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서양화가 진훈

"그림은 하나의 언어입니다"

[일요시사=사회팀] 밀란 쿤데라는 그의 소설 <불멸>에서 "사람이 몸짓을 취하는 게 아니라 몸짓이 사람을 이용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고 적었다. 달리는 아이들에게서 발견되는 '순간'의 몸짓들. 그러나 누군가에겐 순간으로 보이고 또 누군가에겐 영원으로 보이는 무한의 캔버스 안에서 진훈 작가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느냐고.

진훈 작가의 그림은 미술이론가 이영훈씨의 말처럼 끊임없는 해석과 탐색을 필요로 한다. 그림이 온갖 메타포로 둘러싸여 어렵다는 말이 아니다. 때론 푸르스름하고 때론 불그스름한 캔버스 안에서 진 작가는 관객에게 자신만의 언어로 말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

감성을 표현

"관심 있는 소재가 매번 조금씩 바뀌는 편이에요. 최근 2∼3년은 도시의 이미지를 주로 그렸었죠. 하지만 한쪽에선 틈틈이 다른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전시. 달리는 아이를 소재로 한 전시를 구상하게 됐습니다."

진 작가는 소년의 달리는 뒷모습에서 중의적인 형상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소년은 어디로 '부터', 어디로 '향해' 뛰고 있었다. 즉 소년의 달리기는 어떤 의미에선 경주일 수 있고, 또 다른 의미에선 도피일 수 있다는 것.

"소재를 그리는 행위 자체가 목적은 아니에요. 제가 받은 느낌이나 감성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지난 전시 제목은 '수동적 시선'이었어요. 얼핏 듣기에 수동적이란 어감은 좋지 않죠. 하지만 저마다 확성기를 대고 메시지를 주입하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저항적인 행위가 '수동적으로 보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이번 전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수동적(Passive)이란 단어와 열정(Passion)이란 단어의 어원은 같다. 진 작가는 "'열정의 이면에는 수동적으로 감내해야 할 부분이 있어 어원이 같은 것은 아닐까'란 구절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존재하는 것들의 이면. 진 작가의 그림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일상적인 이미지가 전혀 다른 정서로 환기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예컨대 사진 미학에서 주로 쓰이는 개념인 푼크툼(Punctum)이 그것이다.


'달리는 아이'소재로 중의적 표현
수동적 시선 통해 다양한 해석 가능

"제가 하는 작업은 기호적인 이미지로 단순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은 아니에요. 제가 받은 느낌을 형상화한 것이기 때문에 '어 저건 달리는 아이네' 이렇게 보기보단 관객이 달리는 아이의 형상에서 저도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걸 발견했으면 하죠. 그렇지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제 스스로도 저는 시각적 어법이라고 말하는데 제 그림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언어로 받아들여질까'란 부분에선 불만족스러운 지점이 있죠."


진 작가는 "그림도 하나의 언어"라고 강조했다. 때문에 말이 먼저 해석을 하고, 말에 따라 감상을 하는 것을 권하지 않았다. 진 작가는 "말로 설명하거나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 그림이고, 작가가 페인팅을 한다면 아무래도 청각(말)보단 시각(그림)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원래 시각이라는 건 수동적일 수 없어요. 사람은 눈을 이용해서 보고 싶은 걸 보잖아요. 다분히 자의적이고 선택적이죠. 그래서 제가 말하는 수동적 시선은 문맥적인 의미에요. 우리 사회가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놔두지 않기 때문에 그런 거대한 흐름에서 빠져나와 독자적인 시선을 갖고 싶은 의지라고 볼 수 있고. 그렇게 됐을 때 화가인 저는 관객에게 일상을 다르게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진짜'에 가까운 감성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면을 보다

진 작가는 대학원 졸업 후 잠시 영상미술로 눈을 돌린 적이 있다. 하지만 영상매체를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회화만이 가진 강점을 발견했다고 했다.

"사실 전 회화가 언젠가 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건 감각의 문제거든요. 회화는 언어잖아요. 제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말은 사라지는 게 당연하고요. 그런데 희망을 갖게 된 건 그림은 본능의 영역이란 거예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 앞에서 긍정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어요. 그림을 계속 그리다보면 수정도 하고 예쁘게 칠하고 싶고 그래요(웃음). 제 손이 그렇게 움직여요. 어떤 철학자는 현대미술을 '거짓'이라고 규정했지만 전 '거짓' 그 이상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뭘까. 계속 궁금해 하면서 작업을 할 겁니다. 마치 수학자가 풀리지 않는 공식을 죽는 순간까지 푸는 것 처럼요."


진 작가는 지난 17일부터 대학로 갤러리192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진 작가의 전시는 이번 달 30일까지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진훈 작가는?]

▲서울대 서양화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서양화 전공
▲1998년 1회 개인전(인데코 갤러리)
▲2011년 6회 개인전(사이아트갤러리)
▲2012년 시선의 경계展(보라갤러리) 외 그룹전 다수
▲2013년 8회 개인전 갤러리192 동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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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