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징금 18조’ 김우중 재산 미스터리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10.16 11: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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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전두환’ 어디에 돈 꼬불쳤나

[일요시사=경제1팀] ‘전두환 추징금’ 사태가 일단락되자, 세간의 관심은 이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일가에 쏠리고 있다. 지금은 ‘빈털터리’라는 김 전 회장과 달리, 가족들은 ‘빵빵’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어서다. 이들의 발목을 붙잡는 것은 18조원에 육박하는 천문학적 추징금. 이를 피하기 위해 여기저기에 돈을 꼬불치다 보니 ‘재산 은닉의 달인’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몰락한 대우의 황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분식회계 및 사기 대출 혐의로 선고받은 추징금은 무려 17조9253억원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100배, 국내 총 미납 추징금 중 84%에 달한다. 그

러나 현재까지 추징된 금액은 887억8376만원으로 0.5%에 불과하다. 이 엄청난 추징금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재산이 한 푼도 없다’던 김 전 회장이 최소 수백억 대 재산을 가지고 넉넉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는 정황이 이어 지고 있어 논란이 가속화 되고 있다.

18조원 미납
추징금 1위

최근에는 김 전 회장의 은닉자금이 방콕은행계좌를 통해 거래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인터넷언론 <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확보한 PTN(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업체) 내부 이메일, 자산관리공사와 김 전 회장이 진행한 민사소송 판결문을 살펴본 결과 김 전 회장의 은닉자금 다수가 페이퍼컴퍼니와 방콕은행 계좌를 통해 거래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우선 <뉴스타파>는 PTN 내부문서 분석 과정에서 페이퍼컴퍼니인 ‘노블에셋’과 ‘노블베트남’ 사이에 대규모 자금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뉴스타파>는 지난 7월 김 전 회장의 아들 선용씨가 (유)옥포공영이라는 회사를 통해 베트남 하노이 중심부에 위치한 반트리 골프장을 실제 소유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노블에셋과 노블베트남은 골프장 개발사업권이 선용씨에게 가기 전 거친 유령회사들이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PTN 직원들의 이메일에는 방콕은행 뉴욕지점이 노블에셋의 지시를 받아 노블베트남으로  2003년 9월부터 2006년 5월까지 670만달러를 보냈다는 내용이 언급돼 있었다.

“한푼도 없다”버티며 넉넉한 노후생활
망명하듯 떠난 베트남 검은돈 은닉처?

당시 노블에셋의 관리대행업체였던 PTN직원들조차 노블에셋이 방콕은행에 계좌를 가지고 있는지도 몰랐으며, 돈의 출처도 모르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말 기준으로 노블에셋은 단 2달러를 소유한 회사였다.

<뉴스타파>는 또 지난 2002년 제기된 자산관리공사와 김 전 회장 사이의 민사소송 판결문에서 또 한 번 방콕은행의 존재와 대규모 자금 거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대우 미주법인을 동원해 김 전 회장이 홍콩에 있는 ‘KMC’라는 페이퍼컴퍼니에 수천만 달러를 송금한 사실을 파악한 것이다.

특히, 판결문에는 KMC가 2500만 달러를 데레조프스키라는 인물이 개설한 방콕은행 계좌에 송금한 내용이 나온다. 재판 과정에서 데레조프스키라는 김 전 회장의 아들 선용씨의 가명으로, 계좌의 실제 주인은 김 전 회장의 아들 선용씨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령회사 거쳐
골프장 소유


이에 따라 선용씨는 2000년대 초반부터 방콕은행에 비밀계좌를 개설하고 김 전 회장은 여러 회사를 거쳐 빼돌린 거액의 자금을 선용씨 계좌로 송금, 이후 선용씨는 여러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해 베트남 골프장을 인수했다고 <뉴스타파>는 주장했다.

<뉴스타파>는 “PTN 내부자료와 법원 판결문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이 바로 방콕은행 비밀계좌의 존재와 김 전 회장의 아들 선용씨”라며 “선용씨가 베트남 골프장을 인수하기 위해 만든 유령회사와 방콕은행 사이를 통해 오간 거액의 돈은 김 전 회장의 은닉자금일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아들 선용씨가 보유한 반트리 골프장은 태생부터 묘하다. 이 골프장은 지난 1993년 대우와 하노이 전기공사가 합작한 대하(Daeha Co.Ltd.)가 최초 개발 사업권을 따냈다. 당시 대우의 지분은 70%였으며 하노이 전기공사 지분은 30%였다.

그러나 1999년 대우그룹의 부도 이후 이 골프장 사업권은 2003년 노블에셋이라는 회사로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인 김 전 회장의 그림자가 다시 튀어 나온다.

김 전 회장의 측근인 김주성 전 ㈜대우 하노이지사장이 2005년 노블에셋에서 회사 소유구조를 바꾸는 서류 절차 등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아 경영에 깊숙이 관여한 것이다.

실제 그로부터 1년도 안 돼 노블에셋의 지분 구조가 급격히 바뀌기 시작한다. 2006년 6월 노블에셋의 모든 지분은 탄한송이라는 인물에게 100% 넘겨진다. 탄한송은 ‘ACS-SEA’라는 유령회사 설립대행업체의 직원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고는 두 달도 안 돼 탄한송 지분의 51%가 김 전 회장 의 두 아들 선협·선용씨가 최대주주로 있는 옥포공영과 썬인베스트먼트로 넘겨진다.

