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 추천> 넘치는 식욕 해소! 음식테마 거리 탐방 ① 대구 안지랑곱창거리

상인들이 힘 모아 만든 ‘맛길’ “놀러오이소”

‘수확의 계절’ 가을은 곧 먹을거리의 계절. 전국의 각 지역에선 저마다의 특색을 드러낸 다양한 먹을거리로 넘쳐난다. 곱창부터 복, 추어탕, 도토리묵 등 소재도 다양하다. 이에 한국관광공사는 ‘넘치는 식욕 해소! 음식테마거리 탐방’이라는 테마 하에 2013년 10월에 가볼 만한 곳으로 8지역을 선정, 발표했다. 그 첫 번째는 대구를 대표하는 안지랑곱창거리다. 


‘착한 가격’으로 팔면서 곱창만큼 쫀득한 이웃사랑
발길 닿는 곳마다 문화·역사…근대사 숨결 오롯이

대구를 벗어나 타지에 사는 젊은이들에게 ‘솔 푸드(soul food)’처럼 고향이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연탄불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안지랑시장의 양념곱창구이다. 대구의 수많은 음식 중 저렴하고 양이 푸짐해 친구나 가족과 자주 먹었다고. 저렴한 가격과 50개가 넘는 곱창집이 만들어내는 거리 풍경 또한 젊은이들에게 색다른 추억이 되었을 터.


안지랑시장의 곱창구이가 젊은이들의 솔 푸드가 되기까지 시장 상인들의 노력이 있었다. 첫째, 평범한 재래시장에서 곱창거리로 변신을 꾀한 것이다. 안지랑시장은 다른 재래시장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식재료를 취급하는 상점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가까이에 대형 마트가 생기고, IMF를 겪으면서 시장은 거의 폐쇄되다시피 했다. 이때 안지랑 토박이이자 상인회장을 오랫동안 맡아온 우만환씨의 눈에 사람들이 줄을 서는 시장 바깥쪽의 곱창집이 들어왔다. 40여 년 동안 곱창구이를 해온 ‘충북곱창’이다. 우 회장은 충북곱창 할머니께 문을 닫는 상가들이 곱창집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다. 안지랑시장이 ‘안지랑곱창거리’로 변신하는 출발점이다.

이름만 들어도 군침 도는 ‘골목’


둘째, 맛과 가격을 지키기 위한 공동구매다. 안지랑곱창거리는 앞산 아래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다. 주택들 사이에 50개가 넘는 곱창집이 들어선 것. 곱창 손질할 때 나는 냄새와 연기, 상가 손님들의 소음이 거주민과 부딪히는 요소가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상인회가 선택한 것은 곱창의 공동구매, 주민과의 소통이다. 공동구매는 곱창 공장 두 곳을 선정해 돼지곱창 구매부터 손질,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뒤 진공포장까지 마친 균일한 품질의 곱창을 생산하게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상인들은 곱창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공장 사람들과 함께 노력했다. 생산된 곱창의 미생물 검사는 물론, 공장의 위생관리도 철저히 한다. 이렇게 완성된 곱창은 ‘안지랑곱창’이라는 브랜드로 상가에 공급된다. 덕분에 곱창거리 내의 모든 곱창집은 청결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었고, 주민과 마찰도 잦아들었다. 곱창의 맛 역시 균일하게 유지한다. 
집집마다 특성을 살리는 것은 곱창의 양념과 구운 곱창을 찍어 먹는 소스다. 요즘은 굽는 법을 달리하는 상가들이 생겨나고 있다. 같은 곱창이지만 연탄불에 굽기, 가스 불에 굽기, 화덕에 굽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변신 중이다. 젊은이들 취향에 맞게 내부 인테리어를 카페처럼 바꾸는 곱창집도 늘었다.


셋째, 안지랑곱창거리의 발전을 위한 편의시설 확충과 상가들의 규칙 지키기다. 곱창거리는 대구지하철 1호선 안지랑역 가까이 있지만, 아이들과 함께 이 거리를 찾는 사람들은 주로 자동차를 이용한다. 안지랑곱창거리 양쪽 끝에 공용주차장을 만든 이유다. 방문객의 편의를 위해 상가가 지켜야 할 규칙도 있다. 호객행위 금지, 미성년자에게 술 판매 금지, 잡상인 출입 금지 등이다. 
이런 노력으로 안지랑곱창거리는 대구의 명물 음식테마거리가 되었다. 상인들은 시장을 살려준 손님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착한 골목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대구 시민들의 쉼터인 앞산공원은 앞산과 산성산, 대덕산을 아우르는 공간으로 주말이면 북적인다. 공원에는 낙동강승전기념관과 케이블카, 전망대 등 즐길 거리도 많다. 그중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대구 시가지 경관이 으뜸이다. 
바로 아래 자리한 안지랑곱창거리는 물론, 대구 전역이 훤히 보인다.


