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로 몰린’ 대학강사 사연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9.23 11: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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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강의했다고…학생이 국정원에 신고

[일요시사=사회팀] 공안정국의 폐해, 끔찍한 망령이 대학가에도 나타났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강의를 듣던 학생이 담당 강사를 빨갱이라며 국가정보원에 신고한 사실이 알려졌다. 사상과 학문의 자유가 보장된 ‘상아탑’은 옛말이 된 걸까.



경희대학교에서 마르크스 자본론과 변증법적 유물론, 역사 유물론 등에 관한 강의를 진행하던 임승수씨(저술가·38)는 지난 10일 깜짝 놀랄만한 소식을 접했다. 임씨는 올해부터 경희대에서 ‘자본주의 똑바로 알기’라는 강의를 진행 중이었다. 그는 “학교로부터 누군가 나를 국정원에 신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황당하고 어이없다”

임씨와 경희대 측에 따르면 임씨를 신고한 학생은 국정원에 신고했다는 내용 등을 적은 이메일을 학교 관계자 등에 보냈다. 그 내용을 보면 신고자는 임씨의 저서내용과 과거 민주노동당 간부 경력의 전력 등을 문제삼아 신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자본주의 및 반미사상을 갖고 있다”며 국정원에 신고한 것.

지난 1학기부터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강의한 임씨는 교양수업‘자본주의 똑바로 알기’를 진행해 왔다. 임씨의 이 강의는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생위원회가 임씨를 찾는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지난 학기에 개설했다. 30명 정원이 금세 찼고 청강 신청도 들어왔다. 수업을 들었던 A씨는 “강의를 통해 쉽게 자본론을 이해할 수 있었고, 반미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는데 소식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B씨도 “대학에서는 기본적으로 어떤 내용이든지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의 개설을 결정한 대학생위원회 관계자는 “신고자가 강사의 민주노동당 가입 이력과 이석기 의원 체포 등을 논하면서 신고했다고 들었다. 그런 것들이 진보적인 내용을 가르치는 수업을 공격하기 위한 빌미로 쓰이면, 대학 사상과 학문의 자유는 억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고한 학생은 내란음모로 구속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사건을 예시로 들면서, 임씨를 신고한 근거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등 임씨의 저작과 과거 민주노동당 간부를 지낸 경력을 지적했다.
임씨는 “누군가 나를 국정원에 신고했다는 말을 학교 측으로부터 들었다. 신고한 학생은 내가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반미사상을 갖고 있으며 민주노동당에서 간부로 일한 전력을 문제삼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주위에 신고당한 사람이 또 있는 것으로 안다”며 “누구인지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임씨에 대한 신고자의 신원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학의 1학년 학생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임씨는 “황당하고 어이없다”며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어린 학생이 이런 일을 했다는 게 요즘 이상한 사회분위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참 세상 요지경이다. 누가 그런 철없는 신고를 했는지도 궁금하고, 그런 신고를 받고 어떻게 나올지도 궁금하다”고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과거 트위터에서 한 농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받아 재판을 받은 사진사 박정근씨(25)를 변호한 이광철 변호사는 “트위터 농담은 물론 생각만으로도 처벌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됐다”며 “대학 강사를 신고한 것은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주눅들어 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말했다. 최은아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도 “다양한 생각이 공존해야 민주주의인데, 공안당국이 ‘생각이 다르면 적’이라는 배제의 논리를 확산시켰다”고 말했다.

“반자본주의·반미주의 강조”청강생이 고발
‘이석기 사건’이후 대학까지 덮친 공안정국

생각이 다른 견해의 표출을 차단하려는 행위는 최근 곳곳에서 발견됐다. 고려대 정경대·이과대 학생회와 참여연대가 공동 주최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관련 강연회’는 학교 측의 장소 대관 거부로 이날 야외 광장에서 열렸다. 다큐멘터리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는 “일부 단체의 항의와 시위”로 배급사가 개봉 사흘 만에 상영을 중단하는 영화사상 초유의 조치를 내렸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매카시즘이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사회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마르크스 강의 및 관련 저서, 그리고 민주노동당 경력을 문제로 국정원에 신고당한 임씨는 2006년 민주노동당 서울시당에서 교육부장을 맡았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참여당과 합당하면서 통합진보당으로 바뀔 때 그에 반대하여 탈당했고 현재 당적이 없는 상태다. 


임씨는 “민주노동당은 선거에 나왔고 국회의원도 배출했던 정당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당 경력이 국정원 신고거리가 된다는 건, 대체 이 사회가 어떤 곳인지 이해가 안된다”고 밝혔다. 그는 “우스갯소리로 들리겠지만, 앞으로 수업할 때 ‘제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고요, 제가 거기에 동의한다는 얘기는 아니에요’라고 꼭 얘기하려고 한다”며 “정말로 국정원이 도청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임씨는 국정원에 신고를 당했다는 전화를 받은 후, 강의에 들어가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

“이 수업은 여러분이 내 강의를 듣고 마르크스 사상에 세뇌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물이나 현상, 사건을 특정한 측면에서만 보면 항상 같은 부분이 보일 뿐입니다. 이 수업은 마르크스라는 사람이 세상을 보는 관점, 그러니까 마르크스의 세계관을 함께 공부하는 시간입니다. 마르크스의 세계관을 통해서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보면, 자유시장경제라는 특정한 관점에서 봤을 때 보이지 않는 자본주의의 다른 모습이 드러납니다. 사물이나 현상, 사건을 다양한 관점과 시각에서 볼 수 있을 때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깊어지지요. 이 수업이 여러분에게 그런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민주주의의 위기?

적어도 민주주의 사회라면 최소한 ‘말’과 ‘글’, 즉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과열된 이념 갈등이 수십년간 대학에서 이뤄진 강의까지 흔들고 있다. 특정 표현으로 체포나 구속이 되는 건 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우리사회가 이것을 그대로 용인한다면 힘들게 획득한 민주주의가 허물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보법 위반자 보니…

지난 13일 경찰청이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강기윤 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가보안법 위반자 검거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올해 8월말까지 최근 5년간 총 558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검거됐다. 

2009년 70명이었던 국보법 위반 혐의 검거자는 2010년 151명, 2011년 135명,2012년 109명이었다. 올해는 8개월 만에 98명이 적발됐다. 찬양고무 346명, 이적단체구성가입 134명, 회합통신 39명, 잠입탈출 17명, 간첩 10명, 반국가단체 구성가입 3명, 편의제공 3명, 목적수행 약취유인 2명, 자진지원 2명, 예비음모 2명으로 집계됐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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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