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 추천> 가끔은 혼자이고 싶어라, 훌쩍 떠나는 힐링여행 ② 충남 공주

‘곰여인’의 전설이 강물되어 흐르네

높아진 하늘과 투명해진 바람결에서 가을이 느껴지는 요즘, 번잡한 일상을 떠나 호젓함을 느끼기에 백제의 고도 공주가 제격이다. 인간을 사랑했다가 버림받은 곰 여인이 강에 몸을 던졌다는 슬픈 전설이 서린 고마나루에서 공주보까지 이어진 강변길은 산책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백제 왕이 거주하던 공산성은 성벽 길을 따라 멋진 풍광이 이어지고, 야경도 특별하다. 


백제의 역사 간직한 사적지와 명승 ‘재발견’
박물관·시민어울림마당 등 다양한 축제 행사

고마나루에는 전설이 하나 전해 내려온다. 인간 세상을 동경하던 연미산의 곰이 여인네로 변신해 길 잃은 나무꾼과 아들딸 낳고 잘 살다가 나무꾼이 마을로 돌아가 버리자 슬픔을 이기지 못해 금강에 몸을 던졌다는 내용이다. 그 이후 금강이 범람하고 거칠어질 때마다 곰 가족을 기리며 제를 올렸다고 한다. 

둑길 따라 곳곳 곰 전설 자취


고마나루의 ‘고마’는 ‘넓다’는 의미다. 백제 시절 서해에서 올라온 배나 금강 상류를 오가던 배가 드나들던 넓은 나루터가 고마나루다. 고마나루엔 지금도 아담한 곰 사당이 남아있다. 돌로 깎은 작은 곰 상을 모신 사당 주변으로 키 큰 소나무들이 우거져 보기 좋다. 솔숲 사이사이 현대 작가들이 만든 곰 가족상도 있다. 강변으로 내려가면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국가가 주관하여 금강에 수신제를 지내던 웅진단 터가 나온다. 강 건너편이 곰가족이 살던 연미산이다. 
시간이 넉넉하면 고마나루에서 시작해 공주의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고마나루 명승길(총 23km, 6시간 30분 소요)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코스는 ‘고마나루-공주한옥마을-국립공주박물관-송산리 고분군-황새바위성지-산성시장-공산성-금강철교-정안천 생태공원-연미산-공주보-고마나루 수상공연장-고마나루’다. 


공산성은 백제시대에 쌓은 왕성이다. 22대 문주왕이 475년 한성(서울)에서 웅진(공주)으로 천도한 뒤, 538년 성왕이 사비(부여)로 옮길 때까지 64년간 5대에 걸친 백제왕들이 공산성 안 왕궁에서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에는 웅진성이라 했고,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조선 시대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렀다. 성의 동서남북에 영동루, 금서루, 진남루, 공북루 등 성문이 있다. 주차장에서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주 출입문은 서문에 해당하는 금서루다. 백제 때는 고마나루를 이용했지만, 조선시대에는 공북루 아래 큰 나루터로 금강을 건넜다. 
공북루 위쪽 전망대에 오르면 푸른 금강과 공주 시내 전망이 시원하다. 


성벽은 2.6km로 한 바퀴 둘러보는 데 1시간 30분 정도 걸리고, 금서루에서 왕궁추정지와 쌍수정까지 보고 돌아오는 데는 30분이면 충분하다. 4~10월 매주 토·일요일(7~8월 제외) 금서루에서 웅진수문병교대식이 열린다. 백제 의상 체험, 활쏘기, 백제 왕관 만들기, 백제 탈 그리기 등 체험 코너도 마련된다. 
해가 지고 조명이 들어오면 공산성의 밤 풍광을 보러 나선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겨움이 느껴지는 공주 야경과 금강 위에 걸린 철교, 성벽을 비추는 조명이 시원한 밤공기와 어울려 기분 좋다. 


동글동글한 언덕처럼 보이는 송산리 고분군은 삼국시대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무덤의 주인의 밝혀진 무령왕릉을 비롯해 고분 7기가 모여 있다. 1~6호 분은 백제 시대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7호 분은 백제 25대 무령왕과 왕비의 능으로, 1971년 여름 5~6호 분의 배수로 공사 중에 우연히 발견됐다. 모형전시관에서 고분 발굴 과정, 내부 모습, 백제 문화 등을 접할 수 있다. 모형전시관을 둘러보고 공원처럼 깔끔하게 조성된 고분군 주변을 산책하면 된다. 출구에서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 중간에 공예품전시관과 관광객 쉼터가 있다. 쉼터에서 밤으로 만든 과자, 쿠키, 알밤막걸리 등 주전부리로 적당한 공주 특산물을 판매한다. 송산리 고분군 입구에 최근 개관한 웅진백제역사관도 들러볼 것.

오감 자극하는 향긋한 산책로


백제시대 문화를 테마로 한 국립공주박물관에는 무령왕릉의 주요 출토 유물이 전시되었다. 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4600여 점 가운데 무령왕 금제관식(국보 154호), 무령왕 금귀걸이(국보 156호) 등 12점이나 국보로 지정됐다. 
무령왕릉에서 국립공주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자리한 공주한옥마을은 공주를 찾는 개별 여행객은 물론 수학여행객에게도 인기 있는 숙소다. 한옥 고유의 멋을 간직하면서도 내부 시설은 편리하게 갖춰놓았다. 사이버공주 홈페이지(http://cyber.gongju.go.kr)에서 회원 가입하면 공주 주요 관광지 입장료와 공주한옥마을 숙박료가 무료 혹은 할인된다. 
공주를 대표하는 사찰로 마곡사와 동학사가 있다. 백제시대에 창건된 고찰 마곡사는 <정감록>이나 <택리지>에서 기근이나 전란의 염려가 없는 곳으로 꼽혔는데, 일제강점기에 김구 선생이 은거하기도 했다. 선생이 다니던 길을 따라 만든 백범 명상길은 솔향기를 맡으며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마음속 번뇌를 씻어내는 템플 스테이도 가능하다.