가족이 함께 대구를 찾았다면 달성군 화원읍에 자리한 마비정 벽화마을에 가보자.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담장 가득 그려진 그림이 여행자를 반긴다. 마을 이름의 유래가 담긴 천리마와 장수 이야기, 난로 위 도시락, 지난달 다녀간 방송 프로그램, 외양간 송아지의 커다란 눈망울, 담장 가득 열린 호박 덩굴 등 다양한 그림이 마을의 벽을 채우고 있다. 
마을 방문자를 위한 농촌 체험장도 운영한다. 이곳에서 진행되는 체험은 인절미·두부 만들기(단체만 가능), 전통 제기 만들기, 다양한 약재를 넣은 향낭 만들기 등이다. 이중 한지를  접어 오린 뒤 가운데 엽전을 두고 묶는 제기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호기심과 추억을 자극한다. 체험장 앞마당에서 직접 만든 제기를 차며 온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역사여행 코스 옛 정취 물씬 


마비정 벽화마을에서 약 40km 떨어진 곳에 달성 도동서원(사적 488호)이 있다. 한훤당 김굉필을 추모하기 위해 처음 세워진 서원은 임진왜란 때 불탔다. 이후 1604년에 새로 사당을 짓고 1607년 선조가 도동서원 현판을 내리면서 사액서원이 되었다. 
중정당의 기단과 돌계단 장식, 기와를 얹은 담장 등 조선 시대 장인들의 솜씨를 경내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모두 보물 350호로 지정되었다. 


대구의 근대 문화 유적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중구 태평로2가에 공구박물관이 있다. 1930년대 곡물 창고로 사용하던 일본식 건물로, ‘설계도만 있으면 대포도 만들 수 있다’는 북성로 공구골목의 역사를 전시한 곳이다.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여행정보>
당일 여행 코스
· 명소 답사 : 달성 도동서원→마비정 벽화마을→앞산공원 케이블카→안지랑곱창거리
· 도보 여행 :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선교사 블레어·챔니스·스위츠 주택)→대구 계산동성당→이상화고택→대구약령시한의약박물관→대구근대역사관→경상감영공원→공구박물관


1박2일 여행 코스
· 첫째 날 : 달성 도동서원→마비정 벽화마을→앞산공원 케이블카→안지랑곱창거리→숙박
· 둘째 날 : 경상감영공원→대구근대역사관→공구박물관→서문시장


관련 웹사이트 주소
· 안지랑시장곱창상인회  www.안지랑곱창.com
· 대구 투어피아(대구광역시 관광 홈페이지) http://tour.daegu.go.kr/kor  
· 앞산공원 관리사무소  www.daegu.go.kr/Apsanpark 
· 마비정 벽화마을  http://cafe.daum.net/mabijeong 


문의 전화
· 안지랑시장곱창상인회  053)652-6569
· 대구광역시청 관광문화재과  053)803-6512
· 앞산공원 관리사무소  053)625-0967
· 공구박물관  053)252-8441
· 마비정 벽화마을(체험 문의)  053)633-2222
· 달성 도동서원 관광안내소  053)616-6407


대중교통 정보 
<기차> 서울역-동대구역 : KTX 하루 60여 회(05:30~23:00) 운행, 약 1시간 50분 소요.
* 문의 : 코레일 1544-7788, www.korail.com 
<버스> 서울-대구 :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15~40분 간격(06:00~다음 날 01:30) 운행, 약 3시간 40분 소요.
* 문의 :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www.exterminal.co.kr 
<지하철> 대구지하철 1호선 동대구역-안지랑역, 3번 출구로 나와 직진하다가 안지랑사거리에서 안지랑곱창거리 이정표 따라 우회전.
* 문의 : 대구도시철도공사 053)643-2114, www.dtro.or.kr


자가운전 정보 
중부내륙고속지선 남대구 IC→대명동 방향 성서공단로 따라 약 5km 진행→안지랑사거리 우회전→
안지랑곱창거리


숙박 정보
· 앞산비즈니스호텔 : 남구 현충로, 053)625-8118 (굿스테이)
· 히로텔 : 중구 국채보상로, 053)421-8988 (굿스테이)
· 굿스테이 뉴그랜드 호텔 : 북구 칠성남로38길, 053)424-4114 (굿스테이)
· 크리스탈관광호텔 : 달서구 달구벌대로, www.crystalhotel.co.kr(베니키아), 053)655-7799
                               

식당 정보
· 돈박사곱창 : 곱창구이, 남구 대명로36길, 053)624-1855
· 한바가지꿉는포차 : 곱창구이, 남구 대명로36길, 053)751-9292
· 하늘별마당 : 곱창구이, 남구 대명로36길, 053)654-0007
· 대덕식당 : 따로국밥, 남구 앞산순환로, 053)656-8111
· 미성복어 : 복어 요리, 수성구 들안로, 053)767-8877
· 용문촌두부(마비정황토방) : 촌두부, 달성군 마비정길, 053)631-8624


축제와 행사 정보
· 컬러풀대구페스티벌 : 2013년 10월11~13일, 중앙로·동성로(대구백화점) 일대, www.cdf.or.kr
· 대구국제오페라축제 : 2013년 10월4일~11월4일, 대구오페라하우스 외  www.diof.org


주변 볼거리
국립대구박물관, 달성토성, 서문시장, 방천시장, 대구시니어체험관, 수성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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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