4 년 뒤인 2010년에는 선용씨가 최대주주인 옥포공영이 나머지 모든 지분을 인수해 골프장 소유권을 완전히 확보하기에 이른다. 아버지의 회사가 개발사업권을 가졌던 베트남 골프장이 여러 유령회사를 거쳐 7년 만에 아들의 품에 안긴 것이다. 이 때문에 문제의 골프장의 실질 소유주가 아들이 아닌 김 전 회장일 수 있다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호텔 펜트하우스서
여전히 호화생활

실제 ‘무일푼’이라는 김 전 회장의 말과 달리, 김 전 회장 일가는 호화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엔 100억원이 넘는 회삿돈을 가져다 사적으로 사용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6월 옛 대우개발을 인수한 우양산업개발은 “김 전 회장 부부가 십수년간 회사를 사적으로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득해왔다”면서 김 전 회장과 부인 정희자씨를 상대로 34억원 상당의 부당이득 반환 청구소송을 냈다.

우양산업개발 측은 경남 양산의 골프장 에이원컨트리클럽의 회계장부를 근거로 제시하며 정씨가 지배주주이던 시절 지위를 악용해 회사를 개인소유처럼 운영하며 고액의 임금과 퇴직금을 부당하게 편취했다고 주장했다.

해외 페이퍼컴퍼니 대규모 자금거래
부인·자녀들은 천문학적 재산 보유

우양산업개발 측은 “정씨가 ‘대우사태’ 이후 대표이사로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으면서 고액의 보수금을 받아갔다”며 “김 전 회장의 차명주식 보유 사실이 검찰에 발각된 후 공매로 매각되기 전까지인 2008∼2012년 압류기간 동안 받아간 임금만도 12억5700만여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씨는 경주힐튼호텔 등이 공매로 팔리기 직전인 2012년 7월 사임서를 내고 퇴직했는데 당시 받아간 퇴직금이 14억원에 이른다”며 “이 밖에도 법인카드를 이용해 1740만원의 퍼스트클래스 항공권을 구입하는 등 회사의 비용을 사적 용도로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우양산업개발은 정씨가 34억5500여만원을, 이 가운데 2억2500여만원은 부부가 함께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2억2500여만원은 김 전 회장이 임차한 서울힐튼호텔 객실의 청소도우미에게 2008년 이후 수년간 보수로 지급한 돈이다.

우양산업개발은 또 아도니스골프장과 모회사 돈을 합하면 김 전 회장 일가가 챙겨간 회삿돈은 100억원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화려한 휴가’
이제 끝내야…

김 회장 일가의 은닉 재산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분식회계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6개월, 벌금 1000만원, 추징금 23조30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 중 17조9253억원이 김 전 회장의 몫이다. 김 전 회장은 자신과 임직원 5명에게 부과된 추징금 중 840억원을 납부했고, 남은 추징금은 22조9460억원이다.

검찰은 김 전 회장에 대한 추징을 지속적으로 집행해왔지만, 김 전 회장은 1999년 7월 대우그룹 자구대책을 발표할 당시 전 재산(당시 주식 1조2553억원과 임야 452억원 상당)을 금융권에 담보로 제공한 탓에 재산이 없다며 1%도 내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김 전 회장 일가는 여전히 상류층의 삶을 살고 있다. 실질적 재산이 없는 김 전 회장과 달리 그의 부인 정씨는 선재아트센터 관장이고, 그 일가족은 정치권의 유력 인사들이 드나드는 아도니스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다. 이 외에도 수많은 호텔, 미술관 등이 김 전 회장 가족의 소유물이다.

가족들의 재산이 이처럼 ‘빵빵’한데다 최근 방콕 골프장 소유부터 수상한 계좌 거래가 포착된 점을 감안하면 김 전 회장이 무일푼이라는 말에 걸맞은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관계자는 “최근 국회를 통과한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개정안(전두환 추징법)’은 미납금 환수의 바탕이 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지만, 김 전 회장과 같은 경제인은 포함되지 않는 등의 여러 미비점들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이어 “이러한 문제점들이 더 확실히 근절되기 위해서는 전두환 추징법이 보완되어 반드시 국회를 통과해야 하며, 그와 함께 유명무실화된 금융실명제법이 강화되어야 하고, 또 동시에 조세도피처의 페이퍼컴퍼니 등을 통해 벌어지는 해외 거래 정보에 관한 투명성이 증대될 수 있는 법 제도적 방안들이 특별히 강구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법무부는 지난 8월 정치인뿐 아니라 일반인까지 압수수색과 금융거래 추적 등의 추징금 집행이 가능한 ‘김우중 추징법’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전두환 일가’의 경우처럼 제3자 명의로 은닉해 놓은 재산에 대해서도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추징 집행이 가능해진다.

김 전 회장 측은 그동안 추징금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개인적으로 이득을 취한 게 아니라 회사 일을 하다가 벌어진 일이니 정치인들의 추징금과 성격이 다르다는 항변이다.

김 전 회장은 지난 추석 전날 귀국 시 기자들의 질문에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사실대로 모든 것을 얘기하면 다 달라지겠죠. 때가 되면 진실을 밝히려면 모든 게 합당한 계산서가 나와야지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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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