계룡산국립공원에 자리한 동학사는 올라가는 길에 절로 삼림욕이 된다. 짙은 그늘이 이어지고 투명한 계곡을 끼고 있어 여름철에는 피서객이 줄을 잇고, 가을이면 단풍이 눈부시다. 
동학사 입구의 계룡산자연사박물관에는 희귀한 전시물이 많다. 1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거대한 초식 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의 실물 골격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2층의 매머드 화석, 3층의 미라관도 인기 있다. 미라관에서는 조선 시대 학봉장군 미라가 눈길을 끈다.


‘5일은 도시에서, 2일은 시골에서’라는 취지로 시행되는 5도2촌마을은 다양한 체험을 원하는 여행객들에게 도움이 된다. 돌담풍경마을, 지게놀이마을, 천탑마을, 산수박마을, 도담골 호반마을, 자연애밤토랑마을, 무르실 고추마을 등 재미있는 체험 마을 20여 곳이 있다. 차곡차곡 쌓은 돌담이 보기 좋은 돌담풍경마을에서 접시를 만들고, 만두를 빚어 전골을 끓여 먹었다. 계절에 따라 체험 프로그램이 다르고, 마을 위쪽에 자리한 계룡산도예촌에서 작가들의 도예 작품 감상과 구입도 가능하다.

자료제공=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여행정보>
당일 여행 코스
·역사 유적 코스 : 공산성→무령왕릉→공주한옥마을→국립공주박물관→고마나루→마곡사
·문화 탐방 코스 : 고마나루→공산성→돌담풍경마을, 계룡산도예촌→계룡산 자연사박물관→동학사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마곡사→공산성→무령왕릉→국립공주박물관→고마나루→공주한옥마을(숙박)
·둘째 날 : 동학사→계룡산 자연사박물관→계룡산 도예촌→돌담풍경마을

관련 웹사이트 주소
·공주문화관광         http://tour.gongju.go.kr
·국립공주박물관       http://gongju.museum.go.kr
·공주한옥마을         http://hanok.gongju.go.kr 
·마곡사              www.magoksa.or.kr
·계룡산 자연사박물관   www.krnamu.or.kr
·동학사              www.donghaksa.or.kr
 

문의 전화
·공주시청 문화관광과 : 041)840-8081
·공산성 안내소 : 041)856-7700
·송산리 고분군 안내소 : 041)856-3151
·국립공주박물관 : 041)850-6300
·마곡사 : 041)841-6221
·동학사 : 042)825-2570
·공주시청 5도2촌과 : 041)840-8645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남부터미널-공주 : 20~40분 간격(06:30~20:30) 운행, 우등(직행) 1시간 30분, 일반 2시간 30분 소요.
·동서울종합터미널-공주 : 1시간 간격(07:10~18:50) 운행, 2시간 소요. 
·대전서부시외버스터미널-공주 : 시외버스 하루 수십 회(06:30~22:15)운행, 1시간 소요.
* 문의 : 서울남부터미널 02)521-8550, www.nambuterminal.co.kr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www.ti21.co.kr,  
        대전서부시외버스터미널 042)584-1616, www.bustago.or.kr 
        공주종합버스터미널 041)855-8114, www.usquare.co.kr 


자가운전 정보 
천안논산고속도로 공주 IC→공주·공주보 방면 우회전→백제큰길 1.4km→생명과학고 교차로 대전 방면 좌회전→전막교차로 무령왕릉 방면 우회전→금강철교→공산성 


숙박 정보
·호텔동학산장 : 반포면 동학사1로, 042)825-4301, http://dhsanjang.co.kr 
·공주한옥마을 : 공주시 관광단지길, 041)840-8900, http://hanok.gongju.go.kr
·금강관광호텔 : 공주시 전막2길, 041)852-1071, www.hotel-kumkang.com
·공주유스호스텔 : 탄천면 삼거리1길, 041)852-1212, www.gongjuyh.com 


식당 정보
·고마나루돌쌈밥 : 돌쌈밥, 공주시 백미고을길, 041)857-9999, www.gomanaru.co.kr
·새이학가든 : 공주국밥, 공주시 금강공원길, 041)855-7080 
·동학산장식당 : 한정식, 반포면 동학사1로, 042)825-4301
·고향손칼국수 : 칼국수·들깨수제비, 공주시 무령로, 041)853-9566
  

축제와 행사 정보
·웅진수문병교대식 : 2013년 4월20일~10월6일(매주 토·일요일, 7~8월 제외), 공산성 금서루, 041)840-8112(관광과 축제 담당)
·백제문화제 : 2013년 9월28일~10월6일, 금강둔치공원·공산성 일원, www.baekje.org 
·공주알밤축제 : 2013년 9월28일~10월6일, 금성동 연문광장 일원, 041)840-8112(관광과 축제 담당)
·금강자연미술프레비엔날레 : 2013년 9~10월, 연미산자연미술공원, 041)840-8112(관광과 축제 담당)


주변 볼거리
충청남도 역사박물관, 박동진 판소리전수관, 석장리박물관, 임립미술관, 지당자연사박물관, 황새바위성지, 우금치 전적지, 금강온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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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