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양산하는 ‘묻지마 국감’ 실태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10.28 14: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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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희생양들 말도 못하고 ‘끙끙’

[일요시사=사회팀] 국정감사 기간 국회는 말 그대로 총성 없는 전쟁터가 된다. 의원들은 국감 기간 동안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라면 조그만 것 하나라도 꼬투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다. 하지만 국감을 통해 소위 뜨고 싶어 하는 정치인들의 과도한 욕심은 때론 억울한 희생양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일명 ‘묻지마 국감’의 실태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국정감사(이하 국감) 시즌이 돌아왔다. 지난 14일부터 시작된 국감은 오는 11월2일 막을 내린다. 국감은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켜야만 하는 국회의원들에게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절호의 기회다. 당연히 의원들은 조그만 것 하나라도 꼬투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고 피감기관과 의원들 간엔 날선 공방전이 오갈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감 기간 동안 억울한 희생양이 속출하기도 한다. 소위 뜨고 싶어 하는 의원들의 과한 욕심이 만들어 낸 ‘묻지마 국감’ 때문이다.

일단 찌르고 보자

새누리당 홍문표 의원은 지난 14일 하림과 체리부로, 동우 등 대형 육계회사들이 닭 사육 농가에게 돌아가야 할 재해보험금 17억700만원 중 6억2200만원을 챙겨갔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계육협회는 당장 사실무근이라며 해명하고 나섰다. 보험금으로 밀린 사료대와 병아리 값을 치른 것을 가지고 의원실에서 오해한 것이라는 해명이었다. 외상대금을 정산 처리하고 나머지를 농가에 지급했고, 어떠한 부당한 사실도 없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영세 농가를 위해 외상까지 받아줬던 대형 육계회사들은 졸지에 부도덕한 회사로 낙인 찍혀버렸지만 피해보상을 요구할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민주당 이윤석 의원은 지난 14일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최근 5년간 신고된 급발진 사고 286건을 분석한 결과 현대차의 쏘나타가 급발진 사고가 가장 많았다고 밝혔다. 쏘나타LPG 모델이 25건이었으며 휘발유 모델 쏘나타 13건까지 더하면 38건에 달했다. 이 의원의 발표는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고, 각 포털사이트에서 인기기사 상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이에 현대기아차 측은 “해당 차량의 총 판매대수 대비 비율은 따지지도 않고 발표한 자료는 문제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이미 해당 차량과 기업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은 뒤였다.

민주당 문병호 의원은 4대강 사업에서 원청사가 하도급을 주며 단가를 크게 낮추는 방식으로 거액을 챙겼다고 주장했다가 논란을 초래했다. 문 의원은 수자원공사가 시행한 13개 공구에서 원도급을 받은 대형건설사 20곳에 대한 하도급 비율을 분석한 결과 대형건설사들이 1조원에 달하는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분석 자료를 발표했다.


묻지마 자료 그대로 받아쓰는 언론사들
엄청난 피해입고도 보상받을 길도 막막

당장 대형건설사들은 반발했다. 문 의원 측이 도급액 가운데 하도급비용(외주비용)을 뺀 나머지 1조506억원 전액을 부당이익으로 규정지은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공사에는 외주비용을 빼고도 직접공사비와 자재ㆍ용역ㆍ장비 비용 등이 드는데, 이를 전혀 산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부 업계에서는 4대강 사업을 흠집 내기 위해 무리한 분석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하고 있다.

민주당 김승남 의원이 비리기관으로 지목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도 현재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중국 청도물류센터 건설과 관련해 김 의원은 지난 15일 “aT가 중국 청도에 추진 중인 물류 인프라 사업이 각종 건설 비리로 분탕질 되고 있다”며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하지만 aT는 김 의원이 현지사정도 모른 채 청도물류센터를 각종 부정비리가 판을 치는 곳으로 묘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aT는 “청도물류센터 건설에는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난립해 있어 이들이 서로를 깎아내려 좀 더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기 위해 각종 투서 등 민원을 여러 기관에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부지 고가매입, 리베이트 요구, 사업비 전액 탕진, 시공도면 유출, 향응제공, 특정인 관련설 등 대부분은 민원인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 측이 이 같은 현지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민원인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그대로 발표했다는 불만이다.

또 지난 17일에는 민주당 박기춘 의원이 제주신공항 개발계획이 동남권신공항에 밀려 무산됐다는 발표를 해 제주지역이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박 의원은 이날 한국공항공사 내부문건인 ‘김해·제주공항 마스터플랜 수립 용역 추진계획 재검토 보고서’를 공개하고 동남권신공항이 추진되면서 공항공사가 올해 추진키로 했던 김해·제주공항 마스트플랜 수립용역이 무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공항개발 소관부서인 국토교통부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제주·동남권 신공항 건설 타당성 검토를 위해 올해 항공수요조사를 거쳐 내년에 타당성 조사 용역을 실시키로 함에 따라 공항공사가 중복되는 자체계획을 폐지했다는 것이었다. 한국항공공사는 “박 대통령의 공약인 제주공항 인프라 확충은 계획대로 추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새누리당의 자체 조사 결과 국감 시작 후 일주일 만에 통계를 잘못 인용하거나 왜곡하는 등의 사고가 40건을 넘었다고 한다. 불과 3주일 동안 무려 630개나 되는 피감기관을 감사하다보니 이 같은 사고는 필연적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전공과 상관없이 상임위가 배정되는 경우도 잦다보니 피감기관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해 이러한 현상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복불복 국감?

한 기업 관계자는 “국회의원이 잘못된 통계나 오류를 바탕으로 발표를 해도 언론들은 별다른 검토도 없이 그대로 보도해버리는 관행이 국감 때마다 되풀이 되고 있다. 또 의원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해당기업에 확인절차도 제대로 거치지 않는다”며 “기업은 그로 인해 이미지 등에 엄청난 피해를 입지만 이를 보상받을 길도 전혀 없다”고 하소연했다.


따라서 정치권에서는 상시국감을 도입해 국회도 의혹이나 의문점에 대해 보다 심도 있게 검토하고, 당사자들의 입장을 여유있게 들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하지만 상시국감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이다. 또 국정감사의 순기능을 살리기 위해서는 우선 국회의원들이 산업에 대한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감에서 이런 일도?
증인이 사람 잘못 불렀다며 퇴장

지난 15일 열린 정무위 국감장에 자동차 가격 사전 담합 의혹을 이유로 소환된 임준성 한성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저희는 부동산 임대업회사다. 자동차와 관계가 없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제에거 벤츠코리아 대표도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와 메르세데스-벤츠 파이낸셜 서비스 코리아 관계에 대해 “전적으로 별개의 두 사업자로 상호출자 등 지분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을 소환한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두 사람을 위증죄로 고발하고 종합감사 때 재출석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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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