피 제 그림은 극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어요. 슈퍼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았죠. 그러나 특정 '이즘'에 갇히는 건 싫어서 인상주의의 장점도 일부 차용하고 있습니다. 근육의 미세한 떨림, 눈·코·입의 움직임 등 인간을 사실 그대로 묘사한다는 건 정말 수많은 연습을 필요로 해요. 좋은 작품을 계속 보고, 그리고…. 뻔한 말 같지만 저는 현재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은 없거든요.”

이 작가는 50번째 생일을 맞은 해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자신의 그림이 정체돼 있다는 생각이 들자 미련 없이 한국을 떠난 것. 그곳에서 그가 그린 그림은 무려 3000여점에 달했다.

"매일 3시간씩 누드 드로잉을 했어요. 우리나라보다는 누드모델에 대한 인식이 개방적이어서 전문 모델이 아닌 사람들과도 종종 작업했죠. 일요일이면 박물관을 찾아 다니면서 선배 작가들의 그림을 익혔어요. 한 번 부딪혀보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갔는데 덕분에 자극을 많이 받았죠."


"인생은 도전"

이 작가는 자신의 대표 누드화 50점을 웹북 형태로 제작하고 있다. 이 웹북에는 누드화 제작과정 또한 담길 예정. 이 작가는 "나를 세계에 알리고 싶은 마음에 웹북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는 아니지만 세계 시장에서 제 그림이 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요. 부족한 건 채우면서 예술가이기 때문에 끝없는 도전을 해야 하지 않을까. 전 그렇게 생각해요."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이병헌 작가는?]

▲계명대 미술대학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36회(서울·대구·부산·일본)
▲2009년 SOAF(COEX)·말레이시아 아트페어·프랑스 오슈 부스전
▲2008년 아트대구·대구아트페어·북경아트사롱
▲1996년 올해의 한국미술 선정작가(한국문예진흥원)
▲대구·광주·정수미술대전 등 심사위원 역임
▲성산·무등미술대전 등 운영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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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